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신비해요
라일락 꽃이 피고
꽃송이마다 별들의 향기를 새겨넣죠
보라색의 밤을 꽃송이 속으로 숨긴 거예요
밤은 비밀의 장막으로
어젯밤의 꿈을 숨기려 하지만 불가능해요
아침은 태양의 시간이에요
햇살은 라일락 꽃나무 덤불 깊게 찾아와
그 안에 잠든
아기 고양이 셋을 찾아내요
눈도 못 뜬 아기 고양이에게
세상을 놀라게 하는 멋진 시의 주인이 되렴
이런 식의 말은 제발 하지 마세요
라일락 꽃향기의 담요가
아기 고양이들을 감싸줘요
향기로 시작되어 향기로 돌아가는 것
어떤 낡은 담요에서 시작되었건
당신의 생은 이미 향기예요
부엌에서 원주민 아줌마가 죽을 쒀요
염소젖에 보릿가루를 넣어 잘 젓고
사과 조각 꽃잎처럼 넣어 끓이네요
아줌마가 아기를 낳았을 때 이 죽을 먹었죠
아줌마가
죽 한 접시 들고
아기 고양이에게 찾아와요
라일락 꽃향기도 함께 오죠
아침 햇살이 아줌마와 꽃향기와
죽그릇을 환히 비춰요
시가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마세요
어떤 낡은 담요에서 시작되었건
당신의 생은 이미 시예요
사진 〈Bing Image〉
강물과 나
곽 재 구
앉아 있으면
시간이 가요
시가 찾아오기도 하죠
강물은 흘러요
앉아 있는 법을 모르죠
앉아 있는 법을 모른다고 바보는 아니에요
새들의 목을 축여주기도 하고
바람이 떨군 꽃잎을
영화관이 있는 소도시로 데려가기도 해요
가만히 앉아 있는 내 모습도 보이네요
강물은 마법사예요
강물은 흐르는데
내 모습은 남겨 둬요
방금 쓴 시를 새로 도착한 강물에게 읽어줘요
강물은 졸졸졸 노래해요
시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해요
노래하기를 멈추면
강물에게도 시가 찾아올 거예요
세월은 가고
강물은 흘러요
시는 세월 곁에 머물고
노래는 강물 곁에 머물러요
사진 〈Bing Image〉
나와 나
곽 재 구
평생 떠돌이로 살고 싶었죠
국경이나 설산 대인지뢰와 같은 단어들이 좋았죠
매일 밤 같은 꿈을 꾸었죠
보라색 밤하늘 아래 설산이 있고
설산 그림자 담긴 호수 위로 두 반딧불이 날아가요
사랑이나 꿈 시 같은 단어들은 커피 한 잔보다 시시해요
언젠가 당신이 내게 왜 같은 꿈을 꾸는가 물었죠
그 일보다 사랑스런 일이 없으니까, 라고 대답했죠
당신은 매일 밤 다른 꿈을 꾼다고 말했죠
손풍금 라벤더 향기 서커스 수수부꾸미 국경 같은 단어들을 좋아한다고 했죠
우리가 함께 국경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줄 처음 알았죠
어느 날은 당신이 내 안에서 방금 쓴 시를 읽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내 안에서 당신이 손풍금을 연주하기도 했죠
우린 둘이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이에요
우리 안에 만지면 사라지는 국경이 있는 셈이죠
이 국경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해요
당신을 많이 미워하고 그보다 많이 사랑했지요
보라색 밤하늘 아래 두 반딧불이 날아가요
호수의 설산 그림자가 살며시 포개져 하나가 돼요
꽃다지 / 사진 〈Bing Image〉
꽃 다 지
곽 재 구
나는요
내 이름이 좋아요
어떤 이는 꽃다지
어떤 이는 꽃마리라 불러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좋아서 깜짝 놀라며
전생에 내가 무슨 착한 일을 했을까 생각해요
맞아요
누군가 길 위에서
재구야! 라고 부르면
나도 깜짝 놀라요
똥그래진 눈으로
어젯밤 내가 쓴 시가 많이 유치했나요? 묻지요
난 바보처럼 착하고 유치한 시를 쓰고 싶어요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아요
그럴 때면 깜깜한 밤길을 걸어요
어둠 속에 무릎 꿇고 유치함의 신에게 기도해요
언젠가 내 시로 당신의 이름에서
아카시아 꽃냄새가 나게 할 거예요
그러니
충분히 유치해지기 전에는
내 이름을 부르지 말아요
아세요? 내가 툰드라라고 적힌 인도의 밤 기차역을 지나거나
설산 트래킹을 하가나 청포도가 숲을 이룬 마을을 지날 때
푸른 눈의 아가씨가 재구야! 라고 부르는 순간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을
그때 웃으며
물을 거예요
내가 쓴 시를 어디서 읽었죠?
충분히 유치하고
충분히 사랑스럽고
충분히 신비했나요?
이름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시를 만날
운명이라 생각해요
꽃다지는 꽃다지의 시를 쓰고
꽃마리는 꽃마리의 시를 쓰는 거예요
재구야!
처음 걷는 거리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유치하고 찬란한
눈물 나는 시를 읽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