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덮은 이끼, 알고보니 ‘자연 방패’
침식-염류화에 취약한 흙벽
‘바이오크러스트’ 형성해 보호
“이끼 제거하지 말고 보존해야”
만리장성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바이오크러스트가 만리장성 흙벽의 침식을 방지하고 기계적 강도를 높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중국 만리장성은 오랜 세월에 걸친 침식 작용에도 손상이 거의 없다. 이끼 등만이 세월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이끼 등을 제거해 초기 모습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2000년 이상 만리장성이 보존될 수 있었던 비결로 표면을 덮은 이끼와 같은 생물의 존재를 꼽고 있다. 이끼를 제거할 경우 오히려 유산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샤오 중국 농업대 교수가 이끄는 중국과학원 토양·수자원 보존 및 생태환경 연구센터 연구팀은 만리장성 흙벽의 침식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이끼와 박테리아류의 총체(바이오크러스트)’가 억제했다는 연구 결과를 8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트에 공개했다.
만리장성은 중국 동북쪽 허베이성부터 서남쪽 간쑤성까지 잇는 전장 8851.8km의 거대한 성벽이다. 기원전 400년경 춘추전국시대부터 쌓기 시작해 이후 진나라, 한나라 등을 거치며 증축되고 확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대한 범위와 몇 세기에 걸친 오랜 건축 기간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만리장성의 토대는 흙벽이다. 비바람에 의해 지반이 깎이는 침식 작용이나 물이 증발하고 남은 염분이 토양에 집적되는 염류화 현상에 취약하다. 춥고 건조한 중앙 유라시아 지역에 걸쳐 있어 저온에 꽁꽁 얼었다가 날이 풀리면 융해되는 과정이 해마다 반복된다.
연구팀은 만리장성이 이러한 악조건에도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성벽의 67.1%를 덮고 있는 바이오크러스트에서 찾았다. 바이오크러스트는 시아노박테리아, 이끼, 지의류 등 미생물이 단단히 결합돼 토양 입자를 구성한다. 빛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며 광합성을 하는 식물·박테리아 유기체로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적으로 성벽에 형성됐다.
연구팀은 만리장성 성벽에서 바이오크러스트로 덮여 있는 흙 표본과 맨흙으로만 이뤄진 표면의 표본을 각각 채취해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성벽은 렙톨린비아, 마이크로콜레우스 등의 시아노박테리아군, 침꼬마이끼과에 속하는 이끼 등 다양한 종류의 바이오크러스트로 덮여 있다. 이들 바이오크러스트는 흙벽 토양 입자 사이의 작은 틈인 공극과 흙 속으로 침투한 물을 보관하는 가느다란 모세관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흙벽에 침투되는 수분을 평균 5.2% 줄였다. 성벽에 붙은 이끼류는 수분 침투력을 최소 5.5%에서 많게는 22.6%까지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흙벽에 가해지는 외부 압력에 대항하는 효과도 있었다. 바이오크러스트로 뒤덮인 흙벽에서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을 견디는 강도가 맨 흙벽 상태일 때보다 약 124% 높았다. 염류가 흙 속에 집적되면서 토양의 물리적 특성을 변화시키는 토양 염류화 정도는 40%가량 줄었다. 토양 염류화는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다. 연구팀은 바로 이 점 때문에 바이오크러스트가 춥고 건조한 지역에 자리 잡은 만리장성 성벽을 염류화로부터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구팀은 “분석 결과를 종합한 결과 만리장성 흙벽의 바이오크러스트가 비바람에 의한 침식 위험을 줄이고 흙벽 자체의 기계적인 안정성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바이오크러스트가 문화유산의 ‘파괴자’가 아닌 ‘보호자’이며 이번 연구는 자연이 문화유산을 보호할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고 밝혔다.
바이오크러스트(bio crust)
빛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며 광합성하는 시아노박테리아, 이끼, 지의류 등 미생물이 단단히 결합돼 구성된 토양 입자.
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