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
캄캄한 배경 속에서 터번을 두르고 커다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커다란 눈망울, 촉촉한 입술, 빛을 받아 반짝이는 진주에 매혹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모나리자만큼이나 신비한 표정을 지닌 그림 속 소녀는 대체 누구일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55년·사진)’는 세계적인 명화다. 페르메이르는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지만, 남긴 작품은 겨우 36점뿐이다. 평생을 델프트에서 살았던 그는 결혼해 14명의 자녀를 낳았고 장모와 함께 살았다는 것 외에 생애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 비교적 최근이다. 1999년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가 출간되고, 이를 토대로 만든 동명의 영화가 2003년 개봉하면서부터다. 영화에 따르면 그림 속 소녀는 화가가 고용한 하녀다. 주인의 지시로 튀르키예풍의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안주인의 진주 귀걸이를 착용한 채 포즈를 취했다. 빛을 받은 소녀는 뒤돌아보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살짝 벌리고 있다. 촉촉한 두 눈에서 흘렀을 것 같은 눈물은 귀걸이에 맺혀 빛난다.
모델이 하녀라는 설정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허구다. 이 그림은 특정 인물의 초상화가 아니라 ‘트로니’이기 때문이다. 트로니는 인물의 표정이나 생김새를 연구하기 위해 그린 두상화를 말한다. 사실 그림의 모델이나 제목,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 제목도 20세기 후반에 붙여졌다. 확실한 건 화가가 소녀를 고귀한 존재로 표현하려 했다는 거다. 빛나는 진주를 그려 넣고 울트라마린 안료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당시 울트라마린은 금보다도 비싼 희귀 광물이라 성모의 의복에나 칠하던 귀한 청색이었다.
진주는 순결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어쩌면 화가는 성모처럼 순결하고 신성한 존재, 혹은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소녀의 신비한 표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건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