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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아스널, 첼시는 ‘글로벌 브랜드’
K리그팀들, 블랙번 모델도 참조해야
삼성, 영국 구단 매입은 적절치 않아
“듀어든의 연락처요? 한 직장에 통 오랫동안 있지 않아서…” 축구협회 홍보 담당자가 말끝을 흐린다. 세계적인 온라인 축구 전문 매거진인 골닷컴의 존 듀어든(John Duerden) 편집장. 그는 방락벽을 타고난 듯했다. 영국 런던에서 잘 다니던 컨설팅 회사를 그만둘 때부터 이런 운명을 예감했다고.
“영국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해주던 회사였어요. 회사는 매우 안정적이었지만, 업무는 좀 지루한 편이었습니다. ” 사우스런던 비즈니스 솔루션(South London Business Solution). 듀어든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이 회사를 그만두고 공동 개최국인 한국행을 결행했다.
지인들은 일본으로 가라는 조언을 많이 했다. 그는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갔다. 당시만 해도 유럽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 땅에서 더 많은 기회와 조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컨설턴트로서의 직감이 순간 번뜩였을까.
축구 기자로서의 명성과 아름다운 아내. 듀어든의 선택은 적중했다. 요리 솜씨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레스토랑의 전문 요리사보다 뛰어난 아름다운 한국인 부인도 얻었고, 영자 신문인 코리아타임즈를 거쳐 지금은 세계적인 온라인 축구 저널인 골닷컴 한국판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축구계의 박노자.’ 국내 축구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칭이다. 영국의‘런던정경대(LSE)’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한 듀어든은, 기자 경력은 일천하지만 기사의 리드를 뽑고 예제로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방식에 쉽게 익숙해질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컨설팅 경험과 자신의 전공 덕분이다.
지난 3월 29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상암 월드컵 경기장. 이곳의 CGV 영화관 2층 스타벅스에서 기자와 만난 듀어든은 매우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K리그, 영국 프리미어리그, 국내외 기업들에 대한 생각을 술술 풀어놓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물론 프리미어리그의 경쟁력이었다. “프리미어리그가 팬들을 파고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컨설팅 전문가로 활동한 그의 경력에 대한 기대가 컸음일까. 답변은 비교적 상식에 가까웠다.
‘마케팅(marketing).’듀어든이 영국인 특유의 무뚝뚝한 어조로 툭 던진 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첼시, 그리고 아스널, 그리고 블랙번까지 영국의 축구팀들은 무엇보다 마케팅에 강하다. 민간 기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많은 식민지를 경영하던 대영 제국의 유산 덕분일까.
소비자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데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의 이동통신 업체인 보다폰은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20여 개 나라의 소비자들을 효율적으로 파고들어 왔다.
아시아 소비자보다 아시아를 더 잘 알아
세계적인 명품 백화점인 해롯 백화점도 LG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마케팅이 탁월하다. 요즘 들어 또 다른 이노베이션 허브로 각광받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기업들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는 경영자들도 영국인들이 절대 다수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아랍에미리트 항공이 대표적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널, 리버풀을 비롯한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빅4’도 이러한 강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축구팀이라기보다는 글로벌 기업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 듀어든의 지적이다. 사실, 위성방송을 보면 이러한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싱가포르, 한국, 그리고 중국, 일본 등에서도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위성을 통해 쉽게 관람할 수 있다. 베컴, 제라드, 퍼디난드, 호날두, 앙리, 박지성의 이름을 줄줄 외는 아시아의 축구 팬들도 적지 않다. 적어도 축구에 관한 한 유럽은 이미 아시아를 정복한 지 오래이다.
현대판 동인도 회사라고 할까. 세계 각지에 마니아들을 거느리다 보니 기업들의 후원도 줄을 잇는다. 아랍에미리트 항공은 경기장까지 지어주며 아스널을 후원하고 있으며, 삼성그룹도 첼시를 후원하고 있다. 마케팅의 힘이다.
또 맨유 등이 선보이는 마케팅의 주춧돌은 바로 소비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듀어든은 이날 인터뷰에서 ‘지역 밀착 마케팅’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프리미어리그의 마케팅 전문가들은 때로는 아시아의 소비자들을 아시아인들보다 더욱 잘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들이 K리그 소속팀들이나, 모기업인 국내 재벌기업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바로 팬의 중시다.
일반 기업체로 치자면 축구 구단의 팬은 바로 소비자들이다.“팬들이 리그 자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블랙번을 비롯한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팀들은 지역 팬들을 관리하는 전담 직원을 두고 팬들의 기호와 더불어 구단에 원하는 바를 세밀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팬들의 이러한 요구사항을 구단행정에 바로바로 반영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월간 매거진인 <인사이드 유나이티드(Inside United)를 발행하며 선수들의 시합은 물론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를 발굴해 팬들에게 꾸준히 전달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팬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잘 긁어주는 것이다. 그는 특히 블랙번이 한국의 K리그 팀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적절한 팀이라고 지적했다. 이 지역 토박이어서 블랙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는 그의 이러한 조언은, 특히 K리그 팀들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프로축구리그 빅4의 하나인 울산현대를 보자. 현대중공업이 모기업인 이 팀은 한해 입장 수입을 모두 합쳐도 유명 선수 한명의 몸값을 충당할 수 없을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화려한 글로벌 마케팅 못지 않게 비교적 규모가 작은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지역밀착 마케팅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그가 조언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블랙번은 인구 12만의 작은 소도시이다.
K리그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
말처럼 쉬울까. 영국 축구의 글로벌 시장 공략, 지역사회 밀착 마케팅, 그리고 영국 기업들의 마케팅 기법도 길게 보면 제국주의 시절에서 그 오랜 역사적 연원을 발견할 수 있다.
“K리그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 많은 것을 파악할수록 점차 더 알기 어려운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할까요.” 프로 구단의 한계는 모기업의 한계를 때로 반영한다. 구단발전에 밀알이 될 수 있는 조언을 수용하지 못하는 국내 구단들의 태도가 그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구단들의 배타적 태도이다. 서로 다른 생각, 사람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뇰 귀네슈 FC서울 감독의 연승을 폄하하는 듯한 국내 한 프로팀 감독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FC서울의 선수 구성이 뛰어난데, 그 정도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되겠냐는 게 핵심 내용인데, 듀어든은“전임 감독은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다”며 “귀네슈가 헤쳐가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지만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귀네슈의 역량을 합당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꽉 막힌 사고는 창의성을 억압한다. 양발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하는 장점이 있는 국내 선수들이 정작 경기를 조율하고 풀어나가는 능력이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에 비해 현격히 처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 기업들의 외국인 임원 비중이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안은 없을까. “베컴이나 제라드급의 슈퍼스타를 영입할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바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이 불가능하다면 이름 값은 떨어져도 선진리그를 경험한 해외의 감독을 영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세뇰 귀네슈도 유럽에서는 A급 감독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
구단 마케팅부터 선수 관리까지, 국내 구단들의 체질을 일거에 바꿀 수 있는 변화의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중간 관리자 이상을 영입해 시스템 변화의 지휘봉을 맡기는 편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예 유럽인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높은 축구 구단을 사들이면 어떨까. 구단운영 노하우를 직접 배우고, 또 모기업의 유럽시장 공략의 효과도 높이는 양수겸장의 묘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부정적이다. 영국인들은 삼성이 첼시에 유니폼 광고를 하는 것은 반기지만, 이 축구팀을 사들이는 것을 우호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영국인다운 답변이기도 한데, 그는 조만간 한국을 떠날 계획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한국 생활에 너무 만족하다”고 그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또 끝으로 부인에 대해서 묻자 “결혼한 지 2년이 됐으며, 축구계 출신은 아니다”며 귀띔을 했다.
듀어든이 바라본 한국 선수들
“박주영 프리미어리그 진출 ‘글쎄’…”
국내 무대에서 프리미어리그에 당장 진출할 역량을 갖춘 선수는 누구일까. 많은 축구팬들이 아마도 박주영 FC서울 선수 정도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듀어든은 성남의 김두현, 그리고 울산의 이천수 선수 정도를 꼽는다. 한명을 더 부탁하자, 의외로 전남의 김진규 선수를 제시한다. “박주영 선수는 물론 유럽리그에 진출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로 가기는 무리이며, 네덜란드 리그 정도에 가서 먼저 경험을 쌓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박지성이나 이영표처럼 프리미어리그에 비해 선수들의 역량이 떨어지는 네덜란드에서 유럽축구에 적응하고 영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 한국 선수들을 문의하는 영국 팀들의 연락을 종종 받는다는 그는 한국 선수들이 이제 좀더 빠른 축구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만약 프로축구협회장이 된다면 영국에서 무엇을 당장 수입해올 것인가”는 질문에 서슴없이 "빠른 축구(fast soccer)"라고 답변하기도. 한국축구의 경기속도가 느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더욱 빨라지고 있는 세계 축구의 추세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선수들의 역량을 묻자 페널티 에어리어에서의 움직임이 서툴다고 지적한다. 패스는 물론 골 결정력도 떨어진다. 조재진, 최성국, 이동국, 정조국은 모두 이점에서 부족하다. 박주영은 적어도 이 부문에서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탁월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유소년 축구 육성도 시급하다. 한국은 산이 많아서 축구를 할 공간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편이며, 따라서 실내 축구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첫댓글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정말 좋은글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