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자 - 남촌
김규환 곡 / 김동환 시
https://www.youtube.com/watch?v=0bE58XmLuAE
🍃 남촌 🍃
-김동환 시-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南風) 불 제 나는 좋테나.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산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 누가 섰다가,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고 가느단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김동환 金東煥 ,시 -
일본식 이름: 白山靑樹(시라야마 아오키), 본명(아명): 김삼룡(金三龍)
호는 파인(巴人) ·취공(鷲公). 필명으로는 강북인(江北人)·초병정(草兵丁)·창랑객(滄浪客)·백산청수(白山淸樹)·김파인(金巴人)·파인생(巴人生)·목병정(木兵丁)·석병정(石兵丁).
'산너머남촌에는'으로 유명한 시인..
1901년 9월 27일 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 수송동(現 경성군 승암노동자구)에서 아버지 김석구(金錫龜)와 어머니 마윤옥(馬允玉) 사이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09년 고향의 경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3년 3월 졸업했으며, 빈곤한 가계 탓에 중학교 진학은 하지 못하고 한동안 경성군청에 근무하였습니다.
1916년 경성부로 이주하여 중동중학교에 입학했으며 1921년 3월 졸업하였다. 곧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토요대학 문화학과에 입학하여 재학하던 중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이 있었는데, 이때 일본인의 조선인 혐오로 인한 관동대학살 및 수용소 수감을 피해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했습니다.
1924년 문예지 '금성' 3월호에 '적성을손가락질하며'를 발표해서 시인으로 데뷔했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였으며 왜정 때 잡지사 '삼천리'의 경영주였습니다.
당시 '삼천리'의 여기자로 입사한 작가 최정희씨와 사랑하게 됐으며
6.25때 납북될때까지 김동환씨와 최정희씨는 두 딸을 둔 부부였는데
1952년 7월 이웃에 가듯 나간체 납북, 김동환씨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958년 3월 6일경 사망 추정
첫 부인 신원혜(申元惠, 1903년~1993년)와 3남 1녀를 두었고, 최정희(崔貞姬, 1906년~1990년)와의 소생으로는 소설가 김지원, 김채원 자매가 있습니다. 여류 소설가 최정희는, 모윤숙, 노천명과 함께 대표적인 여류 문인계에서 친일파로 유명합니다.
아무나 쉽게 사귀지 않는 무뚜뚝한 표정에 쌀쌀해 보이지만 내면은 다정다감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답니다.
그는 향토적이고 애국적, 민요적 색채가 짙은 서정시를 주로 썼습니다.
대표작 -
한국 최초의 서사시《국경의 밤》, 산너머남촌에는, 웃은죄.. 등 시와..
소설 전쟁과여인, 수필집 꽃피는한반도..등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김규환,곡 -
1925년 평양 출생
남촌은 1975년 작곡된 곡입니다.
김규환씨는 독립운동가인 부친과, 신사 참배 거부를 주동하는 어머니가 감옥을 밥먹듯 드나든 때문에
어려서부터 고학하며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음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무료로 공부하는 평양사범학교를 다녔고
졸업하면서 김동진씨가 조직한 평양 교향악단에서 호른연주를 했습니다.
그후 평양음악학교에 입학, 피아노, 작곡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1947년 월남해서 동덕여고 교사를 시작으로 동아대, 영남대, 동의대학교에서 강의하였고 한국작곡가회 상임고문을 지냈다. 또한, KBS 어린이합창단 상임지휘자와 KBS 합창단 단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98년 까지 한국 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이었습니다.
1997년 화관문화훈장을,
2005년 제18회 대한민국 동요 작곡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2011년 향년 86세로 별세하였다. 슬하에 2녀를 두었다.
대표작 -
임이 오시는지, 남촌등 80여 가곡과
채보(採譜) 한 민요 한오백년, 신고산타령등 30여곡...
칸타타 조국, 이제는 만나자..가 있습니다
[부고]‘임이 오시는지’ 작곡 김규환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