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나가는 길. 어느 동네 한 귀퉁이의 배롱나무가 비를 맞으며 세찬 바람에 붉은 꽃들을 떨구고 있다. 숱한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나무지만 요즘은 너무 흔해서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나무 가운데 하나가 배롱나무다. 누구나 한두 곳 정도는 기억에 남을 배롱나무가 있을 터인데 내 기억 속에 특별하게 각인된 배롱나무는 세 곳이다. 담양 명옥헌 원림의 배롱나무, 순천에서 보성 사이 2번 국도변에 가로수로 심어져 수십 킬로미터 넘게 이어진 배롱나무, 고흥 금탑사의 배롱나무.
배롱나무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는 아마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일 것이다. 열흘 붉은 꽃 없다는데 백일 동안 붉게 피어나는 목백일홍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려다 보니 자주 인용되는 것 같다. 요즘은 정원수나 조경수, 가로수 등으로 많이들 심는 까닭에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배롱나무는 사람이 심고 가꾸지 않으면 스스로는 잘 번식하지 못하는 나무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의 손길이 미치는 정원이나 정자, 절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나무였다. 뿐만 아니라 배롱나무는 자라면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꽃만 보여 주지 열매는 쓰일 데가 별로 없는 나무이기도 하다. 한 뼘 땅이 아쉬웠을 가난한 인민들에게 자리만 차지하는 배롱나무를 심어 놓고 꽃을 감상할 여유가 있었을까? 그러니 자연스레 배롱나무는 여름 한철 한량처럼 지내는 양반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지조 있고 기품 있는 나무로 묘사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여름의 시작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배롱나무 꽃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백일 동안 붉게 핀다고 해서 백일홍지만 사실 꽃 한 송이가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건 아니다.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그래서 시인 도종환은 '목백일홍'이란 시에서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답다고 읊었다. 무엇이 배롱나무를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꽃 피우게 만들었을까?
▲ 배롱나무의 꽃은 사진에서 보듯 꽃 모양 분류상 '원추화서'다. 원추형 꽃차례에서 순차적으로 피고지고를 반복한다(출처 :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 자연과 생태, 2013, p.1098).
배롱나무를 자세히 살펴 보면 다른 나무들과 다른 특징 하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변의 소나무나 참나무 등에서 볼 수 있는 겉껍질이 없다. 보통의 나무들은 년수가 쌓이면서 줄기의 피층(=표피)에서 코르크층의 형성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점차 코르크층의 바깥으로 밀려난 조직세포는 수분과 영양분이 흐르는 체관부와 격리되어 죽게 된다. 조직세포는 죽었지만 이 겉껍질은 충격이나 추위로부터 체관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상당 기간 동안 나무 줄기에 붙어 있다. 그런데 배롱나무는 이 죽은 세포 껍질이 생기자마자 줄기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배롱나무 수피는 반질반질하고 매끄럽다.
하여 사람들은 배롱나무의 이 매끈매끈한 줄기를 보고 갖가지 상상력을 덧붙인다. 사람의 피부처럼 매끄러운 줄기를 간질듯이 긁으면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가지를 움직인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냐만.^^ 일본에서는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라는 뜻의 '사루스베리'(猿滑)라 불린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비슷한 의미로 후자탈(猴刺脫)이라 표현한 책도 있다(謝維新(사유신), 『古今合璧事類備要(고금합벽사류비요)』). 후자탈(猴刺脫), 곧 '원숭이의 찌름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니 줄기가 미끄러워 원숭이도 앉지 못하는 나무로 인식한 데서 유래한 이름인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이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 속에 나오는 나무가 이 배롱나무일 것이라 추측할 정도다. 여기에 덧붙여 귀양살이하는 사람이 자신이 기거하는 집 앞에 배롱나무를 심어 결백을 표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배롱나무 줄기의 매끈함이 무죄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셈이다.
▲ 신윤복, 「소년전홍」, 출처:충북대학교 국어학 강의자료실(http://kang.cbnu.ac.kr)
배롱나무와 관련된 상상력의 결정판은 아무래도 배롱나무 가지에서 여인네의 벌거벗은 속살을 연상하는 것일 게다. 신윤복의 그림 '소년전홍(小年前紅)'(신윤복은 이 그림에서 배롱나무와 관련된 '화제'만 남겼고 「소년전홍」이라는 제목은 현대에 들어와 최완수 선생이 붙였다)을 보면 배롱나무 아래에서 청년 하나가 여인의 손목을 끌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을 두고 최완수와 강명관은 모두 배롱나무를 성적인 상징으로 연결하여 남녀의 춘정을 묘사하는 에로틱한 풀이를 하고 있다(자세한 것은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中 「'소년 전홍'의 괴석과 백일홍」 참조). 어쩌면 신윤복은 당시 부잣집 정원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 뿐인데 후대의 사람들이 괜한 상상력을 갖다 붙이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이미 공부하는 소년들에게 배롱나무를 보지 못하게 했다는 설도 있다. 배롱나무의 미끈한 줄기에서 여성의 벗은 몸을 연상하여 공부에 지장을 줄까 염려해서라고 한다. 그러니 '소년전홍(小年前紅)'에 묘사된 신윤복의 의중이야 오직 그 자신만이 알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배롱나무와 관련된 에로틱한 상상력의 근원은 아마도 양귀비와 연결된 게 아닐까 싶다. 배롱나무를 중국에서는 자미화((紫薇化)라고 한다. 이것은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가 지었던 「중서성」이란 시에서 배롱나무를 자미화라 부른 것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이 자미화를 누구보다 좋아했던 사람이 당 현종이다. 당 태종 이세민이 죽고 난 뒤 당나라는 궁녀에서 일약 황제의 자리에 오른 측천무후와 그 추종자들의 손에서 오십 년 가까운 혼돈의 시대를 보내게 된다. 이 혼돈의 시대를 합법적인(?) '쿠데타'로 끝낸 인물이 바로 현종, 이융기다. 그리 길지 않은 당나라 역사지만 후세의 역사가들이 개원지치(開元之治)라 높여 부르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번영을 누린 시기의 하나로 인정받는 시대를 다스린 현종. 이런 현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양귀비다.
양귀비. 본명은 양옥환. 원래 양귀비는 현종의 며느리였다. 하지만 황후가 죽고 난 뒤 실의에 빠져 있던 56살 현종의 눈에 들어온 22살 양옥환은 며느리가 아니라 여인으로 다가갔던 모양이다. 하긴 뭐 아들이 수십 명이었으니 어찌 며느리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수 있었으랴. 며느리란 사실을 알고는 강제로 아들과 재까닥 이혼시키고 자신의 첩으로 삼아버린다. 이 이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토리다. 현종은 정치를 등한시하고 양귀비의 손에 놀아나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그 결과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양귀비는 등 떠밀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후 현종은 황제를 아들에게 양위하고 7년 동안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죽는다.
현종과 양귀비의 이 슬픈 스토리를 백거이는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獨坐黃昏誰是伴 황혼에 홀로 앉았으니 누가 내 벗이 되리.
紫薇花對紫薇郞 자미화만이 자미랑과 서로 마주하였네.
현종이 석양 무렵 쓸쓸히 누각에 앉아 배롱나무 꽃을 바라보며 죽은 양귀비를 떠올리는 장면을 노래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때부터 자미화(紫薇化)는 배롱나무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면서 양귀비를 떠올리는 시적 상징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이후 수많은 시인들이 현종과 양귀비의 스토리 라인이 배어들어 만들어진 紫薇化를 노래하면서 어느새 배롱나무는 '에로틱'이라는 하나의 상징성을 획득하게 된다. 상징은 보기보다 힘이 세다. 도처에서 비슷한 이미지로 사람을 세뇌하기 때문이다. 그 세뇌의 결과가 배롱나무의 매끈한 줄기에서 벌거벗은 여인네를 연상시키는 데 이른 것이다.
식물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배롱나무의 매끈한 표피는 이렇듯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지만 생태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배롱나무의 매끈한 표피는 연약함이다. 이 연약함은 한겨울의 추위를 견뎌내기 힘들다. 그래서 배롱나무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전라도나 경상도 지방에서만 잘 자랄 수 있는 나무였다. 오늘날 수백 년 된 이름난 배롱나무의 대부분이 남부지방에 분포하는 건 우연이 아닌 것이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로 유명한 강희안이 어느 겨울 매서운 추위로 한양의 배롱나무가 모두 얼어 죽었다는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 서울 지역에서 배롱나무를 키우는 게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한국학, 그림을 그리다』 中 「'소년 전홍'의 괴석과 백일홍」). 지금도 겨울이 추운 지역에서는 배롱나무 줄기를 짚 등으로 싸매 한겨울 추위로부터 보호해주어야 얼어 죽지 않고 월동할 수 있다.
한겨울 모진 추위를 맨몸으로 버텨낸 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우는 나무 배롱나무. 이런 배롱나무를 도종환은 「배롱나무」란 시에서 늘 다니는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사랑하게 된 다음부터 보이는 나무라고 노래한다.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도종환, 「배롱나무」 중에서)
비록 이 글의 제목은 이 시 「배롱나무」에서 따 왔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배롱나무를 더 잘 표현하고 있는 건 그가 쓴 다른 시 「목백일홍」이다. 「배롱나무」가 시인의 개인적 감정이입에 너무 많이 노출된 반면 「목백일홍」은 배롱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주변에 배롱나무가 있다면 애틋한 눈길 한 번 주어도 좋을 듯하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1년 뒤에나 볼 수 있는 꽃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도종환의 시 「목백일홍」 전문이다.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 달 열흘을 피어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 가는 걸 알면서
온 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첫댓글 hvanMziNbjjLrgPyGGGrktpNZI
한오라기 님의 소중한 글을 읽습니다
배롱나무에 얽힌 이야기들을 주시었고
배롱나무에 대해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좋은글 주시어 고맙습니다 ^^
^^
활기찬 10월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