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13
제2장 62 근짜리 지팡이를 가진 스님
제7편 불타는 와관사
그날 노지심은 절벽 아래로 굴러 산길을 오십 리나 걸었다.가도 가도
첩첩산중이어서 집이라고는 구경할 수도 없었다.
아침도 못 먹은 노지심은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그때 마침 소나무 숲속에
절이 나타났다.그는 즉시 산문에 들어섰다.절간 문전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도무지 인기척이 없었다.괴이하게 여겨 절간 뒤로 돌아가니 주방 옆 한 칸 방에
뼈와 가죽만 남은 늙은 중 너덧 명이 얼이 빠져 앉아 있었다.
“나는 오대산에서 온 중인데, 밥 좀 한 끼 신세집시다.”“우리도 사흘째 굶고 있소.”
“이렇게 큰 절에 쌀 한 톨이 없다니 말이나 되오?”그러나 늙은 중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정이 있었다.
와관사(瓦官寺)라는 이 절은 본래 유복한 절이었으나 얼마 전에 최도성(崔道成)이라는
가짜 중과 구소을(丘小乙)이라는 가짜 도인이 주지와 모든 중들을 몰아내 버렸다.
그 후부터 와관사는 갑자기 퇴락해져 지금은 늙은 중들만 남아서 굶주리고 있었다.
노지심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그놈들은 지금 어디 있소?”
바로 그때 한 도인이 콧노래를 부르며 채롱에 술병과 고기를 담아 어깨에 메고
방장 뒤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그자가 바로 구소을이었다.노지심은 선장을 들고
뒤를 밟았다.뒤뜰 탁자에는 살이 피둥피둥 찐 중놈이 젊은 계집을 끼고 앉아
구소을이라는 놈이 가져온 술과 안주로 막 술자리를 벌이려는 참이었다.
“이 고얀 놈들!”노지심이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고 나섰다.그러나 최도성과 구소을은
귀신이 다 된 놈들이었다.두 놈은 도리어 늙은 중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이 절의 중놈들은 술과 계집질로 그 많던 전답을 모두 팔아먹고, 명성이 높은 이 절을
이 꼴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소승은 저 도인과 함께 여기 들어와서 이제 산문을
다시 세우려던 중이었습니다.이 여자로 말씀드리면 지아비가 오랫동안 병들어
제게 쌀을 꾸러 왔기에 지금 술을 좀 얻어다 접대하려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본래 속이 남달리 곧은 노지심은 그 말을 듣고 늙은 중놈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늙은 중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원, 딱하기도 하십니다. 놈들이 맨손으로 사형을
당해 낼 수가 없으니 그 따위 수작을 늘어놓은 것을 왜 모르십니까?
저희들이 이렇게 며칠씩 굶고 있는데, 그놈들은 술과 고기로 노닥거리는 것만 봐도
잘 아는 일 아닙니까?”그 말을 들은 노지심은 더욱 화가 나서 다시 선장을 고쳐 잡고
뒤뜰로 달려갔다.그러나 두 놈들은 그 사이에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앞뒤에서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두 사람은 적수가 아니었지만 노지심은 아침부터 굶은 데다
오십 리 산길을 걸어 온 터라 그들을 당해내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노지심은 그대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그가 숲에서 가쁜 숨을 돌리다가 생각하니 바랑을 절에 두고 나온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다시 찾으러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돈은 땡전 한 푼도 없었다.
그때 나무 그늘에서 한 사내가 노지심을 잠깐 살피는듯하더니 숨는 기색이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저놈을 털어 술값이나 좀 마련해야겠다.’
노지심은 그렇게 마음을 먹고 그 자리에서 외쳤다.“이 도둑놈아, 숨지 말고 나오너라.”
그러자 사내는 숲속에서 크게 웃으며 칼을 들고 나왔다.
“이놈, 중놈아! 네 목소리가 귀에 익은데, 너는 누구냐?”
“나는 노충경락 상공에 있던 노달이지만 지금은 출가하여 노지심이라는 스님이시다.”
그 말에 사내는 칼을 버리고 넙죽 절했다.“형님, 저 사진입니다.”노지심은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역시 사진이었다.사진 역시 이충처럼 정처 없이 각처로 떠돌다가
돈이 떨어져 숲속에 몸을 숨기고, 지나가는 행인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 14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 14
제2장 62 근짜리 지팡이를 가진 스님
제7편 불타는 와관사
노지심도 그간 겪은 얘기를 하고 사진에게서 술과 안주를 얻어 배를 채운 다음
함께 와관사로 갔다.최도성과 구소을은 산문 앞 돌다리 위에 앉아 있다가 노지심이
다시 오는 것을 보았다.“네 이놈, 기어코 죽고 싶어 또 오느냐?”
그들은 칼을 꺼냈으나 배를 채운 노지심과 사진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두 놈을 처치하고 산문에 들어갔다.그러나 산문 안에는 끔찍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놈들은 늙은 중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 죽였고, 뒤뜰에 잡고 있던 여자도 죽여서 우물에
빠뜨린 후였다.이제 와관사는 빈 절이 되고 말았다.노지심은 바랑을 찾아 이충에게서 가져온
금은을 꺼내 사진과 절반씩 나누어 갖고 와관사를 불태웠다.
노지심은 사진과 훗날을 기약하고, 다시 동경 대상국사를 향해 갈 길을 재촉했다.
마침내 노지심은 동경에 도착하여 대상국사를 찾아 지청선사(智淸禪師)에게 지진장로가
써준 편지를 올렸다.지청선사는 편지를 읽고 나자 행자를 불러 노지심을 승당에 안내하여
편히 쉬게 한 다음 사찰의 직책을 가진 승려들을 모조리 방장으로 불러 의논했다.
“우리 사형(師兄) 지진선사께서 보낸 중이다. 원래 경락부 군관이었으나 사람을 죽이고 출가
했다는 것이다. 오대산에서도 두 번이나 큰 소동을 일으켜 우리에게 보내셨는데, 우린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겠는가?하나 나중에는 반드시 훌륭한 스님이 될 것이니,
부디 자비를 내려 받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셨는데, 야박하게 거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받아들였다가 사찰의 법도를 어지럽힌다면 큰일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때 한 스님이 나섰다.“아무리 지진장로께서 보내신 사람이지만, 그런 흉악범을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다른 데로 보내야 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왜 이렇게 골치를 앓겠소.”다른 도사가 말했다.
“좋은 수가 있습니다. 산조문(酸棗門) 밖에 있는 채원(採園)으로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그 채원은 동네 불량배들이 늘 드나드는 곳이라 그자를 거기 보내서 다스리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그거 참 좋은 생각이로군.”지청선사는 도사의 말대로 다음 날 노지심을 불러
산조문 밖 채원에 있도록 했다.그러나 노지심은 말했다.
“지진장로께서 대상국사에 가면 승직을 주실 것이라고 하셔서 도사나 감사를 맡을 줄 알고
왔는데, 채원으로 가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지심은 기분 나쁜 어조로 말했으나 지객선사가 그에게 말했다.“소승 말씀을 들으시오.
절에는 각자 맡은 일이 있으니, 소승 같은 지객은 이 절에 왕래하는 승려들을 접대하는 것이
일이오. 다른 직책은 맡을 수가 없습니다. 사형으로 말하면, 이번에 처음 이 절에
오신 분이시니 높은 직책을 맡아 보시겠다는 말은 온당치 못합니다.
우선 채소밭을 지키는 채두(菜頭)로 임명하고, 채원을 잘 관리하시면 일 년 후에는 탑을 돌보는
탑두(塔頭)를 시켜드릴 것이오. 다시 일 년만 잘하시면 그때에는 욕주(浴主)를 시켜드릴 것이요.
다시 일 년만 잘하시면 그때에는 절을 감독하는 감사(監寺)를 시켜드릴 것입니다.
그게 사리에 맞지 않겠습니까?”노지심은 그제야 마음을 잡고 산조문 밖으로 나갔다.
불량배들은 평소 대상국사 채원의 무, 배추를 훔쳐다 팔아서 술값이며 노름 밑천을 삼아오던
터였다.이런 수십 여 명의 불량배들은 이번에 채두가 바뀌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노지심의 기를 꺾어놓아야 되겠다고 서로 짜고 벼르고 있었다.
그 괴수 격인 장삼(張三)과 이사(李四)가 앞장서서 과일과 술을 사들고 채원으로 찾아왔다.
“이번에 새로 채원을 관리하러 오셨다구요? 저는 장삼이고, 이 친구는 이사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이 동네 사람들입니다. 인사드립니다.”
장삼은 말을 하다 말고 노지심의 왼쪽 다리를 부둥켜안고, 이사는 오른쪽 다리를 맡았다.
노지심이 서 있는 곳은 바로 거름구덩이 옆이었다.
둘이 그를 거름 속에다 처박아 단단히 골려보자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기운깨나 쓴다는 장삼과 이사였으나 노지심이 두 다리를 차례로 한 번씩 들어서
차버리자 두 사람은 그대로 거름구덩이에 거꾸로 처박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불량배들은 모두 도망가려 했다.“이놈들아, 도망가면 한 놈도 안 남기고
모두 거름통에 처박아 버리겠다. 어서 놈들을 똥 속에서 끌어내라.”장삼, 이사는 채원 안에
있는 못으로 가서 똥물에 빠진 몸을 씻고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은 다음 다시 노지심을
찾아와서 백배 사죄를 했다.“하하, 그만하면 알겠느냐? 이제 술이나 한잔하자.”
파락호 무리들은 노지심이 주먹 세 번에 사람을 처 죽이고 중이 되었다는 내력을 듣고
혀를 휘~ 휘 내둘렀다.
- 15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