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전번에 써 놓은 것인데 부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부여에 갔다가
그 글을 올려 보라기에 올려 봅니다. 말투가 샘들을 만나기 전에 쓴 것이라 좀 딱딱함다.
이해 하시고 그냥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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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샘들
샘들이 그림을 많이 올리고 또 아이들 그림도 올려서 매우 반가왔습니다.
전에 사잇골 그림들 참 좋았어요. 참신하기도 하고 모두들 부러워 했지요.
그래서 오늘 그림을 잘 그리는 비법을 공개 하려고 합니다.
그림 잘 그리는 방법이 있는가? 예 있습니다. 뭔가? 비법이라도? 예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것은 천천히 그리는 것입니다.
그림은 천천히 그리면 잘 그릴 수 있습니다. 빨리 그리면 잘 그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사물은 대단히 미묘하고 복잡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복잡한 것을 어떻게 빨리 그릴 수 있겠습니까?
잘 안그려지는 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비유를 하면 이런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 보는 마을에 갔습니다. 처음 보는 골목을 마음대로 뛰어 다닐 수 있습
니까? 천천히 돌아 다 닐 수 밖에 없습니다. 길을 모르니까요.
그러나 여러번 길을 다니다 보면 막힌길, 위험한 길, 지름길도 알게 되어 나중엔
막 뛰어 다닐 수도 있게 됩니다.
그림도 그와 같습니다. 꽃잎 하나를 그린다고 합시다. 꽃잎은 단순하게 생기지 않고 꼬불
꼬불합니다. 처음엔 그 꼬불꼬불한 잎의 골목길을 따라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여러 번 그리다 보면 좀더 빨리 그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빨리 그리는 것이 꼭 좋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비밀은 천천히 그리는 데 있습니다. 특히 처음 그리는 사람은 천천히
그리면 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천히 그릴 수록 잘 그리게 됩니다. 시간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 동안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천천히 그리면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틀린 부분도 발견하게 되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됩니다.
관찰하라고 말을 안해도 저절로 관찰하게 됩니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됩니다.
화가들의 말 중에 산을 그리다가 (그림의)산에서 길을 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엔
산이 단순하게 보이지만 그리면 그릴 수록 많은 것들이 보이기 때문에 드디어 그 속
에서 길을 잃고 마는 수가 있는 것이지요.
화가들의 빨리 그리는 것은 숙달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많이 그려 본 것은 빨리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많이 그려 봤다는 말을 다르게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빨리 그려도 횟수가 많으면 마찬가지 효과가 나지요.
아이들은 오래 그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루하여 오래 견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어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천천히 그리고 싶은 마음, 천천히 시간을 투자 할 수 있는 그 마음이 바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오래 그릴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그림을 잘 그리게 될 수
밖에 없는 길에 들어 선 것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런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시면 천천히 그리면 됩니다.
천천히 먹으면 소도 한 마리 먹을 수 있답니다.
천천히 그리면 잘 그릴 수 있는데 나도 그게 잘 안되는 군요. 바쁘고 쫓기고... ㅎㅎ
(물론 이 방법만 있는 건 아닐 수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말이예요.)
꼬리말 쓰기
콩깍지 56평생, 너무도 보잘 것없는 예 닐곱 장 그림밖에 남기지 못한 제게 이보다 더한 위로와 격려 말씀은 전에도 뒤에도 영원히 없겠습니다! 앞으로 죽기까지 또 예 닐곱 장 밖에 더 그리지 못할지라도 이 말씀에 의지해서 행복하게 그리겠습니다! 백지와 연필 볼 때마다 막막하던 외로움, 그이가 저기 따뜻이 미소짓네요! [2004/07/20]
콩깍지 내 중학교 때 미술 성생님! "전영숙! 너 미술실 오라는데 왜 안오느거야? 이 죽게 말안듣는 눔아!" 하시던 그 성생님이 탱그리 샘처럼 이르케 일러주셋뜨라믄 아마 지끔쯤 완전히 딴 길에서 놀았겟쮸? 아조 딴 얘기루 만날 수두 잇썻을찌두...??? [2004/07/20]
원종찬 그림을 줏두모르는 사람도 인생론 강의루다가 쏙쏙 들어옵네다. 산을 그리다가 산에서 길을 잃다... 멋져! [2004/07/20]
코숙이 아침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저는 빨리 그리는 걸 못하는데 지금처럼 천천히 더 열심히 보고 그려야겠네요. 감사! [2004/07/20]
도토리이은... 와, 그림 그리는 법이다. 어느 길로 가든 다 좋고, 거기 길을 가는 동안 깨닫는 것도 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다. 빛깔도 다르고 냄새도 다른데 왜 같다는 거지? 나 아직 술이 덜 깼나?) [2004/07/20]
황금성 천천히 마시면 막걸리도 한 말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시백 형, 교진 형, 상석 형은 술먹을 때 입이 쉬지않습니다. 노래하거나 욕하거나 말합니다. 그러다가 쉴 때 바로 막걸리를 들이킵니다. 그 거 였구나. 천천히, 술만 먹지 않고 돌아가는 지혜? 다 들통났구나. [2004/07/20]
이상석 나는 여태껏 그림 한 장 안 그려 봤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늘 재동이가 대신 그려주었다. 이거 그려 도, 저거 그려 도, 하면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쓱쓱 그려주었다. 그림 고픈 줄을 몰랐다. 이제 나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려서 내가 그린 그림 한 장 갖고 싶구나. 천천히 그려라. 천천히 다녀라, 천천히 먹어라, [2004/07/20]
이상석 천천히 사랑하라, 천천히 싸워라, 천천히 일하라, 천천히, 천천히. 이게 삶의 슬기로구나. 빠르게! 대량으로! 한꺼번에! 초전박살! 일확천금! 이런 것 사람 죽이는 것 다 알면서도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 천천히 그려라! 천천히!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도록 천천히 면밀히 사랑하라!!!! [200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