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000명이나, 병행 본문인 마태복음 14장을 참조하면 여성들이나 어린이들은 계수하지 않고도 어리지 않은 남자만 5000명이나 먹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가 된 실제적 사건에 있어 구주 예수님께서는 다른 그 무엇보다 축사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찾았고 은혜와 복을 구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사실은 따지고 보면 아주 당연하고 마땅한 것으로 그에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 있어서 누가 더 크고 작은가, 누가 더 위이고 아래인가, 누가 더 능력이 많고 적은가 등의 차원일 수는 없는 것이고, 실상 단적으로 말하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른 차이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위치와 역할 상 온 세상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주재자이시며, 선악 간 심판 주이시고, 전지전능으로 살아 역사하시면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되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인생들을 위해, 사실상 그 중에는 이미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도 있을 것이기에 그들을 위해서는 특별 은총의 차원이라 할 수 있고, 또한 그렇지 않은 자들을 위해서는 일반 은총의 차원이라 할 수 있겠으나 어쨌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 인생들을 위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복과 은혜를 구하신 것이며, 그에 있어 그 위치와 역할 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과 섭리에 따라 응답하시고 실제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신 일들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근원적으로는 그러한 오병이어의 역사 하나, 한 번 조차도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오병이어의 역사에 대해 실제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하거나 다른 세상적인 방법들로 설명을 시도하려는 이도 있는데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특히 직접적,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의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경험에 대해 아예 모르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전지전능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들을 인간적인 이성이나 납득, 세상적인 상식이나 과학 등에 가두거나 스스로 한계를 만드는 우둔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특히 직접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의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라는 것은 무에서 유로 천지만물이 실제로 창조되며, 홍해 바다가 실제로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실제로 무너지며, 오늘날 우리들이 대략 2000년 전의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믿음으로 인해서도 실제로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천국과 부활과 영생이 백성으로 정말 거듭나게 되고, 더 나아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도 실제이듯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도 실제가 되며, 심지어는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세상이 할 수 없는 역사와 이적들이 실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듯이 우리 인생들의 이성이나 납득을 넘고, 세상적인 상식이나 과학까지도 뛰어 넘는 말 그대로 전지전능의 힘과 역사들, 실제와 누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때로는 내가 제대로 인지하거나 설명하지도 못할 정도로, 또한 의심할 여지도 없고 놀랄 틈도 없이 생생하고 강렬한 변화와 체험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사실 오병이어의 역사는 그 중의 지극히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면은 아무나에게, 아무렇게나, 특히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으로 하나님의 탄식과 진노가 되거나 또는 병들거나 죽은듯한 신앙 가운데 그러한 놀라운 응답과 역사들, 하나님으로 인한 실질적인 생생함과 강렬함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인 것인데..
굳이 따지고 보면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구주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일들,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이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고, 무엇보다 구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 드리는 기도들마다 애초부터 모두 응답되지 않을 수 없음은 원론적, 본질적으로는 바로 그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말씀 그 자체이신 분이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거나 응답이 안 되는 기도 자체부터가 아예 불가한 것이며, 게다가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씀의 영이신 것이며,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실은 원론적으로 오늘 우리들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곧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얼마나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오늘날에 있어서도 오병이어의 역사와 유사한 일들, 기도들에 있어서의 신실한 응답들,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경험들, 더 나아가 생생함과 강렬함들 등에 있어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고, 생각 이상의 기준과 관건, 방법과 통로 등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내포하며, 한편으로는 약속하고 예비하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한복음6:10~1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2월 14일(목)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