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북한의 김만철 씨 일가가 집단으로 북한을 탈출하였다.
이들은 일본에 머무르면서
조총련측의 방해 공작으로 한때 한국행이 좌절될 뻔 했지만
당국의 노력으로 탈출 25일만에 한국땅을 밟았다.
이들의 탈북은 목숨을 건 세기의 탈출 드라마로 전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다.
남북 분단 후 처음으로 일가족이 북한을 탈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왔다.
북한 탈출 후25일 만에 그들은 일본과 대만을 경유하여 한국 땅에 발을 딛게 되었다.
한겨울 추위가 한창이던
1987년 2월 8일 북한의 청진의대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해 오던
김만철(金萬鐵, 당시 46세) 씨 일가 11명이 김포공항에 들어섰다.
그 동안 개인 차원에서 남한에 귀순한 경우는 흔히 있어 왔지만,
이처럼 일가족이 집단으로 탈북한 경우는 해방 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이들의 탈북은 국내외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일가족에는 장모와 처남(2명), 처제까지 포함된
대가족이어서 일반인의 관심을 더 크게 모았다.
이들이 북한의 청진항에서 청진호(50톤)를 타고 북한을 탈출한 것은
1월 15일 새벽 1시였다.
이들은 이튿날인 16일 대화퇴(大和堆) 부근에서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다
20일 하오 6시 경 일본 후쿠이(福井) 외항에 도착하였다.
당시 일본 해상보안청은 한 화물선으로부터
"수상한 외국 배가 후쿠이 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
청진호를 인근 쓰루가(敦賀) 항으로 예인하여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11명 가운데 일본어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자,
해상보안청측은 통역 요원으로 쓰르가에 사는 마쓰야마(松山)라는
조총련계 동포를 승선시켜 일본에 불법 입국한 경위를 조사케 하였다.
그러나 이 사람을 통역 겸 조사 요원으로 사용한 것이
청진호 사건 해결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 끌게 된 화근이 되었다.
20일부터 시작된 입국 경위 조사에서
김만철 씨 일행은 귀착지를 '따뜻한 남쪽 나라'로 밝혀
은연중에 한국행 의사를 표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쓰야마는
그들에게 한국 망명을 위협하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다음날 찾아온 조총련 본부 간부들도
"한국에 가면 모두 죽게 된다"고 협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한국행을 밝혔던 김만철 씨 일행은
이들을 접촉한 뒤 가족간에 망명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였다.
김만철 씨의 큰처남 최정상(당시 30세)은
한국행을 주저하는 사태를 빚기까지 하였다.
사건 발생 이틀 만인 22일 한국 외무부는
일본 정부에 김만철 씨 일가의 한국 인도를 공식 요청하였다.
그러나 일본측은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한 탓인지
한국 정부의 요청을 선뜻 수락하지 않았다.
일본측은 김만철 씨 일가의 탈출을 '긴급 피난'으로 간주,
이들을 공해상으로 추방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하였다.
김만철 씨의 신분이 의사라는 사실은 이 무렵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측의 '인도 요청'에 대해
북한측은 김만철 씨 일가를 무조건 북측으로 송환할 것을
일본측에 요청하면서 북한 경비정을 공해상에 대기시켰다.
그러나 한일 양국은 김만철 씨 일가를
북한측으로는 되돌려 보내지 않기로 합의하고는,
이들을 일본 정부에 망명시킬 의향을 내비쳤다.
일본내 민단에선 환영 일색이었지만,
일본 내 우익 세력들은 이러한 일본 당국의 처사에 항의를 표시하였다.
게다가 조총련계는 쓰루가 해상보안청사에서
북송 촉구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을 놓고 남북한, 일본은 물론 일본 내에서조차 민단과 조총련계 사이에
대립이 표출되었다.
결국 정부간의 갈등 속에서
김만철 씨 일가는 제3국 망명을 희망,
2월 3일 일본 정부는 대만측과 협의 끝에
단기간 경유 체류 조건부로 이들의 대만행을 결정지었다.
2월 7일 새벽 이들은 결국 오키나와를 거쳐 대만에 도착하였고,
이튿날 오후 다시 대만을 출발,
오후 10시 마침내 북한 탈출 25일 만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다.
나이보다 10세 정도 더 늙어 보이는 김만철 씨는
"일본서 한국 영사를 만난 뒤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분단 후 첫 가족 단위의 탈출이자
목숨을 건 세기의 탈출 드라마로서
세계의 관심을 모은 김만철 씨 일가의 탈출극은 25일 만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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