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15
제3장 표범머리를 가진 남자
제8편 고아내의 사랑 8-1
백수건달들은 매일 고기와 술을 가지고 노지심을 찾아왔으니 그는 은연중에
그들의 두목이 된 셈이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건달들은 노지심에게 무예 실력을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노지심은 흥이 나서 62 근짜리 강철로 만든 무기를 다루는 재주를 보여주었다.
모두가 감탄의 눈으로 구경하고 있을 때 담 너머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잘한다. 잘해!”노지심이 바라보니 담 옆에 한 관리가 서 있었다.
머리에는 두건을 썼고, 머리칼은 뒤통수에 묶였으며, 갑옷을 입었고, 허리띠를 매고,
가죽신을 신었으며, 손에는 부채를 들고 있었다.표범머리와 고리눈과 제비턱에
수염을 길게 기른 키가 팔 척쯤 되어 보이는 사십대 남자였다.
“저분이 누구시냐?”노지심이 묻자 누군가 대답했다.
“80만 금군의 창봉 훈련교관 표자두 임충이라는 분입니다.”“그럼 들어오시라고 해라.”
그 말에 임교두는 담을 뛰어넘어왔다.임충은 이날 아내와 함께 여종 금아(錦兒)를
데리고 가까운 오악묘(五嶽廟)에 참배 왔다가 뜻밖에 봉술 쓰는 소리를 듣고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둘이 만나기는 처음이었지만 피차에 느낌이 같아서 두 사람은 곧 의형제를 맺었다.
두 사람이 나무 아래서 막 술잔을 기울일 때 여종 금아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아내 장씨가 오악루에서 무뢰한들에게 붙들려 위급하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은 것이다.
그 말을 듣자 임충은 노지심과 훗날을 기약하고 급히 오악루로 달려갔다.
그가 다락 앞까지 가보니 활과 대롱과 대나무를 손에 든 무뢰한 7,8명이
삥 둘러선 가운데 한 젊은이가 장씨의 소매를 잡아 오악루 위로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임충은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단숨에 뛰어들어 젊은이의 목덜미를 잡고
한 주먹에 때려눕혔다.쓰러진 자는 뜻밖에도 고태위의 양아들 고아내(高衙內)였다.
본래 고아내는 동경성에서도 소문난 불량배로 아버지 세도를 믿고 남의 처자를
함부로 희롱하기로 유명한 자였다.임충은 몹시 괘씸하고 분했지만 상관 고태위의
낯을 보아 감히 고아내에게 더 이상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그 사이에 고아내는 무뢰한들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고아내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며칠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임충의 부인 생각에 깊이 빠져있었다.
고아내는 그 여자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부안(富安)이라는 자가 고아내의 형편을 알고 찾아왔다.
“며칠 못 뵌 사이에 얼굴이 안됐군요. 그런 일로 애태우실 것이 뭡니까?”
“그런 일이라니, 자네가 내 맘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인만은 훤히 압니다. 나무 목(木) 둘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거
아닙니까?”나무 목(木)이란 수풀 림(林)자, 고아내는 부안에게 은근히 물었다.
“내가 임충의 아내를 한시도 잊을 수가 없네. 무슨 도리가 없겠는가?”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소인의 말대로만 하십시오.”
부안의 계교란 임충의 친구 육겸(陸謙)을 시켜 먼저 임충을 밖으로 꾀어낸 다음
부인을 유혹해 내는 일이었다.
본래 육겸이라는 자는 의리보다 명예와 목전의 이익에 눈이 어두운 자였다.
육겸은 고아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랜 친구 임충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
육겸은 다음 날 임충을 중심가의 술집으로 불러냈다.술자리에서 임충은 육겸에게
자기 부인이 고아내에게 당했던 일을 하소연하듯 말했다.그러자 육겸이 다시 말했다.
“그것은 고아내가 누군지 모르고 그랬던 것이 아니겠소. 형님의 부인인 줄 알았다면
어찌 감히 그런 무례를 범했겠소. 이젠 잊고 어서 약주나 듭시다.”
임충이 주점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에 하녀 금아가 찾아와 외쳤다.
“나리께서 나가신 후 한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는 육겸의 이웃에 사는데, 지금 임교두께서
육겸과 약주를 드시다가 갑자기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아씨를 모시고
갔습니다.제가 아씨를 따라 육겸 나리 댁에 갔더니 나리는 안 계시고, 전날 오악루에서
아씨를 희롱하던 젊은 녀석이 있었습니다.쇤네는 다락 위에서 아씨가 사람 살리라는
비명 지르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나리께 알려드리러 찾아 왔습니다.”
임충이 그대로 육겸의 집으로 달려가 층계를 올라가자 다락문은 굳게 잠겼는데,
방 안에서 아내 장씨의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 16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16
제3장 표범머리를 가진 남자
제8편 고아내의 사랑 8-2
“밝은 대낮에 남편 있는 처자에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
그 다음에 고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제발, 제 청을 한번만 들어주시오.”
임충은 주먹을 들어 다락문을 두드렸다.“문 열어라. 문 열어!”
임충이 온 것을 안 고아내는 놀라서 허둥지둥 다락 창을 열고 뛰어내려 도망가 버렸다.
아내가 무사한 것을 알고 임충은 안심이 되었으나 친구 육겸이 의리를 저버린 것에 대한
노여움은 너무나 컸다.그는 비수를 품고 곧 번루로 달려갔으나 이미 육겸은 그곳에 없었다.
임충은 다시 그의 집 문 앞에서 밤새워 기다렸으나 육겸은 태위의 집 안에 몸을 숨기고
나오지 않았다.임충은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화를 가라앉힐 도리밖에 없었다.
그는 매일 노지심과 취하도록 술만 마셨다.
한편 고아내는 두 번째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대로 침식을 폐하고 자리에 누워 버렸다.
그대로 두면 언제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육겸과 부안은 의논 끝에 그 일을 고태위에게
알렸다.그 말을 듣고 고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임충을 없애야 아드님의 원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그야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을 못하겠느냐마는 임충을 무슨 수로 없애겠느냐?”
“저희에게 계교가 있습니다.”그들이 그런 흉계를 꾸미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임충은 날마다
노지심과 만나 술을 마셨다.어느 날 두 사람이 열무방(閱武坊) 근처를 지나는데,
머리에 두건을 쓰고 갑옷을 입은 사람이 눈부신 검광을 내보이며 검을 사라고 말했다.
“이 검이 임자를 못 만나 썩는 것이 아깝습니다.”임충과 노지심이 살펴보니 과연 명검이었다.
그들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가격이 1천관으로 낙찰되었다.
사내는 할 수 없다는 듯 그 가격에 검을 팔아버렸다.
명검을 구한 임충은 그날 밤 늦게 잠을 못 이루고 검을 살폈다.“과연 천하의 보검이다.
고태위의 집안에도 이런 보검이 한 자루 있다고 하던데, 아직 구경은 못했지만
내 검이 그만 못하지 않을 것이다.”다음 날 아침 관리 2명이 찾아와서 고태위의 말을 전했다.
임충이 보검을 구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자기의 검과 비교해 보자는 말이었다.
임충은 도대체 태위가 그 말은 누구한테 들어서 그렇게 빨리 알았는지 속으로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임충은 할 수 없이 보검을 들고 관리들을 따라갔다.
“태위께서는 후당에 계십니다.”임충이 후당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고태위는 커녕
아무 관리도 나타나지 않았다.이상한 생각이 들어 건물 앞에 다가가 발을 들치고
안을 살피니 놀랍게도 현판에는 ‘백호절당(白虎節堂)’이라는 푸른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 절당은 군사들이 작전모의를 하는 은밀한 곳이었다.
“네가 여기 웬일이냐?”임충이 큰 소리를 듣고 놀라서 몸을 돌리자 고태위가 버티고 서있었다.
임충은 검을 잡고 앞으로 나서며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고태위는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는다.
“너는 임충이 아니냐? 내가 널 부른 일이 없는데, 어찌 백호절당에 검을 들고 들어 왔느냐?
네놈이 아무래도 나를 해치러 온 것이 아니냐?”임충이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위께서 부르신다고 하기에 관리들을 따라왔을 뿐입니다.”
“이놈! 듣기 싫다. 저놈을 빨리 체포하라.”
태위의 말이 떨어지자 20여 명의 군졸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임충을 결박했다.
고태위는 임충을 형부(刑部)에 넘겼다.
그리고 등부윤에게 그를 엄하게 문책한 다음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임충은 부윤 앞에서 지난 달 28일 오악루에서 아내 장씨가 고아내에게 희롱당한 이후부터
그날 백호절당에 가게 된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들려주고 고태위 부자의 모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부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임충을 참형에 처하려고 했다.
그때 강직한 관원이 부윤에게 말했다.“고태위가 권세를 빙자하여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을 걸핏하면 우리에게 넘겨 죽이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 아닙니까?
임충의 말을 들어보면 무죄가 분명합니다.그러니 검을 차고 절당에 잘못 들어간 죄만을
다스려 매 스무 대를 때리고, 군주 땅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임충은 위기를 모면했다.임충은 멀리 창주 노성으로 귀양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장인 장교두(張敎頭)가 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만났다.
“이는 하늘이 다 아시는 일이다. 조만간 귀양이 풀려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네 처는 내가 데리고 있을 것이니 걱정 말고 자주 소식이나 전해라.”
아내 장씨는 하녀 금아와 함께 달려 나와 임충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17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