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삶에 고귀한 인간의 존엄성을 부여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라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계에선 어떤 개인도 존중받을 수 없다.
지혜로움, 자유를 수반한 사랑이다
요즘 ‘서울의 봄’이 세상의 지목을 받고 있다
봄을 맞은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민주화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봄’이 시작됐다.
‘찬란했던 서울의 봄은 그렇게 끝났다’는 자막을 보며 잘못은 짚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영화 제목을 사실대로 표현하자면 ‘서울의 봄’이라기보다는
‘서울의 겨울’ 내지는 ‘서울의 봄 전야’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라고 말이다.
영화를 보고 서로 공감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특정한 목적으로 공분을 쌓고 연대하는 일에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 지혜로움, 자유를 수반한 사랑, 희망, 긍휼 등 사람의 삶을 지향하는 감동이 필요하다
‘서울의 봄’이 삶에 고귀한 인간의 존엄성을 부여하는 자유민주주의를 꿈꾸었다
‘비욘드 유토피아’
‘서울의 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공분을 불러일으키지만, 긍휼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내달 개봉 예정인 ‘비욘드 유토피아’(감독 매들린 캐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실제 북한의 비참한 현실과 탈북자의 험난한 탈출기를 담았다.
미국에서 제작돼 2023년 올해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지난 10월에 우드스톡영화제에선 최우수 다큐상과 편집상을 받았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내년 3월 열리는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 후보작으로 유력하다고 한다.
임다윗 목사는
“영화를 통해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됐다.
북한의 참혹한 현실과 탈북자의 목숨을 건 북한 탈출을 보면서 마음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복음 통일이 속히 오도록 더 강력한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북한을 유토피아로 여기며 고난의 행군이 계속됨에도
북한 정권을 절대 신뢰하는 북한 동포들의 참혹한 모습이 담겨있다.
또 죽음을 각오한 탈출 현장이 생생하게 촬영돼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힘든 탈북 과정에서의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이 겹쳐지는 이 영화를 통해 북한 인권의 실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견리망의(見利忘義)’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계묘년 한 해도 곧 종착역이다. 힘들게 버텨온 날들이었다.
見利思義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옳고 바른 사회를 꿈군다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한반도 상황도 이에 못지않다.
인권 사각지대 평양은 아직도 영구동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억압과 굴종,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도 성탄절 복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내년 봄에는 남과 북이 복음으로 통일돼
저 평양에서 함께 덩실덩실 춤추는 유토피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꿈꿔본다.
癸卯年 동지날 희망의 청룡의 해 甲辰年,
2030년 庚戌年 개들이 기쁘게 꼬리를 흔드는‘평양의 봄’이 오기를 바란다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밀란 쿤데라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다.
이 작품은 토마시와 테레사, 프란츠와 사비나의 인생과 사랑을 통해 '프라하의 봄'
이후 중부 유럽 사회의 황폐한 정신적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을 통해 쿤데라는 메디치상 등을 수상하면서
단숨에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다.
쿤데라는 고전적 작가다. 무거운 형이상학적 관념을 가벼운 이야기를 통해서 풀어내는 데 누구보다 능숙하다.
농담, 사랑, 이별, 웃음과 망각, 무거움과 가벼움, 불멸, 느림, 정체성, 향수, 무의미의 축제 등
작품 제목 하나 하나는 우리 한없이 가벼운 존재들이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한 번쯤 새기고 지나야 할 묵직한 주제들이다.
평생에 걸쳐 쿤데라는 집단이 강요하는 가짜 의미에 맞서 싸웠다.
그가 보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우리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은 단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농담)는 사실이다.
우리 삶의 유일성, 우리가 지금 맞이하는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개개인의 삶에 고귀한 존엄성을 부여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유럽 문명의 정수는 "개인의 독창적 사고와 침해할 수 없는 사생활에 대한 존중"(소설의 기술)이다.
현대사회는 우리 삶의 유일한 보석을 두 방향에서 훼손한다.
하나는 이데올로기다.
젊었을 때 그는 비밀경찰로 뒤덮여서 삶의 모든 순간이 감시되고 제재당하는 소비에트 사회에서 살았다.
개성을 말살하는 체제는 고통스러웠으나, 당국은 이를 '지상천국'으로 포장했다.
더러운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가짜 기술을 그는 키치라고 불렀다.
진실에서 멀어지고 거짓을 부추기는 이데올로기 기술자들과 그는 격렬하게 투쟁했다.
조국은 그를 탄압하고 추방했으며, 1976년 그는 프랑스 파리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쿤데라는 자본주의의 꽃이 활짝 핀 파리에서 다른 형태의 기만술과 만났다.
그는 이를 이마골로기(imagology)라고 불렀다.
미디어와 광고와 디자이너가 만들어 퍼뜨리는 가짜 이미지였다. 이런 이미지들은 인간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우리 시대는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느림)
이데올로기와 이마골로기가 지배하는 세계에선 어떤 개인도 존중받을 수 없다.
가짜 이미지의 무거움이 개인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쿤데라는 현대적 삶을 '무의미의 축제'라고 부른다.
허위의 삶을 무찌르려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디에서 배울까. 문학이다. 쿤데라에 따르면 좋은 작품은 늘 인생보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움, 그것은 자유를 수반한 사랑이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소설 『그리움의 정원에서』에 나오는 구절.
혹한의 숲에 굶주린 새들을 위해 먹이를 주고 나서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듯이,
키 작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내 키를 낮추듯이,
자유와 사랑은 포개져야 하네.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의 자유로운 선택과 몸짓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하네.
일방적으로 베푸는 사랑은 자유의 훼손이며 지나치면 폭력일 수도 있네.
이것을 깨달은 자의 사랑은 나와 너 모두에게 삶의 기쁨을 선사한다네.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