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가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한다면 벤은 이런 식으로 대답하리라. “나는 충실하면서도 무척 신중한 사람이다.” 벤은 여러 해 동안 중간 관리자로 살아왔다. 그는 뉴욕시에 있는 한 의류제조업체에서 한 부서를 책임 맡고 있다. 그의 밑에는 50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는데 대부분 이민 온 사람들이다. 벤은 회사의 요구와 노동자들의 필요에 때응하는 데 안정적 중간자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는 군대에서 따랐던 행동양식이 직장에서도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군대에서도 중간 관리자에 해당하는 상사로서 상관들의 요구와 부하들의 반응과 요구를 적절히 조정해야 했다. 그는 군 생활을 인생 경력으로 간주했다. 그러면서 규율과 질서정연한 생활을 좋아했지만, 그의 말마따나 자신을 출세의 돌다리로 사용하는 야망에 찬 전문 직업인들에게 느끼는 의혹과 불신으로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그러니까 벤이 신중하다고 표현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지나치게 의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벤은 의사전달 기술과 관리전략을 지도하는 강연회에 참석하느라 여러 차례 주말을 소비했다. 그는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면서도 그것들을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의구심을 가짐으로써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는 때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히면서도 상사나 아랫사람들이 감히 자신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벤은 직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내와 세 자녀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다루었다. 그가 자녀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은 다름 아닌 연대감, 충직성, 단체행동, 의무였다. 그는 결혼했을 때 아내를 위해 종교를 바꾸었고, 덕분에 새로운 종교에 충실하면서도 이전의 신앙으로 인해 자주 죄책감을 느꼈다.
지나치게 안정을 바라는 벤은 어떤 종류이건 위험은 다 두려워한다. 가족이나 직장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온갖 위험 가능한 것들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불안감으로 인해 때로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짜거나 지나치게 머뭇거리기도 한다. 그는 자기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불안을 쉽게 알아차리는 동시에 곧잘 그들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상상하며 그것들을 끊임없이 경계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포감은 벤의 한결같은 인생 동반자다. 그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그의 의구심이 투영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불신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잔소리를 하는 반면에 행동은 꾸물거린다.
다른 한편으로 벤은 안정이 필요하고 또 외부로 투영하는 성향 때문에 사람들에게-그들의 평안과 안정을 위하는-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 결과 벤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깊이 배려하며, 그들이 유쾌하고 편안하도록 마음을 쓰는 훌륭한 주인 역할을 맡는다.
벤은 (벤과 비슷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를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 그는 큰 그림을 바라봄으로써 얻는 전망은 믿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과 여러 가지로 (흔히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상의를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인생의 상처는 어린 시절로 이어진다. 벤 보다 두 살 위인 형은 다운증후군으로, 벤은 이 형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자랐다. 부모가 형을 보살피라며 안겨주는 짐은 벤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그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 모두를 믿고 신뢰하는 자율성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부모의 사랑 어느 지점에 자신이 위치하는지를 몰랐고 거기에서 일종의 불안감이 생겨났다. 벤은 어른이 된 뒤에도 책임을 다하리라 온전히 믿어주고 맡기는 확실한 신임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지지와 뒷받침을 받았을 때조차도 이튿날이면 다시 미심쩍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에게는 자신의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성 중추를 계발할 필요가 있다. 그가 신뢰 능력에 받은 상처는 끊임없이 재확인을 바라는 욕구로 표현되고 있다. 그는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벤의 상처 가운데 많은 부분은 스스로 초래한 것들이며, 바로 이런 것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투영된다. 벤에게는 마음 묵상이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이기적 자아 또는 거짓된 자아를 밀어냄으로써 하느님을 신뢰하게 되고 사랑 안에서 그분의 확실한 지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론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다. 아울러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자기 안에 내재하는 어린아이를 위로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마음 중추와 만나고 자신의 상처에 대한 책임과 거기서 오는 결핍된 사랑을 메우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뜻에 대한 확신, 하느님의 손길을 믿는 믿음이 토대가 되는 삶을 주제로 이루어지는 성서 묵상은 그에게 중요하며 또한 그를 성숙하게 한다. 그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만큼 마태복음 10장 26-33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는 요한복음 16장 13-16절이 확언하듯이 성령의 인도와 힘을 필요로 하고 또 원한다.
참조 문헌:용서의 과정 윌리엄A. 메닝거 지음 -바오로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