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북에 들어갈때 한국에서 비상약이며 여자 팬티 스타킹 이며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가득 가지고 가서 나눠 주기도 했었던
묘향산이며 백두산이며 동명성왕묘 와 바보온달 평강공주 묘까지 거기에 서산대사가 계셨던 표충사까지 그리고 김씨 부자가 세계 각나라 기념품을 전시해놓은 지하 50미터 궁전에 들어가 전시된걸 관람도 했었고
그러던 어느날 보위부 동생과 술한잔 하면서 " 아우야 ! 우리 아바지 고향에 가봐야 하는데" " 아니 행님집두 이북 이십네까? " 고럼" " ㅎㅎ행님 말투가 황해도 말투가 있긴 있수다래" " 황해도 신천에 삼춘하고 고모가 아직도 살고 계신다는 소식은 들었어야" " 고럼 성함을 적어 주시라요" " 찾아주간니? " 당연히 찾아 드려야지요" " 제가 우선 알아보라고 할테니 요담에 다시 평양 오시거든 제가 직접 모시고 가갔시요" " 정말 가보고 싶다 울아바지 제작년 돌아가셨는데 항상 북에두고온 동생 생각에" " 걱정마시라요" " 아우 우리한국 물건 필요한거 있으면 매모해서 건너주라구" " 네 집사람한테 말해서 알려드릴께요"
" 글구 어차피 여기 평양역 옆에 우리단체 사업장 유치하면 내가 책임자로 올테니까" 그랬다 김씨가 우리측에게 평양 역 근처에 무역특구를 만들어 주기로 해서 요담에 평양 올때는 한국의 기업체 대표들을 데리고 들어오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평양을 다녀온후 얼마후 경기도내 기업체 대표 100여명을 인솔하여 평양으로 향했다. 이경기도 내 기업체는 그당시 경기도지사로 계시던 김문수 지사 께서 물심양면 도와줘 특별히 경기도 업체만 선정하여 북에 가게 되었는데 그당시 난 김지사와 같은 당동지로서 여러번 교류가 있었고 그때 수원월드컵 경기장 내에 있는 재단법인 수원월드컵 재단에 체육분야 호돌이 문화재단 소속으로 이사가 되었던 난 그당시에 대한족구협회 부회장으로서 재단 체육회 이사가 된것이다 그당시 함께 했던 이사가 양궁의신 김수녕 선수와 함께.. 훗날 월드컵 재단 소속으로 러시아 사할린에 프로 축구팀 설립 관련해서 사할린에 한달동안 출장가서 프로축구팀 관련 업무를 지원했던 ... 그당시 사할린 축구팀 단장이 우리 고려인이 되면서 프로팀을 만들기 위해 수원월드컵 재단에서 여러가지 지원차원에 함께 동행하게 되는
첫댓글 일반 사람이 평생을 해도 못해볼 일들을 그동안 다 하셨네요 부럽네요 평양도 가보시고요
요번에 아예 총선에 출마해 보세요 김문수씨에게 부탁해서요
ㅎㅎ웃음만
평생 할거 다 했네
그래서
독립군 생활
고생을 하나 ?
저 시간에서 바닥까지
첬으니 이제
올라 서는 시간이 오는것
잊으시요
저 시간을
다시 하나부터 시작 하시길.
인생이 다그러잖아요
남다른 기상이느껴지는 평범치 않은 스토리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
가족분들은 만나뵐수 있었는지요^^
아니요 그후 천안함 사건으로 통재가
@지 존 무척 아쉬우셨겠네요~ 기대가 크셨을텐데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장하나 자리란? ㅎㅎ
@나이컨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