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보문고) 미깡 지음 | 미깡 그림 | 미깡 사진 | 예담 | 2014년 12월 12일 출간
애주가 입장에서 나는 그가 측은했다. 손잡이 없는 작은 유리잔에 맥주 한 잔을 붓고, 열기 후끈한 고기 불판 앞에서 벌게지고 땀나는 얼굴을 연신 훔치며 두 시간째 “짠~”만 하고 있었다. 남부럽지 않은 당당한 체구에 “술 잘하시죠?” 소릴 종종 듣는 그는 내 친구다. 그의 집안은 알코올 분해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저주받은 체질을 공유하고 있다. 술 강권하는 상사를 모시고 하는 회식은 그에게 생명의 위협과 밥벌이의 지겨움을 동시에 선사하지만,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그저 재밌단다. 돈 내는 것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친구야, 우린 네가 있어 참 좋다. 한 잔이라도 더 마실 수 있으니까.
더운 여름, 퇴근 후 냉동실에 잠깐 넣어뒀다 막 꺼내 마시는 캔맥주. 추운 겨울 뜨끈한 바닥에 엉덩이를 지지고 앉아 먹는 어묵탕에 찬 일본주.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지에서 목숨 걸고 마셔보는 이름 모를 현지 전통주. 바닷가에서 막 썰어낸 싱싱한 회와 함께 마시는 지방 소주. 사방 탁 트인 야외 공연장에서 록밴드 음악을 BGM 삼아 신나게 퍼부어대는 생맥주와 보드카. 기념일을 자축하며 연인의 눈을 보며 마시는 와인. 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친구 같은 몸의 소유자라면, 술이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순간에 위안이 되고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술의 영롱함을 느끼지 못할 터. 어찌 보면 애주가를 술에 의존하는 한심한 인간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요즘은 술 만화도 많다. 술 빚는 장인의 길을 그린 만화도 있고 세계의 모든 술을 탐구해 학술가치가 돋보이는 만화도 있다. 요리(술안주)와 기가 막히게 궁합이 맞는 술, 그것 모두를 탐하는 인간의 심리를 그린 만화도 있다. 애주가에게 술 만화는 새로 마셔볼 술 정보를 건질 수 있는 정보지요, ‘세상에 나만 주정뱅이가 아니군’ 하며 안심할 수 있게 만드는 면죄부이기도 하다. 맥주 대백과나 아일레이 위스키 도감, 일본 전국 지역 술 지도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역시 주정뱅이는, 아니 애주가는 같은 애주가가 풀어놓는 무용담을 더 듣고 싶은 법. 술을 다룬 작품은 남다른 애정을 갖고 보게 되는 것이다.
다음 웹툰에 그런 작품이 두 개 있다. 벌써 여섯 시즌 째 연재 중인 인기 웹툰 ‘술꾼도시처녀들’과 정식 연재 전 실력을 겨루는 웹툰 리그에서 정식 연재로 승격한 ‘쌍갑포차’. 작가의 남다른 애주정신으로 계절, 날씨, 장소, 기분에 따라 주종과 안주 종목을 연결해 독자들의 불금 술자리 메뉴를 책임지고 있는 ‘술꾼도시처녀들’은 숙취에 시달려 방바닥을 뒹굴어도 좋은 이승 생활의 위안과 공감을 책임지고 있다. 건강하게 태어나 쑥쑥 커서 어엿한 주정뱅이로 장성한 세 여자가 벌이는 술판. 그 틈으로 슬쩍 엿보이는 독거, 여성, 노동자, 갑을관계, 연애, 생계, 반려동물 등 삶의 희노애락. 물론 술을 마신다고 고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1년에 임대료 10억 짜리 팬더를 굳이 모셔오는 것처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이벤트가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살 수 있는 큰 위안과 용기를 주는 거니까.
그에 반해 ‘쌍갑포차’는 포차 주인장이나 극을 종횡무진 하는 캐릭터들 대부분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끝에서 비로소 만나게 되는 존재라고 할까. 감정노동에 지쳐 생을 포기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를 툴툴거리며 들어주며 맛깔나게 ‘갑’소주를 들이키는 신, 저승 가는 길에 들러 마지막 한풀이를 하려는 인간의 청을 못 이긴 척 들어주는 신, 이미 혼이 된 자의 소원을 들어주려 규칙을 위반하기도 하는 신, 인간 아니고 고양이의 수발도 드는 신이 ‘쌍갑포차’의 주인공들이다. 신은 ‘쌍갑포차’를 차려놓고 한 에피소드에 한 가지 메뉴와 소주만 내어놓는데, 에피소드의 중심이 되는 인간에게 딱 어울리는 메뉴로 골랐다. ‘술꾼도시처녀들’처럼 불금에 먹어야지, 메모해둘 안주는 아니지만 ‘위안’이라는 술의 기능에 최적화된 안주라고 볼 수 있겠다.
바로 얼마 전이 추석이었다. 나와 가족의 아득한 수고가 들어간 기름진 명절 음식이 냉동실에 아직도 남아있을 거다. 조상들께 감사인사 올렸으니 명절 아니면 잘 안 마시는 정종도 남았을 터. 풍성하게 먹고 이승생활의 시름을 잠시 내려놓으라는 조상님의 말씀대로 먹고, 먹고 또 마셨다. 당분간은 두 가지 다 조금 멀리하는 게 건강에 좋겠지만, 적당한 음주는 어른이면 공평하게 즐길 권리가 있는 인생의 작은 낙이니 아주 멀리해버리진 말자. ‘술꾼도시처녀들’과 ‘쌍갑포차’를 다시 떠올려보자. 목숨이 괜찮다면, 당신도 술잔에 시름을 함께 담아 꿀꺽, 삼켜보지 않겠는가.
임지희 만화웹진 ‘에이코믹스’ 수석에디터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6-09-26 (월)
첫댓글 읽어 봐야지 ㅎㅎ
책 클릭하면 되유 ......송화님 유 마음가는데로 살아볼라고...하는데..역시나 구경(방송이나 이런 책으로..)하는 걸로...
자신의 취향이 아니면...
술꾼 ..애주가...우~~지겨워 함서도 가끔은 그 술이 위로도 됨을 알기는 합지요 ㅎㅎ 요즘은 술도 담배도 여성들이 더 즐기는 듯...착각할때도 있을만치 흔한 풍경.또 혼술(혼자 마시는 술)을 즐기는 사람도 많데니 ..그건 좀 취향은 아니고^^*
저도 술맛모르는 일인입니다. 그것도 좀 억울한 면이 있어요 ㅎ
그대신 난 무엇을 즐길까? 라인댄스 , 책, 쇼핑, 과일, 잠 그리고 고스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