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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민18:24]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민18:26]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민18:28]
구약 당시의 성전제사에서 예물을 드리는 두가지 방법은
바로 요제물(흔들어서 드리는 것)과 거제물(두 손으로 들어 올려서 드리는 것)
두가지가 있었는데 십일조는 분명히 거제물에 속하는 에물이었음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구약의 성전제사는 그리스도로 단 한번에 완벽하게 완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결코 더 드릴것이 없는 것입니다.
*현재 아직도 십일조를 내라는 나라를 간단히 살펴보면요
1. 한국의 전교단 전교파
2. 미국의 남침례교회, 오순절파
*그리고 십일조가 폐지된 나라는요
1.전세계의 모든 가톨릭
2. 동방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 모든 정교회
3. 한국 단 한 나라를 제외한 전세계의 개신교파
(유럽대륙 전체, 남미, 아시아, 중동, 중미, 아프리카..등등)
(그리고 미국도 가톨릭 포함, 남침례교회, 오순절파를 제외한 모든 개신교 교파가 십일조를 폐지)
(참, 구약의 율법을 엄청나게 중요시하는 대표적인 이단인 여호와의증인도 몇년전에
아무리 율법을 중요시해도 십일조만큼은 도저히 양심상 안되겠다고 결론내고 결국 폐지했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의 생산물, 나무와 과일, 소와 양의 10의 1일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레27:30-32 ; 신14:22)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행위라고 지적해 주셨습니다.(말3:8-9)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에게 십일조를 주었으며 (민18:21, 24)
레위인은 그들이 받은 것 중에서 10의 1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지요.(민18:26)
=십일조의 십일조
즉, 이상으로부터..구약의 십일조는 <거제>로 드리는 성전제사의 한 유형이었으며
따라서 백성에게서 받은 모든 십일조가 성전제사를 담당했던 레위자손에게 모두 전달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민18:24)
여기서 <거제>는 성전제사의 한 형태로, 위로 들어 바치는 제사법을 말합니다.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18:26)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민18:28)
그리고 십일조를 드릴때는
1)반드시 땅의 소산물에서 취할것
2)반드시 돈으로는 드리지말것, 운반하기 힘들면 돈으로 바꿨다가 다시 성전에서 소산물로 바꿀것,
3)반드시 제사장에게 드릴것 , 제사장의 족보는 반드시 레위 지파일것,
4)반드시 할례 받은 제사장임을 확인할것,
5)반드시 지성소가 겸비된 성전에서 십일조를 드릴것,
6)반드시 십일조는 가족과 이웃과 제사장들과 같이 음식으로 취할것,
7)반드시 제사장의 턱에 수염이 있는지 확인할것 수염을 밀어 버렸다면 이는율법을 어긴자임
8)반드시 당사자가 유대인일것,
9)반드시 1/10을 정확히 계량할것,
10)반드시 간음한자는 돌로 쳐죽일것,
아브라함과 야곱은 십일조를 드렸나?
십일조는 율법을 뛰어 넘는 행위이기에 오늘날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경우를 내세우며, 십일조는 이미 율법 이전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먼저 십일조는 쉽게 말해 고대의 어느 나라에서건 시행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널리 행해지던 보편적인 종교 관습이었고
또 조세제도였음이 역사적인 증거들로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십일조도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십시일반(十匙一飯)의 행위 그 자체는 특별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아브라함과 야곱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가나안과의 전쟁 후 전리품 중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는데, 이는 전쟁에 지친 아브라함을 멜기세덱이 환대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보아야지
이를 공식적인 십일조로 확대 해석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토지와 땅의 소산으로 드리는 것이지
전리품은 십일조의 대상이 아닙니다.
민수기 31:25-30을 보면, 전리품은 500분의 1 또는 50분의 1일을 여호와께 바치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십일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행위는 단순히 감사한 마음에서 고대의 관습을 따라 십분 일을 주었던 단회적인 한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릅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번 글에서 인용했던 창 28:20-22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자기 소원을 이루어주시면 십분일을 바치겠다는 '조건부 십일조'라 할 수 있는데,
조건부 십일조 역시 십일조의 정신과는 달라도 한참이나 다른 것이며 오히려 야곱의 이와같은 행위는 결코 본받아서는 안될 모습일 뿐인데,
불행히도 오늘날 한국교회들은 야곱의 이와같은 행위와 비슷한 동기로 십일조를 강조하고 있지요.
결국 아브라함과 야곱의 행위에서 십일조의 기원을 찾는 것은 억지일 뿐이며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십일조 바르게 읽기(2) - 하나님을 알아 가는 십일조
그렇다면 하나님께선 십일조를 통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싶으셨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십일조를 드려야 했다면 그 십일조를 통하여 과연 그 어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웠어야 했을까요?
지난 글에선 십일조 도둑놈 찾기를 통해 '하나님을 시험하는 십일조'의 문제를 풀어갔었는데,
오늘은 먼저 진짜 십일조 찾기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 가는 십일조'에 접근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진짜 십일조라니? 그럼 가짜 십일조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예, 물론 가짜도 있지요. 현재 한국 교회들에서 강조되고 있는 십일조가 바로 가짜 십일조입니다.
진짜 십일조는... 이제 한번 찾아볼까요?
우선 십일조가 세 가지 정도라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이 세 가지 십일조들이 각기 다른 '세 개의 십일조'인지 아니면 '한 십일조의 세 가지 다른 국면'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성경에서 언급하는 순서대로 첫째, 둘째, 셋째 십일조라고만 이름 붙여서 언급하겠습니다.
"첫째 십일조"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십일조로 "레위인과 제사장과 나눠먹는 십일조(레 27:30-33, 민 18:21-32)"입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의 십일조는 레위기 27:30-33에서 언급된 후 민수기 18:21-32에서 좀 더 확장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땅과 거기 속한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며 그 모든 소산들은 여호와의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그 고백을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주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을 스스로 취하시는 십일조입니다.
또한 이것은 구별되어 성전을 섬길 직분을 맡음으로 땅 분배에서 제외된 레위인들을 위한 생계의 대책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 역시 자신들이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 제사장들에게 주어야했습니다. 이 십일조는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고 또 교회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십일조의 용도입니다.
"둘째 십일조"는 "축제에서 가족과 함께 나눠먹는 십일조(신 12:5-19, 14:22-27)"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십일조는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신 12:5, 11, 14:23)'으로 가지고 나와 '온 가족(12:7, 12, 14:26)'이 함께 먹고 즐기라는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 제사의 큰 주제인 '여호와 앞에서의 음식 나눔'에 내포되어 있는 '거룩한 식사와 축제'라는 신학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으며,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가 함께 축제하며 또 함께 나눠 먹는 정신은 신약의 애찬(love-feasts)과 성찬으로도 이어지고 있어서 언약 공동체 내에서 영속적 가치와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십일조는 유월절 등 절기 축제에 참여하는 경비와 또 함께 음식 나눔을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십일조를 제사장과 레위인만이 아니라 온 백성이 가족들과 함께 즐기며 나누어 먹음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십일조는 레위인의 생계를 위한 것이다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이해가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십일조"로는 "이웃과 나눠 먹는 십일조(신 14:28-29, 26:12-15)"가 또한 명령되고 있습니다. 이 십일조는 매 3년마다 한번씩 행하는 철저하게 나눔에 목적이 있는 십일조였는데,
수혜 대상은 레위인들과 객(이방인,개종자들)과 고아와 과부들이었습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들은 알다시피 구약에서 늘 언급되는 나눔과 구제의 대상이었기에 이 십일조는 특별히 약자를 보호하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한 용도로 실시되었던 십일조였으며, 또한 성경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복에 대한 선포는 오직 이 십일조를 지키는 것에 대하여 선포되고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일조 하면 워낙 '복'을 밝히는 백성인지라 좀 강조하여 밝혀야겠습니다.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는 당연한 하나님의 것을 바치는 것이기에 오히려 안 지키면 저주만이 선포되고 있지만,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의 십일조는, 물론 이 십일조도 명령이지만,
이 십일조는 잘 지킬 때에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9)"는 축복의 약속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 받기 위해 십일조 하시는 분은 전략적으로라도 반드시 구제의 십일조를 하셔야 그토록 원하는 복을 받을 수 있으므로 복 받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라면 이웃과 나눠 먹는 구제의 십일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논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양상의 십일조가 구약 성경에 율법으로 언급된 십일조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둘째 십일조'와 '셋째 십일조'에 대하여는 지금 처음 들으시는 분도 꽤 있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우리는 여지껏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는 잘 알고 있었는데 정작 십일조를 온 가족이 함께 나눠먹었다 라든지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는 삼 년에 한번씩 따로 다시 십일조를 했고 특히 그 십일조에만 사실은 축복이 선포되고 있음을 왜 우리는 여지껏 제대로 몰랐을까요?
서두에서 현재 한국 교회들에서 강조되고 있는 십일조가 바로 가짜 십일조라고 말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십일조는 정작 십일조의 일부분뿐이었고 또 레위인이 사라진 지금 우리가 십일조를 해야할 이유가 있다면 오히려 둘째 십일조와 셋째 십일조가 강조되어 십일조를 했어야 하는게 논리적으로 맞는데, 전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일조와 관련되어 또 하나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있는데, 십일조는 처음부터 성전 유지를 위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성전 유지는 성전세로
위에서 이미 언급되었지만, 세 가지의 십일조 모두 '나눠 먹는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철저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음식에만 국한되었으며, 그야말로 '나눠 먹는 것',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성전 유지를 위해서는 '성전세(Temple tax)'가 있어서 그것으로 충당되었고, 건축을 할 때는 주로 자원하는 특별 헌금이나 헌물이 따로 드려졌습니다. 성경에는 성막을 만들었던 기록과 성전을 두 차례 건설하는 모습과 또 몇 번 성전을 보수하는 기록이 있지만 그 목적을 위해 십일조가 사용되었다는 언급이나 정황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십일조는 그냥 나눠 먹는 것일 뿐이었으니까요.
반면에 성전세는 출 30:11-16에 나타나 있는데, 성전을 위한 속전으로 20살 이상된 성인 남자가 반세겔을 드리도록 제정되었으며,
출 38;24-31에서 처음 거둬들인 성전세의 세목과 또 그 성전세가 성막 건축에 사용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24장에 보면, 요아스 왕이 여호야다 제사장 생전에 성전 보수를 하기 위하여 성전세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으며,
요시야 왕은 성전 보수를 하다 율법책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하였는데 그때에도 성전세로 거둔 은으로(왕하 22:4) 성전을 보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지난 글에서 대대적인 십일조 회복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느헤미야도 성전을 위하여는 십일조와는 다른 별도의 성전세를 거두었음(느 10:32)을 알 수 있는데,
느헤미야 시대에는 1/3세겔을 성전세로 바쳤습니다.
즉 성전세는 원칙적으로 1/2세겔을 바치도록 되어 있었으나 느헤미야의 시대와 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대에는 그 세를 감하기도 하는 융통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십일조와 성전 유지는 상관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오늘날도 십일조를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분들이 '성전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성전 유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이 말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으며, 정히 그러하다면 지금도 예배당 건물 유지를 위해서 특별한 헌금을 하거나 아예 성전세처럼 일종의 회비를 내는 것이 훨씬 더 성경적이며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잘못된 성경해석을 들이밀며 왜곡된 관점과 의도를 가지고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종교적 횡포일 뿐 결코 정당하고 바른 목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돈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자인하며 고백하는 행위에 다름이 아니며, 결국은 돈 때문에 진리를 팔아먹는 행위라고 지탄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성전세는 세겔이라는 돈으로 드렸지만
십일조는 아예 돈으로 바칠 수도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 어디를 보아도 토지 소산과 가축 이외의 다른 소득에 대하여 십일조를 내라고 한 경우를 찾을 수 없을 뿐더러 돈으로 십일조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구약에서는 돈으로 십일조를 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4:24-27을 보면, '둘째 십일조'인 축제의 십일조가 설명되고 있는데, 토지 소산과 가축의 십일조를 가지고 가기에 성소가 너무 먼 경우에는 일단 돈을 가지고 가서 성소가 있는 곳에서 다시 십일조에 해당하는 물품들을 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 27:31에 보면 '사람이 그 10분 1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5분 1을 더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돈으로 대신하려면 10분 3에 해당하는 금액을 내야 한다는 말이며, 더구나 제사장은 그 돈을 십일조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십일조에 해당하는 물품을 사야만 했습니다.
쉽게 말해 돈으로는 안받겠다는 말씀이지요.
어찌보면 참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법규정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멀리 있는 사람이야 당연히 돈으로 바치는 게 훨씬 쉬울 것이며, 제사장들이 모든 돈을 거두어서 일괄 구입하여 분배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며 경제적입니다.
그리고 예리하신 어떤 분들은 그 당시는 화폐 유통시대가 아니었다 할런지도 모르겠는데, 그것도 전혀 아닙니다.
이미 화폐는 아브라함 이전부터 널리 유통되고 있었고(창 23:12-16) 또 십일조보다 앞서 성전세는 이미 돈으로 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돈으로 내려면 3배를 내라고 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억지로라도 그것들을 이고 지고 끌고 성전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선 왜 이렇게 비합리적인 요구를 십일조에 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십일조는 단순히 하나님의 것이기에 바치라는 것 이상의 그리고 복 받기 위해 바치라는 것 이상의 하나님의 특별하신 의도와 목적이 있음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것을 성전까지 네가 직접 이고, 지고, 끌고 와서 예배와 축제를 드리며 바쳐야 하고 레위인들과 온 가족들과 그리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나눠먹어야 한다"라는 것이 십일조에 대한 정확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오해와 착각이 워낙 뿌리깊다보니,
제 글을 아직도 이해못하시는 분들이 많은듯 합니다.
하나님께선 성경에 이미 답변을 써 놓으셨습니다.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분 일을 더할 것이요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
[레27:30-3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십일조에 대해 분명히 정의해 놓으셨습니다.
십일조의 해당 대상이 결코 <돈>이 아니라,
<땅의 소산과 가축의 십일조>임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라고 누차 명시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신12:17, 14:23, 느13:5, 13:12].
그래도 굳이 돈으로 내려면 무려 20%의 벌금까지 부과하셨습니다.(레위기 27:31)
그리고 그것도 결국은 기름이나 포도주나 동물로 다시 바꾸어야 했습니다.
첫댓글 돈내야 기도가 효험있다는 거짓말은 약파는 무당 목사들 주장이고요 확실한건 십일조 와 기타 많은 헌금 땅 바치면 목사에게 사랑받고 장로로 초고속 승진하는데에는 분명 효과가 있을것입니다. 교회에서 실세노릇 톡톡히 할 수 있지요
정말 잘 정리하셨네요.
말씀을 통해 바르게 믿음생활하는 풍토가
되어야 하는데...
이미 복음의 외형만 남은 우리네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무지한사람들이 너무많아
십일조에 대해얘기하면
이단취급받아 어이없더군요
하나님께 억지로 드리면 다 소용없습니다. 성경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라고 나와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오직 예수님을 마음속에 진심으로 영접했을 때 나옵니다.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율법적인 십일조라면 안내는것이 좋구요.
무슨 말인가 하면 앞서 이거 안내면 내가 죄짓는거 같거나 내라하니까 내거나) 하는 이거내면 복받는다! 하는 말뜻 가지고 낸다면 그 십일조는 곧 사람한테 하는것이됩니다. 교회만 배를불리죠.그러나 구약 율법의 '해라' 하는것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혜와, 부활,등 하나님은혜가 감사하고 기쁜 그래서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는 분명하고 확실한 그 믿음일때 는 드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