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휴무
4년마다 유월이면 주중 하루 더 쉬게 되는 날을 맞았다. 사반세기 넘게 풀뿌리 민의가 드러나는 날이다. 지난해 연말 달력 제작 업체에서도 이날은 미리 빨간 날로 표식을 해두었다. 근래 제도가 개선되어 선거일 이전 사전투표제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업무가 바빠서거나 장거리 여행으로 거주지에 부재할 일도 없으면서 전국 동시 지방차치선거일 이전 국민 된 권리 행사를 마쳤다.
선거일 전날 퇴근길은 주중임에도 주말을 앞둔 금요일과 같았다. 집 근처 아파트 상가 주점에서 미리 약속된 동갑내기를 만났다. 예전 같은 학교서 근무했던 동료였다. 동향이 아니고 출신 학교가 같지도 않고 가르치는 과목이 같지 않음에도 우리는 초등학교 친구 만큼이니 마음을 툭 터고 지내는 사이다. 아파트단지를 이웃해 살지만 근무지가 달라 그간 자주 얼굴을 대하지 못했다.
주중 하루 이튿날 출근 부담이 덜해 예전 동료와 마주 앉아 맑은 술잔을 비우면서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었다. 평소 저녁방송 메인 뉴스가 시작되기도 전 일찍 잠든다만 귀가가 늦어 잠도 늦게 들었다. 그렇지만 새벽녘 일찍 잠이 깨기는 여전해 현관 앞 종이신문이 배달되는 시각 이전이었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시내버스가 운행되기를 기다렸다. 근교 산행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마산 월영동을 출발해 창원 대방동으로 오가는 101번 시내버스 첫차를 탔다. 마산을 거쳐 우리 집 앞까지 오는데 시간이 꽤 걸려 아침 이른 시각이라도 날이 훤히 밝았다. 창원대학과 도청과 법원을 지난 종점 가까운 대암고등학교 근처에서 내렸다. 25호 국도 나들목으로 대암산으로 오르는 길목이었다. 나는 대암산이 아닌 용제봉을 오를 셈으로 성주동 아파트단지 뒷길을 돌아갔다.
성주동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서 대암산에서 용제봉을 거쳐 불모산 일대는 산행객들이 부쩍 늘었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봄날이면 그곳 일대는 내 텃밭이나 다름없었다. 호젓한 산기슭 자생하던 머위와 두릅과 취나물을 뜯어왔다. 지금은 산행객들이 늘어 생태계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말고도 산허리로 둘레 길도 생겨 여러 사람들이 이용한다.
지나간 봄 한철은 북면 일대나 진북면 일대 산을 찾아가느라 한동안 가보질 못한 용제봉을 향해 올랐다.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 상점령 갈림길까지는 한참 동안 임도를 따라 걸었다. 공휴일을 맞아 아침 이른 시간 산행을 나선 이들이 더러 보였다. 중간에서 되돌아 나가는 이도 있고 불모산 숲속 나들이 길로 건너가는 이들도 있었다. 일부는 내가 오르는 용제봉을 향하기도 했다.
산세가 깊고 넓어 계곡에는 맑은 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우거진 숲에서는 산새소리도 공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가파르지 않은 숲길을 따라 오르니 누군가 염원을 담아 쌓은 돌탑 무더기도 만났다. 쉼터 벤치에 앉아 명상에 잠겨 보기도 했다. 날씨가 선선해 땀은 흐리지 않았다. 용제봉으로 오르는 길은 불모산과 함께 창원 근교에서 활엽수림이 우거진 곳 가운데 하나였다.
용제봉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숲속 길에서 삼림욕을 즐기다 내려왔다. 계곡으로 내려가 맑은 물에 손을 담그고 얼굴을 씻었다. 임도로 빠져 나오니 뒤늦게 산행을 나선 사람이 많았다. 새벽같이 산행을 나선지라 아직 한낮이 아니라 행선지를 한 곳 더 정했다. 시내를 관통하는 버스를 타고 소답동에 내렸다. 종묘상에서 열무 씨앗을 사서 굴현고개 너머 북면 지인 농장으로 찾아갔다.
지인은 감자를 캐고 있었다. 일손을 같이 돕고는 나는 빈 이랑에 김을 매고 열무를 씨앗을 뿌렸다. 며칠 뒤 싹이 터 한 달 남짓 자라면 보드라운 열무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그새 장마가 와 비가 알맞게 내려 줄 것이다. 지인은 완두콩을 따고 지기는 감자를 삶아냈다. 농막으로 올라 곡차를 곁들인 점심 들었다. 귀로에 햇감자를 한 봉지 담고 싱싱한 상추와 쑥갓도 몇 줌 따 나왔다. 18.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