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외 1편
김충규
바닥 전체가 상처가 아니었다면 저수지는
저렇게 물을 흐리게 하여 스스로를 감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수지 앞에 서면 내 속의
저수지의 밑바닥이 욱신거린다
저수지를 향해 절대로 돌멩이를 던지지 않는다
돌멩이가 저수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안
내 속의 저수지가 파르르 전율하는 것이다
잔잔한 물결은 잠들어 있는 공포인 것이다
상처가 가벼운 것들만 물속에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떠다닐 수 있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그들을 잡으면 안 된다
그들은 저수지의 상처가 키운 것,
저수지를 떠날 때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상처 가진 것에 대해 연민 혹은 동정을 가지면
몸을 던지고 싶은 법,
그런다고 내 속의 저수지가 환해지는 것이 아니다
공포
내 방의 창을 열면 공포가 떠억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나는 공포에 의해 사육되고 있는 동물이다 종일 창을 열지 않고 지낸 적도 있다 내가 뱉어낸 이산화탄소가 방 안의 산소를 다 먹어치웠다 나는 헉헉거리며 창을 연다 공포가 나를 집어삼킬 듯 노려본다 나는 이미 무수히 죽었다 공포의 아가리 너머 깊은 동굴엔 내 시체가 무더기로 쌓여 있다 그 동굴은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다 방 안의 나는 육체가 없는 영혼인지 모른다 내 영혼은 잃어버린 육체가 그리워 슬픈 노래를 부른다 아무도 내 노래를 못 듣는다 아니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다 내 속의 나무들 피가 다 말라버렸고 잎들은 쭈글쭈글해져 버렸다 이런 내 영혼이 언제까지 슬픈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제 방을 박차고 나간 자들은 대체 어떤 자들일까 그자들의 노래는 가볍게 가볍게 상승한다 왜 나는 그자들의 노래를 흉내조차 못 내는가 왜 나는 공포를 물리치기 위하여 공포의 아가리에 나무 씨앗 하나 심지 못하는가 공포를 내 방에 가두고 내가 공포를 사육하는 꿈, 그 꿈을 밤마다 꾼다
― 김충규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연인M&B / 2009)
김충규
196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낙타」등 5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물 위에 찍힌 발자국』『아무 망설임 없이』, 유고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이 있다 . 제1회 미네르바작품상과 제1회 김춘수시문학상을 수상했다. 2012년 3월 18일 새벽,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