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21
제4장 탁탑천왕(托塔天王)
제12편 무뢰한 우이 12-1
양산박에서 내려온 양지는 동경에 도착하자 금, 은 재물을 가지고 추밀원에 가서
어떻게든 복직을 해보려고 애를 썼다.그러나 고태위는 재물만 탐하는 소인이어서
양지의 뇌물이 적다는 것을 알고 양지의 청탁을 외면했다.
양지는 그 사실을 알고 몹시 우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왕륜의 권유 때 양산박에 머물러 있는 것이 나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부모에게서 받은 청백한 몸을 차마 더럽힐 수가 없었다.
‘뇌물이 적다면 더 줘야지.’양지는 생각 끝에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家寶)인
칼을 팔러 큰길로 나갔다.그러나 아무도 칼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
양지는 좀 더 사람의 왕래가 많은 천한주교(天漢州橋)다리 위로 갔다.
잠시 후에 문득 사람들이 몰려왔다.“범이 온다, 범이 와. 멀거니 서 있지 말고 어서
피하시오.”동경 한복판에서 더구나 백주 대낮에 호랑이가 나왔다니 무슨 말인가?
그때 저 쪽에서 한 남자가 술에 취해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본래 동경에서도 이름난 무뢰배 우이(牛二)로 사람들만 보면 행패를 부려
개봉부 관원들도 머리를 내두르는 터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나타나면 범이 나왔다고 하며 달아나는 것이 예사였다.
양지는 물론 그가 누구인지 알 리가 없었다.혹시 안다고 해도 두려워 할 사람이 아니었다.
우이는 비틀 걸음으로 양지 앞까지 오자 걸음을 멈추고 한마디 묻는다.
“그 칼 몇 푼에 파는 거냐?”“천하에 드문 보검이지만 3천 관에 팔겠소.”
“뭐, 3천 관이라구? 정신없는 놈이군. 3십 문짜리 식칼로도 고기도 잘 썰고 두부도
잘 베는데, 그게 뭐라고 3천 관이나 달라는 거야?”
“이건 가게에서 파는 백철도(白鐵刀)와는 다릅니다.”“어떻게 다르냐?”
“첫째, 이 보검은 구리나 쇠를 베어도 날이 휘는 법이 없고, 둘째, 털을 갖다 대고 불면
날에 닿기가 무섭게 베어지고, 셋째, 이 칼로 사람을 죽이면 피가 묻지 않습니다.”
“그럼 동전을 베어 볼 테냐?”“좋소, 내가 동전을 조각내어 버리겠소.”
우이는 곧 3전짜리 스무 닢을 가지고 나와 다리 난간 위에 놓았다.
“그 칼로 두 쪽을 내면 3천 관에 사겠다.”
양지가 스무 닢 동전을 가지런히 포개놓고, 소매를 걷어 올려 칼을 번쩍 들어 내리쳤다.
그러자 스무 닢 동전들이 두 쪽이 나면서 마흔 닢이 되었다.
우이는 곧 자기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아주면서 말했다.
“털이 닿기가 무섭게 베어지는지 보자.”양지가 말없이 머리칼을 받아서 칼날 위에 대고
입으로 한 번 훅 불자, 머리칼이 두 동강이 나서 땅 위에 떨어진다.
우이는 화를 벌컥 냈다.“셋째는 뭐랬지?”
“사람을 죽여도 칼날에 피가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당장 사람을 죽여 봐라.”“여기서 살인을 하라고요? 정 그러면 대신 강아지라도
한 마리 끌어 오시오.”“이놈의 수작 봐라! 네 놈이 사람이랬지 개라고는 하지 않았다.”
“사기 싫으면 귀찮게 굴지 말고 어서 가보시오.”“뭐라구? 어서 가 보라고? 흥,
내가 속을 줄 아느냐? 어디 그 칼로 나를 베어 봐라. 피가 묻지 않는다면 내가 살 테니.”
“내가 노형과 척진 일이 없는데, 까닭 없는 살인을 왜 하겠소.”
그때 우이는 와락 달려들어 양지의 멱살을 잡았다.“그 칼을 내게 팔아라.”
“사려면 돈을 가져 오슈.”“돈은 없다.”“돈 없으면 못 사는 거죠.”
그 말에 우이는 주먹으로 양지를 쳤다.참을 만큼 참아온 양지는 멱살 잡은 손을 뿌리치고
덤벼드는 놈의 가슴을 향하여 칼을 휘둘러 버렸다.동경성 한복판에서 이름난 파락호
우이는 찍 소리 한마디 질러 보지도 못하고 다리 위에서 사지를 쭉 뻗고 말았다.
뜻밖의 일에 당황한 양지는 하늘을 우러러 한 번 탄식한 다음 곧 개봉부에 나가 자수했다.
- 22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 22
제4장 탁탑천왕(托塔天王)
제12편 무뢰한 우이 12-2
피해자가 관가에서도 머리를 내두르던 우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부윤도 양지의 죄를
가볍게 처벌하여 매 스무 대를 친 다음 북경 대명부(北京大名府)로 귀양을 보냈다.
당시 북경 대명부 유수 양중서는 동경 당조태사 채경(當朝太師 蔡京)의 사위였다.
그는 일찍이 양지의 이름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양지를 군사 부사령관으로 삼고 싶었으나 귀양 온 죄인을 발탁할 수 없어서
양지에게 출전을 명령했다.“내가 너를 부사령관으로 삼고 싶으니 무술대회에 나가겠느냐?”
양지는 공손히 말했다.“소인은 본래 무과 출신으로 일찍이 대궐의 전사부 군관으로 있었으며,
십팔 반 무예는 어려서 익힌 터라 남에게 뒤지지 않으니 기회를 주신다면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양중서는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갑옷을 내려주었다.
날이 밝자 양중서는 곧 말에 올라 동곽문 교장으로 나갔다.
무술대회가 열릴 연무청 좌우에는 관원, 지휘관, 훈련관을 비롯한 군사들이 서열대로
늘어섰으며, 본부석에는 두명의 도감이 서 있었다.
이성(李成)과 문달(聞達로 두 사람은 모두 용맹한 장수들이었다.
양중서가 연무청 위에 자리 잡고 앉았다.본부석에는 황색기가 펄럭이고, 장대 위에는
황기(黃旗)가 바람에 나부끼며, 북과 징소리가 울리고, 범과 곰을 그린 깃발들도
펄럭이고 있었다.북소리가 울리는 곳에 5백 명의 군사들이 각각 좌우로 나누어 서자
또다시 백기가 장대 위에 나부끼면서 말 탄 군사들이 일제히 본부석 앞에 나섰다.
양중서는 부사령관 주근(周謹)과 양지를 불러 세웠다.
“네가 비록 죄를 지어 이곳에 왔지만 전에 동경에서 전사부 제사군관을 지냈다 하니 사방에
도적의 무리가 창궐하여 나라에서 용병을 구하는 이때 네가 주근과 창을 겨루어 이긴다면
너에게 주근의 벼슬을 주겠다.”부윤이 두 사람에게 말과 무기를 내리자,
두 사람은 연무청 앞에 나섰다.무기는 창을 쓰되 창끝의 뾰쪽한 부분은 뽑아 버리고,
부드러운 모직물로 감싼 다음 백회를 묻혀 검은 갑옷 위에 나타나는 백회의 점을 헤아려
승패를 가리도록 했다.그러나 주근은 양지의 적수가 아니었다.
서로 어우러져 싸우기 4,50합에 주근의 전포는 흰 점 투성이었으나 양지는 겨우 어깨에
한 점을 맞았을 뿐이었다.양중서는 곧 두 사람을 앞으로 불러 그 자리에서 주근의 벼슬을
박탈하고, 대신 양지를 부사령관에 임명하려고 했다.그러자 관군도감 이성이 나와서 말했다.
“주근은 본래 창법은 약하고 말 타고 활 쏘는 데는 능숙합니다. 단지 창법에 졌다고 해서
벼슬을 박탈하면 부하들의 불만을 사게 됩니다. 주근에게 다시 양지와 궁술을 겨루게
하시는 것이 어떤지요?”양중서는 그 말을 받아 들여 두 사람에게 명령을 내려 활쏘기를
겨루게 했다.그러나 궁술 역시 주근은 양지와 상대가 안 되었다.
주근이 재주를 다해 쏜 화살 3개를 양지는 몸을 틀어 피하고, 혹은 활로 쳐서 떨구고,
혹은 손으로 잡아 막았다.그러나 주근은 양지가 쏜 첫 화살을 피하지 못하여 왼편
어깨에 맞고 그대로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양중서는 크게 기뻐하며 양지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하려 할 때 계단 좌편에서 한 장수가 뛰어나와 말했다.
“주근이 아직 병이 완쾌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으니 소장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양지와
무예를 겨루게 해주십시오. 만약 소장이 조금이라도 양지만 못하면 더 이상 불평을
하지 않겠습니다.”양지가 그를 보니 키는 7척이 훨씬 넘고, 얼굴은 둥글며 귀가 크고
위풍이 늠름하고 당당했다.그는 대명부에서 첫 손에 꼽는 무장 삭초(索超)로 성미가 급해
무슨 일이든 먼저 앞장서는 사람이었다.
양중서는 삭초의 말을 받아 들였고, 두 사람은 곧 말을 타고 대결장에서 맞섰다.
삭초는 쇠도끼를 들고, 양지는 창을 들어 50여 합을 대결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모두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병마도감 이성과 문달은 깃발을 내려 대결을 중지시키고
양중서 앞에 나갔다.“두 사람의 무예가 뛰어나니 상공께서는 두 사람을 함께 중용하십시오.”
양중서는 크게 기뻐하며 두 사람에게 각각 상을 내리고, 두 사람을 모두 관군 지휘관으로
임명했다.양중서는 그 후로 더욱 양지를 총애하여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삭초 역시 양지를 존경하게 되었다.
6월 보름 채태사의 생신날이 되자 양중서는 10만 관의 예물을 대궐에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국에 도적들이 들끓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지난해에도 그는 금은보화를
대궐로 보냈으나 중간에서 도적떼들에게 약탈당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도적들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올해는 예물 호송장교를 군에서 뽑을 생각이었다.
- 23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