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레슬링 특집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평소 무한도전이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발군의 오락성을 선보였던 바, 이번에도 어떤 식으로 그림이 그려질지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일설에는 올림픽 정식종목이기도 한 아마레슬링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프로레슬링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아직 방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찌 보면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것을 미리 알려주기도 쉽지 않겠지요. 일단 저는 무한도전이 준비하고 있는 레슬링 특집이 프로레슬링 이라는 전제하에 저의 생각을 준비해 봤습니다.
무한도전 프로레슬링에 대한 여러 기사들
무한도전에 나온 여러 가지 레슬링 코드들
무한도전을 보다 보면 종종 프로레슬링에 대한 코드들이 보이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에 했던 달력 특집에서는 정준하씨와 노홍철씨가 각각 얼티밋 워리어와 헐크 호간 분장을 완벽히 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최근 WWE를 즐겨보는 팬들이라면 잘 모를 80년대의아이콘을 선정한 것도 그렇고 그 코스튬의 정확도에서 무한도전의 중심에 있는 김태호 피디의 성향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부분이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모한 도전에서 했던 프로레슬링
사실 MBC와 프로레슬링의 관계는 매우 역사가 깁니다. 과거 김일, 역발산 경기를 최동철 아나운서가 독점적으로 중계를 하기도 했었고, 2006년엔 15년 만에 공중파에서 프로레슬링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그 경기에서 해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관계 때문인지 MBC의 여러 예능 오락프로그램에는 프로레슬러가 자주 등장합니다. 최근 방영중인 코미디 프로 ‘하땅사’에는 안재홍 선수가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출연했고, 그 이전에는 이종격투기와 프로레슬링을 믹스한 ‘삼종격투기’라는 개그 코너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무한도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무모한 도전에서 이미 프로레슬링 특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무모한 도전에서는 이왕표 관장이 출연해서 제자리 점프로 드롭킥의 높이를 서로 경쟁하는 등 오락프로그램의 요소를 보여주었습니다.
2006년 프로레슬링 대회 해설중 TNA 레슬러 랜스 호잇과 대립중인 필자
무한도전 프로레슬링에 거는 기대
무한도전은 국내 오락프로그램에서 ‘리얼’이란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획기적인 전기를 만들어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작년에 기획했던 좀비특집편은 출연자가 컨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몇 개월간의 준비과정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그것을 그대로 내보냄으로써 TV 화면이 더 이상 기쁨과 즐거움만으로 가득 찬 원더랜드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리얼컨셉의 무한도전이라면 기존의 프로레슬링이 갖고 있던 오락적인 요소와 출연자의 코믹함을 강조했던 구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단 몇 십분 만에 끝나버린 수 개월간의 기획. 리얼 버라이어티가 보여준 참혹한 현실 (사진출처: 무한도전 좀비특집 방송화면)
프로레슬링의 커밍아웃이 이루어질까
프로레슬링이라는 것은 선수의 캐릭터와 경기 내용에 있어서 일종의 약속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이루어 집니다. 혹자는 이것을 쇼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고통의 오페라 라고도 하지요.
‘리얼이다 아니다’ 라는 진부한 논란이 미국이나 일본 같은 곳에서는 이미 정리가 됐습니다만 국내의 경우엔 이 부분에 대해선 아직 정리가 안됐습니다. 몇 해전 장태호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에 의해서 ‘바디 크러쉬’라는 일종의 산학협동 프로레슬링 조직이 탄생하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레슬링은 쇼"라는 것은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 리얼리티 이전에 화려한 볼거리로 승부를 걸겠다고 했습니다만 이 단체는 대화 한번 열어보지 못하고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좋은 시도였고 미디어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지만 과격하고 급진적인 커밍아웃은 기존 단체의 반발은 물론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팬들의 반발도 사고 말았습니다.
무한도전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생활체육으로서 레슬링이 적극 권장되고 우수한 인재로 인정을 받거나 이른바 사회 지도층으로 가기 위해선 위해서는 체육을 통한 인성교육 및 육체단련을 하나의 준거로 삼는 미국에서는 프로레슬링이 갖고 있는 여러 매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일종의 쇼 입니다만 그 아래엔 선수들의 부단한 노력과 희생이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죠. 어느 종목이든 직접 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해 본 사람들은 프로레슬러들이 얼마나 노력을 해야 저런 기술들이 많이들 납득을 하는 편입니다.
국내에서도 매니아들은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역이던 악역이던 그에 맞추어 환호와 야유를 보낼 때도 어느 정도 선을 그어줍니다.
가령 저의 경우엔 악역 레슬러라서 뭔가 쓰레기 더미 같은 게 날라올 때도 있지만 그것은 저의 도발에 의한 반응이며 관중들도 제 얼굴에는 맞지 않게 바닥 쪽으로 던지지요. 무한도전이 갖고 있는 틀 안에서라면 매우 진실되고 가감 없이 이러한 면이 드러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헐크 호간 그리고 얼티밋 워리어로 분장한 정준하씨 그리고 노홍철씨 (사진출처: 무한도전 홈페이지)
무한도전과 프로레슬링의 닮은 꼴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라고는 하지만 결코 대본 또는 사전기획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김태호 피디도 이 부분에 대해선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유재석씨는 내용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어도 연기력이 좋아서 잘 넘어간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방송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면 아니 영상촬영과 편집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대본 또는 사전기획 없이 생짜로 영상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연예인 6명을 데리고 준비된 기획 없이는 불가능하겠지요. 여기서 리얼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오락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미덕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뿐더러 개입 가능한 최소한의 수준에서 생생함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프로레슬링도 이런 면에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와 쌍생아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한도전과 프로 레슬링 모두 리얼과 환타지의 데칼코마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처럼 확연한 선과 악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프로레슬링의 대립구도와 강렬한 타격감과 호쾌함으로 관중을 매료시키는 기술들. 그리고 그것을 구현해 내기 위한 출연진의 노력. 얼마나 걸출한 작품이 나올지 레슬러 이전에 무한도전의 팬으로서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방영일이 정말 기다려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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