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를 전격 방문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달려들어 안기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남이고 다른 나라 사람이고 인종이 달라도 뜻이 같고 생각이 같고 가치관이 같으면 아버지가 아들을 안아주듯 저렇게 안아주는데......
우리 아버지는 나도 동생들도 나이 들어서 한번도 안아주신 적이 없다.
동생들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가 나를 안고 시청앞에서 광화문을 지나 창경궁 앞까지 안고 걸으면서도 힘들어 하시지도 않고 나를 어르며 아주 사랑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며 한참을 걸으신 적이 있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가 너를 무척 사랑하시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하시면서 동생들 어느 누구도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걸 보지 못했고 그렇게 오래 안고 걸으신 적이 없다고 하신 기억이 난다만 하여튼 나이들어 기억이 나는 한도내에서는 아버지가 어느 자식도 따뜻하게 안아주신 적이 없었다.
기억나는 건 그냥 맘에 안들면 왁왁~ 큰소리 치신거만 기억난다.
그 큰소리 제일 많이 들은 것이 남동생이었다.
왜냐하면 공부 잘하고 건강하고 똑똑했기에 그만큼 기대가 컷고 그래서 더욱 타박하신 것이다.
나는 타박할게 없었는지 큰소리는 안하셨지만 그냥 조금 무시하는 눈빛을 보내셨다만....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거꾸로 무시하고 살았다.
왜냐하면 난 나대로 뭔지는 모르겠지만 늘 자신만만 했고 용기백배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 포기하고 짓눌려 살았으면 내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바보로 장가도 못가고 나이만 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래서 아버지 방식으로 나를 단련시키신 것 같다.
그리고 20대가 되니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런 이야기들이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었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휠체어에 앉아서 살아오신 미국 대통령 이야기도 해주시고 중학교 때는 뇌수술을 해보자고 하시면서 서울대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도 받았다.
그리고 운동하는 게 제일 좋은 치료법이라는 말씀을 의사에게 들으시곤 자꾸 운동하라고 다구치셨다.
그 말씀대로 죽어라 운동해서 고입 체력장을 특급을 받으니 기분이 좋으신지 나를 바라보며 씩~~웃으시곤 했다.
하여튼 아버지의 특이한 성격은 지금도 생각할수록 퀘스쳔마크다.
바이든과 젤렌스키의 포옹을 보면서 잠시 아버지와 나를 되돌아 보았다.
알파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