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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醉獨醒(중취독성) 언저리의 여유를 갖고...
때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로 수많은 부족국가들이 통합되면서 차츰 왕권국가로의 모습을
갖추어 가던 시기이다.
전국시대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하여 그 중 최강대국인 秦(진)과 楚(초), 燕(연), 齊(제),
韓(한), 魏(위), 趙(조) 육국간의 치열한 눈치보기와 외교전이 치열하였다.
蘇秦(소진)이란 자는 진나라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나머지 육국이 힘을 합쳐 진나라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는데 이를 合從策(합종책)이라 부르고
魏(위)나라의 張儀(장의)는 각나라가 진나라와 개별적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창하였는데
이를 連橫策(연횡책)이라 불러 합하여 '합종연횡'이라 불린다.
선거철만되면 우리나라 정당간에도 합종연횡이 이루어 진다.
楚(초)나라에는 屈元(굴원)이라는 자가 있었다.
屈元(굴원)의 초상
굴원은 초나라 왕족으로 이름은 平(평)이요 字(자)는 原(원)이다.
학문이 밝고 정책과 외교에 능하여 초회왕의 신임을 얻어 중용되었고 삼려대부에 올랐다.
굴원은 진나라를 멀리하고 이웃 제나라와 친하여야 한다는 합종책을 따르고자 하였다.
굴원이 중용되고 관직이 높아지자 연횡책을 주장하던 반대파인 상관대부 勤尙(근상)일당은
위기감을 느껴 굴원을 모함하였고 결국 굴원은 추방되었다.
굴원이 추방된 후 초나라는 연횡파인 장의와 진나라의 꾐에 빠져 여러 전투에서 패하고
초회왕도 진나라에 잡혀 죽임을 당하고 만다.
결국 초나라는 회왕의 아들 경양왕대에서 망하였고 다른 나라들도 하나씩 하나씩 망하여
진나라가 통일을 이루었다.
굴원이 회왕에게 쫓겨나 초최한 몰꼴로 강가를 서성이고 있을 때 한 늙은 어부가 굴원을
알아보았다.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어찌하여 이 강가를 헤매입니까?"하고 물으니
굴원왈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혼자만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혼자만 깨어
있어있는지라 그래서 추방당했소"하고 말했다.
여기에서 衆醉獨醒(중취독성)이란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그러자 어부는 시류에 맞게 둥글둥글 처세하지 못하고 강경하기만 한 것을 꼬집었지만
굴원은 차라리 물에 빠져 죽을 지언정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단호함을 보였다.
어부는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떠나면서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해 가이탁오영)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해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 하고는 떠나갔다.
결국 울분을 이기지 못한 굴원은 汨羅水(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다.
진정코 나라를 사랑했던 憂國忠臣(우국충신) 굴원의 죽음을 전해 들은 백성들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굴원이 멱라수에 몸을 던져 빠져 죽은 날이 5월 5일이다.
백성들은 5월 5일이 되면 배를 타고 죽통에 쌀을 담아 강물에 던졌다.
물고기가 굴원의 시체를 뜯어 먹지 말라는 뜻이다.
단오날의 유래는 굴원의 죽음에서 유래되었고 죽통에 쌀을 담아 던지던 풍습에서
쭝즈(粽子)라는 음식이 탄생하고 舟遊(주유)라는 놀이가 생겼다.
중국에는 단오날이면 뱃놀이를 하면서 쭝즈를 먹는다.
옮겨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