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철리
김광균
산비탈엔 들국화가 환 ―― 하고 누이동생의 무덤 옆엔 밤나무 하나가 오뚝 서서
바람이 올 때마다 아득 ―― 한 공중을 향하여 여윈 가지를 내어 저었다.
갈 길을 못 찾는 영혼같애 절로 눈이 감긴다.
무덤 옆엔 작은 시내가 은실을 긋고 등 뒤에 서걱이는 떡갈나무 수풀 앞에
차단 ―― 한 비석이 하나 노을에 젖어 있었다.
흰나비처럼 여윈 모습 아울러 어느 무형(무형)한 공중에 그 체온이 꺼져 버린 후
밤낮으로 찾아 주는 건 비인 묘지의 물소리와 바람 소리뿐.
동생의 가슴 우엔 비가 나리고 눈이 쌓이고 적막한 황혼이면 별들은 이마 우에서
무엇을 속삭였는지. 한 줌 흙을 헤치고 나즉 ―― 히 부르면 함박꽃처럼
눈뜰 것만 같애 서러운 생각이 옷소매에 스몄다.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감각적, 애상적, 산문적
◆ 특성
① '――'을 사용하여 시어의 느낌을 풍부하게 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수철리 → 공동묘지가 있던 서울의 한 마을
* 산비탈엔 들국화가 환하고 → 무덤과는 대조적인 풍경임.
* 밤나무 하나 → 누이동생을 연상케 함.
* 갈 길을 못 찾는 영혼 → 밤나무, 누이동생
* 차단한 비석 → 차갑고 단절된 이미지
* 흰나비처럼 여윈 모습 → 동생의 이미지
* 어느 무형한 공중에 그 체온이 꺼져 버린 후 → 누이동생의 죽음
* 비인 묘지의 물소리와 바람 소리뿐 → 적막감과 공허감
* 함박꽃 → 누이동생의 상징
* 서러운 생각이 옷소매에 스몄다. → 슬픔과 그리움, 추상적 개념의 구체화
◆ 주제 : 죽은 누이동생에 대한 추모와 그리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수철리'에 있는 누이동생의 묘를 찾은 시적 화자가, 무덤 주변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하면서 죽은 누이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의 마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묘지의 정경을 그림 그리듯이 묘사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애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덤 옆 밤나무의 '여윈 가지', 노을에 젖은 '비석', '비인 묘지의 물소리와 바람 소리' 등의 이미지를 통해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으며, 여윈 '흰나비'는 '무형한 공중에 그 체온이 꺼져 버린' 누이의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시적 화자는 죽은 누이가 '나즉히 부르면 함박꽃처럼 눈뜰 것' 같다며 서러워하고 있다.
[작가소개]
김광균 : 시인
출생 : 1914. 1. 19. 북한
사망 : 1993. 11. 23.
학력 : 개성상업고등학교
수상 : 1989년 정지용문학상
경력 : 1950 동생 사업체 인수 경영
1938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설야 당선, 1937 자오선 동인, 1936 시인부락 동인
작품 : 도서, 기타
경기도 개성 출생. 송도상업학교(松都商業學校)를 졸업하고 고무공장 사원으로
군산(群山)과 용산(龍山) 등지에 근무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불과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발표한 「가신 누님」(中外日報, 1926)을 비롯하여
「야경차(夜警車)」(동아일보, 1930) 등이 그의 습작품에 해당된다면,
『시인부락(詩人部落)』(1936), 『자오선(子午線)』(1937) 동인으로 가담한 이후의
활동은 본격적인 시단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당선된 「설야(雪夜)」는 그로 하여금 시단에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하게 한 것이다.
이후 그는 『와사등(瓦斯燈)』(남만서점, 1939)·『기항지(寄港地)』(정음사, 1947)·
『황혼가(黃昏歌)』(산호장, 1959) 등 3권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실질적인
시작 활동은 1952년 죽은 동생의 사업을 맡아 경영하면서 중단되고 실업가로
변신하여 국제상사중재위원회 한국위원회 감사, 무역협회 부회장, 한일경제협력특별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말년 가까이 떠났던 시단 복귀의 신호이듯 이전에 간행한 시집을 정리하여
『와사등』(근역서재, 1977)을 출간하더니, 1982년 「야반(夜半)」 등 5편의 시작을
『현대문학』에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재개하였다. 그 뒤 문집
『와우산(臥牛山)』(범양사, 1985)과 제4시집 『추풍귀우(秋風鬼雨)』(범양사, 1986) 등을
간행하였다.
김광균은 정지용(鄭芝溶)·김기림(金起林) 등과 함께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을 선도한
시인으로 도시적 감수성을 세련된 감각으로 노래한 기교파를 대표하고 있다.
그는 암담했던 30년대의 사회현실로서 도시적 비애의 내면공간을 제시하여 인간성
상실을 극복하고자 한 휴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지적이고 이지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시인으로 고독과 슬픔 속에서
실존의 중요성을 확보하고 생의 의미를 긍정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감각적
이미지와 신선한 비유가 낭만적 정조와 융화되어 서정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광균 [金光均]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