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조윤상이란 분이 있다.
재활의학과 의사인 그분이 어느 날 병원에서 자꾸 지갑의 돈이 없어진다고 투덜거리는 거다.
에이 설마~하며 웃고 넘기는데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아내의 아이디어로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기로 했다.
어느 날 원장 책상의 지갑에 손을 댄 범인이 결국 몰카에 잡혔는데 병원에 근무하던 김아중 닮은 친절한 막내 간호사였다.
원장과 사모가 둘이 앉아 취조한 결과 300만원이 좀 넘는 금액이었다.
근데 돈을 갚을 길이 없단 거다. 경찰서에 신고는 말아 달라고 훌쩍이고.
난감한 상황에 조 원장이 내 아내에게 연락하자 내 아내의 말 “러시앤 케시에 전화하세요~” 뭔 장난스러운 말인가.
근데 실제로 간호사는 러시앤 케시에 전화했고 대출을 받아 훔친 돈을 갚았다.
참 뭔가 우습기도 하고 골 때린 상황이다.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돈을 꿔주지 않는데 생면부지의 대부업 회사에서 돈을 꿔주는 것이다.
그 간호사는 왜 돈을 훔쳤을까? 부모의 병원비? 동생의 학비? 남친 줄 선물? 유흥비? 아님 그냥 취미?
그녀도 남이 모르는 아픔이 있을 수도 있고 한심한 이유 때문에 돈을 훔쳤을 수도 있다.
올 한해의 마지막 날이다.
한해를 감상에 빠져 돌아보고 싶은데 아내의 핀잔이 있었다.
한 해 동안 당신이 적지 않게 돈을 벌었는데 쓴 돈과 세금과 사무실 나누고 나니 제로라는 것이다.
결국 내 돈은 홍대의 사케 집과 강남의 카페와 식당 인테리어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 같은 비정규직은 어느 날 힘들어질지 모르니 미래를 대비하라는 아내의 경고다.
처가에서 결혼 승낙을 받을 때 은행원 출신인 두 분은 조건으로 1.보증금지 2.주식금지를 걸었다.
난 지금도 잘 지키고 있다.
홍진경이나 몇몇을 빼고 연예인은 돈에 어둡다.
나도 여기저기 참 많은 돈을 날렸다.
개그맨 지석진의 주식은 고등어라 불렸다. 토막이 잘나서.
아무리 탄탄한 회사도 1박2일 이수근이 사면 박살난다. 작전용으로 역이용하기 딱이다.
아직도 돈 많은 이들에게 얼굴 빌려주고 회사 부도나서 사기로 몰려 감옥에 가는 연예인 뉴스가 일 년에 몇 건씩 발생한다.
돈을 모르면서 이름 빌려주고 앞에 나선 연예인이나 그 이름만 믿고 돈 대고 투자한 사람이나 피해를 입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게 다 돈을 모르고 운용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릴 때부터 돈 밝히면 안 된다고 배웠다.
부자는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은 세상이기도 하다.
몇 해 전 극빈 자살자 위령제를 강남의 타워펠리스 앞에서 했던 적이 있었다.
참 묘한 뉘앙스가 있는 상황이었다.
부자는 욕하는데 자신이 돈을 버는 것은 꿈을 꾼다.
서점에 가면 돈과 주식 투자 관련 서적이 넘친다.
어쩌면 부자가 될 길은 카지노나 로또 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경마장의 ‘쾌속질주’란 말(馬)에 인생을 거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돈 공부를 제대로 못한 우리 세대는 가난을 이겨낸 부모들이 오냐오냐 키운 첫 세대다.
신용 불량자가 참 많은 세대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돈 때문에 직업을 잃거나 가족을 잃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뉴스가 없었으면 좋겠다.
행복은 돈 주고 살수 없다고 참 많은 행복 강사들이 말한다.
그러나 돈 때문에 행복이 깨지고 가족이 분해되는 경우가 주변에 너무 많다.
그나저나 그 간호사는 업체에 돈을 갚았을까? 그 돈 때문에 또 훔쳤을까?
2009.12.31. 목요일자 일간스포츠- '남희석의 아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