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을 읽는 공덕
오늘은 보현행원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본문을 통해 공부해보겠습니다.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큰 원을 구족하고 원만케 함이니
만약 모든 보살들이 이 원을 믿고 따라 나아가면
능히 일체중생을 성숙하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믿고 따르게 하여,
보현보살의 한량없는 모든 행원을 원만히 성취하게 한다
이 말씀은 보현행원을 공부하게 되면 틀림없이 다 부처된다는 얘기입니다.
너희들은 이 뜻을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라.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시방의 한량없고 끝이 없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티끌 수 모든 세계에
가득찬 훌륭한 칠보와 또한 인간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안락을 가지고도
저 모든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보시하고,
저 모든 세계에 계시는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공양하면서
저 세계 티끌 수 겁을 지내도록 끊이지 않고 계속한 공덕을
어떤 사람이 이 원왕(願王)을 한번 들은 공덕과 비교한다면
백분의 일도 되지 못하며, 천분의 일도 되지 못하며
내지 우바니사타분의 일에도 또한 미치지 못한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모든 세계를 창고로 삼아서 거기다 금·은·유리·자거·마노·호박·진주와 같은 칠보(七寶)로 가득 채워 준다거나, 세상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보다 더 좋은 복이 없습니다.
그것도 중생한테만 보시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께도 그렇게 계속해서 공양을 하는데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많은 양을 보시하기를 하루 이틀로 그치지 않고 한량없는 세월을 두고 보시한다니, 그 공덕으로 받는 편안한 복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지만 이 원왕을 한번 들은 공덕과는 비교가 안된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한량없는 세월을 두고 남한테 베풀고,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 공덕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 원왕을 한번 들은 공덕과 비교한다면 지금 여러분도 이 원앙을 들었는데, 이 원왕을 한번 들은 공덕이 위의 보시의 공덕보다 훨씬 크다는 얘기입니다.
즉,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와서 공양 올리고, 쌀을 올리고 과일을 올리고, 꽃을 올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 내 주변사람한테 밥도 주고, 돈도 주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그보다 정말 중요한 일은 ‘보현행원을 실천해라’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깊은 신심으로 이 큰 원을 받아가지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내지 한 게송만이라도 쓴다면
다섯가지 무간지옥에 떨어질 업이 속히 소멸하며,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다섯 가지를 오역죄(五逆罪)라고 합니다.
이런 다섯 가지 죄를 짓게 되면 그 사람은 무간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무간지옥에 떨어질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이 보현행원을 큰 신심으로 읽고 외우면 업이 속히 소멸되어 모든 죄에서 해방된다는 얘기입니다.
또 세간에서 받는 몸과 마음의 병과
우리들 병이 생기게 된 원인을 가만히 따져보면 전부 내 마음의 어지러움에서 생긴 겁니다.
우리들 참생명은 부처님생명이니까 원래 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병이 생기는 연유는 내가 마음에 어두운 생각을 일으켜서 그렇습니다.
그 어두운 생각이란 다름 아닌 ‘난 중생이오’ 하는 마음입니다.
가지가지 고뇌와 내지 세계의 티끌 수 같은 업이 소멸되며,
또한 모든 마군이나 야차나 나찰이나 구반다, 비사사, 부다 등
피를 빨고 살을 먹는 모든 나쁜 귀신들이 다 멀리 달아나거나
혹은 발심하여 친근하며 수호한다.
이 얘긴 보현행원을 읽고 있으면 내 몸에 있는 병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귀신이 덤벼들었다는 귀신병도, 그 나쁜 귀신들이 ‘어이구 이거 참 큰일났다’고 하면서 도망을 간다는 얘기입니다.
왜 도망갑니까?
귀신은 어두움이기 때문에 밝은 걸 싫어합니다. 그런데 보현행원은 밝음이니까 밝음이 나오면 귀신이 도망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귀신이 도망가지 않는다면 이 귀신은 ‘아 내가 여태껏 귀신 노릇한 것이 잘못되었구나. 나도 이제 마음을 바꾸어서 보살이 되어야 되겠다’고 발심(發心)합니다. 뿐만 아니라 ‘보현행원을 공부하고 있는 이 보살을 내가 지켜주어야겠다’고 해서 여태까지는 해치려고 했던 귀신들이 오히려 수호신으로 바뀐답니다.
따라서 이 원왕을 외우는 사람은
세간을 지냄에 조금도 장애가 없어,
마치 공중의 달이 구름 밖으로 나온 듯 하느니라.
만약 어떤 장애가 나에게 나타난다면 어떡해야 합니까?
이때도 마찬가지로 금강경이나 보현행원품을 자꾸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애라는 것도 어두움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빛인 경전을 들이대면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러니 문제될 게 없고 장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칭찬하시며,
모든 인간이나 천상사람이 마땅히 예배하고 공경하며,
모든 중생이 다 마땅히 공양하리라.
이것이 보현행원품의 공덕입니다. 그 다음에 또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 선남자는 훌륭한 사람 몸을 받아서
보현보살의 모든 공덕을 원만히 하고,
마땅히 오래지 않아 보현보살처럼 미묘한 몸을 성취하여
삼십이상을 갖출 것이며,
사람 몸을 받아서 보현행원 공부를 하다 죽었으니 다음에도 당연히 보현행원의 공덕을 갖춘 몸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보현행원을 깊이 공부하고 실천한 사람은 저절로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32상을 갖춘 몸을 갖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인간으로 천상에 태어나면,
난 데마다 뛰어난 종족 가운데 나서 능히 모든 악취는 다 없애며,
모든 악한 벗은 다 멀리하고,
능히 모든 외도는 다 조복받고,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는 것이
마치 사자왕이 뭇 짐승들을 굴복시킴과 같아서,
일체 중생의 공양을 받느니라.
보현행원을 닦은 사람은 당연히 극락에 가는 것이지만, 혹은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났다고 해도 난데마다 아주 좋은 종족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번뇌에서 해탈하는 것은 ‘나는 중생이오.’ 하는 생각에서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나는 중생이오’ 하는 생각이 모든 번뇌를 만들어 냅니다.
원래 부처생명을 살고 있는데도 ‘나는 중생이오’ 하면서 사주팔자를 보러 다닙니다.
사주팔자를 보러 다니는 이유는 ‘언제나 좋은 일 있으려나’ 하고 자꾸 뭘 기다리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는 내가 본래 부처생명을 살고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자꾸 밖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래 생명이 부처생명이므로 남한테 주면서 살면 되는데, 나는 중생이니까 자꾸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언제쯤 더 받을까’ 하면서 오히려 스스로를 거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씨는 거지 씨를 뿌리면서 열매는 부자 열매가 맺기를 바라고 있으니 그것이 잘못입니다. 반대로 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부자씨를 뿌리고 있으니 부자가 되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니 뭘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얼른 나무아미타불 해야 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니까 부처님이 저 멀리 계시다가 여기까지 출장을 오셔서 어떤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아미타불 불러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나는 중생이오’하고 우겼던 어리석은 마음이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놈 미워죽겠는데’ 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얼른 버려야 하는데 자꾸 쫓아갑니다. ‘아, 그 때 그놈이 이런 얘기를 했어, 알고 보니 그 놈이 원수였어.’ 하면서 자꾸 미운 걸 쫓아갑니다. 이것이 번뇌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번뇌는 따라갈 것이 아닙니다.
번뇌가 일어나면 얼른 나무아미타불로 제도해야지 따라갈 것이 못됩니다.
그러니까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는 것은 마치 사자왕이 뭇짐승들을 굴복시킴과 같아야 합니다. 사자가 나오면 짐승들이 꼼짝을 못하는 것처럼 보현원왕이 나오게 되면[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면] 모든 번뇌를 굴복시킬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문사수법회 회주 한탑스님 법문>
출처 : 문사수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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