두목(803~852):晩唐時 시인. 자는 목지(牧之)이고, 호는 번천(樊川) 경조 만년(지금의 陜西省 西安)사람이다. 그의 조부가 중당시(中唐時) 유명한 역사서 통전(通典)을 쓴 한(漢)의 사마천(司馬遷) 이후 최고의 역사가로 칭송받는 두우(杜佑)이다. 시인도 성당시(盛唐時)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를 대두(大杜)라 칭하고 그를 일러 소두(小杜)라 칭할 정도로 문명이 높다. 특히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체류하였던 강남의 아름다운 풍경과 시인이 직접 경험하였던 향락적 도시생활을 노래한 시를 즐겨 썼으며, 그러한 그의 시는 화려하고도 염정적인 색채가 짙어 중국의 화류문학(花柳文學)의 신기원을 이루었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집으로 번천집(樊川集)이 있다.
* 落魄(락탁) : 魄은 혼 백으로도 읽기도하나, 여기에서는 영락할 탁, 즉 실의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 楚腰纖細掌中輕(초요섬세장중경) : 옛날 초나라 임금이 허리가 가는 미인을 좋아하자 궁중여인들이 허리를 가늘게 하고자 굶어죽는 일까지 있어 초요(楚腰)라는 말이 생겼고, 한나라 때 미인 조비연(趙飛燕)은 몸 가볍기가 손바닥위에서 춤을 출 정도였다는 장중경(掌中輕)의 고사가 있다. 이런 고사를 들어 시인은 이 장에서 주지육림에 빠진 모양을 묘사하고 있다. * 揚州(양주) : 지명. 지금의 강소성 양주시로 얼마 전의 TV드라마 장보고의 활동 주무대였던 당대(唐代) 최대 무역항 이였던 양주를 말한다. * 박행명: 박절한, 박정한 이름을 얻다 라는 뜻이다.
* 양주는 당나라 제일의 환락가였다고 한다. 기후도 좋아 놀기에는 금상첨화. 미인도 많았으니 당대의 논다하는 한량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 스물 여섯 살에 진사에 급제해 관리생활을 한 두목도 그 중의 한 명이었으리라. 당나라 말기 강직한 성품의 두목이 이런저런 궁싯거림이 왜 없었을까. 그 실의의 시간, 허리 가늘고 몸 가벼운 미인들과 진탕 놀았나 보다. 오죽했으면 열 세 살짜리 기생과 로맨스를 즐겼을까. 그러나 그 십 년의 방탕한 시간을 보낸 어느 날,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환락에 빠져 지낸 시간들이 후회로 밀려온다. 그게 다 부질없음을 젊은 시절엔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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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잔잔한 음악과 함께한 한시한수 새기고 갑니다.
여러수고에 감사드립니다.
몽환적인 음악에 잠시 정신을 놓습니다..
ㅎㅎ 자주 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만...하지마시고...한줄씩 더 써봐요...
후회를 하는 詩語 에서도 ,옛 현인 들의 여유와 기개가 짙게 느껴집니다.잘 감상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