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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구스타프 융/ A. 아페 편집/ 조성기 옮김/ 김영사
원제: MEMORIES,DREAMS, REFLECTIONS by C.G.Jung recorded and edited by Aniela Jaffe 1961, 1962,1963 Random House
융의 제자요 여비서인 아니엘라 야페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대담을 한 결과 엮어진 자서전이다.
자신이 죽은 후에 출간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자서전을 허락했고 융이 86세의 나이로 죽은 다음해인 1962년 출간된다.
융은 일생동안 종교적인 주제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神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P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Selbst: 인격의 가장 짚은 구심점-옮긴이) 실현의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P13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 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그것은 숫자상으로만 보면 거창한 현상이다.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내가 젊은 의대생이었을 때 이러한 사실을 이미 깊이 느꼈는데, 내가 그 시기 이전에 파멸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P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하여 나의 생애는 외적인 사건에 있어서는 빈약한 편이다. 나는 외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P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은 파악하기 어렵고 인생은 허무하다.
1) 인간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생애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2) 또한 인간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3) 인간의 생애의 이야기는 결코 시작이 없고 그 목표지점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4) 인생은 허무하고 너무나 불충분하다.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해 살아가는 식물과 같아 보인다.
1)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부에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만다.
2) 그러나 영원한 변화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나 땅 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나의 생애에서 이야기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영원한 불멸의 세계가 無常한 세계로 침투했던 사건들 뿐이다.
1) 그래서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유년 시절 남자인형의 에피소드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시절
P21 그러나 낮이 되면 새로운 위험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 자신과 불화를 느끼고 그것을 두려워 하는 것 같았다.
P26 그후로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항상 미심쩍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P27 이런 소녀의 유형이 나중에 내 아니마(Amima)의 한 측면이 되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생소한 느낌과, 그런데도 그녀를 처음부터 알아온 것 같은 감정은 나에게 훗날 여성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여성상의 특징이 되었다.
P37 이러한 유년시절의 꿈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비밀들에 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 이를테면 땅에 묻히는 매장식이 거행된 것이었다. 내가 다시 땅에 나오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 일이 가능한 한 많은 빛을 어둠 속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어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때 나의 정신적 삶이 무의식적인 출발을 한 것이다.
P46 그 담 앞쪽에는 비탈이 나 있었는데 거기에 약간 솟은 돌 하나 가 박혀 있었다. 그 돌은 나의 돌이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종종 그 톨 위에 앉아 생각의 유희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나는 이 돌에 앉아 있다. 나는 위에 있고 돌은 밑에 있다.’ 그런데 돌도 ‘나’라고 말하며 ‘내가 여기 이 비탈에 누워 있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의문이 일어났다.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P50 이와 같이 비밀을 소유한다는 것은 당시 나의 성격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것을 내 이른 소년시절의 본질적인 요소, 즉 내게는 가장 뜻깊은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유년시절의 남근상 꿈에 대해서도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 제수이트 역시 말해서는 안되는 신비로운 영역에 속했다. 돌과 함께 있었던 그 작은 나무인형은 아직 무의식적이며 유치하긴 하나 그 비밀을 형상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P52 그것은 ‘아트마빅투’ 즉 ‘생명의 숨결’, 창조적인 충동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P52 그 모든 것은 사실 외투에 싸여 ‘카스타’속에 감추어져 있는 일정의 카비르(kabir: 위대한 신들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때는 소인으로, 어떤 때는 거인으로 묘사되며 창조적인 것, 생명의 발생과 관계가 있음)로 여겨진다.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더라.
내가 어린아이였을때 그 일이 나중에 아프리카 원주민에게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것이다.
*나는 나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대상만을 그림 그릴 수 있었다.
*대성당과 하느님에 대한 생각- 누가 나로 하여금 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어떤 것을 생각하도록 강요하고 있는가? 이 무서운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 왜 내가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
*어린 시절에 꾼 지하사원의 남근상 꿈, 남자 목각인형등은 청년시절에 비밀로 마음에 담아두었다.
남근상 꿈에 대해서는 65세때 처음으로 이야기했다.
청년시절에 그 비밀로 인해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독에 빠졌는데 그 비밀을 지킨 것이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겨진다.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P53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P56 나는 나의 부모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걱정과 염려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 연민을 느꼈으나, 이상하게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별로 연민이 생기지 않았다.
P59 ‘주 예수’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차츰 불가능해지기는 했지만, 열한 살 때부터신의 관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나는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 했다. 그것은 모순이 없는 듯이 여겨졌으므로 어쨌든 나를 만족시켜주었다. 신은 나의 불신감으로 어수선해지는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신은 검은 예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림 속 에서 화려한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과 매우 친밀한 ‘주 예수’도 아니었다.
P63 그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나를 둘러싼 광대한 세계 앞에서 느끼는 왜소감은 내 마음의 의욕상실뿐만 아니라 일종의 은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것들이 학교를 극도로 싫어하게 만들었다.
P63~64 열두 살은 나에게 참으로 숙명적인 해가 되었다. 1887년 초여름 어느 날, 나는 방과후 12시 무렵 대서당 과장에 서서 같이 학교를 다니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소년이 나를 한 대 때리는 바람에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보도 경계석에 머리를 부딪혀 그 충격으로 정신이 몽롱해졌다. 반시간가량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얻어 맞는 순간, 번개같이 한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너는 더 이상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P64 그후 나는 학교로 다시 가야 할 때가 되면 그 즉시 기절하기 일쑤였다. 부모가 숙제를 마무리하라고 재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반년 이상이나 학교를 쉬었다. 그것은 내가 ‘간절히 바라던 몫’이었다.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고, 몇 시간이고 공장에 잠길수도 있었으며, 어디든 물가와 숲 속에서 가만히 있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다.
P65 나는 바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음을 막연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P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Neurose)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모든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차츰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건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P68~69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대단히 중요하고 새로운 것으로 여겨졌다. 나의 내부에 '권위자'가 자리잡았다.
P70 그러나 동시에 이런 뚱뚱하고 무식한 멍청이가 감히 ‘나’를 목욕했다는 사실로 인해 분노에 사로잡혔다. 이 ‘내 는 단지 성장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문이며, 권위자요, 직위와 위엄을 갖춘 사람이여, 나이 든 남자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현실과는 그토록 대비가 되었으므로 나는 곧바로 나 자신의 분노를 억제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그러면 너는 누구냐 너는 마치 자기가 대단하다고 내세우는 악동처럼 반응하고 있구나!
P70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닌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집주인을 가리키 는 말잇듯함-옮긴이)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P74 생각에 구멍이 뚫리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P77 그들은 하느님이 원치 않는 일을 행함으로써 최초의:!"n- 범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하느님이 그들 안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죄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P79 내가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나'를 의식하게 된 대략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통일성과 위대함, 그리고 초인성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를 결정적으로 시험삼아 써보려고 하는 존재가 하느님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바르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굴복을 강요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제는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이었다.
P80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즉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 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나는 내 앞에 대성당과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하느님은 세상 저 위 높은 곳에서 황금보좌에 앉아 있고, 보좌 밑으로부터 거대한 똥덩어리 하나가 화려하게 채색된 새 지붕에 떨어져 지붕을 산산조각내고 대성당의 벽들을 모조리 부수고 있다.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스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시를 체험한 것과도 같았다. 내가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P84 그 책들을 모조리 탐독했으나 그것으로 현명해지지는 않았다. 나는 또다시 이 사람들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P85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P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알아야 한다.'
P89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더 나은 표현을 쓰면 결점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보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91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 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제2의 인격은 내 생애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내부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길을 열어주려고 노력했다. 제2의 인격은 전형적인 형상인데도 대개 의식이 가진 이해력으로는 사람이 제2의 인격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p96 내가 바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바라는 것을 내가 행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확신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결정적인 일에서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게 되었다.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그곳'에 있을 때면 언제나 나는 시간을 초월해 있었다. 나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있었으며, 그때 답을 준 자는 아미 항상 있었고 지금도 항상 있는 존재였다. 그 '다른 인물'과의 대화는 나의 가장 심오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피 흘리는 전투면서 또 한편으로는 극도의 황홀경이었다.
P101 ‘진정한 인직’ 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체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 인식은 마치 나 자신의 착상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으나, 그 목소리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것 같았고 그 상황에 들어맞는 내용을 정확하게 말했다.
P104 삼위일체에 관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나의 관심을 끄는 뭔가가 있었다.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적 모순을 지니고 있는 문제였는데, 그 모순이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게 되는 순간을 간절히 기다렸다.
p109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은 인간적이 아니다. 그는 인간적인 것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위대한 존재다. 하느님은 자비로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존재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위대한 위험이다.
P110 성찬식의 실패? 그것은 나의 실패였을까? 나는 매우 진지하게 성찬식을 준비하고 은총과 계시를 체험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느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원, 세상에! 나는 교회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와 다른 모든 사람의 신앙으로’ 부터 떨어져나왔다. 그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교회로부터 굴러떨어졌다. 그것이 나를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마음을 어둡게 했다.
P111 나는 그로부터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12 하느님은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의 자아였다. 그것은 나 자신이 나의 정신적 · 신체적 표현방식으로서의 자아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P113 나에게는 자아라는 요소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측면, 즉 1제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있었다.
P113 유감스럽게도 자아는 덕과 재능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덕과 재능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면 시샘하면서도 경탄했다.
P115 하느님이 대극의 세계를 창조하여 하나가 다른 것을 잡아먹도록 하고 인생이 죽음으로 향한 탄생이 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P116 하나님이 ‘지선’이라면, 그가 창조한 세계와 피조물이 왜 이토록 불완전하고 부패하고 비참하단 말인가?
P121 악마가 본래부터 악했다고 생각한 다면우리는 명백한 모순, 즉 이원론에 빠져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악마도 원래는 선한 것으로 창조되었으나 그의 오만 때문에 타락하게 되었다고 가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주장은 그것이 설명하려고 하는 악이 이미 자만심 이라는 악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 지적을 일고 대단히 흡족했다. 그밖에 악의 기원은 ‘설명되지도 않고 설명되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그 말은 그도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숙소하고 싶지 않는 뜻이었다. 악과 그 기원에 관한 항목은 둘 다 시원하게 밝혀주는 것이 없었다.
P123 나는 광범위하게, 어떤 체계도 없이 희곡, 시, 역사 그리고 나중에는 자연과학서도 읽었다. 독서는 재미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편안하게 기분전환이 되도록 해주었다. (123)
P124 딴 사람들은 정말 모두 다른 곳에 잇는 듯했다. 나는 완전히 혼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 문제에 관해 나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어디서도 대화의 접촉점을 찾을 수 없었고, 그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소외감과 불신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 것들도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129 내 마음 깊은 곳을 암시하는 모든 것은 나에게 고통이 되었다. 책을 읽고 도시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내가 지금 현실로 인식해 가고 있는 것들은 시골에서 나와 더불어 성장해온 세계상과는 다른 사물의 질서에 속한다는 인상이 더욱 강해졌다. 그 세계상은 작은 마을의 강과 숲, 동물과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그 마을은 햇빛이 비치고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고 모호한 것들로 가득한 밤의 어둠에 감싸이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히 지도 위의 장소가 아니라. 비밀스러운 의미들로 채워진 지정된 신의 세계였다.
P133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체험이 문제인 것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제 그들은 논리적인 근거에서 그와 같은 동물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 모양대로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논중으로써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P136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P144 제2의 인격이 임시휴게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에게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제2의 인격 안에서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초월해 있었다. 그리고 나 지신은 천개의 눈을 가진 우주에서 하나의 눈으로 여겨졌으나 지상에서는 조약돌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P145 간은 해결할 수 없는 분열에 처해 있었다. 보아하니 나는 기다리면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르 지켜보아야만 했다.
P156 '정신'이란 물론 내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주 희석된 공기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P158 식물도 나의 관심을 끌긴 했으나 그건 과학적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식물은 뽑아서 말라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은 살아 있는 존재로서 오직 성장하여 꽃을 피우는 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숨겨진 비밀스러운 의미, 일종의 신의 뜻이었다. 식물은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며 철학적인 경탄을 가지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교회는 점점 나에게 괴로운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뻔뻔스럽게도 큰 소리로 하느님에 대해서, 하느님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하느님이 무엇을 행하는지 설교를 했다.
사람들은 그러한 느낌을 갖도록 훈계를 받고 , 말로 누설해버려서는 안되는 가장 심오한 내적 확신인 그 비밀을 믿도록 경고받는다.
나는 거기서 심지어는 목사까지도 그 비밀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결론내렸다. 정말 그 비밀을 아는 자라면 하느님의 비밀을 감히 공공연하게 드러낸다거나, 말로 다할수 없는 감정을 '진부하고 감상적인 표현'으로 더럽히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하느님에게 다가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은총은 오직 하느님의 의지를 철저히 실현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인 자가 자기 아들을 이삭처럼 인간제물로 삼아 칼로 찌를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인간보다는 하느님에게 더 순종하라고 재촉하는 말을 강단에서 하는 것은 그저 강단위에서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라는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만약 사람들이 하느님의 의지를 안다면, 이 중심과제를 정말 하느님을 몹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경외심을 가지고 다루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시간 – 대학시절
P165 왜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P166 ‘결코 따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나의 신조였다.
P167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함(수학!),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중성 등이었다.
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P178 나는 아버지가 이런 모든 기회를 잡아서 자신의 상태와 투쟁적으로 대결하지 않는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P180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운명에 꼼짝없이 매여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외로웠고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P181 그것은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주지 않고 믿기만을 요구했다.
P193 나는 철학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P194 우리는 어떤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들의 불안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 그러한 가능성이 아주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몇 배나 더욱 아름답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세계는 깊이와 배경을 획득하게 되었다.
P197 동물들에 대한 나의 연민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불교적인 몸짓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원초적인 정신적 태도의 바탕, 즉 동물과의 무의식적인 동일시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P202 나는 수중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이전보다 더 경험주의로 치우치게 되었다.
P208 이것은 전적으로 커다란 체험이었으며, 나는 이전 철학을 모두 지양하고 나로 하여금 심리학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P210 저자는 정신병을 ‘인경의 병’이라고 일컫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P211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P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P217 결굴 인간이란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P219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상으로 향한 글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P221 무엇이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P235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그 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239 이제까지 정신병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정신이 돈' 것들만은 결코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나는 그런 환자들에게도 그 배후에는 정상이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간주될 만한 '인격'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P241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P247 그후 나는 정신병 환자의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p248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P251 의사가 자가 자신과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
P251 의사는 피분석자로서 부석이 바로 자기 자신과 관계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P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한다.
P260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
P270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정신병자의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진단과 증상으로 정신질환자를 대할 것이냐, 심리학이나 프로이트식으로 그들을 대할 것이냐. 소위 인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냐.
*융의 진단법: 연상진단법을 통해 일상적인 병력이 밝히지 않고 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다.
*정신의학 사례중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고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의사는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1905년 정신의학 대학교수 자격취득하고 취리히대학병원 정신과 상급의사가 됨 .일이 너무 많아져서 1909년 사직. 이후 1913년까지 대학강사직은 유지함
*최면을 치료법으로 사용하다 갈수록 폐기함. 치료에 대한 힌트는 환자 스스로 방향을 잘 정하더라. 그래서 꿈이나 무의식의 다른 표현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게 됨.
*미국에 융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 연상실험과 심리전기실험
*살인을 저지르고 쉬쉬하던 자: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그 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단은 방향설정을 해주기에 중요하지만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긴장형 조발성 치매라는 진단이 손과 팔을 기묘하게 움직이는 것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왜 저런 동작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정신병에서 의미있는 관련성을 찾아 보라.
*정신분열증 환자의 말도 그 뒤에는 그 말을 해야 할 ‘인격’이 숨겨져 있었다. 미친 소리를 할 때 그 소리의 의도를 최대한 파악하고자 할 때 그 소리는 프랜들리하게 다가온다.
*피해망상과 환각도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더라. 멍청하고 감정없이 의미없어보이는 환자들의 마음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Ps는 없다.
*정신병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한다.
*환자에 대한 주의깊은 개입이 치료효과를 가져다준다.
*정신병 환자의 고통과 내적 체험에서 의미있는 것들이 있다..
*치료법은 각각의 사례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의사가 자기는 엄격하게 이러저러한 치료법을 따른다고 한다면 나는 그의 치료효과를 의심한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이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있을때에만 타당하다. 각 개인에 대한 개별적 이해만 있을 뿐이다. 모든 환자에게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방증상응, 경전대응)
*정신치료에선 정신의학 연구만으론 충분치 않고 상징, 신화등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환자를 실제로 충동질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마음은 세계의 절반으로서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일 뿐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을 다루는 의사는 전체 세계에 관여해야 한다.
*환자의 마음을 다룰려면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줄 알아야 한다.
의사가 자기 자신을 바치지 않고서는 치료할 수 없는 사례가 많다.
인생의 심각한 위기에서 의사는 자신의 전존재가 도전받게 된다.
의사가 자신의 무의식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알기위해 자신의 꿈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환자가 의사를 공격하여 의사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 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 페르소나- 을 두르고 있으면 아무런 효과도 발생하지 않는다.
*분석가는 자기 자신이 치료의 도구이다. 자신이 진정한 재료가 되어야만 한다.
3.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질투: 질투심 때문에 남편의 교우관계를 깨버리는 부인들. 그러한 부인들은 자신들이 남편에게 속해있지 않기에 남편이 자신에게 속해있기를 바란다. 질투심은 통념과 달리 사랑의 결여에 그 핵심이 있다 .
*원형적인 상황에서 동시성 현상이 종종 관찰된다.
*나는 환자를 개종시켜보려 한 적이 없다. 다만 환자가 자신의 견해를 가지도록 할 뿐이다. 환자의 숙명과 부합하는 대로 이교도는 이교도요, 기독교도는 기독교도요, 유대인은 유대인일 뿐이었다.
*신경증-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가 있다. 지위, 결혼, 명성, 외적 성공, 재물을 추구하나 그렇게 추구하는 것을 소유했을때조차도 여전히 불행하다. 그들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신경증과 인격발달.
*꿈이나 환상에서 주는 메시지를 직면시킬 것인가- 환자가 자신의 길을 감으로써 스스로 책임지고자 하지 않는다면 강요하지 않는다. 완강하게 저항할때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치료통계를 내보니 – 1/3은 완치, 1/3은 상당히 호전되었고, 나머지 1/3은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
*치료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우리 시대는 신화를 상실했고 그 때문에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의 분열을 겪게 된다. 그들의 표면적인 증상은 자아- 무의식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이 메워지는 순간 사라진다.
*원형의 신성한 힘의 작용-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 가운데 깃들어 있다. 말만 그럴듯해봐야 소용이 없다.
*심리적 수준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유명인사들과의 단편적인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었다.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P276 ‘억압기제’라는 개념을 꿈의 분야에 적용한 점이었다.
P279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p285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마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그러한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자신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었다. (284)
p285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더 나아가 그 무엇에 홀린 사람이기도 했다.
P294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P295 그 말속에 이미 우리 관계의 종말이 예시된 셈이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P300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을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도 못하는 것이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P312 문화의식은 무의식개념과 거기에 따르는 결과를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세기가 넘게 무의식과 직면해왔으면서도 말이다. 우리 정신의 존재가 두 개의 극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통찰은 여전히 장래에 과제로 남아 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꿈의 분석과 해석방법에 대한 단초는 정신분열증의
표현형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억압현상- 어떤 자극어에 대해선 연상어를 전혀 떠올리지 못하거나 반응시간이 무척 길어짐.이는 자극어가 정신적 상처나 갈등을 건드릴적마다
일어났다. 이는 억압기제가 작동해서이다.
*1907년 2월 빈에서 프로이트와 융이 처음으로 만나다.오후1시에 만나
13시간동안 쉬지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프로이트는 전혀 진부하지 않았고 총명하고 예리했다. 다만 모호한 알수없는 구석이 좀 있긴 했다. 다만 그의 성이론에 대해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프로이트가 성이론을 말할 때 동요하고 어조가 급해지고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이후 1910년 성이론을
하나의 교리, 보루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고 프로이트와의 우정이 깨지는 계기가 되었다. 프로이트에게는 성적 리비도가 ‘숨은 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 프로이트의 특징: 신랄함
*프로이트의 성욕이론과 아들러의 권력충동: 이는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대결이 아니라 프로이트와 니체의 대결이었다.
- 인간은 충동에 굴복하며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충동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신성한 힘에 대해서는 비장한 주장을 하고 곧바로 그것을 취소한다. 신성한 힘이란 어떤 면에서는 진실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성한 힘의 체험은 사람을 고양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추락시키기도 한다. 프로이트가 그랬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이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프로이트가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하려 하자 거부감 듬-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지 개인적인 명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 하듯이 , 꿈도 가능한 한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환상에 대한 신화적 심리학
*투사: 투사가 일어나는 곳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의존적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항을 느끼게 된다. 투사가 일어나고 있을때는 분열된 태도가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존경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비판적이다.
*12세기 . 성배탐구가 시작된 시대. 연금술이 시작된 시대.
*꿈에서 나타난 십자군전사- 12세기풍. 나의 전존재는 진부한 생활에 의미를 부여해 줄 수도 있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을 찾고 있었다.
*신경증 환자는 단조로운 일상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때에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근친상간은 대개 고도의 종교적인 내용을 나타낸다.
모든 창조신화등 수많은 신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성(性)은 개인적 의미와 생물학적인 기능을 넘어서서 그것의 정신적인
측면과 신성체험적인 의미가 있다. 성은 지하세계의 영의 표현으로서 아주 중요하다. 그 영은 신의 이미지의 어두운면을 담고 있다.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 들어간데 있다
*우리 정신의 존재는 두 개의 극을 가지고 있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P313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문을…
P316 나는 꿈을 다룰 때 이와 같은 방식을 꿈해석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바로 그것이 꿈이 의도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꿈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사실이다.
P316 “무엇 때문에 모든 문을 열려고 하는가?”
p327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한 가지 중요한 동기는 내가 감히 스스로 행할 수 없는 것을 나의 환자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는 확신이었다.
P331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를 영웅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지크프리트로 나타난 셈이었다.
P339 “이것은 예술이에요.”
P339 아마도 나의 무의식이 내가 아닌 어떤 하나의 인격을 이루었고, 그것이 자신만의 고유한 견해를 말로 표현하는가 보다.”
P341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P343 무의식의 이미지를 의식에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아니마다.
P345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업이나 수항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그것은 오류와 불확실의 길, 그리고 오해의 길이라고 간주된다.
P351 사람들은 이미지들이 그대로 떠오르도록 하면서 거기에 대해 무척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만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려고 고심하지 않는다. 거기서 윤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일은 더구나 하지 않는다.
p353 내가 대학교수가 되든 안 되는 그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교수직을 버린다는 것은 물론 괴로운 일이었다. 숙명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까지 있었다. 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점을 여러 면에서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었고, 실은 하찮은 것이었다. 이에 반해 다른 것이 중요한 법이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이런 일은 내가 학문적 출세를 포기했을 때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늘 겪어왔다.
P354 ‘안’과 ‘밖’의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보았을 뿐이었다.
P356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356)
P356 나의 만다라 그림들은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자기, 즉 나의 전체성이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P361 최초의 환상과 꿈은 불에 녹아 흐르는 현무암과 같은 거이었다. 그것이 단단해져 돌이 되었고, 나는 그도을 다듬을 수 있었다.
나의 내적 이미지를 추적하던 그 몇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가였다. 그 기간에 온갖 본질적인 것이 정해졌다. 그 무렵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세부적인 것은 단지 보충하거나 명료하게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내 후기의 작업은 모두 그 기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와 나를 흽쓸없던 자료들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 있었다.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프로이트와의 결별이후 ..나는 선입견없이 환자들이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다. 우연에 맡기다. 나는 이론적인 관점을 모두 접어두고 환자가 꿈의 이미지를 스스로 이해하도록 도와줄 뿐이었다. 그러나 어떤 ‘기준’을 가져야 했다.
*오늘날 인간은 어떤 신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 무렵 비둘기꿈. 비둘기가 말하길 수컷비둘기는 죽은 12명과 함께 바쁘다..나는 당시에 그 꿈의 의미를 몰랐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 자신의 환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머릿속에 10~11살쯤 벽돌로 집짓는 놀이에 열중한 것이 떠오름. 그 기억들이 일종의 감격과 함께 떠올랐음. 여기에 삶이 있구나! 나는 그 어린이의 놀이를 하여 그 시절과 이어지기로 했음.
그렇게 작은 집을 건축하면서 내 신화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 후반기 인생에서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림을 그리거나 돌을 다루었다.
* 나 자신의 체험이 집단의 체험과 어느정도까지 연관이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힘써야 했다.
*나의 감정을 이미지로 바꾸는 그만큼, 즉 감정 속에 숨어있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그만큼 내적인 안정이 생겼다.
*나는 최선을 다해 환상을 기록해나갔다.
처음에는 환상을 ‘장중한 언어’로 꾸몄다. 원형의 양식에 어울리긴 한다.
지크프리트 꿈- 나는 지크프리트로 구체화된 영웅적인 태도는 나에게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꿈이 가르쳐주었다.
높은 암벽밑의 두 형상- 하나는 흰 수염을 기른 노인, 다른 하나는 젊고 아름다운 처녀. 그들은 자신을 엘리야, 살로메라고 했다(여인은 장님).. 많은 신화적인 이야기에서 젊은 처녀와 동행하는 노인을 보게 된다. 시몬 마구스와 사창가에서 데려온 한 젊은 처녀 헬레나(그노시스파 전승), 크링소르와 쿤드리 ,노자와 舞女.
뱀= 영웅의 대역
필레몬- 이후 엘리야의 모습에서 발전하여 필레몬을 보다. 그노시스파의 색조를 띈 이집트적 헬레니즘의 분위기를 가짐. 필레몬과 다른 환상들의 형상을 통해 나는 인간의 마음 속에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지닌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레몬은 내가 아닌 다른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후 Ka라는 다른 형상이 출현함. 카는 일종의 흙이나 금속에 깃든 혼이다.
*내가 나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들이 자기만의 고유한 삶이 있다.
*수 백년 전 죽은 베다의 주석가인 샨카라샤리아를 자신의 구루로 모시는 인도인-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내 안에서 생겨난 한 여인이 나의 생각에 간섭한다. 여성상이 남성 무의식 속에 있는 전형적이고 원형적인 형상이다. 나는 이것을 아니마(Anima)라고 불렀다. 아니마는 좀 부정적이다. 나는 그녀 앞에서 좀 주눅이 들었다.
*아니마와 대화할 때 성실하게 글을 써라- 어떤 것을 이야기할려고 마음먹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어놓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라. 그러면 받으리라’
*무의식과 관계맺는 법- 무의식 내용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 내용을 인격화하여 의식으로 하여금 그 인격들과 관계맺도록 해야 한다.
- 무의식의 대변자인 아니마는 변덕스러운 이중성을 지녔다. 유혹적이고 교활한 아니마의 말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아니마는 핀잔을 준다. 뭔 병신 같은 짓이냐고.
*아니마의 긍정적 측면: 무의식의 이미지를 의식에 전달해준다. 나는 기분이 언짷고 안정을 잃었다고 느끼면 늘 아니마에게 물어 ‘당신이 지금 무엇을 보려는 건지 물어본다. ‘ 그러면 아니마는 조금 저항을 하다가 자신이 본 이미지를 도출해내고 그 이미지가 나타나면 불안과 우울은 사라졌다. 내 감정의 에너지 전체는 그 이미지 내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전환되었다.
*검은 책은 환상을 기록, 붉은 책에 옮겨젹음. 붉은 책에는 만다라그림이 그려져 있음
나는 내 많은 환상이 든든한 토대를 필요로 하며, 나에게 현실이란 과학적으로 이해할 것을 의미했다. 무의식이 내게 가져다 준 통찰을 이해하는 것이 내 인생과제의 요점이 되었다.
*그 무엇도 삶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 삶을 대체할 만한 완전한 언어는 없다. 무의식의 전제의 횡포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지적인 작업을 완수하고 윤리적 의무를 가져야 한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기 위해 현실의 발판이 필요했고 나에게 그런 발판은 직업과 가족이었다.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고 그러면서 자신이 내면세계를 소유했다기보다는 내면세계가 자신을 소유하게 되었다.
*1916년 필레몬 자신이 말했을법한 것을 내가 정확히 표현해내도록 하는 강한 요구를 받고 <죽은 자를 향한 일곱 가지 설법>이 나옴.
*환상에 관해 작업할 때- 그 환상의 이미지 속에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과도 관계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만 속해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 이후로 내 인생은 보편성에 속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 무척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고 만다. 그것을 이해하려고 고심하지도 않고 거기서 윤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무의식의 부정적 내용을 불러 일으키고 만다. 또한 자신의 인식을 윤리적 의미로 바라보지 않으면 권력의지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 무의식의 이미지는 인간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준다.
*우리가 내적 인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주의를 기울인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만다라- 인격의 전체성을 보여준다.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자기 상태와 연관되는 암호와 같다
*1918~1920년에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self)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직선적 발달은 없고 다만 자기를 중심으로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나는 꿈에서 본 환상이 없었다면 아마도 방향감각을 잃고 그 작업을 포기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내 후기의 작업은 모두 그 기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와 나를 휩쓸었던 자료들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는데 있었다. 그것은 필생의 작업을 위한 원재료였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p365 나는 내적 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가설이 역사 속에서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그런 증거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내 생각을 증명할 수가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연금술과의 만남은 나에게 결정적인 경험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때까지 부족했던 역사적 기반을 나에게 제공해주었기 때문이었다.
P372 내 무의식의 심리학은 역사에서 내용물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
P373 의식의 심리학은 개인의 생활에서 이끌어낸 자료로도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
p374 나 자신도 그와 같은 꿈에 사로잡혀 있었고 열한 살 때부터 착수해온 '주요과업'이 있었다. 나의 생애는 하나의 과제 하나의 목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것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즉,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과제요 목표였다. 모든 것은 이러한 중심점에서 설명되며 나의 모든 연구는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된다.
p390 물리학자가 원자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성질을 가졌다고 말하거나 그 모형을 그린다고 해서 그가 영원한 진리를 표현하고자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P393 “이제 내가 너를 가장 높은 현재 속으로 인도하겠다.
P394 인간은 시적인 소명 앞에서도 결행을 유보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가의 자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유를 위협하는 자를 위협할 수 없다면 그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p398 그런데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p 388 상처 입은 자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듯이 치료 자는 자신을 치유한다.
*우선 나는 내적체험에 관해 역사에서 예시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연금술은 나에게 부족했던 역사적 기반을 나에게 제공해주었다.
*그노시스주의- 연금술- 현재: 연금술은 하나의 중세 자연철학으로 한편으로는 과거 그노시스 주의에,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무의식의 심리학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연금술의 가장 중요한 여성상징: 물질의 변환이 완성되는 그릇- 나의 심리학적 발견의 핵심도 이 같은 내면의 변환과정, 즉 개성화이다.
*연금술 책은 여전히 헛소리로 여겨졌으나 여기저기 의미있는 듯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하더라.
*고대문헌들을 연구해 나가면서 내가 진료실에서 수집한 환상 이미지의 세계와 경험자료, 결론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우리가 노이로제를 이해하려고 하면 의식에 대한 이해보다 더 깊이 들어간 병력이 필요하다. 또한 비상한 결단이 요구될 때 꿈이 나타나며, 이 꿈을 해석하려면 개인의 기억 이상의 것이 필요하게 된다.
*괴테또한 수세기 동안 지속된 원형적 변환과정에 사로잡혀있었고 <파우스트>를 필생의 역작 또는 신성한 작품으로 여겼다.
*나의 일생의 과제는 인격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었다.
*먼저 무의식에 대한 책을 쓰고- 심리학적 유형에 관한 저술을 한다: 자신과 프로이트, 아들러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숙고하면서 유형의 문제를 건들여야 했다. 한 사람의 판단을 결정하고 제약하는 것은 심리학적 유형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세계와의 충돌- 개인과 타인- 개인과 사물의 관계
한 인간의 모든 판단은 그의 유형에 의해 제약되며 모든 관점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이러한 심리유형의 다양성에 대응하여 ‘자기(Self)’라는 개념에 도달하게 된다.
*리비도를 정신적 에너지로서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 리비도가 성이냐 권력이냐 배고픔이냐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다.
*최종적으로 ‘개성화 과정’이라는 내 심리학의 중심개념에 이르게 되었다.
*<영적 현상으로서의 파라셀수스>: 파라셀수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나는 드디어 연금술과 종교- 연금술과 심리학의 관계에서 연금술의 본질을 기술하기 시작했다.
*심리적 형상으로서의 그리스도
; 연금술의 비상한 금과 녹색의 금이 그리스도와 유사하더라. 녹색금은 생동하는 본성으로 생명의 혼 세계혼이다. 전세계에 살아 있는 안트로포스.
; 유대전통과 이집트 호루스 신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고대적 안트로포스 관념이 예수라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한 유대인 예언자에게 집중적으로 반영되었다. 카이사르로 구현되는 시대의 권력에 맞서 구원을 기대하는 마음이 표현되고 있다. 현대 사회는 UFO현상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기술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의학적 정신치료의 주된 문제는 ‘전이’이며 연금술에는 전이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융합’이 있다.
*맹목적인 수용은 결코 해답을 주지 못한다. 기껏해야 답보상태로 있게 할 뿐이며, 그로 인해 다음 세대가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된다.
*<아이온>에는 하나님 이미지의 밝고 어두운 측면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분석심리학의 자료에서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의 진술, 즉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서도 흔히 서로 일치하는 진술이다.
*기독교 관련 저술
<아이온>
<욥과의 회답>
*도깨비현상은 대개 사춘기 전의 젊은이들 주변에서 일어난다.
*다윗의 장군 우리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神人인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인간은 신적인 소명 앞에서도 결행을 유보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자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자유를 위협하는 자를 위협할 수 없다면 그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 나아가 인간은 세계인식 면에서 창조를 폐기할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피조물이 그의 창조주를 근소하지만 결정적으로 능가한다는 관념이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부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아이온>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 춘분점이 물고기자리로 들어간 현상 사이에는 동시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인물이 출현하는 현상, 즉 자기(Self) 현상이 각 개인의 체험속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루고 있다 .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들이다. 저술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저술은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이다. 나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나에게 늘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은 내가 말해야만 했던 것이 말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p402 그 탑에서 내가 누린 휴식과 재생의 느낌은 처음부터 매우 강력했다. 그곳은 나에게 모성적인 장소 같은 의미가
있었다.
p405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P422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422
P423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하여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도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P424 나는 제2의 인격 안에 살면서, 생겨났다가 사자지는 생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볼링겐에 돌탑을 쌓다.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메를린- 파르시팔- 메르쿠리우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무의식과 함께 하는 삶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내적 감각으로 지각하거나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외부의 현실과 자주 상응하게 되는 것을 ‘동시성 현상’이라 한다.
*장미십자회: 미카엘 마이어- 유명한 연금술사이자 게라르두스 도르네우스와 동시대인. 마이어는 궁중백작이자 루돌프2세의 侍醫
*집단의 문제가 집단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할때는 언제나 개인의 문제로 보이고 개인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끝나기 쉽다.
*내 마음을 가장 깊이 움직인 것은 선과 악,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둠의 대극문제였다.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는 나 자신의 갈등과 해결을 어느정도 그려냈었다 .내 안에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가 있다. 나의 작업은 파우스트가 간과한 것들과 연결해야했다.
- 우리 마음은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 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발전이라는 격류에 휘말려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근원과 단절된다.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해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해가 솟아오르기를 고대한다.
- 개혁, 새로운 방법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나 길게 볼때는 의심스럽고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든다.
-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우리의 내적인 평안과 만족은, 개체를 통해 인격화된 역사적 가족이 우리 현재의 덧없는 상황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거의 대부분 좌우된다.
*나는 제2의 인격안에 살면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생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여행]
p427 나는 유럽인들을 한번 외부에서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느 모로 보나 생소한 환경 속에서 유럽을 보고 싶었다.
p431 시계라는 것은 소위 중세 이래로 시간과 그 동의어인 진보가 유럽인에게 슬며시 들어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들로부터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p452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이상의 것, 즉 적극적인 '실현' 주술적 강요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압도적인 작용에 충분히 응답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신에게조차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 개인을 형이상학적 요소를 지닌 위엄에까지 이르도록 고양하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p495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하지만 전혀 다른 뜻에서 그러하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를테면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 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P508 사람들이 이미 있던 무의식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아마도 말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1920년초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여행. –> 수사-> 남쪽 사파키스 -> 타우자르(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는 오아시스도시)-> 네프타 오아시스
*여행시 표정, 그들의 흥분상태, 그들이 유럽인과 이야기할 때 그들의 몸짓에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에 주의했다.
*아랍문화와의 만남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격정적이고 기분대로 살아가며 생 그 자체에 한층 가까이 있으면서도 성찰을 모르는 이러한 인간존재를 만나면서 우리 안에 있는 저 역사적 층에 강력한 암시효과를 주었다.
- 어린이 답다는 것은 그 순진성과 무의식성 덕분에 자기의 이미지, 전인격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어린이나 원시인을 보게 되면 성숙한 문화인의 마음속에, 채우지 못한 욕구와 필요로 인한 갈망이 일어난다.
-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 것인가, 잊혀진 것을 회복할 것인가라는 두가지 가능성을 두고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 충분한 이유없이 그렇게 발언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유럽의 본질을 통찰하고 비판하기 위해 많은 미국인들과의 친교와 미국여행이 필요했다.
*뉴멕시코의 푸에블로 인디언을 만남 타오스 푸에블로의 추장인 옥비에 비아노를 만나다.
*엘레우시스-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를 비밀축제를 통해 숭상하던 고대 그리스도시.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아버지 태양이 하늘을 운행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더 이상 활용하지 않으면 그 때는 10년안에 태양이 뜨지 않게 될 것이다. 인디언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젓한 자기 확신감과 위엄이 여기서 나왔구나. 신과 우리라는 동등한 관계가 인디언들의 저 의젓함의 근거가 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한 인간은 참으로 자기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인간의 제의적 행위는 신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응답이며 반응이다. 일종의 주술적 강요이다.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
인간인 나는 보이지 않게 창조행위를 하고 있는 그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재로 완성되도록 해주었다.
*아프리카는 인간의 나라가 아니고 신의 나라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 걱정말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시라.
*사람의 성격을 파악: 상대방의 몸짓, 말씨, 걸음걸이를 기막히게 흉내내면서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이 되어 보기. 그러면 성격을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내게 닥치는 우연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엘곤의 그 가족들:
*아프리카는 온갖 마귀의 어머니인 유럽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거리를 두고 있었다. 마귀들이 이곳까지는 미칠 수 없었다.
*Palaver: 협상회의에서.. 나는 흑인의 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디스타: 처음 때오른 순간의 태양. 태양은 오직 그 순간에만 ‘뭉구’신이 된다.
초승달도 서쪽 하늘에 처음 나타날때만 신이고 다른 때는 아니다.
엘곤에서는 일출 순간 신성시하는 태양에의 봉헌을 한다. 봉헌하는 것이 침이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마나, 치유력과 매력과 생명의 힘을 포함하고 있는 물질이다
봉헌하는 것이 입김이면 바람과 혼을 뜻 한다. 즉 나는 신에게 나의 살아있는 혼을 드립니다라는 뜻이다.
*일몰후 유령에 대한 공포의 철학과 재앙을 막으려는 마술적 풍습의 철학이 시작된다. 그러다 다시 일출이 오면 모든 것은 ‘음주리(엘곤족 언어로 ‘아름답다’)’하다.
*마음 속에는 태초로부터 빛에 대한 동경이 깃들어 있고, 태초의 어둠에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절실한 갈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짐승의 눈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나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만한 것들은 모두 기록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정신과 군의관들은 어떤 병사가 전쟁장면 꿈을 너무 많이 꾸면 그를 전선에서 떠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외부의 인상들에 대한 정신적 저항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프리카가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고 싶었고 그리고 그것을 체험했다.
*인도여행(1938)- 연금술철학에 깊이 몰두하고 있던 융이 그 시기에 인도로 여행을 떠남. 융은 1602년 출간된 <화학의 극장> 첫 권을 들고 가서 여행기간에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구했다. 인도에서 주로 몰두한 것은 악의 심리학적 성질에 관한 물음이었다. 기독교인은 선을 추구하면서도 악에 빠진다. 이에 반해 인도인은 선과 악의 바깥에서 자신을 느끼거나, 명상이나 요가로써 이러한 상태에 이르려 한다. 인도 사람들은 악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 것인가? 인도의 정신성에는 악도 선도 아주 결여되어 있거나, 그들이 선악의 대립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어 nirvana 즉 해방을 갈구한다. 그러나 융 나 자신은 해방을 원하지 않는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자신의 열정의 지옥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기하고 내버려두고 겉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있을 경우, 그 포기한 것과 내버려 둔 것이 2배의 힘으로 되돌아온다.
*만약 누군가가 의식의 빛을 꺼버린다면 세계는 無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와 부처
부처는 이성적 통찰로,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서 ‘자기’를 구현했다. 그리스도는 파악하기 어렵다. 심지어 그리스도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파악할 수 없었고 자신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만을 알았을 뿐이다.
*낮이 잊어버린 신화를 밤이 계속 이야기한다. 위대한 과거의 것들은 우리가 착각하듯 죽지 않고 단지 그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복부나 명치는 ‘기도하지 않고’ ‘은덕으로 가득한’ 만트라나 명상적인 ‘발성’을 만들어낸다.
*본래 세례는 통과의례였다. 이탈리아 Ravenna 그리스정교회 침례당에서 봄 모자이크. 갈라 플라키디아 의 묘비명.
*남자의 아니마는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아니마는 무의식의 인격화로, 역사와 선사에 물들어 있다. 이미 있었던 모든 삶이 아니마다.
*이미 있던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에 통합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거의 불가능하며, 단지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논의할 필요가 없는 주관적 사건이며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일정한 양식과 방식으로 느끼게 된다.
*나는 무의식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기 전에 무의식과 관련하여 더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가는데마다 그곳을 지배했던 정신에 의해 마음 깊은 곳에서 충격을 받을 때, 거기 있는 성벽잔해와 둥근 기둥 하나가 내 눈에 이제 막 새롭게 인식될 때 문제는 달라진다.
환상들
p516 '나'(자아)는 성취된 것과 지금까지 있었던 것의 그와 같은 묶음이다. 이런 체험은 나에게 극도의 결핍감을 안겨 주면서도 동시에 커다란 만족을 주었다. 내가 요구하거나 원하는 것은 더 이상 없었다.
P524 인생'이란 그것을 위해 이미 마련된 삼차원의 세계체제 안에서 전개되는 존재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p525 사람들은 '영원'이라는 표현을 꺼려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객관적 전체성으로 통합된다. 아무것도 더 이상 시간으로 쪼개질 수도 없고 시간개념에 따라 측정될 수도 없었다. 그 체험은 우선 하나의 상태, 즉 사람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감정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528 생각이라는 존재가 주관적인 평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가 또한 존재하는 생각으로서 억압되어서는 안된다. 그것들도 전체성의 현상에 함께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p532 선입견은 정신적인 삶이 풍성하게 나타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손상을 입힌다.
p534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인생이 현존을 넘어서 무한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p535 우리가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이유로 우주만물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문제를 학문적이거나 지적인 문제에서 제외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거기에 관한 어떤 관념이, 예를 들어 꿈이나 신화적인 전승을 통해 나에게 제공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기록해둘 것이다
p540 시간과 공간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인과론이 다 함께 불완전하다는 점이 판명된다
p558 신화적 상상에서 중간세계가 없다면 정신은 교조주의에 갇혀 경직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반대로 신화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이 피암시적인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예감을 인식으로 여기고 환상을 실체화할 위험이 있다.
p573 오로지 삶의 공간을 넓히고 합리적인 지식을 어찌해서든지 증가시키는 데만 관심을 두는 시기에는 자신의 단일성과 유한성을 의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단일성과 유한성은 동의어다. 이것 없이는 무한성을 지각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의식화라는 것도 없다. 단지 군중과 정치권력의 열광에서 표출되는 그런 것과 망상적 동일시가 있을 뿐이다.
만년의 사상
p578 이미 기독교 초기에 성육신 관념은 '우리 속의 그리스도'라는 관념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로써 무의식의 통합성은 내적 체험의 심리영역으로 엄습해왔고 인간에게 통합적인 형상을 예감하게 했다. 그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창조주에게도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p579 빛에는 창조주의 다른 측면인 그림자가 따른다.
p580 중독 대상이 알코올이든 아편이든 또는 이상주의든 그 어떤 형태의 중독이든 똑같이 모두 악에서 나온다. 우리는 선악의 대극에 더이상 이끌려서는 안 된다.
p584인류의 반은 그럴듯하게 꾸며낸 신조에 의지하고, 나머지 반은 상황에 대처하는 신화의 결핍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P586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지위를 받아들인다.
p588 사람들은 우리가 중요한 시대적 전환점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그것이 핵의 분열과 융합이나 우주 로켓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P 591 과학적 의식은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럼으로써 과학은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p592 하지만 내가 신화적으로 표현할 경우에도 ‘마나’ '데몬' '신'이 무의식이라는 말고 동의어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그런 용어들을 사용한다.
p595 창조주가 자신을 의식했다면 그는 의식을 가진 피조물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과 피조물을 생산해내는 데 수백만 년을 소비한 지극히 우회적인 창조과정이 목적지향적인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p601 비밀결사는 개성화의 이르는 과정의 중간단계다. 사람들은 자신을 분화시키는 일을 아직은 집단적인 조직에 맡기고 있다. 즉,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어 자기 자신의 발로 서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과제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P602 그는 홀로 걸어갈 것이며 동반자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P 602 내적 다양성은 그를 자기 자신과 불화하게 하고 외부세계와의 동일성에서 옆길로 빠지게 만든다.
P615 모든 이해와 모든 이해의 대상은 정신적인 것 그 자체이며, 그만큼 우리는 온통 정신적인 세계에 어쩔 도리 없이 갇혀 있다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P619 우리는 소위 가장 깊은 뜻에서 우주 창조의 근원인 ‘사랑’의 희생제물이거나 수단과 도구다.
내가 사랑이라는 말을 따옴표 속에 넣은 것은 그 말이 단지 열망, 선호, 총애, 소원등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고 개체보다 우월한 전체, 하나인 것, 나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서다. 부분으로서의 인간은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회고
비밀로 가득 찬 세계
P623 어떤 사람이 강에서 한 번 모자로 물을 가득 퍼냈다고 하자.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그 강물이 아니다. 나는 강에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P624 고독이란 주변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P625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가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예기치 못한 일들과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일들이 바로 이 세계에 속하는 것들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삶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나에게 세계는 처음부터 무한히 크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P626 나는 많은 사람에게 심한 타격을 가했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알아차리기가
무섭게 그 상황은 나에게 끝장이 되고 말았다. 나는 나의 환자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에 대해 참을성이 없었다.
“ 창피스럽게도/ 어떤 힘이 우리 심장을 앗아간다. / 천상에 있는 모든 것은 제물을 요구하므로./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하면/ 좋은 일이 결코 생기지 않는다.”(휠덜린)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
P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 동안 일어난 것들은 그야말로 기대 밖의 일들이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데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P629 나는 내 고집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어리석은 많은 일을 후회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다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 대해 실망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실망했다. 나는 인간에게서 경이로운 것들을 경험했고 스스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다. 그러나 나는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은 너무나도 큰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그만큼 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알지 못하게 된다.
P630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만약 무의미성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면, 더 높은 정신발달 과정에서는 인생의 의미 충족성이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가 그렇듯이 아마도 양쪽이 다 진실일 것이다.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는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늙은 나이에 느끼는 바다. 노자는 빼어난 통찰력을 지닌 사람의 모범이다. 그는 가치와 무가치를 보았고 경험했으며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의 고유한 존재로, 인식할 수 없는 영원한 의미로 돌아가기를 바랐던 사람이다. 인생을 충분히 보아온 노인의 원형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
지능의 어떤 단계에서도 이 유형이 등장하며, 그것이 늙은 농부든 노자와 같은 위대한 현인이든 동일한 유형이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의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낮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편집자의 말
P631 그는 망원경으로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았다.
온통 어지러웠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별자리처럼 보였다.
그는 세게 속에서 감추어진 세계를 그의 인식에 보태였다. –콜리지
p634 “내 안에 무언가가 심금을 울렸습니다. 거기에 마음이 기울어 내가 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만년의 사상’ 이라는 장이 생겨났는데, 그 글에서 그는 아마도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가장 깊은 자신의 사상들을 말하고 있다.
p635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기치가 있는 것이었다.
p636 나는 자서전적 정보에 관해 질문을 받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나의 기억자료 속에 어떤 객관적인 문제들이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네. 그 문제들은 아마도 좀더 자세히 검토할 가치가 있을 걸세. 그리하여 나는 그 일의 가능성에 대해 숙고한 후에 마침내 결심을 했네. 최소한 내 인생의 최초의 기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일을 이뤄내기 위해 그 외 다른 책무는 멀리 하기로 말일세.
p636 항상 그랬듯이 내 인생에서 모든 외적인 것은 우연한 것이고, 오직 내적인 것만이 실체성이 있으며 결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숙명적이네.
p637 이러한 긍정과 부정 사이의 갈등은 그가 죽는 날까지 결코 수그러든 적이 없었다. 항상 회의의 찌꺼기가 남아 있었고, 미래의 독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P642~643 나의 생애는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글로 써온 내용의 정수이며 그 반대가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느냐와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노력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자서전'은 단지 소문자 (i) 의 윗 점, 즉 전체를 완성하는 최의 한 점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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