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에스더 9:16)
아멘!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각 나라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만이라는 사람의 간계로 흩어진 유다인들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바꾸어 도리어 그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왕의 허락을 받아 12월 13일에 자기들의 원수들, 자기들을 미워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처자를 도륙하고 진멸하며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그 날에 그들을 미워하는 사람들 칠만 오천 명을 도륙했습니다.
진멸하고 죽였습니다.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습니다.
지금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까 싶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 나를 해치려는 사람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고 그의 재산을 탈취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싶습니다.
나의 원수를 죽이는 것이 법적으로 하등의 문제가 없다면 어떻게 할까 싶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그래서 그들을 해쳐도 죄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싶습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를 진멸할까 싶습니다.
누구를….
이런 상황에서 만일 내가 해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나는 아직 그를 용서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여전히 내 안에 미움과 분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에스더 시대에 유다인들에게 자기들의 원수를, 자기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상황이 주어졌고 그때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죽였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러면 안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어도 그러면 안된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의 대적을 그의 손에 붙이시겠다고 하시고 그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그의 손에 넘기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그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 죽으면 더 이상 도망다니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죽일 수 있는 분명한 이유와 명분이 있었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죽이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그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높이 들어주셨고 그의 원수도 친히 갚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품을 때 참된 평강이 임합니다.
사랑할 때 내가 살게 됩니다.
아직도 해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직도 미운 사람이 있다면 속히 해결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와 평강을 누리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