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버린 군대
1914년 12월이 되었을 때,
서부전선(西部戰線)의 상황(狀況)은 결코 누구도 원하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벨기에의 대부분과 북부 프랑스를 차지한 독일은 주도권(主導權)을 잡고 있었지만, 전략적 우위(戰略的優位)를 달성(達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면 초기(初期)부터 밀려나기 급급하였던 프랑스는 마른(Marne)에서 회심(回心)의 크로스 카운터를 날렸으나,
전세(戰勢)를 뒤집은 역전타(逆戰打)는 아니었고 간신히 한 숨만 돌린 상황이었습니다.
↑1914년 10월 말에 있었던 이제르(Isere) 강 전투를 묘사(妙思)한 기록화(記錄畵), 겨울로 접어들면서 800여 km에 이르는 서부전선은 정체(停滯)되었습니다
예상(豫想)보다 빨리 참전(參戰)하여 독일을 놀라게 만든 영국은 더 이상 전투(戰鬪)를 계속하기 곤란(困難)할 만큼 몹시 지쳐있었습니다.
전쟁 직전(直前)의 준비 태세(準備態勢)를 고려(考慮)할 때 신속(迅速)한 참전은 역(逆)으로 생각하여 제대로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無酌定)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의미(意味)와 같았습니다.
더구나 지형적(地形的)으로 불리(不利)한 구역(區域)을 담당(擔當)하다 보니 서부전선(西部戰線) 주요 참전(主要參戰) 3국(國) 중 가장 피해(被害)가 컸습니다.
↑1914년 8월 프랑스 도착 직후의 영국군, 참전은 빨랐지만 준비가 부족하였습니다
모병(募兵)으로 구성(構成)된 영국군은 사격술(射擊術)처럼 개별 병사(個別兵士)의 전투력(戰鬪力)은 뛰어났지만 중화기(重火機)도 챙기지 못하고 서둘러 전투에 투입(投入)되다 보니 상당히 애를 먹었고 무려 9만 여명이 전사(戰死)하면서 심각(深刻)한 병력 부족(兵力不足)에 직면(直面)하였습니다.
예상(豫想)을 벗어난 손실(損失)에 놀란 영국은 캐나다(Canada), 호주(Australia) 등의 영연방 지원군(英聯邦支援軍)은 물론 인도(India)군(軍)처럼 식민지군(植民地軍)까지 대대적(大大的)으로 동원(動員)하였습니다.
↑병력 부족으로 인해 1914년 참전한 인도 기병연대 소속의 병사
덕분에 서류상(書類上)으로 8월보다 2배나 많은 40만의 병력이 서부전선에 배치(排置)되었고, 본토(本土)에서는 80만의 자원병(自願兵)이 추가 투입(追加投入)을 위해 한창 훈련(訓練) 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넉 달 동안 정예병(精銳兵)들이 거의 소모(消耗)되었기에 전투력은 이전보다 좋다고 할 수 있는 상황(狀況)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숫자를 쉽게 늘릴 수 있는 병력과 달리 즉시 증산(增産)이 어려웠던 포탄(砲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