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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온 주민들이 영원한 종이 됨
수 9:16-27
16 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행군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여러 성읍들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18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19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20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21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더라
22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23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24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25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26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7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수 9:16-27 / 사흘 뒤의 일이었다. 조약을 맺으러 찾아왔던 그들이 아주 가까운 지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고도 천연덕스럽게 이스라엘의 사람들 틈에 끼여 살았던 것이다. 17) 이스라엘 사람들은 진을 거두고 행진을 계속하여 사흘째 되는 날 자기들과 조약을 맺게 한 기브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다다랐다. 즉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에 다다른 것이다. 18) 이스라엘 공동체의 각지파 지도자들이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겠다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성읍을 칠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들을 공격할 수가 없게 된 까닭에 각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원망하였다. 19) 그러자 지파의 우두머리들이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느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저들을 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으니 별 수 있겠느냐? 20)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네. 그래야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지 않을 것 아니냐? 공연히 저들을 쳤다가는 우리에게 화가 미칠 것 아니냐? 저들을 그냥 살려 주기로 하자. 21) 그냥 살려 주는 대신 우리 공동체 식구들을 위하여 물을 긷고 장작패는 일을 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제안을 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였다. 22) 여호수아가 자신을 속이고 거짓으로 조약을 맺은 그들을 불러다가 따졌다. `너희가 어쩌자고 그러한 거짓말을 하였느냐?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멀리 살고 있다고 하다니!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냐! 23) 너희는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 너희는 자자손손 종노릇만 해야겠다. 하나님의 집에서 물긷고 장작 패는 일을 도맡아서 해야겠다.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너희가 거짓말을 늘어놓고 우리와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24) `우리 목숨이 아까워서 그랬습니다. 어르신네가 모시고 섬기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 모세에게 이미 맹세하신 대로 이 땅을 모조리 어르신네에게 주시고 또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조리 쓸어 버리라고 하셨다는 말을 우리가 소문으로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소문을 들은데다가 또 어르신네가 가까이 다가온다는 말을 듣고는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 목숨이나마 부지하려고 그런 꾀를 썼던 것입니다.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그랬을뿐입니다. 25) 이제 어르신 좋으실 대로 하세요. 우리는 어르신의 처분만 기다리겠습니다. 어르신께서 하라시는 대로 따라 하겠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였다. 26) 그날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죽일 태세였으나 여호수아가 막았다. 27) 그날부터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기려고 특별히 가려 뽑은 곳에서 공동체 식구들을 섬기고 또한 제단을 잘 보살피기 시작하였다. 물긷는 일과 장작패는 일 등 허드렛일을 그들이 맡아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묻지 않음으로써 기브온 족속을 제거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일어났던 이스라엘의 실수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후 이스라엘이 가나안 북부 지방 전체를 점령하는 계기가 됩니다. 늘 인간이 만들어내는 최악의 재료를 가지고도 최선을 빚어내시는 하나님이 또 최선을 빚어내고 계십니다.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16-21) 기브온 주민들의 전략이 성공했습니다. 화친 조약 맺기의 성공으로 그들은 가나안 족속 중 유일하게 생존합니다. 기브온 주민들의 속임수와 화친 조약 맺기의 성공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을 때 회개하여 구원 얻는 자들을 예표합니다. 죄로 가득한 지금이 ‘구원받을 만한 때요 은혜의 날’(고후 6:2)이기 때문입니다. 또 기브온 주민들의 구원은 마지막 시간까지(마 20:6) 은총 베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인내와 자비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실수로 곤궁에 처합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반듯하게 처신합니다. 자신들이 한 맹세를 지켜 기브온 주민들을 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넘어진 일을 도약의 발판으로 만듭니다. 그들을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처신이 옳았다는 것은 비록 속임수로 맺은 계약이었으나 여기서 맺은 이 계약을 무시하고 사울이 기브온 족속을 죽인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통치 기간 중 3년 동안 기근을 보내신 사건에서 드러납니다(삼하 21:1-2).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22-27) 기브온 주민들을 책망(22)한 여호수아는 그들을 저주(23)합니다. 저주의 내용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저주는 노아의 저주(창 9:25)가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또 가나안 밖에 사는 족속들과 화친했을 때는 그들을 종으로 삼으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신 20:11)에 따른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 번 넘어졌던 이스라엘은 바로 균형을 잡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한편 기브온 족속이 받은 저주는 궁극적으로는 복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섬김이 하나님의 집(23)을 위한 섬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다윗 시대부터 에스라 시대까지 성전을 섬기는 사람들(느디님 사람; 스 2:43; 8:20)로 존재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특정 민족을 위한 정복 전쟁이 아니라 죄의 정복 전쟁이고, 선민의 구원을 통한 인류 전부의 구원입니다.
적용: 당신은 나의 넘어짐과 실수를 성장과 복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까? 이 신뢰로 당신의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까?
예수에 의한 구원은 개인 뿐 아니라 이 땅 끝까지 미치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예수의 이 능력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계획으로는 불가능한 구원 사역은 우리 가정, 직장 그리고 국가와 세계에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함께하는 귀한 사역입니다. 우리도 예수의 구원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과 육을 창조하신 우리의 주인이시기에 반드시 우리를 책임지시고 앞으로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 설 교 >
신실한 백성이 되라
수 9:16-27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신중하게 살려고 하지만 늘 실수하고 실패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을 때 분노와 원망과 자포자기에 빠집니다. 남을 탓하며 관련된 사람들과 다투기도 합니다. 술에 빠져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며 분열에 빠지는 공동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실패했을 때, 심지어는 죄에 빠졌을 때에도 결코 남을 원망하거나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늘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실패했을 때 우리는 먼저 그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감수할 것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아니 이제는 더욱 믿음으로 살기를 다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손해를 보고 고통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서 조약을 맺었습니다.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조약을 무효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에게 속아서 맺은 조약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의 자세입니다.
인생의 목적
소요리 문답 1번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 목적에 어긋나는 것은 절대로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희생하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첫 번째 목적이기 때문에,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여기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첫 번째 목적이라면,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은 이 목적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현장에서 나의 말과 행동이 과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냐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으며,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신실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약속을 안 지키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가려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이런 사건이 나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먼 곳에서 왔다고 속이면서 화친을 청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들과 조약을 맺었습니다. 알고 보니 기브온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거짓말에 속아서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그들이 비록 속아서 조약을 맺었다 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을 살려주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고 교훈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손해와 고통도 감수하고 있습니까?
기브온의 정체가 드러남
이스라엘이 여리고와 아이를 정복하고 그 거민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멸했다는 소식이 가나안 족속들에게 다 퍼졌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연합군을 편성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기브온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워서는 승산이 전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화친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들과 화친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신명기에서 가나안 족속들과는 화친하지 말고 모두 멸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은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인 것처럼 꾸미고 이스라엘 진영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인데 이스라엘의 종이 되겠다고 하면서 화친을 청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대단히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그들과 화친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기브온에게 속은 것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14-15절)
기브온 사람들과 화친을 맺은 후 사흘 만에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기브온 사람들은 바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16절)
이스라엘은 기브온에게 속아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족속들과 화친하지 말라고 금하신 것은 중요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화친을 하고 함께 살게 되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의 죄에 빠지게 될 것이며, 그 죄 때문에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과의 화친을 금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신20:18)
이스라엘은 기브온에게 속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하게 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조약을 맺고 말았습니다. 자, 이제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브온이 거짓말로 이스라엘을 속였기 때문에 이 조약을 무효로 돌리고 그들을 진멸해야 할까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그들과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점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그 조약을 지켜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실패했을 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조약을 맺은 것은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사실 기브온은 이스라엘의 다음 공격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공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살려놓고 다음 성을 공격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불안하고 찜찜한 일입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앞으로 기브온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본받아 우상숭배와 죄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기브온과 조약을 맺은 것은 이스라엘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는 이 문제를 두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행군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여러 성읍들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그러나 회중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17-18절)
백성들의 원망에 대해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19절) 백성들 중 일부는 기브온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이 조약은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족장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이 조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의견이 분열된 것입니다.
속거나 실패했을 때 사람들은 서로 원망하거나 의견이 갈려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더 어려워집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본래 잘 속고 실패하기 마련인 존재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소에도 얼마나 잘 속는지 모릅니다. 사람에게 속고,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아 속으며, 자신의 건강을 믿고 있다가 속기도 합니다. 그렇게 속은 후에는 그럴 줄 몰랐다고 원망하며 싸웁니다. 이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래 잘 속고 실패도 잘합니다. 문제는 속고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상황을 직시하고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합니다. 원망하고 싸울 것이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감수할 것은 감수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쪽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특히 이 모든 문제를 말씀 안에서 올바르게 수습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실패하게 된 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그 실패를 사용하여 더 좋은 결과를 주십니다.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십니다.
여호와의 이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19-2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지극히 올바른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기브온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열심이 지나쳐 이스라엘 중에 살고 있던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3년 동안이나 기근을 보내셨습니다. “다윗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삼하21:1)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대로 사울의 자손 일곱을 목매어 달게 한 후에야 하나님께서 그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약속은 그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지극히 거룩하고 영광스럽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들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손해를 당하고 명예가 실추된다 해도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결정한 것은 지켜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서 조약을 맺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 때문에 그 조약을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함부로 행동하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브온에게 내려진 조치
이스라엘은 이제 기브온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그냥 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다가 책망하고, 그들을 종으로 삼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우리를 속였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22-23절) 기브온 사람들은 이 모든 조치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25절)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을 종으로 삼아 성전에서 나무를 패며 물을 긷게 한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끼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기브온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결과 기브온 사람들이 받은 저주는 결국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 섬기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실패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실망하고 원망하며 술을 마십니까? 실패했을 때 성도는 원망하고 절망하거나 다투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되게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약속한 것은 불리하다 해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새롭게 출발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오직 믿음으로 살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를 당할 때도 신실한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잃지 않고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비참한 자로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것은 은헤다.
수 9:16-27
◈ 시작기도: 주님,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누가 크냐를 논하던 제자들처럼 주님을 이용해서 높아지려는 마음, 나이가 들수록 교만해지는 마음, 본질상 교만했던 것들이 깨뜨려지고 기브온처럼 종으로 주안에 거하길 원합니다. 거짓과 위선, 허물과 죄로 가득한 자이지만 십자가만이 살길임을 알며, 종으로 주 안에 거하는 가난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의 보혈로 저의 모든 위선과 거짓, 교만을 씻어 주시옵소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창조주이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복종함으로 주 안에 거하는 하늘의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날 때, 주님의 종, 무익한 종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이것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으신 주님께 속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구하고 기도하오니 제 마음을 만져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해: 성령님의 조명
-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점령한 후에 승리에 도취되거나 파죽지세로 가나안 족속을 멸하는 대신에 에발산에 올라가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돌에 새겼다.
- 여호수아가 말씀대로 순종하는 동안 가나안 족속들은 일심으로 모여 이스라엘과 싸우고자 하였다. 그런데 가나안 족속 중에서 특이하게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기를 원했다.
-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는 것만이 살길임을 깨닫고는 자신들은 이스라엘의 종이라고 자처하면서 조약을 맺자고 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들과 조약을 맺었다.
- 허물과 죄가 많은 기브온 사람들이지만 종이 되더라도 하나님께 속해야 한다는 가난한 마음을 하나님은 받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다.
- 허물과 죄가 많은 죄인도, 회개하지 않고 완악했던 자라도 십자가로 나아가 주님만이 살길이며 말씀에 복종하겠다는 자에게 주님은 언제나 용서하시고 의와 진리로 구원해 주신다.
1. 기브온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 이스라엘은 기브온이 히위족속임을 알게 되었다.
본대는 길갈에 있지만 이스라엘이 백성들이 행군하여 3일째에 기브온 주님이 사는 성읍들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 족장들은 여호와로 기브온과 맹세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기브온을 치지 못하게 하였다.
1) 이로 인하여 회중들은 다 족장들을 원망하였다.
2) 그러나 모든 족장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맹세하였으므로 기브온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3) 대신 기브온은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다.
3. 여호와의 이름으로 평화조약을 맺었기에 기브온 주민을 살려 주었지만 여호수아는 그들을 불러다가 어찌하여 우리를 속였느냐고 하면서 너희가 저주를 받아 대를 이어 종이 되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고 하였다.
4. 이 말에 이스라엘을 속인 기브온 사람들의 대답이 참으로 놀랍고 기특하다.
1)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고 가나안의 모든 주민을 이스라엘 앞에서 멸하라 하신 말씀을 분명히 들었으므로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이같이 속였다는 것이다.
2) 꾀를 내고 속였지만 그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듣고 그 말씀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기에 살고 싶어서 속였다는 것이다.
3) 대다수의 가나안 족속들도 이런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 그러나 오직 기브온 주민만 이 말씀을 믿었다는 것이 놀랍다.
- 그리고 진멸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는데 살 길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 또한 놀랍다.
5.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조약을 맺을 때부터 “우리는 당신들의 종”이라고 한 것이 진실이었다는 것이다.
1) 여호수아가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리라고 하자 그들은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라고 하며 종됨을 받아들인다.
2) 이들은 하나님께 속할 수만 있다면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도 좋다고 여긴 것이다.
3)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종이 되어 섬기는 자다.
- 비록 이스라엘을 속였지만 이들의 마음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의 마음을 가졌다.
6. 그들은 이스라엘을 속임으로 대대로 종이 되었으나 존귀한 종이 된다.
1) 이스라엘의 가정집에서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이 된다.
2) 가나안 족속으로 하나님께 진멸 받아 마땅했던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집에서 번제단을 위하여 나무와 물을 준비하는 자들이 된다.
3) 성막에는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기브온 주민이 있다.
- 신분과 역할의 크기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다.
7.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줘도 상이 있다고 하였다.
마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 기브온 주민들은 진멸에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상을 잃지 않는 자들이 되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풍성함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의 우상을 섬길 때에도 기브온 주민들은 번제단의 나무와 물을 길어오는 종노릇을 한다.
3) 다윗은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주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을 더 원했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a) 기브온 주민들은 다윗처럼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성전의 종 되기를 더 좋아했다.
8. 가나안 동족들에게는 배신자이고, 이스라엘을 속여서 대대로 종이 되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들이 된 기브온 사람들은 만물 안에서는 비참한 자들이다. 그러나 주 여호와께 피한 그들의 가난한 마음은 참으로 복된 마음이요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들이다.
시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1) 자격 없어 진멸 받아 마땅한 자, 내가 살기 위해 동족을 배신하고 남을 속이는 자일지라도 주께 피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쌓아 두신 은혜를 베푸신다.
2) 나의 처지가 어떠할지라도 남들이 뭐라해도 주께 피하는 자 되기를 원한다.
9. 동족을 배신하고 이스라엘을 속여서 대대로 종이 되는 기브온이 번제단을 섬긴다.
1) 십자가의 구속과 화목을 상징하는 번제단을 섬기는 종들이 된다.
2) 기브온은 자신들을 안다. 자신들은 배신자요 속이는 자요 종임을 안다.
-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 비참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들, 배신자라 놀리고 속이는 자라고 조롱하며 종이라고 무시해도 대항할 것이 없는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집을 겸손히 섬기는 자들이 되었다.
10. 얼마나 비참할까? 자식들에게 대대로 종의 자리를 대물림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1) 똑똑하고 명철한데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기브온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2) 그러나 그들은 창조주요 영광스러운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다.
- 왕의 음식을 만들고 왕의 옷을 만드는 것 등은 존귀한 일이요 부러움의 대상이다.
3) 기브온 주민들은 종이지만 만왕의 왕, 만물 위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다.
- 그러니 그들은 존귀한 일을 하는 자들이다.
4) 그리고 자랑할 것이 없으니 자기 주장과 의지도 없이, 자기 의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게 묵묵히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가진 자들이다.
◈ 나의 묵상
목사라는 직분, 설교하고 가르치는 직분, 누군가에게 실효성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가 한편 감사하지만 한편 내 영혼을 좀 먹는다. 탐심 그리고 그 탐심에 의한 교만으로 인하여 생명에 이르게 할 섬김을 하고도 사망에 거하는 자가 되었다. 내 힘으로 선을 행하였다는 선한 자아의 교만, 그래서 내가 헌신하고 기여한 만큼 인정받아야 한다는 자기 주장과 의지가 자라면서 하나님의 종의 위치를 떠났다. 종의 위치를 떠남은 곧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교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로 인하여 나는 사망에 이르렀고 하나님은 그러한 나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하여 심판을 집행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은 메마름을 가져왔고 그것은 나의 비참함을 드러냈다. 비참함이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비참함은 더 이상 내가 하나님 노릇 할 수 없는 자임을 알려준다. 그래서 비참함이 정말 싫다. 그러나 내가 비참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 노릇하고 싶은 탐심은 늘 내 안에서 역사한다. 그러나 자랑할 것이 없는 자, 주장할 것이 없는 기브온 주민들, 비참한 자로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배신자, 속이는 자, 하찮은 자로 여김 받아도 “옳습니다 나는 그러한 자요 그보다 더한 자입니다”라고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사도들은 만물의 찌꺼기로 여김을 받지 않았던가?
죄의 세력에 속아 교만하며 자랑하는 자, 주님의 십자가 앞에 선다. 오직 비참한 자, 자랑할 것이 없는 자만 들어가는 좁은 문 앞에 선다. 비참하여 주님 외에 피할 곳이 없는 자에게 쌓아 두신 은혜를 주시는 그 은총의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주님을 무시하고 반역하였다. 내 마음에 말씀하시는 것보다 자아추구와 하나님 노릇을 선택하였다. 또한 사람들을 속이고 외식한 자이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속임이 없는 진실한 사랑이다.
주님의 집에서 나무를 패며 물 긷는 것을 가벼이 여겼던 교만도 벗어버린다. 영광의 주님을 위하여 지극히 작은 것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은혜다. 예배당의 망가진 작은 부분을 고치는 것, 작은 짐을 나르는 것, 휴지를 줍는 것, 지극히 작은 영혼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말을 하는 것, 아주 작은 재정을 흘려보내는 것....이것이 자랑할 것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맡겨 주신 영광스러운 일이다. 주님의 생명으로 섬긴다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만 주어도 기뻐하시며 상이 있다고 하신다.
주님으로 섬기기보다는 크고 좋은 결과가 있는 섬김을 추구하던 자, 이제는 자랑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의 집을 섬기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긴다. 왜냐하면 주님은 항상 이런 나를 용납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 묵상 기도
주님, 참으로 교만한 자였습니다. 주님이 심판하심으로 비참하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있어야 할 비참한 자리를 떠나 자랑하고 주장하는 자리에 늘 앉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오 주님, 제가 기브온임을 알게 하소서. 배신자요 속인 자요 종된 자임을 알게 하소서. 종의 일을 할 때 마땅히 그곳에 머물며 창조주요 부활의 주님을 섬기는 것만으로도 영광임을 알게 하옵소서. 성령님의 은총으로 늘 종의 자리, 비천한 자리, 심판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교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브온 주민들이 영원한 종이 됨
수 9:16-27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많은 병자를 치유하시고, 길 잃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보면 아마 그리스도인들은 나름대로 인상 깊은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혈루증 앓던 여인이 고침 받았던 장면(마 9:20~22; 막 5:25~34; 눅 8:43~48)과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의 재창조로 눈을 뜨게 된 장면(요 9장)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되는 장면은 예수님이 말씀만이 아니라 침과 흙으로 창조 사역을 보여주셨기에 인상 깊고, 혈루증 앓던 여인의 치유는 그녀가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으나 예수님은 그녀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구원과 평안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고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바라고 원했습니다. 비록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도자를 속일 수 있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3일 만에 발각되고 맙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발각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서 이동하여 기브온 근처 지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근처 지역은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으로 이들 지역은 대부분 가깝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의 사람들은 기브온 지역을 중심으로 “기브온 사람”으로 불렸을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의 기만전술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들을 향해 불만을 표출합니다. 먼저 지도자들은 기브온 사람들의 기만술에 속은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조약을 파기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들을 처벌하거나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기만술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사람들과 예수님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 했던 혈루증 앓던 여인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으로 인한 공포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공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브온 사람들이 선택한 일이 비난 받을 수 있는 일일까요? 아니면 정당성은 부여받지 못해도 충분히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일이 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사실 이해가 되는 장면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미 14절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기브온과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배제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백성들이 보여주는 불평의 모습에도 하나님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했던 ‘불평(@Wl)’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불평’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이스라엘은 지금 기브온 사람을 죽이지 못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19~21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려 했던 것을 보여주고,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장면(2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의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기브온 조약에 관해 침묵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수아 10~11장에 나타난 가나안 남쪽 지역을 정복하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기브온과 조약을 맺은 것에 관해 책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책망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기브온의 자세와 여호수아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 행동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종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수 9:8). 그리고 자신들의 운명을 조약을 맺는 것과는 상관없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도자의 손에 맡겼습니다(25절). 여호수아는 스스로 종이 되기를 자처하는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와(21절) 하나님의 제단을 위해(23, 27절)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들로 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눈에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해 의식에 사로잡힘과 동시에 상대방에게 강력한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방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럼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게 하는 일, 아무 공로 없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를 드러내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듯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