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1절입니다 - 먼저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스님께 남기신 글을 올립니다.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가진 본성으로써, 이같은 본성은 남이 꺽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스스로 자기 민족의 자존성을 억제하려 하여도 되지 않는 것이다.
- 옥중 만해스님의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중에서
* 독립운동가 초월스님이 그리신 태극기
초월스님(1878~1944)은 용성스님, 만해스님과 더불어 3대 승려 독립운동가다.
초월스님은 1944년 청주 교도소에서 옥고로 순국하기 전까지 해인사, 범어사, 통도사 등 전국 각처 강원을 순방하며 후학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독립운동 애국지사다.
1919년 3·1운동 직후 통도사 구하 스님에게 독립자금을 인수하고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비밀결사체 일심교를 창설해 혁신공보 제작, 승려독립선언서 배포했다.
그러다 1939년 용산역에서 중국 봉천역으로 가는 화물 열차에 ‘대한독립만세' 등 문구가 백묵으로 기재된 사건이 발생하고 초월스님이 그 배후로 지목돼 수감되었다.
초월스님의 저항정신은 2009년 5월 북한산 진관사 칠성각 해체수리 중 발견된 태극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낡은 태극기의 한쪽 귀퉁이는 불에 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고 총알에 찢긴 듯한 구멍들은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가늠케 했다.
특히 태극기를 감싼 보자기 안에서는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이듬해까지 서울의 독립운동 조직과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간행한 ‘신대한’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독립신문’ 등 항일 지하 신문과 희귀 독립운동 사료들이 대량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 태극기로 인해 진관사가 임시정부의 서울 연락본부로 항일운동의 거점이었고, 초월스님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선명하게 알려졌다.
더구나 6·25전쟁 중 진관사 건물들은 대부분 불에 탔으나, 칠성각을 비롯한 나한전, 산신각만 남았고, 아슬하게 남은 전각 한곳에서 3·1운동 태극기가 발견됐으니 기적이 아닐 수 없다. ~ (법보신문 기사)
첫댓글 독립 유공자 님들의 덕분에 오늘이 있습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