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25
제4장 탁탑천왕(托塔天王)
제13편 붉은 머리 귀신 13-3
그들은 배 안에서 서로 인사를 하고 갈대 속에서 헤쳐 나왔다.
한 곳에 이르니 높은 언덕에 몇 채의 초가집이 있었다.원소이는 노 젓던 손을
멈추고 초가집을 향해 외쳤다.“어머니, 소오 집에 있어요?”
그때 집 안에서 할머니 대답이 들린다.“그 녀석이 요새는 고기잡이도 안 나가고
노름판에 미쳐서 걱정이다. 조금 전에도 내 비녀를 빼가지고 달아났다.”
“그래요? 혹시 소오가 오거든 오 선생님이 오셨으니 곧바로 술집으로 오라고 일러주세요.”
배가 다리에 도착하자 소오가 비녀와 바꾼 듯싶은 꾸러미 엽전을 들고 노름판을
찾아가다가 그들과 만났다.네 사람은 주점을 찾아 물 위의 술집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오랜만에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잠시 후 오용이 말했다.“혹시 운성현 동계촌의 조보정이라는 이름 들어봤나?”
“탁탑천왕이라는 조개 말입니까?”“그분은 인물이네. 재물을 우습게 여기고, 의리를 중하게
아는 분이라 생사를 같이할 만한 사람이야.”“한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오용은 이제 실정을 털어놓아도 좋다고 생각했다.그는 원가 삼 형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사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따로 있네. 6월 보름날이
채태사의 생일인데, 그의 사위 양중서가 10만 관의 금은보화를 동경으로 올려 보낸다네.
그것을 유당이라는 천하의 호걸이 찾아와 도중에 뺏자는 의논이 되었네. 그래서 세 분이
의향만 있으면 함께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해서 찾아온 것일세.”그 말을 들은 원가 삼 형제는
평생소원이 이제야 이루어졌다고 좋아하면서 즉석에서 그 일에 찬성했다.
오용은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뻤다.그들은 그날 밤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새벽에 함께
석계촌을 떠났다.원가 삼형제가 마침내 오용을 따라오자 조개의 기쁨이 컸고, 그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연회를 열었다.이튿날 조개는 오용, 유당, 원가 삼 형제와 함께 장원 후당에서
향촉을 갖추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만약 우리 여섯 사람 중에 사심을 품는 자가 있다면 신령님께서 살피시어 죽여주시옵소서.”
여섯 사람이 차례로 맹세하고 종이돈을 불사른 다음 후당에서 술을 마셨다.
그때 하인이 와서 웬 선생이 보정을 만나자고 청한다고 전했다.조개는 말했다.
“내가 지금 귀한 손님들을 모시고 있으니 네가 알아서 잘 타일러 쌀 한 말쯤 줘서 보내라.”
“하지만 꼭 어른을 만나야 한다는군요.”조개는 할 수 없이 나가 손님을 만났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풍모가 수려한 남자였다.
그 남자는 하인들을 향해 호통을 치고 있었다.
“네 이놈들! 아무리 무지몰각한 놈들이기로서니 그렇게 사람을 못 알아본단 말이냐?”
조개가 그의 앞에 나가서 말했다.“선생! 고정하시오. 선생이 조보정을 만나시려는 것은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었습니까? 쌀을 드렸으면 그냥 돌아가실 것이지 왜 이토록
역정을 내십니까?”그러자 그가 크게 웃는다.“난 돈이나 쌀을 얻으러 온 게 아니오.
보정과 상의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촌놈들이 나를 몰라보니 심사가 뒤틀리지 않겠소.”
“그럼 무슨 말씀이신지 같이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내가 선생이 찾는 조갭니다.”
조개가 그를 안으로 안내하여 이름과 내력을 물었다.“저는 이름이 공손승(公孫勝)이오.
본래 계주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창봉을 익히고 도술을 배워 비와 바람을 자유자재로
부르고, 안개와 구름을 탈 수 있습니다.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입운룡(入雲龍)이라 합니다.
일찍이 운성현 동계촌의 조보정을 뵙고 싶었는데, 이제 하늘이 내린 10관의
금은보화가 있어 두 손으로 그것을 보정께 드릴 생각으로 찾아온 것이오. “
조개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물었다.
“선생의 말씀은 북경서 동경으로 가는 생일선물을 말하시는 것입니까?”
공손승은 깜짝 놀라 되묻는다.“보정께서는 대체 어떻게 아셨나요?”“그저 짐작으로
한 말입니다.”조개는 곧 그를 이끌고 후당으로 가서 오용의 무리 다섯 사람과 새롭게
인사를 시키고 공손승을 잘 접대한 후 거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26회에 계속-
★ 수호지(水湖誌) - 26
제5장 채태사의 생일 예물
제14편 황니강 탈취 사건 14-1
그때 북경 대명부에서는 양중서와 채 부인이 후당에 마주 앉아 예물 보낼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10만관의 생일 선물을 동경까지 무사히 가져
가느냐 이었다.그때 채 부인이 섬돌 아래를 가리켰다.“저 사람이 어때요?”
양중서는 채 부인이 가리키는 양지를 바라보았다.그처럼 적격자는 없었다.
양중서는 크게 기뻐하며 양지를 불렀다.“내가 너를 잊고 있었구나. 이번 생신 행차에
네가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은상의 분부시라면 어찌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상공의 생신 선물을 어떻게 보내시려는지 알고 싶습니다.”“마련이 다 되어 있느니라.
태평거 열채에 예물을 나누어 싣기로 했는데, 수레마다 <태사 생신축하>라고 쓴 노란
기를 꽂고 군사 한 명씩 수레 뒤를 따르게 하겠다. 모레 아침 일찍 떠나도록 하여라.”
양지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이 일은 아무래도 소인이 감당키 어려울까 합니다.
다른 사람을 구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그게 무슨 말이냐?”
“소인이 듣기로는 작년에도 예물을 올려 보내시다가 도중에 도적을 만나 모두 강탈당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여기서 동경까지는 수로가 없고 오직 길이 하나뿐인데, 그 가운데
자금산, 이룡산, 도화산, 산개산, 황니강, 백사오, 야운도, 적송림 등지는 모두 도적들이
출몰하는 유명한 곳 들입니다.
만약 금은보화가 통과한다는 소문이 나면 저들이 곱게 보낼 까닭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관군을 넉넉히 줄 테니 나서겠느냐?”“관군들이란 정작 도적의 무리들과 만나면
앞을 다투어 도망하기만 골몰하는데, 1만 명을 거느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네 말을 들으면 갈 수가 없겠구나.”
양중서의 이마에 주름살이 굵어지자 양지가 조용히 대답한다.
“은상께서 만약 제 어리석은 생각을 따르신다면 비록 소인이 재주는 없지만 이번 소임을
맡을 수 있습니다.”“이번 일을 네게 맡긴 터에 어찌 네 말을 안 듣겠느냐, 어서 네 생각을
말해 보아라.”“소인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예물을 그저 보통 나그네가 돈을 꾸려가지고
가는 것 같은 행색으로 꾸미고, 군사들 10명도 예사 짐꾼들처럼 꾸며서 각기 한 짐씩 지고
가게 한다면 비로소 길이 무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네 말이 그럴듯하다. 어서 그대로 행하여라.”
양지는 곧 특별히 가려낸 열명의 군사를 지휘하여 예물을 꾸리고 출발했다.
양지는 갓을 쓰고, 몸에 푸른 견직물 적삼을 입고, 허리에 전대를 차고 나섰다.
때는 5월 중순, 날은 맑았으나 심한 더위로 고생이 극심했다.
양지는 새벽 서늘한 시간에 길을 떠나고 한낮의 불볕더위에는 쉬었지만 북경을 떠난지
일주일이 되자 차츰 인가가 적어지고 행인이 드문 산길로 접어들었다.
더구나 관군들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걷기 때문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관군들은 그늘만 나타나면 짐을 부리고 쉬기 때문에 양지는 계속 재촉을 해야 했고,
말을 안 들으면 채찍을 들기도 했다.그러자 일행의 불만이 더욱 커졌다.
북경을 떠난 지 보름이 되는 6월 초나흘, 일행은 마침내 황니강에 도착했다.
험한 산과 좁은 산길을 더듬어 20여리, 해는 한낮이었고, 구름도 없이 햇빛만 이글이글
타올라 세상은 흡사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하늘에 나는 새도 날개를 접고 숲속 깊이 그늘을 찾아드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랴.
일행이 더 이상 걷지 못하고 고개 위의 나무 그늘에서 멈추었다.
그곳은 황니강으로 가는 도중 가장 악명 높은 도적떼들이 출몰하는 지역이므로
쉬어서는 안 되는 지역이었다.“일어나거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쉬려는 거냐?”
양지가 채찍을 들고 외쳤으나 관군들은 꼼짝도 안 했다.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 못 가겠소.”군사들은 땅에 쓰러진 채 꼼짝 안 했다.
양지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채찍을 어지럽게 쳤으나 한 놈을 일으켜 놓으면 한 놈이
쓰러지고 또 한 놈을 일으키면 또 한 놈이 쓰러져 도리가 없었다.
- 27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