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
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
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여기에 안식일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복을 주셨다는 말과 함께 하나님께서 '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대로 어떤 목적을 위해 따로 구별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그 날에 복을 주셨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안식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하고 난 후 오랜 역사 동안에 안식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않다가 출애굽기 20장에 가서야 처음으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안식일 지킴의 근거로 창조기사를 대십니다. "내가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칠 일째 쉬었다. 그러므로 너희도 안식을을 지켜 아무 일도 하지마라'
그리고 딱 40년후 다시 신명기에서 안식을을 명하시는데 여기서는 그들이 애굽 땅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를 하시고 일곱 째날 안식을 취하셨다는 것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것, '구속', '죄 사함'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
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
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
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 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
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
일지니라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
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 일에 쉬어 평안
하였음이니라 하라
여기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표징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표징이 몇가지가 있는데 첫번째가 할례이고 그리고 안식일입니다. 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이 언약 백성의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 7days life cycle을 을 가진 민족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벨론은 monthly cycle을 이집트 같은 나라는 태양신을 섬겼기에 1day life cycle 을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7days life cycle을 지키게 됨으로써 '세상의 모든 잡신들은 다 가짜고 오직 여호와만이 창조주이시고, 오직 이스라엘만이 진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것을 누리며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제정은,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들을 구원해 내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천국 생명을 허락하시겠다는 것의 언약의 실체입니다. 바로 안식일이 그 표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언약의 밖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의 표징인 안식일을 범하면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엄명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 언약의 밖에 있는 자들은 이렇게 죽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단지 그날, 토요일이 무언가 범상치 않은 대단한 날이라서가 아니라 그 날이 갖고 있는 , 그날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얻게 될 영생이요, 구원이기 때문에 그 날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였습니다.
골로새서 2장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
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 입니다. 그 실체는 그리스도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범하는 자를 죽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자들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완전한 구원과 천국의 영생을 상징하는 것이였기에 우리 예수님깨서 안식일에 바리새인들의 비방아래 유독 병자들을 고치신 것이고, 천국에서는 오직 절대적 하나님 의존적 존재로 사는 생활이기에 구약에서 안식일에 일한 자를 죽인 것입니다.
이제 그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된 그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며 소망하며, 그 나라를 직접 누리기도 합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갖고 있던 의식적인 면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 사라졌지만 그 정신과 의미는 그대로 오늘날 주일에 배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이 그러했듯이 그 날을 무작정 지키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 날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누리는 것이 정말로 그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또 다른 율법주의가 들어와서 우리가 주일 날 왜 모여서 예배를 하는지 그리고 그 날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단순히 ' 난 주일을 지켰어, 난 교회 안 빼먹었어' 라는 열심히 난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 주일의 의미를 잘알고 있고 평소에도 그 안식을 잘 누리실 수 있는 사람이라면 꼭 주일 날 예배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날에 들어있는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의 일요일은 한국의 월요일 입니다. 날짜에 얽매 이시면 안됩니다. 중앙아시아의 어떤 작은 나라에 가신 선교사님은 그 나라의 휴일이 목요일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는 목요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답니다.
-김성수 목사의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p153-159 요약-
"그러나 어떤 정해진 날을 택하여 성도가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비한 떡을 떼며 공적으로 기도하며 일군들을 노동에서 쉬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날을 정해 놓치 않으면 어떻게 그런 모임을 가질 수 있겠는가? 혹자는 날을 구별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날마다 모이자고 한다. 그런데 날마다 모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은 실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정한 시간을 영적인 지혜를 위해서 정하는 것은 진실로 가치 있는 일이다." -요한 칼빈-
"이런 글을 보고 맘 편히 주일을 범하는 자들이라면 가라지가 아닐까 라고 조심스래 생각해 봅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구원받은 죄인이기에 이런 가르침으로 순간 악용하여 죄를 지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습관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되려 안식일의 참의미를 깨닫고 모든 날을 안식의 참 의미를 살려 할 것이요, 또 모든 교회가 모이는 공예배인 주일날 예배에 진정한 열심과 정성으로 임할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 요약이라 내용의 논리가 안맞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김성수 목사님의 해석에 동의하면서 글을 올려 봅니다^^"
첫댓글 합신의 김성수 교수님을 말씀하시는 건지요?..저도 이 글과 같은 입장입니다만...^^
LA 남가주서머나 의 김성수목사님 이십니다^^;;;
저는 오늘 누가복음 6장 5절 말씀을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오늘날 문자적으로 안식일을 지킬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취지는 좋다고 늘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도 그렇고 주일성수도 그렇고, 한 주간 하루도 주님 앞에 제대로 헌신하여 드리지 못하면서 모든 날이 안식이라는 말은 궤변에 불과합니다. 십일조 역시 마찬가지지요 십분의 일도 온전히 드리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말은 삶과 믿음이 다른 궤변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주일은 오늘도 거룩한 안식일로 공동예배를 위해 선행을 위해 구별하여 드려야 하는 날입니다.
제가 전에 섬기던 목사님은 주일날 당신 생일이라고 당신 가족들 데리고 저녁 예배 전에 외식을 나가시더군요 오늘날 백화점 출입, 식당 출입, 심지어 노래방 출입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한국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일성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면 되죠 실제로 미국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죠 라디오 스테이션이 있는 교회들은 야외로 나가서 가족들이 라디오를 들으며 예배드리고 헌금은 온라인으로 합니다. 그러면서 안식한다고 마음에 믿으면 진정한 안식이 찾아올까요 ^^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들어가야 할 안식이 남았고, 마 12장은 안식을 묻는 바리새인에게 주님은 성전으로 답하십니다. 이 의미를 곱씹으면 우리에게 여전히 하늘의 도성에 들어가기 까지 그것을 사모함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린다고요? 정말 충격적입니다. 라디오를 들으며 예배드린다고요? 더욱 충격입니다.
예배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영적인 의미도 있지만, 문자적인 실행도 가르치고 있음을 믿어요.
오늘날 형식을 무시하고 중심만 바르고 정신만 지키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요.
형식이라는 틀도 중요합니다. 어떤 틀과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서 그 모양이 달라지고 습관화 되기 때문입니다.
또 많이 사람이 필요없다고 하는 형식 때문에 오늘 한국교회가 이만큼이라도 서 있는 근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형식주의나 문자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하지만, 분명한 교회의 진리가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율법폐기론자들은 바보새님이 위에서 언급하신 그 궤변을 늘 말하더군요... <-- 바보새님의 위의 덧글자체 혹 위 서너나교회 김목사의 글이 괘변이라는 것이 아니라 위 바보새님이 언급한 두 가지 괘변의 예문을 두고 말함입니다.
<십일조도 그렇고 주일성수도 그렇고, 한 주간 하루도 주님 앞에 제대로 헌신하여 드리지 못하면서 모든 날이 안식이라는 말은 궤변에 불과합니다. 십일조 역시 마찬가지지요 십분의 일도 온전히 드리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말은 삶과 믿음이 다른 궤변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말.. 혹시 오해할까 싶어..
김성수목사님의 다른설교에서 주일을 제대로지키지 않는 성도들에 대한 책망을 하시는것을 들었습니다.그러나중요한것은 책망의 근거가 그것이 단순히 계명이러서가 아니라 안식인의 참된 의미를 아는 자가, 즉구원받은자가 아무렇지도않게 예배를 빠지는 것에대한 것이였습니다..
저는 위글의 취지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주일은 안식일과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의 본질적 의미를잘알고 지키되 주일에 빠지고 놀러가서 사고가 났다느니의 안식일적 사고를버리라는 거라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주일날나왔다고 지킨것이아니라 정말 의미를 되새기면서 지키라는 것으로 보이구요^^
인간이 여전히 약하고 부족하기에 성경적인 형식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헌금이나 교회당으로 모임같은건 성도의 온전한교재의 관점이 아닌가 싶구요. 이런주장을 한다고 율법폐기론자는 절대로아닙니다^^ 다만 신약의 방법으로, 율법을 다지키시고 완성하신 그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갈뿐이죠^^
어이쿠~! 제가 너무 늦게 보았군요...
주님의 장막님 제가 위에서 <율법폐기론자>라고 한 것은
위의 서머나 김목사님의 글을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
위의 바보새님이 언급한 <궤변의 두 가지 예문>을 두고
율법폐기론자들이 그러한 두 가지 예문의 궤변을 하더라.. 라고 한 것입니다.
절대 위의 서머나 김목사의 글을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해 풀어주세요~!
예^^ 오해 없습니다^^ 죽으나 사나 주를 위해 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다신 댓글인거 압니다^^
성화의 하나님 주권을 비교적으로 더 강조하여 결과적으로 어느 성도가 순간 나태해지는 결과가난다고해서 그 설교자가 율법폐기론아가 아니듯 안식일과주일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하여 결과적으로 이런사람들을 율법폐기론자라 비약하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아는 전도사님 교회에서 초신자에게 예정론을 말했다가 화가
나가 그 사람이 가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해준 사람이 잘못은아니지않습니까? 이런맥락에서 비록 일부가 안식일과 주일에 대해 다른견해가있다해도 마치 하나님영광을 가리기위할거라는이분법적 사고는 자제해주시길^^
공예배를 안드리면서 삶의 예배를 드릴수가 없고 삶의 예배없는 공예배또한 무의미하듯이 주일을 특별하게 생각하면서 예배와 안식의 날로 기념하는 사람은 매일을 거룩하게 지낼수 있는 기본이 시작되는것이고 삶의 거룩없는 주일성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거룩 즉 구별을 훈련하는 의미에서도 주일을 잘 지키는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너무나 간사하기에 주일성수를 무시하고 십일조기준을 무시하면서 매일성수와 다 주님의 것이라는 중심의 물질생활을 한다는것은 참으로 힘들것입니다,
특별한 경우 예배당에 나가서 공예배에 참석하지 못할경우 인터넷이나 라디오로 예배를 드리면서 진정 주님을 찬양한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상식선에서 예배당예배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에도 그런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잘못된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도 안식일을 지키고 공의를 행하는자에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일을 공예배의 날로 사모하고 구별하는 마음을 가짐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레이스님. 우선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그레이스님의 말씀을 잘 이해했고, 그 의미적 측면에서 어떻게 주일을 지켜야 하는지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적 측면에서는 사실 그레이스님의 말씀에 이견을 가질 사람은 거의 없을 듯 싶습니다. 하지만 좋은 말씀인데도 불구하고 아쉬운건 그레이스님의 글은 다시 논의의 원점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런 접근은 문제가 풀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살만 찌우게 됩니다. 바보새님의 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우선 바보새님은 이 양 견해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계시고
그것을 목회적 측면에서 볼 때, 어떤 취지만을 생각해 거기에 무질서하게 반응하게 된다면 많은 타협점들이 발생함으로 인해 그러한 걱정을 하시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로미님의 글은 납득이 되질 않는군요. 4계명의 해석을 달리 한다고 해서 그리고 그것이 분명히 개혁주의 안에서의 견해이고, 신뢰할만한 분의 글도 올려드렸는데 자신의 신학적 이해를 따라 동의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리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 문제를 직선적으로 풀어가시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아무런 대화가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타락전 혹은 후 예정론자들이 서로를 존중하듯이 동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판적 존중' 정도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반응은 올바른 토론을 위한 범위를 벗어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토론이 아닌 권위를(좋은 의미에서의) 주장하신다면 저는 이 카페의 견해에 깊이 수긍하며 존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율법 폐기론자들이라는 말씀은 제가 보기엔 이 문제의 글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요. 칼빈은 4계명에 대한 해석만을 쓰지 않았습니다. 웨스트민스터나, 하이델베르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머지 계명을 함께 공유해도 4계명에 대한 견해가 틀리면 이러한 평가를 하셔야 하는건지 궁금합니다
위 덧글 이제야 보았습니다. 위의 저의 율법폐기론자 언급은 서머나 목사의 글을 보고 한 이야기가 아닌 바보새님이 언급한 궤변의 두 예문을 두고 한 이야기니 오해 풀어주세요.. 그렇잖아도 제가 쓰고도 오해를 할까 싶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여러 오해살만한 표현으로 작성했네요.
아닙니다. 그리고 귀 기울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카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종교개혁자들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작성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제3용법으로서의 '거듭난 자들을 위한 감사의 규범'으로서의 율법을 전 깊이 인정하며 추구하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러한 전제들에 대한 상호존중이 대화 저변에 깊이 깔려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주일예배를 빠지면 안된다는 율법적 미신적 생각으로 아침일찍 예배를 때우고 골프치러가는 사람은 참된주일성수가 아니며 공익을 위해서 경찰서 소방서 종합병원등에서 주일날 꼭 근무를 해야하는 직장인이 비록 예배당에는 가지 못했을지라도 라디오예배라도 드리거나 그것조차 여의치 못할지라도 마음속깊이 주님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일을 주님의 일로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것도 주일성수입니다, 이것이 구약적 안식일준수와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주일이 아닌 수요일저녁이나 새벽기도회등 자신이 가능한 시간에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누가 주일을 범한자라 말할수 있을런지요.
주일날 외식을 하고안하고 그런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결혼하기전 다니던 당시 대치동 할렐루야교회는 독립교회지만 고신 합동측 목회자들이 사역을 하셨는데 제가 유년부 찬양율동샘을 하면서 어린이찬양대를 지휘하게 되어서 오후반에서는 다음주일 찬양대곡을 미리 연습하면서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는데 여름에 빙과류나 시원한 음료는 그전날 사서 보관할수 없으니 교회앞 가게에서 바로 가져와서 주는데 굳이 주일날 매매하지 못하게 하여서 그전날 미리 돈을 지불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른들은 주일날 외상으로 가져오고 그 다음평일날 돈을 갚더군요 . 주일날 돈을 쓰지말라는 것인데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
주일날 무조건 돈을 안쓰는것이 주일성수가 아닌데 말입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형편과 사정에 따라서 십일조정신으로 십의이조 할수 있고 20분의 일조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어쩌면 돈에대한 욕심을 뛰어넘을수 있는 최소의 기준으로 reasonable한 분깃점이 십일조가 아닌가도 생각합니다.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에 필요한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은 구약에서도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들을 사랑해서 주신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율법을 성령의 법으로서 지키게 되어 감사한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성령안에서 은혜로 지킬수가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늘 경건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성령안에서 율법즉 도덕법을 지킬려고 애쓰는 것은 경건의 연습입니다,성령안에 있어도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애쓰고 힘씀도 성령의 은혜입니다,그리고 주일성수나 십일조를 율법적으로 주장하면서 범하면 구원이 취소된다 큰일난나 겁주어서 지키게 하는것은 잘못이지만 그 정신은 참으로 귀한것입니다, 다만 십일조 아니 헌금에 대해서 아쉬운것은 무기명 헌금제도가 정착되어서 돈을 가지고 교회안에서 평가하고 평가받고 대우하는 폐습이 사라지고 또한 돈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교회나가는것이 힘든 형제자매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헌금드린 사람은 하나님께만 드린것이 되구요,
예, 잘 알겠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글 감사 합니다.^^
그레이스님의 댓글을 읽고 이스라엘에 선교사로 가신 분이 작년 9월쯤 오셔서 들려 주신 이야기가 생각 나네요 주일 아침에 이웃집 아주머니와 딸이 와서 도와 달라 길래(이들은 당연히 유대인임) 반가운 마음으로 이웃집으로 갔더니 전등이 나갔는데 주일날 그것 조차도 갈수가 없으니 도와 달라고 해서 전등을 갈아주고 불켜주고 왔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유대인 들에게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지요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지요 그레이스님의 댓글에 동감 하며~~
포커스님 여기에서도 활동하는군요..반갑습니다. ^^
저는 활동이 아니라 양무리에서 배우고 익히고 있는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