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섯 살의 메리 파커는 정신병원 간호사다. 남편 톰은 예순 살로 그 지방 대학 정교수다. 이 부부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는데 모두 결혼해 먼 곳에서 살고 있다.
메리는 병약한 어머니가 낳은 외동딸이었다. 그녀는 현재 남편이 가르치는 대학에서 부총장으로 재직한 아버지에게 헌신적이었다. 아버지는 학교일에 열중한 나머지 가족은 명실공히 뒷전이었다. 아버지는 많은 시간을 주로 사무실에서 보냈고 덕분에 어머니는 신경성 두통에 마음을 쓰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메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면서 따뜻한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아빠의 귀염둥이 딸’이었고, 아버지는 집에 오면 개가 먼저 반기는지 메리가 먼저 반기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하곤 했다.
어머니는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친구들에게 곧잘 메리가 어렸을 때 얼마나 큰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메리는 이 같은 어른들의 칭찬과 찬사를 들으면 행복했고, 그래서 어떻게든 쓸모있는 아이가 되고 싶었으며 어른들에게 더욱더 인정받고 싶어했다. 그 덕분에 어머니는 갈수록 메리에게 의지했고 자신은 신경성 질병에만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메리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행복이 부모의 요구를 들어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몸짓과 아버지의 말투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으레 하는 놀이나 친구들을 대부분 등한시했고, 어머니의 시중을 들거나 귀가하는 아버지를 위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아버지가 귀가하는 시간에 집에 가는 데 방해되는 것은 그게 어떤 것이든 짜증스러웠다. 그녀에게는 집에서 기다리는 딸을 아버지가 알아주는 것이 중요했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때 그녀는 즐거웠던 일이나 어린 시절의 친구들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어머니의 시중꾼’이자 ‘아빠의 귀염둥이 딸’로서의 자기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메리의 아버지는 늘 일에 쫓겨 그녀를 서먹서먹하게 대하거나 심지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메리는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더한층 노력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태도에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고맙기만 했다. 한 번은 그녀가 열이 나고 몹시 아팠지만, 아버지가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볼까 봐 쾌활하고 건강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메리는 자신을 되돌아볼 때 아버지에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부모는 그녀가 한 일을 제대로 높이 사준 적도 없었고 헌신적인 그녀를 인정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온갖 정성을 다해도 어머니는 그저 당연한 일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메리는 자신이 일하는 요양원에 입원한 시어머니에게도 똑같은 태도를 발견했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메리는 주변 사람들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세계가 없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녀가 열두 살 때 돌아가셨다. 그녀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아버지가 어떻게 지신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를 용서하는 일이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크나큰 짐이 되어버렸다.
메리는 완성을 향한 여정 가운데 희생 단계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그녀는 봉사에 대한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때마다 상처를 입었다. 그녀가 이 같은 성향을 인정하고 본질적으로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의해 봉사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메리는 때때로 자신이 성인군자 같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그녀는 자기 희생적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든다. 언젠가 그녀의 딸이 화를 내며 어머니의 사랑에 숨이 막혀달아났다고 했다. 아들딸이 대학에 들어가고 결혼했을 때 메리는 상실감과 당혹감으로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이 상처 역시 용서 과정에서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가 되었다. 그녀는 아들딸이 곁을 떠나는 것을 배척 행위로 보았던 것이다.
다행히 메리에게는 직업이 있었고 환자들이 그녀를 필요로 했다. 환자들은 그녀가 정 많고 편안하며 자신들의 기분을 이해하고, 사소한 감사표시를 좋아하며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 환자들에게 자신을 의존하게 하는 때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나 반성해 보기도 했다. 때때로 딸은 ‘우리 어머니는 유다 여인’이라고 놀린다. 메리는 지금도 앞치마를 손에 들고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
메리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자신의 불안정하고 의존적 욕구를 해소했다. 실제로 그녀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 안에서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필요를 일체 배제했다. 누군가가 “메리, 당신을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걸 말씀하세요”하고 말했다. 요양원에서 직원 회의가 열릴 때면 메리는 늘 커피를 타오거나 블라인드를 조정한다면서 모두를 편안하게 하는 일을 도맡아하곤 한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그녀의 주요 관심사는 회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든 사람들의 뜻에 부합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 일이 이루어졌다면 회의는 주요의제가 풀리지 않고 엉망이 되더라도 그녀에게는 성공한 것이다.
메리는 곧잘 남편을 어머니 노릇을 해야 할 세 번째 자녀로 생각하곤 했다. 실제로 그녀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톰과 결혼한 이유는 ‘그가 나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메리를 움직이는 것은 마음(깡통인간)이다. 하지만 실상 우리네 강함이 약함의 다른 면이듯이, 메리는 자신에게 진짜 마음이 없지 않나하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그녀는 그런 의구심이 드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욕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안에서 채워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며, 직장과 가정생활에서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부심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깨어 있는 그녀는 언제라도 충고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은 도와주려는 순수한 열망에서 나올 수도 있고, 조종하려는 이기적 욕구에서 나올 수도 있다.
메리는 실제로 희생 단계와 그것을 유발하는 상실감이나 배척감이 필요하다. 그녀는 자신의 모자람과 소망을 깨닫도록 이끌어주기 위해 의기소침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녀에게는 강인함이, 본능적 육체나 신경중추가 제공하는 용기와 독립성이 많이 필요하다. 메리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두 발로 서는 것, 자신의 정당한 요구를 인정하는 것, 스스로 변화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녀가 완성을 향해 가야 할 머나먼 길이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녀가 아니며 그녀라는 여성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라야 자신의 상처는 아물고, 그 같은 치유에 수반되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용서가 실현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메리의 약점은 오만이다. 따라서 그녀가 자신의 힘을 발견할 곳은 겸손이다.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활동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이름 모를 두려움(상처)과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겸손이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외형적 가리개가 떨어져 나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는 데 있다.
메리는 기도중에 내면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마음기도는 그녀가 외향적 충동을 무시하고, 지극히 실재적임을 깨닫게 될 자기 존재의 핵심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된다. 메리는 온갖 형태의 단체기도에 잘 적응하고 있다. 그녀는 매주 모음을 가지고 깊이있는 기도 차원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온정과 친교를 사랑하는기도단체에 가입했다. 기도는 메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충족시키고자 노력하도록 도와준다. 서로를 지원하는 모임은 어떤 것이든 그녀에게 큰 힘이 된다.
자비묵상은 그녀의 성품과 잘 어울린다. 그녀는 훌륭하게 적응해 갈 것이다. 그녀는 앞에서 이야기한 내면의 어린아이를 위로할 필요가 있다. 뒤에 소개 될 초점맞추기 과정 또한 인간관계와 그 느낌을 통해 이루어지는 메리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우리 모두 그렇듯이 그녀의 미덕이 곧 그녀의 악덕이 되는 만큼 그녀는 자신의 ‘몸지식’과 접속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지난 상처가 주는 고통을 감지할 수 있지만 그것을 상처 준 사람들과 관련시켜 바라본다. 그녀는 또한 무시하거나 감사할 줄 모르는 태도에 상처를 입는다. 그녀가 상처를 다루고 그 느낌을 깨닫게 하는 이상적 방법은 초점맞추기다.
메리는 성장하면서 하녀나 ‘유다인 어머니’ 노릇보다는 동반자 노릇에서 한결 만족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두려움과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대용품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관심에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움직이며 그것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응답함으로써 얻고자 했던 바로 그것은 그녀가 단념할 때 비로소 얻게 될 것이다.
참조 문헌:용서의 과정 윌리엄A.메닝거 지음 -바오로딸-
첫댓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당~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