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 소속된 프로야구팀으로, 1961년에 창단했다. 연고지는 텍사스주 알링턴이다. 원래는 워싱턴 세너터스(Washington Senators)라는 팀명으로 창단됐으나 1972년에 현재의 연고지와 팀명으로 바뀌었다.
2014시즌까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는 5차례(1996·1998·1999·2010·2011년) 달성했다. 1980년대까지는 성적이 저조했으나 1996년 처음으로 서부지구에서 우승한 이후 1998·1999년 2회 연속으로 서부지구에서 우승하며 강팀으로 떠올랐지만 이 3차례 모두 디비전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다.
2010년에는 창단 후 처음으로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올라 뉴욕 양키스를 4승2패로 누르고 역시나 창단 첫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1승4패로 밀려 정상 등극에 실패했다. 이듬해인 2011년에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탬파베이와 디트로이트를 잇따라 꺾고 월드시리즈에 올랐으나 이번에는 세인트루이스에 3승4패로 패하며 눈물을 삼켰다.
한국인 선수 중 박찬호가 처음 몸담았던 팀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하다. 2014시즌을 앞두고는 추신수를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했다.
1989년 텍사스 구단을 인수한 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1994년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돼 팀을 떠날 때까지 구단주로 있었다. 강속구 투수의 대명사인 놀란 라이언이 1989년부터 1993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로 뛰기도 했다. 라이언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텍사스 구단주를 맡기도 했다.
팀 이름의 유래
1969년 워싱턴 세너터스와 뉴욕 양키스 경기에서 시구하는 닉슨 대통령
텍사스의 전신은 1961년 창단된 워싱턴 세너터스이다. 워싱턴 D.C에는 원조 워싱턴 세너터스가 있었으나 그 팀은 1960년 미네소타주로 옮겨 트윈스가 역사와 기록을 물려받았다. 이후 같은 이름의 새 워싱턴 세너터스가 1961년에 생긴 것이다.
이 팀이 1972년 연고지를 텍사스로 옮기면서 텍사스 레인저스(Texas Rangers)가 됐다. 레인저스는 국경순찰대원이란 뜻인데 이런 명칭이 붙게 된 것은 지역 특성과 관계가 깊다. 텍사스는 멕시코와 국경이 맞닿아있어 주의 특성상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단속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땅이 넒은 텍사스의 상황 때문에 치안을 유지하는데 순찰대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텍사스하면 순찰대가 떠오르게 됐고, 팀 명칭도 그것에서 유래해 레인저스가 됐다.
홈구장
텍사스의 현재 홈구장은 글로브 라이프 파크 인 알링턴이다. 이전까지 홈구장은 그리피스 스타디움 (1961년), D.C. 스타디움 (1962~1968년), RFK 스타디움 (1962~1971년), 알링턴 스타디움 (1972~1993년), 더 볼파크 인 알링턴 (1994~2004년), 아메리퀘스트 필드 인 알링턴 (2004~2006년), 레인저스 볼파크 인 알링턴(2007~2013년)이었다.
현재 명칭으로 바뀐 것은 2014년 2월이다. 텍사스 구단이 미국 보험회사인 글로브 라이프에 10년간 구장 명칭 사용권을 주는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글로브 라이프 파크로 변경됐다. 수용 인원은 4만9166명이다.
레인저스 볼파크 인 알링턴(Rangers Ballpark in Arlington) 전경
텍사스의 역사
텍사스는 1961년 창단 첫 해에 신생팀다운 성적인 시즌 ‘100패’를 기록했다. 이후 텍사스는 4년 연속 시즌 100패를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레인저스 외에는 뉴욕 메츠 한 팀만 보유하고 있다.
텍사스는 1974년부터 성적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 해 텍사스는 84승76패를 기록하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이어 지구 2위를 기록했다. 이는 레인저스의 팀 창단 이후 최고의 성적이었다.
1974년에는 각종 타이틀 수상자도 배출했다.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은 마이크 하그로브가 차지했고 리그 MVP도 제프 버로우즈의 몫이었다. 빌리 마틴 감독은 올해의 감독에 선정됐다. 퍼지 젠킨스는 올해의 복귀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텍사스는 1996년이 돼서야 창단 이후 35년만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그 이후로는 같은 지구의 다른 팀들보다 빈약한 투수력으로 인해 항상 플레이오프 문턱에서 좌절하고는 했다.
텍사스 레인저스 2010년 AL 서부지구 우승을 알리는 배너
그러다 2010년 9월25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4-3으로 꺾고 11년 만에 AL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지으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ALDS)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시리즈 전적 3승2패,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에서 뉴욕 양키스를 4승2패로 제압하며 창단 첫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달성했으나 월드시리즈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종합 전적 1승4패로 물러났다.
그리고 2011년 ALDS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3승1패, ALCS 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4승2패로 제압하며 전년도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종합 전적 3승4패로 밀려 또다시 우승에 실패했다.
2011년 월드시리즈 진출에 기뻐하는 텍사스 선수들
알렉스 로드리게스와의 짧았던 동거
2000년 겨울, 텍사스는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FA로 풀린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10년·2억5200만달러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 연봉 총액 모두 역사상 최고였다. 로드리게스가 시애틀에서 3번이나 40홈런 100타점을 달성하면서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데다 그의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였기에 가능한 계약이었다.
로드리게스는 텍사스 입단 후 좋은 성적을 냈다. 2001년 52홈런을 날려 유격수 한 시즌 최다홈런 신기록을 세운 로드리게스는 이듬해에는 57개를 날려 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2003년에는 47홈런 118타점을 올리며 팀이 꼴찌에 머물렀는데도 아메리칸리그 MVP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당시 텍사스는 로드리게스 한 명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투수들은 상대팀 타자들에게 계속 맞아나갔고, 로드리게스를 제외한 다른 타자들의 지원 또한 빈약했다.
뉴욕 양키스 이적 후 알렉스 로드리게스 <출처: Keith Allison at flickr.com>
결국 텍사스는 로드리게스를 트레이드하기로 결정하고 먼저 보스턴 레드삭스와 협상을 벌였다. 조건은 로드리게스를 보스턴으로 보내고 대신 매니 라미레스를 데려오는 것이었는데, 이는 로드리게스가 일부 연봉 삭감을 감수하겠다고까지 했는데도 선수노조의 반대에 의해 무산됐다. 그리고 한달 후, 텍사스는 6700만달러의 연봉보조를 해준다는 조건하에 로드리게스를 뉴욕 양키스로 보냈다. 당시 텍사스가 양키스로부터 받은 선수는 거포 2루수 알폰소 소리아노와 불펜 투수인 호아킨 아리아스였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양키스에서 새로운 10년 계약을 맺었지만 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되면서 명예가 실추됐다. 양키스는 로드리게스에게 2017년까지 6100만달러의 연봉을 줘야 하는 암울한 상황에 놓여 있다. 반면 텍사스는 이후 착실히 리빌딩을 진행했으며 2010~2011년 2년 연속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등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주요선수
• 이반 로드리게스
메이저리그 역사상 공격과 수비가 가장 잘 조화됐다고 평가받는 포수. 마이크 피아자와 함께 1990년대를 양분한 명포수다. 선수 생활 21년 중 12년하고도 절반을 텍사스에서 보냈다. 1993년부터 2007년까지 15년 연속 두 자리수 홈런을 기록했으며 1999년에는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제치고 아메리칸리그 MVP에도 뽑혔다. 13번의 골든글러브 수상은 포수로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텍사스에서는 우승을 못했지만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 마이클 영
‘텍사스의 심장’ 또는 ‘텍사스의 영혼’ 이라고 불린 선수. 2000년대 텍사스를 대표하는 선수다. 1997년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지명을 받았지만 2000년 텍사스로 트레이드됐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하는 등 통산 6번의 200안타를 기록했고 2005년에는 생애 첫 타격왕에도 올랐다. 2006년 올스타전 MVP에 선정되는 등 전성기를 누렸지만 2012년을 끝으로 텍사스를 떠났다. 2013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LA 다저스에서 뛰었지만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고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
텍사스 유니폼을 입은 한국인들
• 박찬호
LA 다저스에서 6년 동안 풀타임을 소화했고 5년 연속 13승 이상을 거둔, 당시 29세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박찬호는 2002년 5년·6500만달러의 계약을 맺고 텍사스로 팀을 옮겼다. 그런데 박찬호는 텍사스에서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이적 첫 해인 2002년 시즌에 시범 경기 도중 얻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했고, 타자 친화적인 야구장으로 널리 알려진 텍사스의 홈구장에서 우려됐던 점들이 나타났다. 게다가 허리 부상을 숨기고 있다는 점도 나타나 ‘플라이볼 투수’로 숙명적인 실패를 맞이했다. 박찬호는 25번의 선발에서 9승8패, 방어율 5.75를 기록했다.
이듬해인 2003시즌은 부상 탓에 7차례만 등판해 1승3패, 방어율 7.58을 기록했다. 2004시즌 역시 16경기에 나서 4승7패, 방어율 5.46의 평균 이하 성적을 냈다.
당시 텍사스 투수 중 역대 최고액 연봉을 받는 박찬호로서는 부담감과 부상이 겹쳐 개인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기간이었다, 각종 매체에서 메이저리거 중 실력에 비해 연봉을 과하게 받는 선수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텍사스에서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2005년 6월5일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나선 박찬호는 초반에 난타를 당해 패전위기에 몰렸으나 강타선의 도움으로 미국 진출 11년 만에 메이저 리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 추신수
추신수는 2013년 12월22일 텍사스와 7년 총액 1억3000만달러에 계약했다. 이는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과 5년·9000만달러로 계약한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액수로 아시아 야구선수 역사상 최고의 몸값이었다. 게다가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와 같은 팀이 돼 한국과 일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추신수는 2014년 초반에는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팔꿈치 부상과 발목 부상을 달고 뛴 나머지 6월부터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다.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추신수는 결국 9월에 팔꿈치와 발목 수술을 결정하며 시즌을 조기마감했다.
영구결번
• 자니 오츠 (26번)
1990년대 중후반 레인저스의 황금기 때 세 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끈 감독이다. 2004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 놀란 라이언(34번)
30번(LA 에인절스), 34번(텍사스 레인저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 세 구단의 영구결번을 가지고 있다. 전 구단 영구 결번으로 처리된 재키 로빈슨(브루클린 다저스·42번) 다음으로 많은 구단(3개)에서 영구 결번 처리된 선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