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콩쿠르 우승과 오페라 가수로 성공은 별개, 계속 도전해야죠
(입력: 서울대총동창회보 545호/2023.08.15)
바리톤 김태한
(성악19-23)
6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아시아 남성 최초·최연소 기록
6월 4일 아침 국내 클래식계는 벨기에에서 날아든 낭보에 들썩였다. ‘세계 3 대 콩쿠르’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부문에서 바리톤 김태한 동문이 우승했다는 소식이었다. 올해 22 세로 역대 성악부문 우승자 중 아시아 남성 최초 우승이자, 최연소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피아노·첼로·성악·바이올린 부문이 돌아가며 개최되니 4년에 한 번 온 기회였다.
SNS로 살펴본 그는 친구도 많고 유행하는 밈(meme)도 곧잘 쓰는 20대 초반 청년이었다. 이메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진중한 예술가의 모습으로 “한순간의 결과물인 등수보다, 무대를 갈망하고, 무대에 서기 위해 콩쿠르에 도전했다”며 거듭 “안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번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소프라노 조수미 동문이 우승 발표 후 그를 꼭 안아주며 건넨 말도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것이었다.
“다른 기악 연주자와 마찬가지로 성악가도 독주자로서 기량이 중요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종합예술’인 오페라를 직업으로 삼기 위해선 개인의 실력 외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악가에게 권위 있는 콩쿠르의 우승이 오페라 가수로서, 연주자로서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계속 도전을 이어나가야죠.”
결선에서 그는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와 말러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속 아리아 등 4곡을 불렀다. 한 평론가의 표현에 따르면 ‘전아한’ 소리였다. ‘법도에 맞고 아담하다’는 뜻이다. 벨기에 소설이 원작인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를 부를 때는 짙은 서정성으로 귀를 사로잡았다. “평소 곡의 가사가 되는 시나 대본을 공부하고 분석하고, 곡의 화자를 캐릭터화하는 걸 중요시하고 또 즐깁니다. 공부와 연구가 연습과 같이 쌓였을 때, 음악의 완성도도 한없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그 캐릭터가 되어서 감정적인 연기를 하려고 노력해요.”
“좋은 성적보다 매 라운드 무대를 즐기자”고 생각해 긴장도 하지 않았다. 간절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역량을 맘껏 펼쳤을 뿐이다. 결선곡 중 베르디의 ‘돈 카를로’는 이탈리아어로 널리 불리지만 본래 프랑스어로 쓰인 작품. 그는 벨기에 공용어인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묘수를 냈다. 벨기에 복판에서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땅 이름이 들어간 마지막 구절 ‘플랑드르를 구해 달라’를 불렀으니, 청중의 마음이 진동했을 법하다. 정확한 발음으로도 호평받은 그는 “딕션 (발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국제음성기호로 발음 공부하는 게 정석이지만 원어민 화자의 노래를 많이 듣고 따라하는 방식으로 익혔다”고 했다.
김 동문은 성악을 시작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어릴 적 가요와 록음악을 좋아해 교내 밴드부 활동도 잠깐 했다. “제대로 노래하려면 성악을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중3때 성악에 입문했다. 예고를 거쳐 서울대 입학 후, ‘발성 혼란기’가 크게 와서 하마터면 노래를 그만둘 뻔도 했다. “같은 나이 친구들과 경쟁하다가, 성숙한 소리를 가진 형들을 동기로 만나게 되니까 제 부족함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았어요. 동기들과 서로 조언을 나눴지만, 무의식 중에 남의 말을 무시하고 변화가 두려워 내 방식만 고집하고 있더라고요. 문제를 해결하려고 더 많이 연습했던 게 오히려 목에 무리를 줬고요.”
서울대에 출강하던 바리톤 나건용(성악00-04) 동문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3때 뵙고 제자로 배운 건 대학 때 처음이었는데, 선생님께선 저를 어린 아이로 보지 않고 한명의 성악가로서 부족한 부분을 낱낱이 분석하고 함께 고민해 주셨어요. 권위적인 선생님보다 친구이자 아버지같은 따뜻함으로 저를 아껴주셨습니다. 서울대에 입학해 선생님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국내파인 그는 “서울대 음대의 모든 커리큘럼이 밑거름이 됐다”고 돌아봤다. 학내 정기오페라에 선 뒤로 ‘빨리 세계 오페라 무대로 나가고 싶다’는 꿈도 품었다. “1학년 때, 쟈코모 푸치니의 ‘일트리티코(삼부작)’에서 합창과 무대 전환수 역할을 맡았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거지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뱃일을 하는 선원 역할이었죠. 3학년 때 자크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각 막 별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1인 4역의 악마로서 처음 주역으로 데뷔했고요. 역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대학생 신분으로 대작을 올린 경험에서 노력하면 뭐든 해낼 수 있겠다는 힘을 얻었습니다.” 걸어다니면서도, 놀면서도 연습했다던 그는 졸업반인 지난해에만 광주성악콩쿠르 2위에 이어 리카르도 잔도나이 국제 콩쿠르, 스페인 테너 비냐스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큰 재목의 조짐을 보였다.
이제 그는 많은 콩쿠르 우승자가 그랬듯 오페라 주역으로 향하는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오른다. 우선 9월부터 2년 간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오페라 스튜디오에서 젊은 성악가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2시간 반 짜리 오페라 중 5분 분량의 작은 역부터, 비중 있는 단 역까지 다양하게 소화할 예정이다. 곧 콩쿠르 수상자들과 월드 투어를 시작하고, 10월엔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 석사 과정에 진학한다. 지역마다 오페라 극장이 있고 활발하게 오페라 시장이 돌아가는 독일에 매료돼 일찌감치 유학을 결정했다.
“아직 유럽 무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선배님들께서 유럽 각지에서 주역 가수로 활동해주신 덕분에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확실히 줄어든 것을 실감해요. 선배님들이 헤쳐가신 길을 묵묵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에, 그 발자취는 제게 이정표와도 같습니다. 해외에서 만난 한 선배님께선 이름도 모르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단지 서울대 후배란 이유로 식사를 제공해 주셨어요. 이 인터뷰를 빌려 세계 각지에서 활동 중인 선배님들께 감사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너 아름다운 예술아, (중략) 내 마음에 온화한 사랑을 불붙였고, 날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했구나’. 그가 좋아해서 곳곳에 적어 둔 슈베르트 가곡 ‘음악에게(An die Musik)’의 가사다. “힘들고 지친 마음이 예술로 치유될 수 있다는 내용인데 음악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어요. 저 또한 예술로써 관객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늘 그랬듯이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만들어 가겠습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