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삐죽삐죽 가시처럼 돋은 털을 오히려 부드럽고 윤기 난다며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럴진대 자녀의 사소한 문제가 부모 눈에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정작 주변에선 문제를 간파하고 조심스레 귀띔해 주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함함한 고슴도치 새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같은 ‘환상’은 대부분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이후 깨어진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에게 가장 흔히 나타나는 정신과적 문제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분리불안장애.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홍강의 교수는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들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그 때문에 치료가 늦어져 증상이 더 심해진다”며 “자녀들의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교정·치료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DHD증후군(주의력결핍-과잉행동 증후군)
주의력이 떨어지고 행동이 너무 부산해 학교생활이나 공부 등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유전적 혹은 뇌의 생화학적 이상 등이 원인인데 여자보다 남자가 3~4배 정도 많다.
대체로 초등학교 1~2학년의 3~4%, 3~4학년의 2~3% 정도에게 나타난다. 많은 부모가 학년이 올라가면 좋아진다고 믿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ADHD가 성인까지 이어질 확률은 20% 정도다.
건양대병원 소아정신과 박진균 교수는 “그러나 증상이 나타나는 짧은 기간 동안의 합병증 때문에 아이의 인생이나 진로가 바뀔 수 있다”며 “유치원 선생으로부터 ‘통제가 안 되는 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나, 부모 생각에도 제 아이가 좀 유별나게 부산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ADHD를 의심하고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ADHD의 합병증은 학업에 대한 관심 상실, 친구와의 교제 기회 상실, 자신감의 결여, 반항 또는 비행(非行) 등이다. 심한 경우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정신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치료를 위해서는 부모 교육, 그룹인지행동치료, 약물치료 등이 필요하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정유숙 교수는 “부모가 아이를 정신과로 데려올 정도로 증상이 심하다면 60~70%는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부모가 아이를 심하게 꾸짖거나 아이와 싸움에 휘말리면 증상이 더 심해지므로 아이의 긍정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부모 역할에 대한 교육을 꼭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분리불안장애
애착의 대상(예 엄마)과 떨어지면 큰 사고나 불행한 일이 생길 것 같은 걱정 때문에 정상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장애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인 7~8세 어린이의 3.5~5.4% 정도에게 나타난다. 드물게 청소년기에도 발병하는데 이때는 증상이 훨씬 심하다.
공황장애·광장공포증·우울증·알코올 의존증 가족력이 있는 가계(家系)에서 유전적 원인으로 발병할 수 있다. 또 한쪽 부모가 결손된 아동이나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집안의 아이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 가족 구성원 간의 지나친 밀착, 과보호적인 양육 태도, 의존적이고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성격 등도 발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원인을 가진 어린이에게 부모의 질병, 부부 싸움, 엄마의 직장출근, 동생의 출생, 이사, 전학 같은 ‘계기’가 마련되면 발병한다.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하거나, 학교에 가서도 조퇴를 하거나, 쉬는 시간에 수시로 집에 전화를 해서 엄마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 등이 주된 증상이다. 증상이 경미한 경우엔 입학하고 몇달이 지나면 저절로 극복되지만 심한 경우엔 상담치료와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증상이 심한 경우라도 한 달 정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호전된다.
중앙대병원 정신과 이영식 교수는 “완전하게 치료되지 않으면 다시 재발하기 쉬우며, 성인까지 이어지면 배우자의 출장, 이사, 자녀의 출가 등에 심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며 “심한 경우 우울증,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등으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증상이 심하다면 철저하게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ADHD 자가 진단표
주의력결핍 9항목 중 6개 또는 과잉행동 9항목 중 6개가 6개월 이상 지속될 때 ADHD로 진단한다. 단, 이 같은 증상은 7세 이전에 나타나야 하며, 적어도 두 군데(예: 학교와 집) 이상에서 이 증상 때문에 문제가 나타나야 한다.
주의력결핍 체크 리스트
1. 학교 수업이나 일, 혹은 다른 행동을 할 때 주의 집중을 하지 않고 부주의해서 실수를 많이 한다.
2. 과제나 놀이를 할 때 주의 집중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3. 대놓고 이야기 해도 잘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4. 지시에 따라서 학업이나 집안일 등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끝마치지 못한다.
5. 과제나 활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6. 지속적으로 정신을 쏟아야 하는 일을 피하거나 싫어한다.
7. 장난감, 연필 등 과제나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잘 잃어버린다.
8.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산만해진다.
9. 숙제를 잊어버리거나 도시락을 두고 학교에 가는 등 일상적인 활동을 잘 잊어버린다.
과잉행동장애 체크 리스트
1.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고 손발을 계속 움직이거나 몸을 꿈틀거린다.
2. 수업시간이나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닌다.
3. 상황에 맞지 않게 과도하게 뛰어다니거나 기어오른다.
4. 조용히 하는 놀이나 오락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5. 항상 끊임없이 움직이거나 마치 ‘모터’가 달려서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한다.
6. 말을 너무 많이 한다.
7. 질문을 끝까지 듣지 않고 대답한다.
8. 자기 순서를 기다리지 못한다.
9. 다른 사람에게 무턱대고 끼어든다.
■분리불안장애 자가 진단표
3개 항목 이상의 증상이 4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 분리불안장애로 진단한다.
1. 애착대상(엄마 또는 집 등)과 분리되거나 분리가 예상될 때 반복적으로 심한 고통을 보이며 울거나 고함을 친다.
2. 강도나 교통사고 등으로 애착대상을 잃거나 애착대상에게 해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걱정을 한다.
3. 납치, 유괴, 길 잃음 등과 같은 운 나쁜 사고가 생겨 자신이 애착대상과 분리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걱정을 지속적으로 한다.
4. 분리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학교나 그 밖의 장소에 가기를 지속적으로 싫어하거나 거부한다.
5. 애착대상 없이 혼자 지내는 데 대해 지속적이고 과도하게 두려워하거나 거부한다.
6. 애착대상이 가까이 있지 않거나 집을 떠나는 상황에서는 지속적으로 잠자기를 싫어하거나 거부한다.
7. 애착대상과 분리되는 내용의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8. 애착대상과 분리가 예상될 때 두통, 복통, 메스꺼움, 구토 등의 신체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