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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Ladies Code 주니 ♡
주관입니다 GK 고든 뱅크스 잉글랜드와 잉글랜드 리그를 넘어 영연방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비록 뱅크스는 리버풀같은 명문 클럽에서 뛰진 않았으나, 레스터 시티와 스토크 시티같이 중위권 클럽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뱅크스의 라이벌은 역사상 레프 야신 뿐이다. RB 필 닐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이자 70~80년대 붉은 제국의 보루 68년 노샘프턴 타운에서 데뷔한 닐은 74-75년 겨울 리버풀로 이적했고, 86년 리버풀을 떠날 때까지 12시즌동안 650경기에 출전해 59골을 넣었다. 또한 무려 9시즌을 넘게 리그 연속 출장을 기록했다 (42x9 당시엔 리그가 42경기) 그 기간동안 8번의 1부리그 우승과 4번의 유로피언컵 우승 등 토탈 2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CB 바비 무어 말이 필요없는 잉글랜드와 잉글랜드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이다. 비록 다른 선수들처럼 수 많은 트로피의 영광을 누리진 못했다. 그러나 그는 매 시즌 모든 공격수들에게 환상적인 태클을 구사했고, 이 태클로 당대의 공격수들은 모두 좌절의 늪에 빠져버렸다. CB 앨런 한센 바비 무어와 더불어 영연방 역대 최고의 센터백이다. 필 닐과 붉은 제국의 보루를 담당했던 한센은 그의 뒤에 레이 클레멘스가 있었음에도 리버풀의 수호신 혹은 붉은 제국의 마지막 보루라는 말로 불렸었다. 77년 리버풀에 데뷔해 90년 리버풀을 떠날 때까지 620경기에 출장해 14골을 넣었고, 8번의 1부리그 우승, 3번의 유로피언컵 우승, 2번의 FA컵 등의 수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었다. LB 데니스 어윈 90년대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는 누구였을까? 피터 슈마이켈? 아니면 로이 킨? 아니면 에릭 칸토나? 물론 그들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중요한 선수들이였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숨은 영웅'이라고 칭송받는 이가 바로 데니스 어윈이다. 9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성한 이후 02년 떠날 때까지 529경기에 출장해 33골을 넣으며 수비수로서 득점력도 인정받았다. 또한 무려 7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등을 해냈고, 99년도엔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12경기에 출장하면서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CDM 던컨 에드워즈 유럽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재능을 가졌었다. 비록 비행기 사고로 인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보여 준 5시즌동안의 활약은 그를 이 자리에 넣기에 충분했다. CM 바비 찰튼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 잉글랜드 리그 역사에서도 그에 대적할만한 선수는 없다. 그에게 트로피를 앞설 사람은 있어도, 그의 영웅적 기질을 앞설 사람은 없다. 비행기 사고로 인해 무너져버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럽 정상에까지 올린데에 이어 당시엔 유럽 최우수 선수상이라 불리던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RWM 조지 베스트 버스비의 아이들 중 가장 스타성이 가장 뛰어났었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장인 올드 트래포드에는 항상 수 많은 여인들이 찾아가곤 했다. 그의 외모 만큼이나 실력 또한 화려했고, 63년 데뷔 이후 74년 맨유를 떠날 때까지 474경기에 출장해 181골을 넣으며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쳤다. 또한 1968년도엔 바비 찰튼, 빌 폴크스 등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럽 정상에 올렸고, 그 해 유럽 최우수 선수상인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LWM 라이언 긱스 잉글랜드 리그 역사에서 이 왼쪽 윙어 자리에서 긱스만큼 잘 어울리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조지 베스트처럼 센세이셔널하다 불릴만한 활약은 없었으나, 매 시즌 꾸준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긱스의 꾸준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긱스가 있던 지난 20년동안 잉글랜드 리그를 지배할 수 있었다. ST 지미 그리브스 잉글랜드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비록 그에겐 수 많은 트로피가 따라다니진 않았으나 그가 보여준 활약은 이 자리에 넣기에 충분했다. 득점왕을 무려 6회나 수상하며 잉글랜드 리그 역사상 최다 득점왕의 자리에 올랐고, 리그 통산 357골로 1부리그 역대 득점 1위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브스보다 이 자리에 어울리는 선수는 없다고 본다. ST 케니 달글리쉬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의 별명은 '킹' 1970~80년대 잉글랜드 리그와 유럽은 붉은 제국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케니 달글리쉬는 그런 곳의 '왕'으로 군림했다. 감독 알렉스 퍼거슨 딱히 뭐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만한 사람이다. 퍼거슨의 등장 전에 잉글랜드 축구 리그는 5명의 명장이 존재했다. 리버풀의 아버지 빌 샹클리와 그의 제자 밥 페이즐리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 맷 버스비와 지금 현재까지도 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허버트 채프먼 마지막으로 조제 무링요의 롤모델이자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던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까지.. 잉글랜드 리그 역사에는 많은 명장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 다섯 명은 항상 논쟁의 대상이였다. 아스날 팬들은 채프먼이 역대 최고라고 하고, 맨유 팬들은 버스비가 최고라고 한다. 또 리버풀의 팬들은 샹클리와 페이즐리가 최고라고 했고, 다른 타 팀팬들은 클러프를 치켜 세웠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은 지금까지도 논쟁의 대상이다. 물론 그 논쟁의 주제는 좀 바뀌었다. 예전에는 누가 잉글랜드 리그 역사상 최고의 감독인가? 였지만 지금은 누가 알렉스 퍼거슨에 이어 잉글랜드 리그 역사상 최고의 감독인가?로 바뀌었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팬들이 퍼거슨이 최고라고 한다. 그렇다고 샹클리, 페이즐리, 채프먼, 클러프, 버스비를 깎아 내릴 생각은 없다. 그들은 모두 그 시대 최고의 명장이였고, 지금 시대를 만들어 낸 장본인들이기도 하니까 SUB 1 스탠리 매튜스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윙어이다. 비록 뱅크스나 무어처럼 많은 트로피와 역사가 따라다니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잉글랜드 리그에서 뛴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트로피이고 하나의 역사였다. 그 증거로 발롱도르 최초의 수상자가 되었다. 물론, 이 발롱도르 수상에는 논란이 많았다. 성적으로 타냈다기 보단 공로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에서 매튜스의 위대함을 찾아볼 수 있다. 발롱도르라고 하면 당시엔 유럽 최우수 선수상이였다. 발롱도르의 후보로는 스테파노, 푸스카스 등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들이 있었다. 그러나 발롱도르의 주인공은 스테파노, 푸스카스도 아닌 매튜스였다. 물론 공로상이라는 논란이 있지만 매튜스는 그런 상을 받을 만큼 잉글랜드 리그 나아가 세계 축구계에 귀감이 되는 선수였다. SUB 2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한 선수였다. 스트라이커도 아니고 포워드도 아닌 사람이 한 시즌에 40골을 넘긴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호날두가 3년만 더 미친 활약을 펼쳤다면 역대 베스트11의 주전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SUB 3 피터 슈마이켈 사실 골키퍼가 스타성을 가지기는 매우 힘들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스타성을 가진 골키퍼라고 하면 소련의 神 레프 야신, 영연방 최고의 골키퍼 고든 뱅크스, 2002년 월드컵 MVP 올리버 칸, 00년대 최고의 골키퍼 지안루이지 부폰 등 스타성을 가진 골키퍼라고 하면 몇명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스타성을 가지기가 어렵다. 그리고 부폰, 칸, 뱅크스, 야신만큼 스타성을 가졌었던 선수가 바로 피터 슈마이켈이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동안 정말 믿을 수 없는 선방을 연이어 펼쳤고, 그런 선방에 힘입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트레블을 일구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명장 알렉스 퍼거슨은 지금까지 자신이 영입한 최고의 선수라고 하기도 했다. SUB 4 빌리 라이트 잉글랜드 리그 역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바비 무어와 더불어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추앙받고 있다. 1939년부터 1959년까지 울버햄튼에서 뛰면서 우승 한 번 못해 봤던 울버햄튼을 무려 3번이나 리그 정상에 올렸고, 3번이나 준우승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물론, 이 공이 오직 빌리 라이트에게만 있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울버햄튼이 1950년대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빌리 라이트의 존재'였다. 살아서 울버햄튼을 철통으로 지켰던 라이트는 사후에는 울버햄튼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구단의 문을 지키고 있다. SUB 5 브라이언 롭슨 1980년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암흑기였다. 리버풀에게 밀려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는 그런 구단이였던 시절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그런 시절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한다.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하는 시기인 80년대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희망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브라이언 롭슨'이다. 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인 브라이언 롭슨은 81-82 시즌 겨울 웨스트 브롬 위치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이적 첫 해에 35경기를 소화했고, 팀의 핵심으로 발돋움 했다. 그 후 롭슨은 8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암흑기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리고 롭슨이 맨유를 떠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주장으로 칭송받고 있다. SUB 6 데니스 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도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잉글랜드 리그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대표하던 슈퍼스타였다. 로, 찰튼, 폴크스, 베스트 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럽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도 주 득점원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만 404경기에 출장해 237골을 넣었고, 어떤 시즌에는 42경기 46골, 52경기 39골을 넣기도 했다. 1964년 42경기 46골의 활약에 힘입어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SUB 7 딕시 딘 지미 그리브스와 더불어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1명이였다. 에버튼의 전설이기도 한 딕시 딘은 1925년 에버튼으로 이적했다. 그 후 37년 에버튼을 떠날 때까지 잉글랜드 리그에서만 무려 399경기 349골을 넣었고, 1927-28 시즌에는 39경기에 출장해 60골을 넣으며 유럽 최다 득점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에버튼은 딕시딘이 있는 기간동안 2번의 잉글랜드 1부리그, 1번의 FA컵 우승 등을 경험한다. |
첫댓글 케니달글리쉬?
근데 뱅크스 라이벌로 조프도 꼽을수 있지안나여??
던컨 에드워즈보단 갠적으론 로이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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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epl에서 역대급이였던 시즌은 발롱시즌이고
호날두가 신계로 간건 레알에서부터라서지 않을까여
킹
제라드도 서브에있을만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