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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백두대간은 따뜻했네 – 대궁산,곤신봉,선자령,새봉,대관령
1. 곤신봉에서 조망, 멀리 가운데는 두타산과 청옥산, 그 앞 왼쪽은 만덕봉 연릉
해가 지고 있었다. 공복에서 오는 고통을 참아가며 악몽 속에서 헤맸다. 주위의 산은 온통 풍설에 갇혀 있고, 우리는
그런 산을 보면서 걷고 또 걸었다. 코르돈 마르코니에서 코르돈 아델라에 걸쳐 옮겨가는 선명한 색채의 대교향악,
그 가운데 피츠로이의 황금색 덩치 옆으로 불타는 듯한 둥근 달이 보랏빛 하늘에 떠올랐다. 이 환상적이 황혼에 이
어 음산하고 침침한 잿빛이 점차 짙어갔다.
기온이 영상이라 눈이 푸석거려 무릎까지 빠져 걸음은 더디고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프고 졸려서 힘들었다.
시야마저 흐려서 크레바스가 조심스럽고, 이런 미로를 헤쳐 나가느라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
하던 중 갑자기 뒤에서 로프가 나를 잡아챘다. 순간 도로가 크레바스에 빠진 줄 알고 확보하는 자세를 취했다. 실은
잠을 견디지 못해 그가 눈 바닥에 누워버렸던 것이다.
―― 발터 보나티(Walter Bonatti, 1930~2011), 『내 생애의 산들(Berge Meines Lebens)』(김영도 옮김, 조선
매거진, 2012)에서
▶ 산행일시 : 2026년 1월 25일(일), 맑음
▶ 산행인원 : 2명(광인, 악수)
▶ 산행코스 : 삼왕동,베데스다기도원,△685.8m봉,술잔바위,울트라바우길,대공산성,대궁산,곤신봉,선자령,새봉,
대관령
▶ 산행거리 : 도상 17.3km
▶ 산행시간 : 6시간 57분(08 : 08 ~ 15 : 05)
▶ 갈 때 : 청량리역에서 KTX 열차 타고 강릉으로 가서, 944번 마실버스 타고 종점인 삼왕동 청간사로 감
▶ 올 때 : 대관령에서 택시 타고 횡계로 가서, 이른 저녁 먹고 고속버스 타고 동서울로 옴
▶ 구간별 시간
05 : 27 – 청량리역
07 : 00 – 강릉역
07 : 35 – 강릉역 옆 주차장, 944번 마실버스 종점
08 : 08 – 삼왕동, 청간사(淸簡祠), 산행시작
08 : 26 – 베데스다기도원, 임도
08 : 53 – 능선, 임도
09 : 26 – 강릉 바우길
09 : 31 - △685.8m봉, 휴식( ~ 09 : 40)
09 : 57 - 술잔바위
10 : 13 – 산성마루
10 : 28 – 대공산성(대궁산성, 보현산성)
10 : 44 – 대궁산(大弓山, 1,008.3m)
11 : 34 – 백두대간 곤신봉(坤申峰, 1,135.2m)
12 : 05 – 안부, 점심( ~ 12 : 20)
13 : 00 – 선자령(仙子嶺, △1,155.7m)
13 : 45 – 새봉(1,060m)
14 : 53 – 대관령(大關嶺, 832m)
15 : 05 – 대관령휴게소, 주차장, 산행종료
15 : 24 – 횡계, 저녁( ~ 17 : 27), 버스출발(18 : 10)
20 : 43 - 동서울터미널
2. 산행지도
▶ 대궁산(大弓山, 1,008.3m)
청량리발 강릉행 첫 열차를 탄다. 이번에도 광인 님과 서로 열차표 예매일자가 다르고 좌석을 선택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 같은 호실 같은 열 각각 양쪽 창가에 배정되었다. 오늘 운수가 좋을 조짐이다.
이렇듯 밤 열차를 타면 옛날의 아련한 추억에 젖는다. 특히 편석촌 김기림(片石村 金起林, 1908 ~ ?)의 시나 수필은
절절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수필 「심장없는 기차」의 일부다.
“남포소리가 산을 울리던 이듬해부터 칠년을 기차는 들의 저편을 날마다 외투를 입은 구장영감처럼 분주하게 달려
댕기오.
가을마다 기차는 그 긴 기다란 몸둥아리에 붙은 수십 개의 입을 벌려서 이 동리 사람들을 하나 둘 하나 둘 삼키더니
지금은 마을의 절반이나 텅 비었소.
(……)
기차가 떠난 뒤 꼬리면 언덕에 걸터앉아 시들어지는 나의 마음이 땅 위에 남고, 보-얀 연기기둥이 푸른 하늘에 남소.
잊어버리운 연기는 사냥개처럼 궤도 위를 냄새를 맡으며 돌아댕기오. 나의 마음은 송화강가로 돌아댕기오.
기차여 너의 기관차 화통에서 벌겋게 타는 것은 너의 심장인 줄만 알았더니 그것은 시커먼 석탄이었고나.”
(新東亞.5)
청량리역에서 강릉역까지 KTX 열차는 1시간 30분 남짓 걸린다. 아직 해 뜨기 직전이다. 이른 아침 대기가 차디차
다. 입김이 얼고 눈꺼풀이 끈적끈적하고 말은 얼어 어눌해진다. 역사 옆 너른 주차장 한쪽에 대궁산 들머리로 잡은
삼왕동으로 가는 944번 마을버스 종점이 있다. 아마 첫 버스이리라. 07시 35분 출발이다. 15분 정도 남았다. 버스는
시동을 걸어놓았지만 승객은 받지 않는다. 이 추운 날 밖에서 15분을 서성이며 기다리기란 매우 힘들다. 기사대기실
문 두드려 버스를 미리 타게 해달고 사정하자 고맙게도 흔쾌히 버스 문을 열어주신다.
마실버스(마을버스) 승객은 우리 둘뿐이다. 택시처럼 달린다. 시내 대로를 지나 외곽 산자락을 향한다. 삼왕동이
가까운 보광사 근처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탄다. 삼왕동 마을 청간사 앞이 버스종점이다. 삼왕동(三王洞)은 명주군
왕릉 앞에 있는 마을로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이 죽은 다음 아들 둘이 이곳에 머물러서 ‘삼왕(三王)’이
라 했다 한다. 청간사(淸簡祠)는 생육신의 한 분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을 배향한 사당이다.
청간은 김시습의 시호(諡號)이다. 김시습은 강릉 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의 23세손이라고 한다.
대궁산 가는 길이 미로다. 곧장 청간사 뒤쪽으로 오를 듯한데 아래쪽 골짜기를 거슬러 오른다. 베데스다기도원
(0.8km) 방향이다. 대로 곳곳 계류가 넘친 데는 빙판이다. 계류는 얼었고 물줄기는 빙폭으로 변했다. 갓길 더듬어
종종걸음 한다. 산속 베데스다기도원이 상당히 크다. 그 앞 계류가 제법 장폭인 빙폭으로 변했다. ‘베데스다폭’이라
고 팻말을 세웠다. 대로는 베데스다기도원 오른쪽을 돌아 임도로 이어진다.
임도는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 오른다. 514m봉 안부인 능선에 이르고 임도는 능선을 간다. 임도는 여전히 미로로
이어지지만 앞장선 광인 님은 아는 길처럼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다. 산불감시초소가 나오고 임도는 산허리 돌아가
고 우리는 산속 소로에 든다. 둘레길인 강릉바우길이다. 별스럽지 않은 산릉인데 데크로드를 지나고 소나무 숲길이
다. 눈은 없다. 그 대신 낙엽이 수북하게 쌓였다. 눈길보다 낙엽 헤치는 게 더 성가신 일이다.
양지바른 공터에서 첫 휴식하려고 자리 잡았는데 △685.8m봉이다. 봉 같지 않은 둔덕이다. 삼각점은 ‘강릉 414,
2005 재설’이다. 배낭 벗어놓고 입산주 각자 독작한다. 나는 독주인 매실주 담금주를 약간 가져왔다. 광인 님은 탁
주다. 지난주 안양 수리산 산행에서 여러 악우들과 휴식할 때마다 술추렴했는데 늘 즐겨 마시는 이 탁주가 명주라더
라고 한다.
완만한 숲길은 계속된다. 조망할 데 없어 퍽 따분하다. 술잔바위에서 잠시 멈칫한다. 널찍한 암반에 여러 군데 움푹
파이고 거기에 물이 고여 있어(얼었다) 술잔으로 명명했다.
고도 높이자 언뜻언뜻 눈길이 나타난다. 108계단 오르막이다. 완만한 띄엄띄엄 있는 돌계단이다. 그 108계단을 다
오르면 대공산성 동문(?)이다. 대공산성은 석축산성으로 발해의 왕인 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쌓았다고 하여 ‘대공산
성(大公山城)’으로 불린다. 또한 ‘대궁산성(大弓山城)’, ‘보현산성(普賢山城)’으로도 불린다. 성안으로 들어 서문
(0.5km)으로 간다. 서문 그 성곽 끄트머리가 대궁산이다.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있어 아무런 조망이 없다.
3. 대로 옆 골짜기 빙폭
4. 베데스다기도원 앞에 있는 베데스다폭
5. 대공산성(대궁산성, 보현산성)
6. 대궁산 가는 길, 북사면은 제법 눈이 쌓였다
7. 곤신봉에서 조망, 멀리 가운데는 두타산과 청옥산
8. 멀리 가운데는 백적산, 오른쪽은 장군바위산
9. 멀리 가운데는 설악산 귀때기청봉, 오른쪽은 대청봉
10. 곤신봉 주변
11. 멀리 가운데는 두타산과 청옥산
12. 멀리 가운데는 만덕봉, 그 옆은 칠성대
▶ 곤신봉(坤申峰, 1,135.2m), 선자령(仙子嶺, △1,155.7m), 새봉(1,060m)
이제 등로는 빙판이거나 딴딴한 눈길이다. 아이젠 맨다. 대기는 누그러졌다. 바람은 그리 사납지 않다. 일기예보와
사뭇 다른 날씨다. 대궁산에서 빙판을 약간 내렸다가 등로 따라 가느라 봉봉을 직등하지 않고 우회하여 넘는다. 좌
우의 조망이 수렴에 가려 감질나게 보인다. 곤신봉 오르막에 다가간다. 숫제 설벽이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이
다. 이 구간이 오늘 겨울 산 산행의 체면을 살린다. 선답의 눈길 발자국이 어지럽다.
설벽을 트래버스 할 때는 오금이 저린다. 붙잡은 돌부리나 나뭇가지가 없다. 아이젠으로 설벽 찍어 한 발 한 발 옮긴
다. 틈틈이 들여다보는 세계적인 산악인들의 등반기를 생각하며 어쭙잖게 그 흉내를 내본다. 그들의 초인적인 의지
와 불굴의 투지에 매료되곤 해서다. 다음은 발터 보나티가 1958년에 세로토레를 등정할 때의 이야기이다.
“크레바스가 복잡하고 시야가 점점 나빠지는데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깊은 크레바스를 건너려고 그 사이
가느다란 얼음 칼날 위를 말 타듯 건너자 느닷없이 위험한 빙폭이 나왔다. 이 고약한 지점을 넘어서는 방법은 오직
하나, 자일을 얼음 말뚝 같은 돌출부에 돌려 20m가량 매달려 내려가는 것이다. 이때의 흥분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확보 기둥과 눈 밑에 입을 벌린 완전한 허공, 깊이를 알 수 없는 얼어붙은 심연.”
어렵사리 기어 대궁산 언저리에 오른다. 풍력발전기 바람개비 도는 소리가 위압적이다. 초원에 올라선다. 임도 따라
간다. 내쳐 곤신봉에 오른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눈 닿는 데마다 가경이다. 설악산 대청봉, 귀때기청봉, 안산,
가리봉, 황병산, 오대산 동대산 두로봉, 호령봉, 계방산, 태기산, 술이봉, 백적산, 괴밭산, 잠두산, 장군바위산, 백석
산, 발왕산, 노추산, 두타산, 청옥산, 고루포기산, 능경봉, 만산봉, 제왕산, 칠성대 …. 하나하나 짚어본다.
곤신봉(坤申峰) 정상 표지석은 비스듬한 자연석이다. 바람을 못 이겨 기울어진 듯하다. 곤신봉은 예전에 강릉대도
호부 부사가 집무를 보던 강릉읍성 관아에서 볼 때 곤신 방향 즉 서쪽 방향에 있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드넓은
초원은 삼양목장이다. 풍력발전기는 바람이 많은 매봉에서부터 이곳을 지나 선자령, 대관령까지 이어져 있다. 발전
기는 모두 49기로 한 기의 발전용량은 2MW로 전체 98MW라고 한다. 발전기 높이는 60m, 날개 길이는 40m로
가까이 가서 보면 대단히 장대하다.
바람개비가 돌지 않기에 고장이 난 게 아닐까 했는데, 고장이 아니라 바람이 불지 않아서다. 오늘 바람개비는 돌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초원 질러 곤신봉을 내린다. 걸음마다 사방 일망무제의 경점이다. 이 가경을 광인 님과 나 둘이
서만 즐긴다. 곤신봉 내린 안부께에서 점심자리 편다. 점심이랬자 행동식 다름 아니다. 나는 김밥 한 줄이다. 털보자
기에 곱게 싸와서 얼지 않고 보들보들하다. 광인 님은 모찌(찹쌀떡)이다. 식사시간이 길어야 15분 내외다. 산길을
걷기에는 이 시간도 아깝다.
임도를 간다. 대관령까지 등로는 임도이거나 임도 벗어난 산길이라 해도 임도와 비슷하다. 북쪽 오르막은 빙판 또는
눈밭이다. 선자령 갈림길 임도에서부터 등산객들이 몰려 있다. 임도 벗어난 선자령 오르막 0.3km는 제법 가파른 데
다 잘 다져진 눈길이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을 넘어온 등산객들 대부분이 아이젠을 매지 않아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난리부르스다. 이도 그들에게는 즐거운 일인지 눈꽃 대신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13. 황병산
14.1. 멀리 가운데는 동대산
14.2. 맨 오른쪽은 장군바위산
15. 발왕산, 그 뒤 왼쪽은 노추산
16. 멀리 왼쪽은 백적산과 잠두산
17. 멀리 왼쪽은 잠두산
18. 발왕산
20. 멀리 가운데 왼쪽이 잠두산
선자령. 넓은 공터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정상 표지석과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다. 선자령 또한 사방
막힘이 없는 빼어난 경점이다. 산 이름에 령(嶺)이 접미사로 붙었다고 크게 이상할 건 없다. 령(嶺)은 재, 산봉우리,
연산(連山)을 뜻하며, 재나 산마루의 이름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도 쓰인다. 우리나라 산 이름에 더러 이런 경
우가 보인다. 선자령은 선잘령, 대관산, 보현산, 만월산 등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선자령 주변은 사뭇 봄날이다. 초원 곳곳에 자리 펴고 삼삼오오 모여 휴식하는 모습은 한겨울을 무색하게 한다.
선자령에서 대관령까지 5.0km이다. 눈이 없고 바람이 불지 않고 등로는 신작로라 너무 일찍 산행을 마칠 것 같다.
미음완보로 아껴 걷는다. 조망에 더하여 사람 구경도 한다. 선자령을 길게 내리고 새봉은 대부분 오른쪽 사면을 돌
아 넘는다. 우리는 직등한다. 키 작은 산죽과 잡목 숲 헤치며 오른다. 그 정상에 서면 언뜻 나뭇가지 사이로 선자령
이 잠깐 보일뿐 조망은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가렸다. 새봉은 선자령과 대관령 사이에 있어 ‘사이’, 곧 ‘새’를 붙이지
않았을까 한다.
새봉을 내리고 항공무선표지소가 있는 1,030m봉이 조망이 트일 것 같아 오르려고 했으나 철조망을 겹겹이 둘러
아예 접근할 수가 없다. 이 무선표지소부터 다시 임도가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임도가 좁다 하고 내린다.
이윽고 대관령이다. 굳이 대관령 표지석이 있는 고갯마루까지 간다. 전망대에 서면 강릉 시내와 동해가 시원스레
보인다.
대관령(大關嶺)은 예로부터 험하고 가파른 고개였으며, 사람이나 짐승이 ‘대굴대굴 굴러 내려올 정도로 가파르다’
는 뜻에서 ‘대굴령’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이후 이 이름이 유사한 발음을 가진 한자어 ‘대관령’으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대관령이라는 지명은 영서 지방에서 영동 지방으로 넘어가는 ‘큰 관문’에 위치한 고개라
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대관령은 강원도를 영서 지방과 영동 지방으로 구분하는 주요 지형 경계의 역할
을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대관령에 대한 한시로는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踰大關嶺望親
庭)」가 널리 알려져 있다. 어머니를 강릉에 홀로 두고 떠나는 애달픈 마음이 절절하다.
늙으신 어머님을 강릉에 두고
이 몸 혼자 서울로 떠나는 마음
돌아보니 고향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 날고 산은 저무네
慈親鶴髮在臨瀛
身向長安獨去情
回首北邨時一望
白雲飛下暮山靑
대관령휴게소로 간다. 너른 주차장이 만차다. 전국 각지에서 선자령 눈꽃을 보려고 온 안내산악회 대형버스가 27대
다. 승용차는 제외하고 이들만 줄잡아 600명이 넘겠다. 우리는 주차장 입구에 있는 버스승강장으로 가서 횡계 가는
버스를 탈까 했는데, 버스는 16시 30분에 있다고 한다. 횡계 택시 부른다.
21. 선자령,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22. 오른쪽은 능경봉
23. 선자령 주변, 사뭇 봄날이다
24. 중간 오른쪽은 고루포기산, 그 앞 왼쪽은 능경봉
25. 멀리 가운데는 괴밭산, 백적산
28. 새봉에서 바라본 선자령
29. 새봉 정상 주변

첫댓글 선자령 온 사람들로 대관령은 인산인해였겠지요...
조망이 좋아서 복 받으신 날입니다.
기대했던 눈이 없어서 조금은 서운했습니다.
대관령은 북새통이더군요,
첫 기차의 서늘했던 좌석이 생각납니다. 요즈음은 난방이 되어 따스하겠지요. 선자령 사진을 보니 너무 눈이 없군요. 겨울가뭄 탓에 올봄의 야생화들이 걱정되네요. ㅋ
그렇네요.
야생화 볼 봄날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불안합니다.
인증샷이 뭔지^^
향적봉에도 인증샷 줄이 엄청 길더군요.
아마 향적봉은 더 굉장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