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천년사】는 『전라도가 일본천황의 지배 영역이라는 ‘정한론’의 부활』
나가 미치요(那珂通世 1851~1908)의 가라고(加羅考),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864~ 1946)의 일본서기 조선지명고,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1873~1961)의 임나강역고, 이마니시 류(今西龍 1907~1943) 기문·반파고,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1904~1992)의 임나흥망사. 이 역사날조 작업에 동원된 일본인들이다.
멀쩡한 가야를 임나로 만들고 임나일본부의 지배영역이 남한 땅이며
가야의 활동 영역인 지금의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라고 역사 날조행각을 논문으로 수립한 자들이다.
이들은 반파와 기문 땅을 경상도 지역이나 전라도의 장수와 남원으로 몰아갔다.
지금 전북의 역사교수들은
반파 기문은 경상도(아유까이 후사노신,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아니고 전라도(쓰다 소키치)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한심한 작태는 정한론의 덫에 걸린 역사교수들이
■천황 지배영역을 놓고 경상도냐, 전라도냐 경쟁을 벌이는 우스꽝스런 풍경이며,
■어느 일본인 논문을 더 베끼느냐의 유치한 논문복사 경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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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천년사에서 기문국이 남원에 있었다는 근거가 기가 막힌다.
1) '전라도천년사' 총설 77페이지에서 기문국이 양직공도에 있다고 했는데
양직공도에는 기문(己汶)이 없고 상사문(上巳文)만 있다
대학 역사교수들이 양직공도의 상사문(上巳文)을 상기문(上己文)의 오기라고 주장하여,
고유 명사인 상기문(上己文)을 일본서기 기문(己汶)으로 주장하고,
기문은 일본 식민지인 반파국이 차지한 기문국으로 남원에 있었다고 전라도천년사에 기록했다
2) 【전라도천년사 총설 77페이지】에서
"전북 동부 지역은 섬진강 수계인 운봉고원(남원시 동쪽)과
금강 수계인 진안고원(무주·장수·진안)으로 공간 구분이 된다"라며
"이 중 남원 지역은 <양직공도>에서 백제의 주변 소국인 기문국으로 알려진 곳이었다"라고 기술했다
중국 자료인 <양직공도>에서 기문국이라는 명칭이 나왔다는 이상한 설명이다
(양직공도에 기문은 없고 상사문만 나오는데..)
첫댓글 아들이 아버지를 낳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