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志) - 9
제2장 62 근짜리 지팡이를 가진 스님
제5편 하산 5-1
다음 날 노달은 조원외를 따라 오대산으로 올라가 지진장로를 만났다.
주지승은 쾌히 응낙을 했으나 수좌승과 시자, 도사,서기승 등 5,6백 명은 의견이
모두 달랐다.노달의 모습이 워낙 추악한데다 그렇게 흉악한 살인범을 절에서 받아
들이면 훗날 자기들에게큰 피해가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좌승은 모든 사람들의 뜻을 대신하여 주지승에게 간곡한 거절의 뜻을 전했으나
주지승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노달은 천성이 강직해서 비록 흉악하고 형편이
어렵게 되었지만,
훗날에는 오히려 너희들보다 청정(淸淨)을 얻어 비범한 인물이 될 것이다.”
마침내 주지승은 날을 잡아 노달의 머리를 깎고 법도를 엄숙히거행하여 노달에게
지심(智深)이라는 법명을 내려주었다.
그리하여 경락부 관리를 지내던 노달은 불문의 제자 노지심이 되었다.
다음 날 조원외는 노지심을 보고 이제는 속인이 아니고 스님이 되었으니 부디 절간의
법도를 잘 지키고, 주지승의 분부를 어기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다음 하산했다.
그러나 워낙 야성적인 그가 머리 좀 깎았다고 천성이 바뀔 리가 없었다.
그는 낮잠을 자도 꼭 스님들이 도를 닦는 도장의 선상(禪床)에 쓰러져 잤으며, 오줌,
똥은 불전 뒤에서 실례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따라서 대부분의 중들이 노지심이라면
치를 떨고,그를 절에그냥 둘 수 없다고 여러 차례 주지승에게 말했으나 지진장로는
조원외의 낯을 보아 참았다.“차차 고치겠지.”
그 후로는 다시 아무도 노지심에 대해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렇게 넉 달이 지난 첫 겨울 어느 날 노지심은 오랜만에 산문 밖에 나섰다.
그는 혼자 어슬렁거리며 산 중턱까지 내려가자 정자를 발견하고,그곳에 걸터앉아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원, 술 구경 못한 지가 언제냐? 속이 타 죽겠다.”
그는 불현듯 술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다.그때 마침 한 남자가 어깨에 통을 짊어지고
콧노래를 부르며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노지심이 물었다.“그 통 속에 뭐가 들었나?”
“술입니다.”“술이라고? 이거 정말 잘 만났군. 한 통만 팔게.”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가로 젓는다.“이 술은 절에 있는 쟁이들과 교군들이 부탁한 것이오.
지진장로께서 얼마나 엄한 분인 줄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제가 만약 스님에게 술을 한 모금이라도 팔면
저는 이 바닥에서 장사를 못하고 쫓겨나게 됩니다.”
“그래 정말 못 팔겠단 말이냐?”“죽어도 못 팔죠.”“누가 죽인댔나? 술만 팔라고 했지.”
아무래도 형세가 심상치 않자 남자는 술통을 다시 들고 하산할 기미를 보였다.
노지심은 재빨리 달려들어 그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술통을 빼앗아 감로 같은
술 한통을 안주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마셔버렸다.노지심이 비틀거리며
산문 가까이 오자 그의 취한 모습을본 문지기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음주계(飮酒戒)를 깨뜨린 놈이 어딜 들어오느냐!”
그들은 절에서 정한 규칙대로 노지심을 잡아 곤장 40대를 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맞을 노지심이 아니었다.
크게 화가 난 노지심은 한 명을 쳐서 쓰러뜨리고 달아나는 또 한 명을 뒤쫓았다.
그 일로 사찰 안은 삽시간에 발칵 뒤집혔다.절 안에서 직책을 가진 수십여명의 스님들이
총동원되어 모두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노지심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닥치는 대로 그들을 때려눕혔다.
한창 결투가 진행되고 있을 때 지진장로가 나타났다.“네 이놈!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
노지심은 취중에도 장로임을 알고 그대로 그 앞에 엎드렸다.
“제가 술 좀 먹었다고 모두들 달려들어 패기에 대들었습니다. 제가 먼저 싸움을 건 것은
아니었습니다.”“몹시 취한 모양인데 어서 가서 쉬거라. 잘잘못은 내일 따지겠다.”
노지심은 투덜대며 비틀비틀 선불장으로 들어가 제 자리로 정해 놓은듯 선상위에
쓰러지듯 누웠다.그러더니 그대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아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수좌 이하 모든 스님들이 주지승에게 간청했다.
“저놈을 처음부터 받지 마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놈을 왜 그냥 두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단호한 처단은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장로는 역시 듣지 않는다.“지금은 비록 저렇게 개차반이지만 나중에는 달라질 놈이다.
더구나조원외의 낯을 봐서 용서해 줄 수밖에 없다. 내가 잘 타이르겠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겨울 동안 출입을 삼가고 있던 노지심은 오랜만에 산문을 나섰다.
산 아래 마을에는 5,6백 호쯤 되는 인가들이 있었다.
마을에는 정육점, 반찬집, 술집, 분식집들이 있었다.그는 대장간을 찾아갔다.
“좋은 쇠로 82 근짜리 칼 하나를 만들어 주겠소?”노지심의 말에 대장간 주인이 말했다.
“칼이란 무겁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너무 크면 모양도 흉하고 쓰시기도불편하죠.
62근짜리 수마선장(水磨禪杖)을 만들어드릴 테니 무겁다고하지나 마십시오.”
- 10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志) - 10
제1장 62 근짜리 지팡이를 가진 스님
제5편 하산 5-2
노지심은 대장장이 말대로 값을 치른 후에 술집에 갔다.
주막에 자리를 잡고 앉아 탁자를 두드렸으나 주인은 못내 어려운 낯빛을 하며 말했다.
“우린 주지스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습니다. 스님께 술을 팔면 장사를 못하게 되니
이해해 주십시오.”“이거 원, 별소리를 다 듣는군. 싫으면 그만둬라.
술집이 여기 밖에 없는 줄 아느냐?”그러나 다른 집도 술을 안 팔기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너 집을 들렀으나 모두 거절당하자 노지심은 마침내 꾀를 내어 다음에 들어간
술집에서는 주인이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말했다.
“나는 여기저기 떠도는 중이오. 여긴 처음인데 술 한 잔 주시오.”
“오대산 스님이면 안 되는뎁쇼.”“아닙니다.”술집 주인은 마침내 노지심에게 속아
술을 내놓았다.노지심은 개고기를 안주 삼아 잠깐 사이에 술 두 통을 다 마셔 버렸다.
그는 먹다 남긴 개다리 하나를 소매 속에 넣고 말했다.
“술값 남은 건 내일 또 와서 먹을 테니까 거스름은 놔두시오.”
그때서야 술집 주인은 그가 오대산 중인 줄을 알고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노지심은 단숨에 산을 뛰어올라가 정자 앞에 앉아서 숨을 돌렸다.
잠시 쉬는 동안 점차 술기운이 오르면서 몸이 무거워졌다.
“내가 요즘 힘을 안 썼더니 몸이 무거워졌군.”그는 생각난 듯 한마디 중얼거리고 나서
정자 기둥을 두 손으로 잡고 어깨를 대고 힘껏 밀어보았다.
그가 세 번째 힘을 쓰자 기둥이 한편으로 쏠리면서 정자가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그때 산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정자 무너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살펴보다가 노지심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질겁했다.
“어서 문을 닫자, 안으로 들여보냈다가는 또 큰일 나겠네.”
그들은 부리나케 절문의 빗장을 굳게 질러버렸다.“문 열어라. 문 열어!”
노지심은 주먹으로 문짝을 두드렸다.그는 문을 두드리다 말고 문득 고개를 돌려
좌편에 서 있는 금강신장(金剛神將)을 보고 크게 소리 질렀다.
“네 이놈! 주먹을 들고 나를 노려보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아느냐?”
노지심은 그대로 달려들어 창살을 하나 뽑아 들고 금강의 넓적다리를 마구 치고, 이번에는
우측에 있는 금강신장에게로 달려들었다.그러자 금강 조각상은 마침내 쓰러지고 말았다.
노지심은 한바탕 크게 웃고 나서 다시 산문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문을 안 열면 절에 불을 질러버린다.”
문지기는 할 수 없이 슬그머니 빗장을 빼놓고 멀리 물러서서 동정을 살폈다.
그것도 모르고 노지심은 다시 한번 힘을 다하여 온몸으로 문에 부딪치다가 문이
활짝 열리는 바람에 그대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즉시 일어나 선불장으로 뛰어 들어가 마룻바닥에 한바탕 토사물을 쏟아버렸다.
악취가 진동하자 수좌승, 감사, 도사들이 또 주지승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지심이 놈이 술에 취해 정자를 무너뜨리고 금강상을 쓰러뜨렸으며, 선불장 바닥에
토사물을 쏟아 냈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그러나 장로는 놀라지 않는다.
“자고로 천자도 술 취한 사람은 피하신다고 했다. 낸들 어쩌는 수가 있겠나?
정자와 금강상이 부서졌다면 나중에 조원외더러 새로 해 달래야겠구나.“
“금강은 산문의 주인입니다.”“금강이 아니라 전상(殿上)의 불존을 부숴도 어쩔 수가 없다.
녀석이 하는 대로 그냥 두고 보자.”장로는 도무지 노지심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찰의 사무원과 승려들이며 노랑, 화공, 직청, 교부 수백 명을 상대로 노지심이
몽둥이를 휘둘러 사람을 친다는 말을 들은 주지승은 더 이상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마침내 법당 밖으로 나와 소리를 가다듬어 꾸짖었다.
“네 이놈~~ 지심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러느냐?”
그때 술이 거의 깬 노지심은 장로를 보자 황망히 그 앞에 엎드린다.
“우리 오대산 문수보살 도령은 천백 년 동안 청정향화(淸淨香火)를 받들어 온 곳이다.
너 같은 놈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가 없구나! 다른 곳으로 보내야겠구나.”
노지심은 용서를 빌었으나 장로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다음날 동경 대상국사의 주지
지청선사에게 편지를 써서 노지심에게 주고 그의 평생을 점쳐 주었다.
遇林而起 우림이기 (숲을 만나면 일어나고)
遇山而富 우산이부 (산을 만나 풍부해지며)
遇州而遷 우주이천 (고을을 만나면 옮기고)
遇江而止 우강이지 (강을 만나면 멈추리라)
“너는 숲을 만나면 일어나고, 산을 만나면 풍부해지고, 물을 만나면 흥하고, 강을 만나면
멈추어야 하느니라.”노지심은 네 구(句)의 계언을 받고, 아홉 번 장로께 고개를 숙여
하직을 고한 다음 마침내 행장을 수습하여 하산하고 말았다.
그로써 말썽 많던 노지심의 산사 생활은 끝나게 되었다.
- 11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