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왜 필요한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할 때 그 보람을 얻는다.
의술은 왜 존경받는가. 환자를 위해 사랑을 베푸는 의무 때문이다.
돈 벌기 위해 의사가 되는 사람은 진정한 의사가 못 된다.
재산이 많이 있어도 개인과 가정은 중산층 생활로 자족하고 주변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업과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한 성스러운 사명이다.
경제활동의 궁극적인 목표와 가치는 무엇인가.
부가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쓰이기 위해서다.
그런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고 사는 지도자와 국민이 많은 사회가 최선의 윤리적 가치와
사랑의 성과를 함께 누릴 수 있다.
러스킨과 간디가 공감한 진리는 정의로운 공정성은 필수적이며 언제나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의로움만으로 인간적 삶의 가치가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는 가족 간의
정의를 따지지 않는다. 정의만 따지는 부부는 이혼하게 되며 권리와 의무를 전부로 생각하는
부자간이나 형제간의 삶은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교육계와 종교계에서는 정의를 따지지 않는다. 사제간에는 인격적인 사랑이 있어야 한다.
최근에 우리 주변에서 학생을 위한 인권 문제를 놓고 교사와 학부모가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는 제자와 자제를 위해 협력하고 더 수준 높은 사랑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아들딸을 위해 부부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자녀를 불행하게 하는 부모는 이미 부모의 자격을
포기한 것이다. 가정과 교육기관 특히 종교기관에서는 언제나 정의의 가치를 사랑으로
완성하는 길을 선택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도 그렇다. 가장 낮은 국가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권력 국가가 된다.
우리도 4·19 이전과 군사정권 기간에 그런 사회에 살았다. 그 한계를 극복하면서 법이 권력을
지배하는 법치국가로 성장한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도덕과 인간애의
질서가 열매 맺는 국가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정치는 주어진 이념이나 정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행복과 인간 가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 본질은 나중에 온 사람을 먼저
위해주는 인간애의 정신이다. 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
- 김형석 교수 저, "백년의 지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