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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사기(史記)》를 쓴 세기적인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무고(巫蠱)의 난]에 연루되어 형살(刑殺)될 위기에 처해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 임소경((任少卿-이름은 안(安))의 서신에 대해 쓴 답신이다.
[무고의 난]은 간신배인 강충이 무제의 아들인 여태자의 사자(使者)가 저지른 사사로운 잘못을 무제에게 고해 바친 일로 여태자의 미움을 받자 태자를 모함하기 위해 꾸며낸 일로 인해 촉발된 사건이다.
이때 감북군사자호군(監北軍使者護軍)으로 있던 임소경이 출동을 요청하는 태자의 부절을 받기는 했으나 이내 거역했는데도 후에 무제로부터 두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었다.
사마천은 그때 자신을 도와달라는 임소경의 서신을 받자 자신이 그 청을 들어줄 입장에 있지 못한 서글픈 처지임을 설명한 답신을 썼다. 그것이 이 〈보임소경서〉이다.
太史公牛馬走
태사공우마주
태사공이 마소처럼 달리며
司馬遷再拜言少卿足下 曩者辱賜書 敎以順於接物 推賢進士爲務 意氣懃懃懇懇
사마천재배언소경족하 낭자욕사서 교이순어접물 추현진사위무 의기근근간간
사마천이 삼가 소경 족하께 재배하며 말씀드립니다. 저번에 서신을 내려 주셔서 교우 관계를 원만히 하고 현명한 인사를 천거해 달라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말씀하시는 뜻이 너무도 간절하였습니다.
若望僕不相師 而用流俗人之言 僕非敢如此也 僕雖罷駑 亦嘗側聞長者之遺風矣
약망복불상사 이용류속인지언 복비감여차야 복수파노 역상측문장자지유풍의
제가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속된 사람들의 말에 따른다고 생각하시고 원망하시는 듯합니다만 저는 감히 그와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비록 보잘 것 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어른들의 유풍을 곁으로나마 들은 바가 있습니다.
顧自以爲身殘處穢 動而見尤 欲益反損 是以獨鬱悒而與誰語 諺曰 誰爲爲之 孰令聽之
고자이위신잔처예 동이견우 욕익반손 시이독울읍이여수어 언왈 수위위지 숙령청지
그러나 돌아보면 제 스스로는 궁형을 당한 비천한 몸으로 홀대를 받는 처지여서 움직이기만 하면 허물을 입고 더 나아지려 하나 도리어 그르치고 맙니다. 이래서 홀로 울적해 있을 뿐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속담에 이르기를 누구를 위해 일하고 또 누구에게 귀를 기울이겠는가?”라고 했습니다.
蓋鍾子期死 伯牙終身不復鼓琴 何則 士爲知己者用 女爲說己者容
개종자기사 백아종신불복고금 하칙 사위지기자용 여위설기자용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행하고 여자는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이를 위해 화장합니다.
若僕大質已虧缺矣 雖才懷隨和 行若由夷 終不可以爲榮 適足以見笑而自點耳
약복대질이휴결의 수재회수화 행약유이 종불가이위영 적족이견소이자점이
저와 같이 몸뚱이가 일그러져버린 사람은 재능이 비록 수후(隨侯: 뱀의 병을 고쳐주고 야광주(夜光珠)를 얻었다는 사람)나 변화(卞和: 화씨벽이라는 보옥의 원석을 얻은 초나라 사람. 완벽 참조)와 같고 허유(許由: 요임금 시대의 처사)·백이(伯夷: 주나라 초기의 의인)처럼 고결하더라도 끝내 영예롭지 못할 것이며, 남의 비웃음을 당해 스스로 더럽혀질 뿐입니다.
書辭宜答 會東從上來 又迫賤事 相見日淺 卒卒無須臾之閒 得竭志意 今少卿抱不測之罪 涉旬月 迫季冬
서사의답 회동종상래 우박천사 상견일천 졸졸무수유지한 득갈지의 금소경포불측지죄 섭순월 박계동
마땅히 서신에 대해 답해 드려야 했으나 동쪽으로 황제 폐하를 수행한데다가 또 잡다한 일이 닥쳐와 서로 만나 뵌지 오래지는 않았으나 창황중에 틈을 내어 저의 마음을 털어놓을 틈도 없었습니다. 지금 당신께서는 불측한 죄를 안으신지 한 달이 지나 [형을 집행하는] 겨울철이 닥쳐왔습니다.
僕又薄從上雍 恐卒然不可爲諱 是僕終已不得舒憤懣以曉左右 則長逝者魂魄 私恨無窮
복우박종상옹 공졸연불가위휘 시복종이불득서분만이효좌우 칙장서자혼백 사한무궁
저는 또 천자를 좇아 옹(雍)으로 가야 하는데 그동안 당신께서 집행을 당하시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로 인해 저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고민을 좌우에게 알리지 못한 채 [당신의] 혼백이 멀리 가버리면 저의 여한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請略陳固陋 闕然久不報 幸勿爲過 僕聞之 脩身者 智之符也 愛施者 仁之端也
청략진고루 궐연구불보 행물위과 복문지 수신자 지지부야 애시자 인지단야
저의 고루한 생각을 대략 말씀드리오니 오랫동안 답신 드리지 못한 것을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몸을 기르는 것은 지혜로움의 증거이며 사랑을 베푸는 것은 인(仁)의 실마리이고
取與者 義之表也 恥辱者 勇之決也 立名者 行之極也 士有此五者 然後可以託於世 而列於君子之林矣
취여자 의지표야 치욕자 용지결야 입명자 행지극야 사유차오자 연후가이탁어세 이열어군자지림의
주고 받는 것은 의(義)가 드러남이며 치욕을 당하면 용(勇)을 결단하게 되며 명성을 날리는 것이 행동의 극치입니다. 선비는 이 다섯 가지가 있어야 세상에 몸을 맡길 수 있고 군자의 무리에 낄 수 있습니다.
故禍莫憯於欲利 悲莫痛於傷心 行莫醜於辱先 후莫大於宮刑 刑餘之人 無所比數
고화막참어욕리 비막통어상심 행막추어욕선 후막대어궁형 형여지인 무소비수
그러므로 이(利)를 탐하는 것보다 더 참혹한 화(禍)는 없으며 상심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슬픔은 없고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행위는 없으며 궁형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은 없습니다. 형을 받은 사람이 보통 사람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은
非一世也 所從來遠矣 昔衛靈公與雍渠同載 孔子適陳 商鞅因景監見 趙良寒心 同子參乘 袁絲變色
비일세야 소종래원의 석위령공여옹거동재 공자적진 상앙인경감견 조양한심 동자삼승 원사변색
한 세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 왔습니다. 옛날 위 영공(衛靈公)과 환관인 옹거(雍渠)가 수레를 함께 타자 공자는 그곳을 떠나 진(陳) 나라로 갔습니다. 상앙이 경감(境監)의 주선으로 군주를 알현하자 조양(趙良)이 한심하게 여겼고 동자[조담(趙談)]가 군주[한나라 문제]의 수레를 함께 타자 원사(袁絲)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自古而恥之 夫以中才之人 事有關於宦竪 莫不傷氣 而況於慷慨之士乎 如今朝廷雖乏人
자고이치지 부이중재지인 사유관어환수 막불상기 이황어강개지사호 여금조정수핍인
이처럼 예로부터 [사람들은 환관과 관계를 가지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환관과 관련되면 기가 상하지 않음이 없다고 여기는데 강개한 선비야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금 조정에 아무리 인재가 모자란다고 한들
奈何令刀鋸之餘 薦天下豪俊哉 僕賴先人緖業 得待罪輦轂下 二十餘年矣 所以自惟
내하령도거지여 천천하호준재 복뢰선인서업 득대죄연곡하 이십여년의 소이자유
어찌 저같이 칼과 톱(형구(刑具))의 형을 받은 사람이 호걸을 천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선친의 유업으로 인해 군주의 수레바퀴 밑에서 대죄(관직에 있다는 의미임)한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컨대,
上之 不能納忠效信 有奇策才力之譽 自結明主 次之 又不能拾遺補闕 招賢進能 顯巖穴之士
상지 불능납충효신 유기책재력지예 자결명주 차지 우불능습유보궐 초현진능 현암혈지사
위로는 충성과 신의를 다해 훌륭한 계책을 세워 재능이 있다는 명예를 얻어도 밝은 군주와 맺을 수 없습니다. 또 [정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결여된 것을 메우며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천거하거나 초야에 숨어있는 선비를 조정에 드러나게 할 수도 없습니다.
外之 又不能備行伍 攻城野戰 有斬將搴旗之功 下之 不能積日累勞 取尊官厚祿 以爲宗族交遊光寵
외지 우불능비행오 공성야전 유참장건기지공 하지 불능적일루로 취존관후록 이위종족교유광총
밖으로는 군대를 거느리고 성을 공격하며 들에서 싸워 적장의 목을 베고 기를 빼앗는 공로도 세울 수 없습니다. 아래로는 오랫동안 공을 쌓아서 높은 관직이나 두터운 봉록을 얻어 친척이나 벗들에게 영광과 은총을 입게 할 수도 없습니다
四者無一遂 苟合取容 無所短長之效 可見如此矣 嚮者 僕亦常측下大夫之列 陪外廷末議
사자무일수 구합취용 무소단장지효 가견여차의 향자 복역상측하대부지열 배외정말의
저는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도 성취하지 못하고 구차하게 영합했으나 아무런 일도 이루지 못한 바가 이와 같습니다. 이전에 저는 외람되이 하대부(下大夫)의 대열에 끼여 외정(外廷) 말석에서 논의에 참가했습니다.
不以此時引維綱 盡思慮 今已虧形 爲掃除之隸 在闒茸之中 乃欲仰首伸眉 論列是非 不亦輕朝廷
부이차시인유강 진사려 금이휴형 위소제지례 재탑용지중 내욕앙수신미 론열시비 불역경조정
그때 올바른 기강을 이끌어 내지도, 사려(思慮)를 다하지도 못하고 지금 이지러진 몸으로 청소나 하는 노예처럼 천한 사람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제서야 머리를 들고 눈썹을 펴면서 시비를 논하는 것은 조정을 가벼이 여기고 당대의 선비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羞當世之士邪 嗟乎 嗟乎 如僕尙何言哉 尙何言哉 且事本末 未易明也 僕少貧不羈之材 長無鄕曲之譽
수당세지사사 차호 차호 여복상하언재 상하언재 차사본말 미역명야 복소빈불기지재 장무향곡지예
아아! 저와 같은 인간이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일의 본말도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젊었을 때에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을만한 재능이 있다고 자부했으나 장성하고 난 후로는 시골에서조차 칭찬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主上幸以先人之故 使得奏薄伎 出入周衛之中 僕以爲戴盆何以望天 故絶賓客之知 亡室家之業
주상행이선인지고 사득주박기 출입주위지중 복이위대분하이망천 고절빈객지지 망실가지업
주상께서 다행하게도 저의 선친의 연고로써 저의 얕은 재주나마 받들 수 있게 해주셨으며 저는 그릇을 머리에 인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없다고 여겨 손님과의 왕래도 끊고 집안일도 잊어버렸습니다
日夜思竭其不肖之才力 務一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而事乃有大謬不然者夫
일야사갈기불초지재력 무일심영직 이구친미어주상 이사내유대류불연자부
밤낮으로 불초한 능력을 다하고 한마음으로 직무에 힘써 주상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일이 크게 잘못되어 그렇지 못했습니다
僕與李陵 俱居門下 素非能相善也 趣舍異路 未嘗銜盃酒 接慇懃之餘懁
복여이릉 구거문하 소비능상선야 취사이로 미상함배주 접은근지여환
저와 이릉(李陵)은 함께 문하시중으로 있었지만 평소에 친밀하지는 않았습니다. 취향이 서로 달라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없고 친밀한 교제의 즐거움을 나눈 적도 없습니다.
然僕觀其爲人 自守奇士 事親孝 與士信 臨財廉 取與義 分別有讓 恭儉下人
연복관기위인 자수기사 사친효 여사신 임재렴 취여의 분별유양 공검하인
그러나 제가 그 사람 됨을 보니 선비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며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며 선비들과의 사귐에 신의가 있고 재물에 청렴하며 주고받는 데는 의롭고 분별함에 겸양이 있고 아랫사람에게 공손ㆍ검약했습니다
常思奮不顧身 以徇國家之急 其素所蓄積也 僕以爲有國士之風
상사분불고신 이순국가지급 기소소축적야 복이위유국사지풍
항상 분발해 일을 하고 나라가 어려울 때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위급함에 군령을 내림은 그것이 평소에 쌓은 바였습니다. 저는 국사의 위풍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夫人臣出萬死不顧一生之計 赴公家之難 斯以奇矣 今擧事一不當
부인신출만사불고일생지계 부공가지난 사이기의 금거사일부당
무릇 신하된 자는 만 번의 죽음을 돌보지 않고 일생의 계략을 내어 조정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구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일을 하다가 하나만 부당하다고 해도
而全軀保妻子之臣 隨而媒糵其短 僕誠私心痛之 且李陵提步卒不滿五千
이전구보처자지신 수이매얼기단 복성사심통지 차이릉제보졸불만오천
자신과 처자식만 보전하기에 급급할 뿐인 신하들이 서로 따르며 그 잘못을 지어내어 모해하니 저는 진실로 마음속에 통분했습니다. 또 이릉은 5천 명도 채 되지 않는 보병을 거느리고
深踐戎馬之地 足歷王庭 垂餌虎口 橫挑彊胡 仰億萬之師 與單于連戰十有餘日
심천융마지지 족력왕정 수이호구 횡도강호 앙억만지사 여선우련전십유여일
적진 깊숙이 들어가 [흉노의] 왕궁까지 밟았으니 이는 호랑이 입에 먹이를 늘어뜨린 것과 같아 흉노의 억만 군사에게 도전하여 선우와 더불어 싸우기를 10여 일.
所殺過當 虜救死扶傷不給 旃裘之君長咸震怖 乃悉徵其左右賢王 擧引弓之人 一國共攻而圍之
소살과당 로구사부상불급 전구지군장함진포 내실징기좌우현왕 거인궁지인 일국공공이위지
죽인 자는 반이 넘었고 오랑캐는 사상자를 구조하려 오지도 못하자 털옷을 입은 흉노의 군장(君長)들이 모두 두려워 떨며 좌우의 현왕(賢王)을 소집하고, 궁수들을 모두 불러내어 온 나라가 함께 이릉의 군대를 공격하여 포위했습니다.
轉鬪千里 矢盡道窮 救兵不至 士卒死傷如積 然陵一呼勞軍 士無不起 躬自流涕 沫血飮泣 更張空弮
전투천리 시진도궁 구병불지 사졸사상여적 연릉일호로군 사무불기 궁자류체 말혈음읍 경장공권
아군은 천리 길을 옮겨 다니며 싸우다 화살이 다 떨어지고 막다른 길에 이르렀으나 구원병은 이르지 않고 사졸의 사상자가 쌓였습니다. 그러나 이릉이 한 번 외쳐 군사들을 위로하자 분기하여 저절로 감격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 군사가 없었습니다. 피로 얼굴을 씻고 울음을 삼키며 다시 맨주먹을 불끈 쥐고
冒白刃 北嚮爭死敵者 陵未沒時 使有來報 漢公卿王侯皆奉觴上壽 後數日 陵敗書聞 主上爲之食不甘味
모백인 북향쟁사적자 릉미몰시 사유래보 한공경왕후개봉상상수 후수일 릉패서문 주상위지식불감미
칼 날을 무릅쓰며 북쪽을 향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웠던 것입니다. 이릉이 아직 적에게 함락되지 않았을 때에 군사(軍使)가 조정에 보고하자 한나라 공경(公卿)ㆍ왕후(王侯)들은 모두 축배를 들며 황제를 축수했으나 그후 며칠 뒤에 이릉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황제는 식사해도 맛을 잊으시고
聽朝不怡 大臣憂懼 不知所出 僕竊不自料其卑賤 見主上慘愴怛悼 誠欲效其款款之愚
청조불이 대신우구 부지소출 복절부자료기비천 견주상참창달도 성욕효기관관지우
조회에 참석해도 기뻐하지 않아 대신들도 걱정과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비천하다는 것도 잊고 천자께서 몹시 슬퍼하시는 것을 뵙자 저의 자그마한 충성이나마 다하려 했습니다
以爲李陵素與士大夫絶甘分少 能得人死力 雖古之名將不能過也 身雖陷敗
이위이릉소여사대부절감분소 능득인사력 수고지명장불능과야 신수함패
이릉은 평소에 병사나 대부들과 어려움을 함께 하고 고락도 같이하여 그들의 사력을 다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으니 비록 옛날의 명장이라 할지라도 그보다 더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몸은 비록 패했으나
彼觀其意 且欲得其當而報於漢事已無可奈何 其所摧敗 功亦足以暴於天下矣
피관기의 차욕득기당이보어한사이무가내하 기소최패 공역족이폭어천하의
그 뜻을 보자면 기회를 얻어 한에 보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일은 이미 어찌할 수 없이 되었지만 그가 적을 무찌른 공로는 역시 천하에 드러내기에 족합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아뢰고자 했으나 길이 없었는데 마침 천자께서 하문(下問)하시므로 이릉의 공적을 말씀드려
僕懷欲陳之而未有路 適會召問 卽以此指推言陵之功 欲以廣主上之意 塞睚眦之辭 未能盡明 明主不曉
복회욕진지이미유로 적회소문 즉이차지추언릉지공 욕이광주상지의 색애자지사 미능진명 명주불효
뜻을 넓혀 드리고 다른 신하들의 비방을 막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을 다 밝히지 못해 천자께서 이해하지 않으시고
以爲僕沮貳師 而爲李陵遊說 遂下於理 拳拳之忠 終不能自列
이위복저이사 이위이릉유설 수하어리 권권지충 종불능자열
제가 이사장군(貳師將軍)을 비방하고 이릉을 위해 유세한다고 여기셔서 저를 옥리에게 넘기시니 저의 간절한 충심을 끝내 밝힐 수 없었습니다.
因爲誣上 卒從吏議 家貧貨賂不足以自贖 交遊莫救 左右親近 不爲一言
인위무상 졸종리의 가빈화뢰불족이자속 교유막구 좌우친근 불위일언
그리하여 황제를 속였다는 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옥리에게 구속될 때 집이 가난하여 속전(贖錢)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 친구들도 도와주지 않았고 주변의 친척들도 저를 위해 한 마디의 변호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身非木石 獨與法吏爲伍 深幽囹圄之中 誰可告소者 此眞少卿所親見 僕行事豈不然乎
신비목석 독여법리위오 심유령어지중 수가고소자 차진소경소친견 복행사기불연호
이 몸은 감정이 없는 돌이나 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홀로 법정에 끌려가 옥중에 깊이 갇히고 말았는데 저의 이 비통한 심정을 누구에게 호소라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진실로 소경께서도 직접 겪어보신 바와 같은 것으로, 저의 처지가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李陵旣生降 隤其家聲 而僕又佴之蠶室 重爲天下觀笑 悲夫 悲夫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
이릉기생강 퇴기가성 이복우이지잠실 중위천하관소 비부 비부 사미이일이위속인언야
이릉이 이미 살아서 항복함으로써 그 가문의 명성을 무너뜨렸고 저는 또 잠실(蠶室)에 던져져서(거세 되어) 거듭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슬프고 슬플 따름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정을 일일이 말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僕之先 非有剖符丹書之功 文史星歷 近乎卜祝之閒 固主上所戱弄 倡優所畜 流俗之所輕也
복지선 비유부부단서지공 문사성력 근호복축지한 고주상소희롱 창우소축 유속지소경야
저의 선친께서는 부부(剖符)나 단서(丹書)를 받을 만한 공로도 없었습니다. 천문ㆍ태사ㆍ율력과 같은 일을 담당했는데 이러한 일은 점장이나 무당에 가까워 본디 주상의 희롱하는 바로, 가수나 배우를 기르는 것에 불과하여 세속인들이 가벼이 여기는 것이기에
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螻蟻何以異 而世又不與能死節者 特以爲智窮罪極 不能自免卒就死耳
가령복복법수주 약구우망일모 여루의하이이 이세우불여능사절자 특이위지궁죄극 불능자면졸취사이 가령 내가 법의 심판을 받아 처형된다 해도 세상 사람들은 아홉 마리의 소(九牛)의 터럭 가운데 하나[구우일모]를 잃어버린 것처럼 미미하여 루의(螻蟻-땅강아지와 개미, 보잘 것 없는 것의 비유)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에서는 또 [나의 죽음을] 절의로 인한 죽음과 달리 지혜가 궁하고 죄가 극히 중해 스스로 모면할 수 없자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뿐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何也 素所自樹立使然也人固有一死 或重於太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趨異也 太上不辱先 其次不辱身
하야 소소자수입사연야 인고유일사 혹중어태산 혹경어홍모 용지소추이야 태상불욕선 기차불욕신
왜일까요? 평소에 이루어놓은 바가 그렇게 여기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 혹은 태산처럼 무겁고 혹은 기러기 털처럼 가볍습니다[태산홍모]. 이는 그 쓰임새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최상의 것은 선조를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다음은 자신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
其次不辱理色 其次不辱辭令 其次詘體受辱 其次易服受辱 其次關木索 被箠楚受辱 其次剔毛髮
기차불욕리색 기차불욕사령 기차굴체수욕 기차역복수욕 기차관목색 피추초수욕 기차척모발
그 다음은 자신의 도리와 안색(顔色)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 그 다음은 자신의 언사(言辭)와 교령(敎令)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몸이 결박당하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죄수복을 입는 치욕을 당하는 것, 그 다음은 손발이 묶이고 매질을 당하는 치욕을 받는 것, 그 다음은 삭발당하고
嬰金鐵受辱 其次毁肌膚 斷肢體受辱 最下腐刑極矣 傳曰 刑不上大夫 此言士節不可不勉勵也
영금철수욕 기차훼기부 단지체수욕 최하부형극의 전왈 형불상대부 차언사절불가불면려야
쇠고랑에 채이는 치욕을 받는 것, 그 다음은 살갗이 찢기고 몸뚱이와 손발이 잘리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요, 최하가 부형(腐刑)을 당하는 것으로서 가장 극형입니다. 전하는 바로는 "형벌은 상대부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말은 선비의 절의를 지키지 못하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猛虎在深山 百獸震恐 及在檻穽之中 搖尾而求食 積威約之漸也 故士有畵地爲牢 勢不可入
맹호재심산 백수진공 급재함정지중 요미이구식 적위약지점야 고사유화지위뢰 세불가입
사나운 호랑이가 깊은 산중에 있을 때는 온갖 짐승들이 두려워하지만, 함정에 빠지게 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구걸하는 것이니 이는 점차 위세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비는 땅 위에 금을 긋고 감옥이라 하여도 형세는 들어갈 수 없게 되고,
削木爲吏 議不可對 定計於鮮也 今交手足 受木索 暴肌膚 受榜箠幽於圜牆之中
삭목위리 의불가대 정계어선야 금교수족 수목색 폭기부 수방추 유어환장지중
나무를 깎아 형리(刑吏)라 해도 그를 대해 논의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계획된 것의 정한 바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손발이 나무 형구나 새끼줄에 묶이고 몸을 다 드러내어 채찍을 맞으며 옥중에 갇혀 있는데
當此之時 見獄吏則頭槍地 視徒隷則正心惕息 何者 積威約之勢也 及以至是 言不辱者 所謂强顔耳
당차지시 견옥리칙두창지 시도례칙정심척식 하자 적위약지세야 급이지시 언불욕자 소위강안이
이러한 때를 당해 옥리를 보면 땅에 머리를 대어 조아리고 교도관을 보면 두려워 숨이 막히는데 왜 그렇겠습니까? 오랫동안 감옥에 갖혀 [자신의] 위세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고도 치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소위 뻔뻔스러운 사람일 뿐입니다.
曷足貴乎 且西伯伯也 拘於羑里 李斯相也 具于五刑 淮陰王也 受械於陳
갈족귀호 차서백백야 구어유리 이사상야 구우오형 회음왕야 수계어진
그러니 이를 어찌 귀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서백(西伯)은 백(伯: 제후의 우두머리)이었으나 유리(羑里)에 갇혔었고 이사는 재상이었으나 오형을 받았습니다. 회음왕은 진나라에서 형틀에 매이고
彭越張敖 南面稱孤 繫獄抵罪 絳侯誅諸呂 權傾五伯 囚於請室 魏其大將也 衣赭衣 關三木
팽월장오 남면칭고 계옥저죄 강후주제려 권경오백 수어청실 위기대장야 의자의 관삼목
팽월(彭越)과 장오(張敖)는 남면(南面)하여 왕을 칭했으나 감옥에 갇혀 죄를 받았으며 강후는 여씨(呂氏)들을 타도하여 권력이 오패(五覇)를 능가했으나 청실(請室)에 갇혔고 위기후(魏其侯)는 대장(大將)이었으나 죄수복을 입고 목과 수족에 고랑이 채워졌습니다.
季布爲朱家鉗奴 灌夫受辱於居室 此人皆身至王侯將相 聲聞隣國 及罪至罔加
계포위주가겸노 관부수욕어거실 차인개신지왕후장상 성문린국 급죄지망가
계포(季布)는 주가(朱家)에 의탁해 목에 칼을 쓴 노예가 되었고, 관부(灌夫)는 거실(居室)에서 치욕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왕후장상 출신으로 명성을 이웃나라에까지 떨쳤으나 죄에 얽혀 판결이 내려졌을 때에
不能引決自裁 在塵埃之中 古今一體 安在其不辱也 由此言之 勇怯勢也 强弱形也
불능인결자재 재진애지중 고금일체 안재기불욕야 유차언지 용겁세야 강약형야
스스로 결단하지는 못하고 티끌(진세) 속에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로 그것이 어찌 욕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로 말하건대 용기와 비겁함은 세에, 강함과 약함은 형편에 의함이니
審矣 何足怪乎 夫人不能早自裁繩墨之外 以稍陵遲 至於鞭箠之間 乃欲引節 斯不亦遠乎
심의 하족괴호 부인불능조자재승묵지외 이초릉지 지어편추지간 내욕인절 사불역원호
이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겠습니까? 대저 사람이 처벌되기 전에 일찌감치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다가 매를 맞고서야 절개를 지키려고 한다 해도 이는 역시 때늦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古人所以重施刑於大夫者 殆爲此也 夫人情莫不貪生惡死 念父母顧妻子
고인소이중시형어대부자 태위차야 부인정막불탐생악사 염부모고처자
옛 사람들이 대부(大夫)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을 어렵게 여긴 까닭은 이 때문인 듯합니다. 대저 인간의 본심은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싫어하며 부모를 생각하고 처자를 돌보려 하는 것입니다.
至激於義理者不然 乃有所不得已也 今僕不幸 早失父母 無兄弟之親 獨身孤立
지격어의리자불연 내유소불득이야 금복불행 조실부모 무형제지친 독신고립
의리에 격발된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이는 부득이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불행하게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가까운 형제도 없이 홀로 외롭게 서 있습니다.
少卿視僕於妻子何如哉 且勇者不必死節 怯夫慕義 何處不勉焉 僕雖怯懦 欲苟活 亦頗識去就之分矣
소경시복어처자하여재 차용자불필사절 겁부모의 하처불면언 복수겁나 욕구활 역파식거취지분의
소경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자에 대해서는 어떻다고 여기십니까? 또 용기있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절개를 지켜 죽는 것도 아니며 비겁한 사내라도 능히 의(義)를 사모하면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비록 비겁하고 나약하여 구차하게 살고자 하지만 또한 생사의 명분도 또한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何至自沈溺縲紲之辱哉 且夫臧獲婢妾 由能引決 況僕之不得已乎
하지자침익류설지욕재 차부장획비첩 유능인결 황복지불득이호
어찌 스스로 몸이 묶여 감옥 안에 갇힌 채 치욕 속으로 스스로 빠지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저 천한 노복이나 하녀조차도 능히 자결할 수 있는데 하물며 저와 같은 사람이 어째서 자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所以隱忍苟活 幽於糞土之中而不辭者 恨私心有所不盡 鄙陋沒世 而文采不表於後世也
소이은인구활 유어분토지중이불사자 한사심유소불진 비루몰세 이문채불표어후세야
고통을 감내하고 더러운 치욕 속에서 구차하게 살면서도 사양하지 않는 까닭은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지 못한 채 비루(鄙陋)하게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면 후세에 문채(文彩)가 드러나지 않을 것을 한스러이 여겨서입니다.
古者 富貴而名摩滅 不可勝記 唯倜儻非常之人稱焉 蓋文王拘而演周易 仲尼厄而作春秋
고자 부귀이명마멸 불가승기 유척당비상지인칭언 개문왕구이연주역 중니액이작춘추
예전에 부귀하면서도 이름이 마멸된 인물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이 많았지만 오로지 뜻이 크고 기개 있는 비상한 인물들은 칭송을 받았습니다. 문왕(文王: 서백 창)은 구금된 뒤에 주역(周易)을 연역했고 공자(孔子)는 곤경에 빠지셨을 때 《춘추(春秋)》를 지었습니다.
屈原放逐 乃賦離騷 在丘失明 厥有國語 孫子臏脚 兵法脩列 不韋遷蜀 世傳呂覽
굴원방축 내부이소 재구실명 궐유국어 손자빈각 병법수열 불위천촉 세전여람
굴원(屈原)은 추방되어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먼 후에 《국어》를 편찬했으며 손빈은 다리가 잘린 뒤에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가 촉으로 쫓겨난 뒤에 《여람(여씨춘추)》이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韓非囚秦 說難孤憤 詩三百篇 大抵聖賢發憤之所爲作也 此人皆意有鬱結 不得通其道 故述往事
한비수진 세난고분 시삼백편 대저성현발분지소위작야 차인개의유울결 불득통기도 고술왕사
한비자(韓非子)는 진(秦)나라에 잡히고서 〈세난(說難)〉, 〈고분(孤憤)〉을, 《시경(詩經)》의 300편 시는 대개 성현의 발분(發憤)으로 찬정된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가슴에 맺힌 바가 있었으나 그 뜻을 통하게 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思來者 乃如左丘無目 孫子斷足 終不可用 退而論書策 以舒其憤 思垂空文以自見
사래자 내여좌구무목 손자단족 종불가용 퇴이논서책 이서기분 사수공문이자견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줄 것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좌구명과 같이 눈이 멀고 손빈과 같이 발이 잘린 사람은 끝끝내 세상에서 쓰이지 않자 물러나 책으로써 꾀하는 바를 논하여 울분을 펴면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습니다.
僕竊不遜 近自託於無能之辭 網羅天下放失舊聞 略考其行事 綜其終始 稽其成敗興壞之紀
복절불손 근자탁어무능지사 망라천하방실구문 약고기행사 종기종시 계기성패흥괴지기
저는 불손하게도 감히 무능한 문장에 스스로를 기탁하려고 천하의 산실(散失)된 구문(舊聞)을 망라하여 행해진 일을 대략 상고하고 시작과 결말을 종합하여 성공과 실패, 흥성함과 쇠망함의 이치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上計軒轅 下至于玆 爲十表 本紀十二 書八章 世家三十 列傳七十 凡百三十篇
상계헌원 하지우자 위십표 본기십이 서 8장 세가삼십 열전칠십 범백삼십편
그리하여 위로는 현원(황제(黃帝))에서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표〉 10편, 〈본기〉12편, 〈서〉8장, 〈세가〉 30편, 〈열전〉70편 등 무릇 130편을 지어
亦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草創未就 會遭此禍 惜其不成 是以就極刑而無慍色
역욕이구천인지제 통고금지변 성일가지언 초창미취 회조차화 석기불성 시이취극형이무온색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一家)의 말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초고가 아직 이루어지기도 전에 이런 화난을 당했는데 애석하게도 이 일을 다 완성하지 못했으므로 비록 극형을 당했으나 부끄러워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僕誠以著此書 藏諸名山 傳之其人 通邑大都 則僕償前辱之責 雖萬被戮 豈有悔哉
복성이저차서 장제명산 전지기인 통읍대도 즉복상전욕지책 수만피륙 기유회재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여러 명산(名山)에 보관했다가 내 뜻을 알아줄 사람들에게 전해 고을과 큰 도회지에 알려지게 하려는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이전에 치욕을 참은 점에 대한 질책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몇 만 번 주륙(誅戮)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함이 있겠습니까?
然此可爲智者道 難爲俗人言也 且負下未易居 下流多謗議 僕以口語遇遭此禍 重爲鄕里所戮笑
연차가위지자도 난위속인언야 차부하미역거 하류다방의 복이구어우조차화 중위향리소륙소
그러나 이는 지혜로운 사람에겐 말할 수 있지만 속인에게 말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죄를 지은 자는 처신하기가 쉽지 않고 하류층들은 비방의 말이 많은 것입니다. 제가 말을 삼가지 못하여 이러한 화를 입고 거듭 마을 사람들의 조소거리가 되어
以汚辱先人 亦何面目復上父母丘墓乎 雖累百世 垢彌甚耳 是以腸一日而九廻 居則忽忽若有所亡
이오욕선인 역하면목복상부모구묘호 수루백세 구미심이 시이장일일이구회 거즉홀홀약유소망
선조를 욕되게 했으니 또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의 산소 앞을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백세(百世)의 세월이 흘러도 저의 수치로움만 심해질 뿐입니다. 이로 인해 하루에도 수없이 애간장이 타고, 집에 있으면 망연자실하여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하며
出則不知其所往 每念斯恥 汗未嘗不發背沾衣也 身直爲閨閤之臣 寧得自引於深藏岩穴邪
출즉불지기소왕 매념사치 한미상불발배첨의야 신직위규합지신 영득자인어심장암혈야
문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할른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이러한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려내려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몸이 환관과 같이 되었으니 어찌 스스로 깊은 바위굴 속에 숨어 은거할 수 있겠습니까?
故且從俗浮沈 與時俯仰 以通其狂惑 今少卿乃敎以推賢進士 無乃與僕私心刺謬乎
고차종속부심 여시부앙 이통기광혹 금소경내교이추현진사 무내여복사심자류호
그래서 잠시 세상의 부침에 따르고 시대와 더불어 행동함으로써 미쳐서 혹한 것과 통하고 있습니다. 지금 소경께서 저에게 현인을 추천해 달라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는 저의 개인적인 속뜻과 어긋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今雖欲自雕琢曼辭以自飾 無益於俗不信 適足取辱耳 要之 死日然後是非乃定
금수욕자조탁만사이자식 무익어속불신 적족취욕이 요지 사일연후시비내정
지금 비록 제가 스스로를 가다듬어 미사여구로 제 자신을 꾸미려 한다고 해도, 아무런 유익함이 없고 사람들도 믿지 않을 것이니 치욕이나 얻기에 알맞을 뿐일 것입니다. 요컨대 죽을 날을 기다린 연후에야 옳고 그름이 판명될 것입니다.
書不能悉意 略陳固陋 謹再拜
서불능실의 약진고루 근재배
글로써는 능히 진심을 다 쓸 수 없는 저의 고루한 생각을 대략 늘어놓았습니다. 삼가 재배합니다.
[출처]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