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前世에 있었다는 것이 前世에 있었던 것만 아니요 後世에 있을 것도 되는 것이며 후세에 있을 것이라는 것도 후세에 있을 것만이 아니요 前이나 今世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를 미루어보면 과현래란 시간이란 허울로써 그 흐름을 벗고 시간감이 없는걸로 諸象이나 제형태를 살피는 위치에도 설 수도 있는 것이니 (※ 즉 시간은 없는 것의 위치에 도달한다는 뜻) 언제라는 시간감을 일체 떨쳐내버리고 열심히 갖은 行을 수련하여 갖은(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業障果가 報身을 이뤄 모든 얽힘이 파괴된다는 것이요 또 그렇게 되면 기허 관점에 이른다는 것이니 器虛관점에 이르면 萬象의 피고 짐을 끌어안아 누리는 극락관점이라는 것이다. 석씨가 과현래를 말한 것은 시간적 방편이니 과거가 과거가 아니고 미래사 일 수도 있다는 뜻이니 그렇게 됨 비약 전도가 너무 심하여 윷을 모이라 할 수도 있다 할 것이나 실상은 관념이 궁글러 휘어감기듯 하면 윷은 모를 보고 모는 윷을 보는 것이니 모란 허상이 막힘 없이 흐르는 길을 막고 그 윷모란 것을 가르키고 있는 것일 뿐이다.그러므로 저가 진리라는 邪相의 윷모란 것을 걷워치우는 안목이라면 참가르침 고탈파를 본다할 것이다。즉 諸象과 일체지칭의 가르침이 얽힘을풀기 위한 일이승 등 다승적 방편이란 것을 알 것이다 ◎ 過未의 시간감을 걷워 현실 나를 중심한 저와 이의 공간감으로 놓는다면 저 형태나 이 형태가 또다른 나의 형태라던가 내 可視거리내에 있는 나의 일부분이라 할 것이니 또 저와 이의 관점을 바짝 접어 내一身으로 모아논 것이라면 모든 형태는 나의 內部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현상일 것이니 즉 상상적 망상이 그린 현상이 諸現相이란 것에 도달한다 할 것이다。즉 망상에 의해서 諸宇宙가 있다는 것이다。그렇담 뭣을 나열해서 논 할 건가? 이러한 形도 짓고 저러한 事도 겪는게 곧 나일진데… 무엇이 얽힘이 된다 물고 늘어져 마음을 속박시키고자 할 것인가? 이 말이다。즉 위한다는 形과 事가 없다는 것이다。어차피 그렇게 굴러갈 것을 내가 위한다는 관점을 갖고 내게 직접 닥친 일을 일로 매진한다한들 저쪽에서 뱀이 개구리 잡아먹는다고 개구리 깨ᆢ액 깨ᆢ액하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말이다。그 개구리가 나고 그 뱀이 나라면 모순의 상태가 現흐름의 공간相이라 할 것 아닌가? 또 그 둘은 나를二原化한 것으로 用易한 해탈을 위한 모습을 지은 상태로써 서로가 위한다는 보시나 해탈관점이라 할 것인가? 개구리는 뱀이 악마 나찰귀 원수가 아니고 그 허울을 辱되게 쓴 거룩한 인욕바라밀보살로서 해탈이 용이하도록 성취시켜주는 자로 보이고 뱀 또한 개구리가 먹이 염원체로 들어주니 해탈성취관점이 된다는 것인가? 즉 상호보살이란 것 아닌가? 이 말이다 醒者있어 과거세를 말하는 것은 혹 欺讀에 가까운 말을 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음이 꼬리를 문다 할 것이니 어떠한 목적을 갖고 환영술을 그렇게 지어서 사실인 것처럼 愚民에게 認知시키었음 일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또한 그렇더라도 남에 마음을 넘겨짚는 것같은 他心通은 가능하였을런지 모를 일이다。왜냐? 그것은 시공간적으로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같은 시간 같은 공간대에 있기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설령 다른 시간대의 타심통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넘겨 짚어서 그 사람의 지난 일이나 어떤 시공간적으로 벌어졌던 일이거나를 들춰내서 자기가 주장하는 말을 맞는말로 여※ 기게끔하는데 이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는 과거세의 중생 미래세의 개개의 중생心도 들여다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즉 과거 전생을 본다 미래생을 안다는 등등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진것과 연계시켜 자기의 한결같은 주장의 理想을 注入시키는데 도구로 이용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自心卞轉他心无境界 이러한 비평을 할 수 있는 것은 고(罟)를 파괴시키는 데는 일체의 흑백 眞僞 正邪 선악 등 무수 대비 성향의 그것만이라는 論의 一定한 律이 없기때문이다。그렇기때문에 뭣을 대상으로 삼던 들고칠수 있다는 것이다。즉 일체의 本然에 흑백 진위정사 선악이란 것은 없다。이상의 것이 理相주장을 펴는 도구이니 힘을 얻기 위한 방편이요 수단이요 힘을 자랑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 것이다。즉 이렇게 말해도 틀린 관점이라할 수 없는 것이니 왜냐?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말할 수 없기때문이다.만약상 옳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힘이 있다는 것을 내보일려 하는 것이니 즉 以上의 對比론 등이 힘있는자가 힘없는 자를 다스리기 위한 수단에 동원된다는 뜻과 말이란 뜻이요 그 반대개념 힘없는 자가 힘있는 자에게 加重한 억눌림 받지 않으려고 구슬리고 속이기 위한 책략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과 말이라는 것이니 그런 술수 쓰는데 넘어갈 필요가 없다할 것이다。(自 利 속 있다면 넘어가줘도 상관없다 할 것이다.) 도대체 착한게 뭣이고 바른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은 主體가 對相을 먹고자하는 방편도구일 뿐인 것이지 착하고 바른게 먼저 있어 주체와 대상을 만드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한참 있다가 생각하길 이래도 저래도 입장 차이요 편견을 면치 못할 것이거늘 진위정사 선악이 힘보다 먼저라 한들 나와 무슨 상관있겠는가? 이 말이다。괜히 쓸데없이 편견을 갖고 고집부려 보는 것이지 ○ 앞서서도 말했지만 전류의 교류현상은 에너지를 내어 전구란 등불을 밝힌다했다。이 전구의 등불은 전기 교류 현상으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란 것이다°(※ 여기선 교류전기 현상을 말하는 것이니 직류가 아닌 점을 감안해서 착오없길 바란다。) 그 현상을 우리가 감식할 제엔 불빛이 절로 발해 가만히 있어 절로 발하는 것처럼 보인다。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속도가 빠른 바꿔 놓기 현상은 어떠한 흐름의 일정한 律을 지킨다면 속도의 빠르기나 바꿔놓는 모습(체인지)을 감지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이것을 눈에 얼마동안 남는 잔상의 연이은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어 보이거나 움직이는 사물이라면 평소처럼의 그 움직이는 사물의 모습처럼 보인다는 뜻이다。만약상 여기 연필과 지우개가 일정한 위치에 놓여있다 가정한다면 그것의 바꿔놓기의 빈도가 빠르면 제위치의 위치를 항상 유지하는 것으로도 보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 연필과 지우개를 잡고 움직이는 모습까지도 연출 표현할 수 있다는 데에 까지도 도달하며 그 서로간 위치를 바꿔놓은 상태까지도 도달하며 갖은 차원의 표현을 다 할 수있는 단계에까지 도달한다 할 것이다. 이것은 二元的인 바꿔놓기이나 諸樣象이 연이은 三四次 등 무수 바꿔놓기라면 그 상황은 점점 복잡한 면으로 들어가서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무수한 바꿔놓기가 일어난 모습이라할 것이다。즉 움직이지 않은 그냥 현상태와 같은 데에 도달한다는 것이며 곧 현한 이상태가 곧 그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러한 현상을 시간감 있는 전후생 현래를 갖고 설명한 것이라면 역시 과현래는 없거나와 다시 과현래는 있거나와 또다시 래현과(顚倒=아무케로던지 선후 內外 수차원 따질 것없이 뒤집힘)는 있거나에 도달한다할 것이다.그래서 내가 가르키는요지는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니 그 죄가 있다면 있는 것이요 없는 것이요 그 죄가 없다면 없는 것이요 있는 것이요 그 극락지옥이 있다면 있는 것이요 없는 것이요 그 극락지옥이 없다면 없는 것이요 있는 것이란데 도달한다는 것은 저마다 치우쳐 생각하는 상념속에 일이란 것이다.그러므로 어느 一家見解에 집착하거나 사로잡힐 이유가 없다있다에 도달한다는 것이니 즉 일체 것 无일체 것 無有란 것이다. 즉 그냥 이대로 흐르는 현상과 전도와 다양변이 차원이라는 것이다.내 말은 근심되게 하는 사실이 그런 것처럼 여러가지로 방편을 드는 어리석은 마음상념이 일으킨 방편론의 말에 넘어가지 말라는 뜻이니 행위 의 당위성이 있고 없고를 제쳐두라는 것이니 본의 본의아니나 지렁이나 개미를 밟고 못살게 굴 수있는 문제인 것이다.그런걸 갖고 왈가왈부하여 옭아매는 동아줄 논리를 꼬아서 놓지 말라는 것이다。善하다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거짓 가면을 쓴 아주 사악질로 물들이고자 하는 자의 황폐화 시키고자 하는 자의 괴뢰노릇이 된다는 것이다. ○ 諸相을 相이、相이 아닌걸로 봐야 醉醒覺을 본다함은 무슨 뜻일까? 이것은 편가름 편견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일 것이니 네생각만 아니니 네생각 같음만 아니니 편가름 편견을 지음 다양한 양상속에 허우적거리게 된다는 것이다。편당 편견 아니 지음 無斜側 無流 亭醒覺(※ 막힘없는 공허각일 수도 이 또한 흐르는 생각이 그린 편견해일 뿐이다)의 현상을 보게되어 그 속에 들어간다는뜻일 것이다。이를테면 한 편을 든다면 이것은 색상 등 因識處心器에 와닿는 육감相을 갖고 論하는 것이 아니라 外部에서 들여받힌 육감에 의하던 마음이 그린 생각에 의하던 心上에서 抵觸받아 일어나는 想念相의 相을 갖고 말하는 것이니 즉 선입견의 의미와 같은 선입상의 상념상을 떨쳐내버려야지만(벗어나야지만) 취성상을 본다는 것이다. 의례껏 그러하거니 하는 상념은 지레짐작 망상 억측을 낳아 그 아닌 것도 그 인 것처럼 틀리는 관점을 갖게되고 그 선입상 자체에 포로가 되어 (언제도 그러했었는데 지금 또 그럴것이다는 식의) 선입상은 마상각의 허울이 되어 그 이끄는대로 하자는대로 움직이는 괴뢰 노복이 된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심신황폐化는 물론 수족을 마음대로 놀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일일이 선입상에게 물어보게 된다는 것임) 모든 것이 魔覺相이 되어 나타나 그에 依持 마각상더러 장님붙들고 다니는 것처럼 길잡이 노릇을 시키게 한다는 것이다. 즉 잡힌 먹이신세가 되어 그 하자는 대로 할 것임에 脫果成就커녕 나락지옥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다가 도태되고 만다는 것이다. 지옥은 답답갑갑하게하는 닫히고 갇힌 마음속에 있다. 즉 해탈하여 나라는 존재를 크게 하는게 아니고 (※ 이는 器虛관점) 敗함、도태당해 自我라는 존재를 무의미하게 망가트린다는 것이다(이 또한 편견이다. 일체 선입견이 마각상이라 매도할 순 없으나 先覺如來인체 깨침을주고자 하는 것들이 마각상을 일으키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분을 左右하게시리 인식받은 것의 나타난 相을 말하는 것이니 氣의 흐름을 順逆左右한다는 것은 생명체 및 森羅象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 할 것이다。氣라하는 것은 그 體性象 氣家=氣를 싸고도는 몸틀 氣가 싸고 또는 塊體에 대하여 引導者 引率者 개념의 허울상 노릇도 하게 됨인 것이다.리듬파장과도 많은 연관관계가 있다할 것이다. 氣가 어떠한 몸틀이나 생명체의 신진대사에 대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영향을 줘그 指向하는 方向을 틀려 돌게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포로코자하는 벌려놓는 先人相 現相허울에서 벗어날렴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개의치말라、 무시하라고만 하는게 아니고 이렇게 됨 否定선입상이 끈질기게 따라붙게되므로 반대개념으로 後覺을 好感쪽으로 방향을 잡아 그리면 선입상각이란게 되려 갈마들어 포로 용해되어 아름답게 된다는 것이다。이것이 빈도가 잦아 머리에 깊이 박히다 하면 일체의 마각상의 선입상은 용해 소멸되고 취성각만 가득하게 된다는 뜻이다. 선입견상 마각상이란? 일체의 꺼림직하다 인식받은 것 금기사항 등을 말하는 것 중에 많으니 이를 때려부셔라는 것이다。무엇이던 마음에 와닿는 것을 갖고 판별하는 것인데 기분나쁘다 썩죽는다는 생각을 먼저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그 추종하는 것이 되어 마각상의 허울家를 일으켜 짓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이와의 전도개념 그런 것은 되려「어떻게- 어떻게 해서 오히려 좋다는 관념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렇게 됨 처음엔 조그만 반발상 사건이 나타날지 몰라도 계속 끌어당기면 그 관념을 갖은 대로 이끌려온다는 것이다. ※ 접촉사고가 있었다면 양보할 만한 사항이던 아니 조그만치 희생이 따르더라도 지면 썩죽는다.서로가 핏대올려 드잡이질 치지말고 나의 큰 그릇에 담았다는 뜻으로 한발 양보하라는 것이다。괜히 시간끌어 여럿에게나 피해주고 법이 개입하게 하여 마각상이 이끄는대로 곤란함 당하지말고 이런 뜻이다。지면 썩죽는다(運勢패퇴한다는 소리겠지…) 기분잡친다는 선입 마각상을 일으키니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영향을 받아 리듬파장 신진대사 등이 마상각을 일으킨대로 (그렇게 될 것을 요구한 것이나 진배없음으로) 댈 수밖에 더 있겠는가? 뱀이 길을 가로질러간다。막는다。여자가 질러간다。 나쁘다。화로에 머리카락 태우지말라。어떻게 될 것이다 등 마각상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一言해서 非語표현일런지 모르지만 찜찜한 대접 찜찜하고 더럽다 저질스럽다 불쾌하다는 생각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내- 부처님 가시는 길을 神들이 물뿌리고 쓸어 길을 연다。여겨라! 부처님 또한 육감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고 소쇄 또한 그러하니 心에 와닿는 行如來임일 뿐인 것이다. 밤길에 산쪽에서 무엇이 내민다 여기지 말고 나를 든든하게 붙들어 주는 자애스런 무형에 어머니품이 끌어안듯 한다 여겨라 심기 뒤틀린 시어머니 착한 며느리에게 원인불명한 마음의 병되는 쓰잘데 없는 금기사항 많이 늘어놓는 듯한 형태를 모두 때려부셔라。합리화시키고 궁리변재를 잘하여 용해 美化관점으로 돌려놓길 즐기라。그렇게 됨 극락을 발을 띄지 않아도 보리라. 성자 말하길 年年月月日日時時가 모두가 좋다하였으니 그런 마음가짐이면 業事行인들 공간 터닦는 곳인들 또한 좋다하지 않을 것인가? 이상의 말씀 또한 편견이요 魔脚想이요 그렇게 여기는 빈도가 잦아 습성되면 선입견이 되어 그 인솔자가 이끄는 대로 딸려가게되는 선입관상이 된다는 것이니 일체 것이 사로잡 는 유혹상이 된다는 것이다。마각으로 보느냐 취성각으로 보느냐는 저쪽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이쪽의 심량척(마음먹기=재기)에 있다할 것이다. ○ 原因이 하나가 아닌걸 하나로 貫一코자 하는 건 소견 좁은 자의 관점이란 뜻이요 소견 좁은 자의 얽메인 事란 뜻이다。諸物事의 그냥 이대로 있는 상태를 인정하라는 것이니 밥그릇에 오곡밥이 담겨있어 저곡식마다의 특성을 주입시켜 감칠맛이 돌거늘 왜! 콩만 아니냐? 왜! 팥만 아니냐? 왜! 수수만 아니냐? 애성에 받쳐 할게 아니라는 뜻이다。그 一色一合相을 바라는게 徒是 可笑로운 일이요 될 법한 일이 아니란 것이니 왜냐하면 어느 한 가지만의 원인에 의해 삼라우주가 존재하는 건 아니란 뜻이다.원인이 같지 않으니 그 피어난 모습과 결실이 여러 양상을 띄게 되는 것이다。또 누가 강조하길 미련을 놓지 않듯「그래도…」를 찾는데 그것은 제(自) 내세우는 고집이요 그「그래도 원인 ㅡ이라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지나놓고 보면 부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자기생각을 관철하겠다는게「그래도……」이다. ○ 了達因知(요달인지) 시켜 준것은 무엇이던 先達(先發開覺者=선발개각자) 菩薩(보살) 觀點(관점)이라는 것이니 설령 그것이 斜側(사측)된 것이라던가 不淨視(똥)하는 것이더라도 그렇다는 것이니 (왜냐? 그렇다함을 인식시켜준 앞장선 선달 性體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거룩하고 훌륭한 것이라는 것이며 一切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顚倒된 因識이라는 것 (잘못알고 있다는 것)이니 말하자면 옳은 것은 그른 것이요 그른 것은 옳은 것이라는(象人平常人의 관점과 相反하는 관점 常人의 관점은 先入邪魔 見으로 몰아 붙치는 관점)것이다. 옳은 것은 요달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왜! 그른 것이라 하는가?(물론 그른 것도 마찬가지 유추방식에 해당한다 할 것이니 그럴듯한 빙자의 條理를 규합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은 저가 옳은 것이라 하여 그렇게 因知시키는 사로잡는 유혹의 성격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요 그러함으로 인해 저만이라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實相은 진실성없는 虛僞性質激體라는 것이다. 즉 제반 옳다하는게 실상은 옳은 것 없다에 도달게 된다할 것이다。(※ 이것이 전도되면 옳은 것은 그렇게 느끼는 자를 옳은 면으로 인지시켜주고 引導하니 올른것으로써 훌륭하고 거룩한 것이다가 된다) 以上의 말들이 또한 自 비뚤어진 속심을 보이는 편견이란 것이다. 此世界가 三次元의 世界라 하나 無爲形容(어떻게 그릴 수 없는 어느 한 가지로만 성립원인이라고 지칭할 수 없는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에 의한 형성된 空化(時空間) 현상이므로 그 어느 방면으로던간 끝을 볼 수 없어서 확증적인 數나 모양을 (그것이라 하고 들여) 댈 수 없는 것이다.그래서 삼차원이라 하나 三이란 數가 아니며 三의 양단을 말하는 六合이 六數가 아닌 것이니 즉 以 아니고 不分明한것이라 억측을 재라는 의미에서 五하고 四分度之一餘三初라 하는 것이요(※ 또 물에 비기는 건 그 이론이 단단치 못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위험한 발상이지만 그렇게 땅덩어리가 운행하는 것이라) 그를 보충하여 완성시키는 數인 四二七이 四二七만이 爲行의 數가 아니요 그보다 못한 수나 그 없는 수나 넘치는 數도 될 수 있으니 덜되어 落果하는 것있고 농익어 낙과하는 것 있는 것이다. 딱ᆢ 들어맞으면 적멸정지니((爲行(보살=다양성으로 표현할 수 있음)이 아니라 되려 사이칠(부족한걸 채워준다는 의미의 뜻을 數로 표현한 數)이 害코자 하는 수가 될 수 있음이라))이니 운행치 않기 때문이다。爲行位가 운행치 않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될 수도 있는지 모르지만 제삼라의 탈파를 指向 염원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그러므로 모든 數가 因果관계와 의미投合할 땐 爲行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므로 爲行成就數가 四二七의 의미를 취한다는 것이지 그 爲行을 實行하는 位致에 있는자가 사이칠의 수로만 이루어진 性 體가 아닌 것이니 그 性分質量 體相은 完不完을 논할 것없는 위치이니 諸(法)相 모두 상호 그 爲行作用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凡夫(보통 여러사람=(※ 번뇌망상에 얽메여 생사를 초월치 못한 사람)보통사람들의 평소견해들은 傳來의 習(濕) 得한 대로 알고 믿게 되어 그것이 관행 경우 준칙이 되어 그 틀속에 있으면서 그 維持를 힘써 한다 설령 파격적인 例外가 있더라도 그것 역시 한쪽으로 달리는 馬에 채찍을 더하는 것일 뿐이다。집단사회나 가정에 여러 틀에 박힌 질서모습 즉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일어나는 생각지음과 그에의한 질서를 잡기위한 고정관념으로 정해진 行爲事들을 正見이란것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도 될까만은 석류에 있길 세속적 균형을 좋아하는 범부가 一合相을 탐하여 집착한다 하였는데 지금 필자가 쓰는글 내용들이 모다 空이라하곤(空은 一合相이 아닌데=지금 생각이 그렇게 기울겨져 있다는 것이다。조금合相에 맞춰보려고 애쓰는 모양이라 空과는 가당찮고合相이라 할진모른다) 어떻게든 있다가 空은合相門에도 들지 못해 허덕거리는 꼴이라 아직 까마득해 멀었다는 것 아닌가? 그 아직 까마득해 하는見의 허울을 일시에 벗을 수는 없을까? 이 허울을 벗어야지만 一合相을 지나 空에 든다는지도 모르겠다.범(凡)의 音域은 우리 나라 말 중엔 호랑이를 뜻함도 있다。이 호랑이 같은 사내가 우직하긴 해도 먹이있음 날쌔게 채듯 사나운 용기있으니 이것 저것 잴 것 없이 결단내어 그 울테를 부숴버리고 튀어나오듯 벗어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공교롭게도 필자는 寅字(支支로 호랑이란 의미가 있음)에 의해 많은 영향을받으니 본의는 아니나 가까히 하게 됨이다。이름도 寅字가 있고 사주 에도 寅字가 있고 석굴에 들어가기도 寅年이요 혼인도 寅넌 寅월 寅 일에 하였고 금년 또한 寅년이다。남들은 이 寅字가 귀신 갓 쓰고(또는 집안에서) 활개치는 相이라해서 拂亂이 끊일새 없다하여 쓰지 않는다하나 조상님께서 명자에 그렇게 붙여주셨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또한 나의 일이 귀신이 사람이란 허울을 쓰던 입던 해 가지곤 제멋에겨워 활개치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 * 언제적인가 아주 육십년이 넘은 옛적에 아주 용한 무녀가 굿할적 하는 말이 나에게만 알아듣게 속삭이듯 "이 공자야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성황에ㆍ혼자 가서 기도하여라" 그래서 외진 곳 산위 성황에 가선 시키는대로 해주었다 왜냐 내가 들었기 때문에 어느 신이 원하던간 들어ㆍ줘야 할것 같아서였다 * 책겉장 표지글 ○ 당신은이글을 읽지 말라!머리가 깨트려질 것이다.이글은 철학의 根本由來를밝히고자 한 글이다. 머리속에 폭탄을 터트린 것 같으리니 정신은 파괴되어 혼비백산하고 기존의 일체 논리가 뒤집어진다.그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일체의 여지껏 그렇게 여겼던 사상은 배가 사공을 잃은 것 같이 될 것이다. 여지껏 각인받았던 고정관념은 무너지고 구태의연한 가치관은 전복된다. 기존의 建立된 家를 때려부숴버리지 않으면 옭가드는 종의 굴레를 벗지 못하리라 새로운 理相世界의 桃戰은 發想의 轉換으로부터이다.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理念의 개세적이고 혁명적인 大道는 이책으로부터이리니. 한마디로 말해 그대의 머리를 박살낸다.그대는 이글을 읽지 말라!머리가 둔탁해질 것이다. * 三, 무우 밑둥맛 어느해 가을 또래 아이들과 길을 가다 길가의 밭에 다 성장한 무우를 뽑아 먹길 하였는데 한 아이가 무우를 발로 차서 밖으로 튀어 나온 푸른 부분만 부려트려 먹으려 하면서「땅 밖으로 나온 머리부분만 달지 밑둥은 맛이 없어」한다。또한 아이가 말하길「야」거 아깝게시리 왜 허실해 버리냐? 다 뽑아 먹어야지」한다. 무우를 그렇게 해서 먹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윗부분은 달착지근하고 밑둥은 약간 매운 듯하면서 싱겁다。이처럼 통채로 다 먹어 보지 않으면 밑부분의 맛을 알 수 없으니 맛이 어떤가 하고 대박 궁금할 것 아닌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要指(요지)는 아무리 그 끝을 잘 맞춘다 하더라도 그 근본이 뒤틀어져 있다면 또는 근본을 잘 모른다면 늘상 미심쩍은 마음이 가시지 않고 무슨 찌꺼기 같은게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아 심이 개운치 않다는 것이다. 근본이 확실치 않으면 어떠한 주체이던간 미신적인 것 맹목적인 것에 메어 달리고 추종하는 것이 된다 할 것이다. 소위 쇠뇌당하는 가운데 근본이 생성되고 주체가 형성되면 이것은 정(허) 공중에 뜬 삿된끝(사탄 마군이)을 이뤄 그에 조종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이런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음으로 나날이 헛된 곳에 안일무사 요행을 비는 거와 같고 영속성을 띄어 불멸하는 섭리와는 거리가 멀다할 것이다。내가 말하는 섭리는 어떠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흐름이라던가 머무름이라던가 하는 것 따위에서 그 의미를 잠깐 따온 것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 근본은 理治(리치)가 根木이다. * 아 무 러 크 소 니 1. 思想斗 哲學 2. 錯覺 誤謬 3. 精神의 難脈象 4. 煩惱妄想 5. 葛藤現相 * 머리 말 하인(何人)이 회령(檜嶺) 양지록(陽地麓) 짐박골에 살고 있었는데 그 삶의 소박하기가 이러하였다。먹기는 채근(菜根)과 산전(山田)을 일구어 콩、감자、서석、 수수 등을 갈아 먹고 居處하기는 석칸 흙이겨 돌담쌓고 억새이엉해 덮은 그런 집에서 하고 골짜기샘은 웅덩이 파서 앙금 가라앉혀 맑은 물 되면 쪽박 떠서 마셨다。일 없어 무 소일할 땐 낮에는 목류(木類)하고 벗하고 밤에는 두(杜)류와 이름모를 풀벌레소릴 벗하며 때로는 바람불러 갈대흔들어 그 서걱거리는 소리를 즐겨 들으며 겨울이면 설상에 반야월광(半夜月光)이 파사하게 너울거리면 같이 놀았으며 나무에 설화피어 결정지어 맑개 얼면 바람곁에 그 맑은선율이 흐르는 걸 즐거워하였다。 때는 춘분 청명절이라 골 어귀 여울또락 고인물에 금와란부화(錦蛙卵解化)하니 이른 새벽부터 소쟁기하여 운중경작(雲中耕作)을 하고 있었다. 소모는 경작소리에 이끌려 왔는지 인기척이 있길래 뒤돌아보니 웬행객(行客)이 와 있었다。그 차린 행색을 보니 하도 이상하고 어이가 없어 한참 동안이나 말문이 막히었 으니 행색차림이 다음과 같았다。머리는 천년(千年) 동안이나 물구경을 못했는지 덕지덕지 낀 먼지 짚쑤성이 봉두난발이요、눈은 어떻게나 깊은지 중국서 만리 더 들어가 심해(深海)에서도 찾을 길 없고, 코는 천년(千年) 두고 흐르는 여울물이 내라하고 꿋꿋히 서 있는 절벽 밑을 파먹은 듯 없어져 뻥 뚤린 구멍이요. 입은 황희정승의 딸 시집보내는데 겉 옷감으로 보냈는지 입술은 없고、누렇게 드러난 치아만 천년(千年) 동안 생긴 굴 속 돌고드름 같았다。그 걸친 덥석을 보니 아침 이슬을 맞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낡은 거적때기가 흡사 외양간뒷켠에 비바람막이로 십 년 동안 놓아둔 바래다 못해 너덜거리는 짚멍석조각 같았고 그 발을 보니 살피듬은 말라비틀다 못해 북어포되어 갔는지 없는 것 같고 뼈골이 앙상하게 튀어 나오기가 고주박 솔광솔을 쪼개는 것 같았다。여러사람이 보면 氣唵(=기암=놀래어 얼굴색이 흑빛이 될 정도라는 뜻이다)을 하고 넘어질 것이나 하인(何人)은 원체나 두려움이 없는지라 객(客)을 대하고 말을 붙였다. 「객은 뉘신데 어쩐 일로 여기 오셨소。」하니까 답하는 소리가 귀령곡(鬼靈谷)에서 나는 소리와 같음인지라「여기가 짐박골이요。」되물어옴에 하인(何人)이 되대답하길「그렇소, 여기가 짐박골이요. 뭣하러 짐박골은 찻소。」함에 객왈「저 아랫마을 사람들이 아침이슬 마르기 전에 짐박골에 가면 眞人이 있어 내 찾을 곳을 알려 준다 하기에 허겁지겁 예까지 왔소.산천경계가 기이하게 변하여 예전에 내 있던 백단목곡 (白檀木谷 자장나무골)이 어딘지 몰라서 그 가는 길을 물으려 한다오。도대체 어디로 가야만 거기갑니까?」하인(何人)이 답하여 말하길 산천이 하도나 지어서 범이 새끼칠 판인데 새삼스럽게 거긴 뭣하러 갈려 하오 이리 넝쿨 헤치고 가도 되고 저 듬성거리는 바위들을 타넘어 저리 가도 되니 행자(行者) 요량대로 하시오 함에 행객(行客)이 묻지도 않는 말을 하길 누가 말하길 거기 가면 연영주 월방장 금봉래는 높아도 낮아서 보이질 않고 다만 멀리 길만 거느린 산(山)만 타는 촛대처럼 보인다오。」「丁좌로 집을 짓고 천년만년 살 다보면 삼선이 부럽잖다 하니 그리로 찾아갈라 하는 증이요 하곤 운무가 걷히기 전 홀연히 사라져갔다 하인(何人)이 생각하길 내가 허깨비에게 홀렸었나 별 위인 다보겠네。아침부터 상쾌치 못하게시리… 그렇지만 내뭐이 잘못대하였나 아는 대로(바로 알든 비뚤게 알든 알려주고 서로 담소 나누었을 뿐이지… 꿈에신언(神言)이 있어 말을 하길 전설에 의하면 임해지간에 길이 있다 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인가? 하면서 대로(大路)가 앞으로 내닥쳤다。글을 (되구말구=아무렇게나) 써 놓곤 막상 머리말을 할 게 없어 이글로 머리말을 대신할까 한다. 무인 무시절(戊寅 戊時節)에 이해허무척(以海虛無尺) (망상(妄想)을 내쫓는 데는 아무렇게나 한다는뜻)은 모치(帽址)하고 제(諸)거룩한 모든 이에게 머리숙여 절 올리는 바이다. ***** 이로써 아무러크소니 대단원에 막을 내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