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기일이 내일이다.
나는 어머님 가실때 뵙지 못하였다.
그렇게에 나의 가슴은 늘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어머님을 생각하다가 빚바랜 습작 노트를 꺼내니 아버님께서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님을 만나러 가시던 때가 생각나 그날에 습작한 글을 적으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2007년3월
바람이 차갑게 분다.
비가 내릴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비는 오지 않는데
날은 보통 추운게 아니다.
얼굴에 닿이는 바람 그리고 기온은 매우 차갑다.
4~5일간 수면을 붙이지 못한 내 몸은 그로기 상태인데 눈을 감아도 수면을 취할수가 없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좀더 편해 모시고자 하는 바램에
캐디락 리무진에 태우시고 어머님께서 기다리시는 곳으로......
내 아들 범규가 앞장을 서고
막내동생과 세째와 넷째동생 친구들이 아버님을 부축하고
그 뒤를 3일 내내 눈물만 흘리셨던 형님과 제일 불효한 둘째인 내가 서고
그 뒤를 세째와 네째 다섯째 그리고 형수님과 제수씨들......조카들이 주욱 줄을 서고
집안의 형님들과 동생들 그리고 지인 들이 행렬을 이루며 아버님을 배웅 하였다.
앞을 인도 하는 사람이 아고 라는 곡을 하라는데 형님만 곡을 하며 우실뿐
나 와 동생들은 그냥 굵은 눈물 방울만 떨어 뜨리며 뒤를 입술을 깨물며
아버님을 따라 갈뿐이다.
어머님께서 "당신 이제 오시는 구료 "하는 소리가 마음으로 전달 되어온다.
어머님을 보내고 난뒤에 그옆에 마련 하였던 아버님의 자리에 몸을 눕힐때
참고 참아왔던 눈물의 샘이 그치지 않고 흘러내린다.
더 오랫동안 함께 하시길 바랬는데.....
내가 좀더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시고 가시길 바랬는데......
"형님 이제 그만 하세요 그래도 아버님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잘가셨쟎아요
호상 이라고 말씀 하시쟎아요"
"뭐가 호상인데 이제 볼수 없는데 만질수도 없고 그 말씀 들을수도 없는데 뭐가 호상이야 "
"희정아! 니 아니 2년전에 내가 아버지 말씀을 한번 어겼어 그러니 아버지가 불캍이
화를 내며 나를 때리더라 입술이 터지고 눈에 멍이 들었어 맞아도......
그래도 난 좋더라 아직도 나를 때릴 힘이 있으시기에 이젠 가지 말라고 아버지께
불효한 말씀을 드렸는데도 날 못때리시쟎아...... 다시 그렇게 맞아도 웃을수 있는데
그럴 기운이 있으시길 바라는데 이제는 어떻하니..."
커다란 눈에 가득 베인 눈물을 서로의 손으로 닦아주며 아버님의 영정을 만지며
그냥 나는 눈물만 흘리고 자신도 우시면서 나에게 울지말라고 등을 토닥거려 주시는 형님의
손길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지난 삼일을 돌아보았다.
3월9일 오전 7시...
갑자기 아버님의 숨결이 가파 지는것 같다.
간호원을 불렀다.
아버님의 숨결이 가파 지는데 어떻게 된거냐고 혈압과 맥박을 체크 하더니만
이상이 없는데요 아마 가래를 못 뱉어 내셔서 그런것 같아요.하며 가래를 씻어내는 기계로
구강을 청소 한다.
아버님은 숨이 가픈 중에서도 아픈지 눈썹을 찡그리신다.
이상한 불길한 예감에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놀랜 형님이 오신 시간을 오전11시 주치의를 부르고 중환자실로 아버님을 이동 시켰다.
주치의가 두분 들어오세요 하는 바람에 갑자기 형님은 바닥에 주저 앉으시기에
내가 부축하여 들어 갔다.
마지막 이신것 같습니다 인사 하세요.
"아버지" 하며 달려 가는 형님 그 옆에 나는 눈물만 흘리고 아버지의 손만 잡았다.
눈을 몇번 이나 꿈틀 거리시더니 "응""응" 하며 대답 하시는 소리가 옅어져 간다.
그리고 호흡기를 눌리는 의사가 손을 멈추며 아버님을 배웅 한다.
공황 상태에 빠진 형님과 나는 멍하니 바라만 보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
동생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장례식장 에서 예약을 하며 아버님의 수의 와 관 그리고 일반적인 것을
동생들 과 상의 하여 결정을 하였다.
형님은 무조건 제일 좋은것을 해드려라 하시는 말씀에 동생들 역시 그렇게 해드리자 한다.
형님이 아버님 영정 사진과 물품을 준비 할 동안 나는 아버님의 염을 지켜 보았다.
도저히 돌아신것 이 믿기지 않아 몇번이나 얼굴을 만지는데 쳐다도 보시지 않는다.
솜을 입에 넣을때 저러면 아버님이 다시는 못일어 나시는데 숨이 막히셔 답답할건데...
코에 솜을 밀어 넣을때 나도 모르게 살살 넣어라 하며 말을 한다.
가급적이면 아프지 않게 해드리라고...
염을 하시던 분에게 전화가 온다.
"지금 작업중이니 나중에 하세요"한다.
아! 저들에겐 저것이 작업이지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가득한 눈에 쓴웃음이 감돈다.
아버님 발에 버선을 씌울때 나에게 말을 한다.
"마지막으로 아버님께 말씀 하시죠"
"아버지 엄마한테 잘 찾아 가세요 길 잃지 마시고요"
준비된 빈소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형님께서 영정 사진을 가지고 오신다.
"새아~아버님 염 했어요 제일 좋은옷을 입혀 드렸어요"
"그래 지금 어디 계시니"
"냉동 보관실에 계셔요"
"많이 추우실건데......"
내가 사무 본 내용을 형님께 하나 하나 설명을 드리고 연락을 안취한데가 있는지 의견을
나 누고 있으니 화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네째 동생과 거래처인 회사와 막내 병원과 연관된 업체들의 화환이
장례식장을 가득 메운다.
급하게 달려온 세째가 "새아 아버지는..."
"응 이제 오니... 염을 하고 모셔 놓았다 그리고 아프지 않고 편안 하게 가셨다"
"정말 안아프게 가신것 맞지"
제수가 인사를 하고 조카들이 인사한다 큰아버지 둘째 큰아버지 하면서........
네째가 들어오면서 아버님 영정 사진을 보며 눈물만 흘린다.
급하게 귀국을 하여 제수씨 하고 공항에서 만나 검은 양복을 입지 못하여
준비한 검정 양복을 입고 상주인 완장을 서로 채워준다.
마지막으로 막내가 조카들과 함께 들어선다.
오형제가 서로를 마주보며 빈소를 눈물의 바다로 만든다.
아버님께 저녁 식사를 올리며 절을 하고 형님은 곡을 한다.
따라 해야 하는데 나와 동생들은 그냥 눈물만 흘릴뿐이다.
조화가 80개가 넘으니 더이상 놓을데가 없다.
그렇다고 돌려 보낼수도 없고.........
오후6시를 지나서 부터 향객들을 맞으며 형님의 곡은 더욱더 짙어지고
눈물의 샘이 터졌는지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린다.
형수님과 제수씨는 향객들을 맞이 하기 위해 바쁘고 아들 범규는 동생들과 함게
심부름을 한다.
작은 시간이 나며는 나는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기 바빳다.......
응어리진 아픔을 연기로 토하기 위해서인것 같다.
친구 곰돌이가 보인다.
"희정아"
"응 왔니 "
"친구들이 조화를 애기해서"
"하지말아라 더 이상 놓을데가 없어 다른 사람들의 빈소 마져 우리 조화로 가득차 있단다"
"그래도 희정아"
"괜찮아 내것도 몇개 들어왔어 그러니 하지말아라 아버님께 인사드리고 식사 하고 갈래"
"나중에 친구들과 같이 할께"
"그렇니 그러면 친구들에게 내일 오라고 해라"
"그래 알았다 너무 아파 하지 말아라 "
어둠으로 채색된 하늘을 바라 보았다.
내 눈길이 별빛에 머물때 함게 하였던 날들이 별빛과 함께 떠오른다.
큰키에 시원한 마스크에 웃음이 많았던 아버지.
어머님께 말씀을 들을때
나는 유난히 아버지를 잘따랏다 한다.
그 추운 겨울에 아버님이 보이면 발가벗은채로 달려가며 아부지 아부지 우리 아부지 하며
아버지 품에 안기면 아버님은 놀래서 외투로 내 몸을 감싸시고
추위에 발갛게 물든 볼은 아버님의 따듯한 체온으로 부비셨다 한다.
어디에 가시던 나의 손을 잡고 가시길 좋아하셨던 아버지.
내 나이 불혹을 넘어 아버님을 아프게 하였던 불효한 행동들이 떠올라 나를 더욱더
아프게 만든다.
"네가 아무리 불효를 하였다 하더라도 마지막을 보내드리는 자식이 제일 효자라 하더라
넌 아버님의 마지막을 지켜 보았고 염도 네가 보았으니 아파하지 말아라"
하는 친구 곰돌이의 말이 나의 눈물이 어둠에 물든 나의 모든 공간에 하얀빛을
내며 떨어질뿐이다.
이렇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였던 두분중 남았던 고귀한 나의 사랑을
하얀눈물 방울 속에 보낸다.
부디 어머님과 만나 다시 행복하게 사시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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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원도 횡성에 어머님과 만나는 날이랍니다
어제 4일날 어머님 생각하묘 지난 일들을 회사하니
아버님 가실 때의 일들을 적은 것이 있어 다시 컴 에 글을 적으며
회상에 젖어본 글입니다
선배님 잘계시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야 합니다 ^^
박희정님~
아버님께서는 하늘나라에 계시는 어머님을
만나러 가가셨으니 기쁨이기도 합니다.
아버님 사랑을 많이 받으셨으니 그 마음
얼마나 많이 슬펐을 까요.
그리움을 달래는글 잘 읽었습니다.
어머님 껌딱지이신 아버님이시기에
길 잘 찾아 가셨을 것입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이렇게 한 번씩 글을 적고 회상하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니 좋네요
댓글 선배님 감사드립니다^^
부모님 회상 글에서 저도 저희 부모님을
추억하며 그려봅니다 주검이란 영원한
이별이라 ᆢ그렇게 슬픈가 봅니다
그러시군요 어머님 고향이 김해 부원8동이셨어요
남성고보를 나오셨죠 잘 사셨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이종사촌 형님들이 그 곳에 살고계신답니다
선배님 건강하게 잘 계시죠 항상 행복한 날들이 선배님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부모님 두 분 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객지에 있었기에 돌아가신 후에 소식을 듣곤 했습니다
객지살이가 죄를 합리화시킬 수는 없는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저에게 멍에로 남아있는 것이 어머님 임종을 못지켰다는 것이랍니다
당시 외국에 퍼견 나가있었기에.......
님의 아픔 저는 느낄 수가 있네요
건강하신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사실것만 같았던 부모님
이젠 우리들 나이가 어느새
어제 또 한 친구를 떠나 보내면서
죽음을 두려워말자
하늘나라에는 부모.형제들
계시니 그리운 사람들
만난다는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 먹으니 두려움없네요.
부모님 돌아가셨지만
늘 그리운 분들이지요.
잠깐인 인생 잘 살아야지요.
오늘 하루도 평안히.
소천한다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을 향하여
나아긴다는 것이죠
참으로 부부간의 정이 유달라셨던 부모님이시기에
또 다른 세상에서 아마 잘 계실 것이라 생각하며
늘 행복하게 지내시라고 말씀 드리고 있답니다.
평안한 하루가 선배님과 함께 하시길 바래요^^
전 부모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했어요 아버지땐 외국 가있었고 엄마는 병원에서 언니 연락받고 갔을땐 이미 눈을 감으셨어요
생전의 막내딸 귀여워 하셨는데 불효 자식 되어었네요 지금도 가슴이 먹 먹 합니다
평상시에는 몰랐고 부모님의 걱정 잔소리가
그리도 싫었었고 때로는 반항심도 생기며 화도났지요.
하지만 부모님들의 생을마감하시고 소천을 하실때에는
부모님 생전에 죄지었던
아니 잘못했던 생각만 나는게
우리의 자식들이 아닌가 싶네요.
그렇더라고요
지나고 나니 후회스런 일이죠
생전의 모습을 그려보니 더욱 더 그립네요
부모님은 살아계실때
효도 많이 해야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말이 실감납니다
가시고 나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못다한 효도에 죄송할뿐이죠
희정님의 절절한 부모님 그리는 마음에 동병상련 해봅니다
금빛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