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정원
내가 케이리그에 관심을 보이게 만든 장본인. 날쌘돌이란 별명 답게 당시 리그내에서 그의 스피드를 따를자는 없어 보였다. 안양 엘쥐 당시 최용수가 찰떡 콤비를 이루며 연일 스포츠 신문 1면을 화려하게 장식 하곤 했었다..
득점, 어시, 크로스, 돌파, 모두 케이리그 정상권이였던 그는 그것 말고도 팬들을 매료 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다소 까무잡잡했던 피부, 작은 체구...
얼핏 보면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은 외모였지만 그라운드 안에선 언제나 열정 가득한 플레이를 펼쳐 보였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팬들에게 일일이 싸인을 해주고 활짝 웃어주고 사진도 찍어 주는 모습에서 어린 나이에 난 서정원 팬이 되고야 말았다.
프랑스를 잠깐 경험한 그가 다시 돌아간 구단은 수원.. 그는 한창 업그레이드 된 개인기술을 첨가... 최강 수원의 날개를 활짝 펴주며 멋진 골을 성공 시키곤 했다. 부산과의 홈경기에서 수비수 4-5명을 제치고 넣은 골.. 안양과의 경기에서 케이리그 역사상 베스트 골 탑 순위 오를만한 골 까지...
지금은 은퇴해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공부 중인 서정원.. 그는 케이리그를 접한 이후 내가 본 최초의 사기 유닛 이였다.
2. 안정환
그의 출연으로 야구의 도시인 부산은 한때 축구장에 가야 할지 야구장에 가야 할지 ... 부산시민들을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그만큼 그가 대우시절 차지했던 비중은 엄청났다. 3만을 수용하는 구덕은 거의 1만은 안정환 팬들로 가득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2년차 징크스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98년 적응을 한 안정환은
99년 제대로 케이리그를 점령하면서 리그 우승팀 샤샤의 MVP까지 가로챘다.
헤딩슛을 거의 하지 않았던 안정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골을 양산했다. 또한 숱한 역전골 동점골을 작렬 시켰고, 케이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명한 전남전 " 내 줘야져 !!~~ " 골도 기록 했다.
그뒤 당시 케이리그 최고의 센터백이였던 전남 마씨엘은 안정환을 두고 한마디 했다.. " 안정환은 내가 본 케이리그 최고의 선수다 "
그랬다. 과거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가 얼마나 잘했는진 몰라도 그들을 깍아 내리고 싶진 않다. 그들은 한국 축구의 레전드 이시니깐.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선수중 최고는 안정환이라고 본다. 당시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을 매 경기 만들어 낸 선수였고.. 10년이 지난 지금 케이리그 에서도 이만한 선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20대 초반.. 드리블에 집착하고, 수비가담이 적으며, 헤딩을 안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내가 본 안정환은 다르다. 당시 안정환이 맡은 임무는 판타지스타... 돌파든 드리블이든 패스든 슛이든 자기 하고 싶은걸 맘대로 해도 통하는 시대였다. 그 뒤 히딩크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지만....
첨엔 여성팬들로 뒤덮였던 구덕이.. 서서히 안정환의 능력에 매료되 거친 남성팬들 조차 안정환을 외치기 시작했다. 99년 컵대회 수원과의 결승전.. 출장정지인 안정환이 서비스로 팬들을 향해 싸인볼을 돌릴때 그 열광적이였던 구덕의
열기가 아직까지 선명하다..
언제 다시 이런 선수를 케이리그에서 볼수 있을까... 앞으로도 쉽진 않을 것이다.
3. 이천수
02년 월드컵 이후 케이리그에 뛰어든 이 겁없던 악동은 적응기도 없이 순탄하게 자신의 가치를 팬들께 선보였다. 케이리그 역사상 가장 안티가 많았던 선수가 이천수..아니였는지 싶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역경을 딛고 마침내 유럽 진출을 이루어 냈고, 순탄한 출발을 보이는 듯 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케이리그 복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실패를 질책,비난 했고, 한때 이천수는 그런 심적 부담감과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지곤 했었다.
해외만 가면 제대로 된 실력 발휘를 못해 늘 안타까웠었지만, 적어도 케이리그에서 만큼은 그 누구도 당할자가 없었다.
개인기와 크로스가 탁월한 선순 아니였지만, 케이리그에선 정상권이였으며,
벼락같은 슈팅과 환상적인 프리킥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
고종수가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고.. 안정환이 유럽팀을 전전 할때 이천수는
케이리그 팬들에게 자신의 진가를 알리고 있었다. 고종수 이후 이슈를 만들어 낼만한 실력을 겸비한 스타가 부족했던 케이리그. 모든것은 이천수에게 집중 되어 있었다.
케이리그 에선 언제나 당당했고, 한번 내 뱉은 말은 그대로 실천에 옮겼던 선수다. 귀네슈 발언은 팬들을 또한번 놀래키게 만들었고, 많은 팬들이 이천수의 발언에 통쾌해 하곤 했었다..
" 터키에서 감독하나 왔다고.... 언제부터 서울이 강팀이였다고... "
한명진 캐스터의 다소 곤란한 질문에 과연 한국선수중 저렇게 대답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실력도 중요하지만 뭔가 이슈를 만들어 내는 스타의 존재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특이한 골 세레머니를 하며, 특이한 염색도 했고,
기자들의 곤란한 질문도 허심탄회하게 대답할줄 아는 선수..
그가 한국에 있는 동안 만큼은 케이리그가 심심할 날이 없었다. 실력이 없다면
절대로 그런 행동이나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해외에서 실패했다고 그를 과소평가 해선 안된다. 왜 그가 케이리그 사기유닛 이였는 지는 앞으로 수원 임대 1년을 지켜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천수가 위대한 이유는 제이리그 팀들을 하나 같이 망신 시켰다는 점이다. 케이리그 접한 이후로 제이리그 팀을 그렇게 발라 준 선수는 한명도 못 봤다. 그것도 일본의 심장에서..............
4. 신태용
출중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국대와는 인연이 적었던 대표적인 케이리그 사기 유닛이다. (윤상철과 함께)
한국에선 일화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그였기에 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였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선수가 왜 성남과의 마지막 관계가 껄끄러웠는지... 울나라의 레전드 문화가 잘 정착 되지 못한 점에는 심히 유감 스럽다.
첫시즌 신인왕을 타며 화려한 신고식을 한 그는 리그 사상 최초의 3연연속 우승 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신태용이 있었다.
당시 박종환 감독은 신태용을 두고 이런 말을 한다
'고정운의 몸에 신태용의 머리가 합치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나올것이다'
그랬다. 신태용은 최고의 테크니션 이였으며 그라운드의 여우였다. 경기 흐름을 잘 판단해 패스를 뿌리고 슈팅을 날리며 리그 3연패를 지휘 한것이다.
후방에 있다가도 한순간 골문으로 접근해 깔끔하게 슈팅을 날리기도 했다.
미드필더 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99골 68도움 기록은 미드필더 부문에선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이 될것이다.
96년 아시안컵의 참패의 수모를 격은 뒤 국대에서 사라진 신태용..
한국의 많은 테크니션들이 국대에서 적응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한국 축구는 일명 "그라운드의 천재" 들을 뒷받침 해줄만한 환경도..전술도..
만들지 못했다.
그렇게 국대에선 시련을 겪었다 해도 신태용의 플레이를 본 사람이라면
그를 비하 하진 못한다. 적어도 케이리그 내에선 그를 능가하는 미드필더는 없었고, 수많은 개인상을 독식하며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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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자타가 공인 하는 케이리그 역대 최상급의 기량을 펼쳐 보인 선수는 많다. 두 선수만 더 언급한다.
국대 나 케이리그에서나 가끔 엄청난 골을 넣어 주시던 김도훈. 케이리그에서 골 결정력 만큼은 김도훈을 따라 잡을 자는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론 서동현이 김도훈의 플레이를 보고 배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골잡이란 무엇인가.... 케이리그 골잡이의 정석을 가르쳐 주신 김도훈.. 수십년이 흘러도 케이리그역사에 잊혀지지 않을 인물.
홍명보... 그는 어디서든 언터쳐블한 활약을 보였기에 기타 설명이 필요없다. 사기유닛 4명에서 제외 한건 그가 케이리그
가 성장하는데 단지 사기유닛 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 압축하긴 너무 위대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홍명보의 출연은 케이리그 수비수의 개념 자체를 뒤 바꿔 놓았고,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공격가담과 경기 조율
능력은 당시만 해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 했다.
첫댓글 솔직히 지금의 K리그에선 국산 사기유닛을 찾아볼수가.. 박주영이 한때 주목을 받았지만... 현재 누가 99골68도움을 할수있단 말인가....
일본의 심장에서 올스타 발라주신 최성국... 어쨌든 활약했으니까요 ㅎㅎ 1골 1도움이었죠? 또오~ 역시 명보옹... 진정한 멀티 테스킹 능력에 없는게 없는 선수인듯... 부족한게 없어...
고종수가 없다는게 의문이네요;; 물론 꽤 오랫동안 멈칫했지만 수원삼성 전성기시절 그는 괴물이었으니까요..프리킥 성공율이 굉장히 높았고 고종수존 을 만들기까지 했었죠. 이천수역시 이천수존을 만들었지만 고종수와 비교하면 골의 비율이 낮았음..
죄송한데 이명진 캐스터..
ㅋㅋㅋㅋㅋ 한명진...ㅋㅋㅋㅋㅋ
고종수는 솔직히 이천수랑 비교될 정도는 아니었고요. 김상식이 없는게 좀. ㅎㅎ
이천수 챔피언 결정전에서 1차전떄 4골 넣고 2차전 최성국 생일이니까 어시스트 해줘야죠 라고 인터뷰하고 결국엔 2차전에 어시까지 했을때 정말 대단했는데... ㅎㅎ
고종수는 K리그 전체의 르네상스를 이끌어주는데 큰 공헌을 했지만 실력만 놓고 본다면 여기에 나열된 선수들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저도 그래서 고종수는 뺐음..솔직히 데니스 랑 샤샤 의 공이 너무 컸고.. 99년 합류한 서정원의 몫도 상당했죠.. 서정원이 합류 하고서야 수원이 전대미문의 4관왕을 달성 한것도 있구요.
고데로 좋았는데
신태용이 ㄷㄷㄷ
지금 국대 / 올림픽대표 를 비롯해 아시아 어느곳에서도 홍명보 코치처럼 대단한선수를 찾아보긴 힘듭니다 그만큼 수비를 지위할수있는 자가 있을까여 ?? 적어도 한국엔 없습니다 잔인한 말일수도있지만 앞으로 걸릴꺼같아요 시간이
아예 안나올지도
안정환이 진짜..축구장을 가게된것도, 부산대우의 써포터를 하게됐던것도 모두 안정환 때문이었는데..진짜 그시절 구덕 운동장은 경기시작 2-3시간 전부터 1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들어차곤 했었죠..
한명 빠졌네여 ..유상철~~ 울산현대!!!
저도 유상철 동감!
안정환 패스가 쩔던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