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밖에 몰랐던 ‘구도자’ 오타니… ‘10년 7억달러’ MLB 새 역사
LA다저스와 역대 최고 몸값 계약
15세 때 장단기 계발 계획표 만들어… 10여년만에 “스포츠 사상 최대계약”
평균연봉, 일부 구단 전체연봉 추월… 총액 기준 ‘축구의 신’ 메시도 제쳐
먼저 ‘지급유예’ 제안, 구단 배려도
폭스스포츠 SNS 캡처
오타니 쇼헤이(29)는 15세이던 고교 1학년 때 자기계발과 관련된 장단기 계획표를 만들었다. 일본 프로야구 8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겠다는 핵심 목표를 한가운데 적었고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세부 목표와 실행 계획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한가운데 ‘1순위 지명’ 목표 적힌 오타니의 ‘자기계발 계획표’ 오타니 쇼헤이가 고교 1학년 때 직접 작성한 자기계발 관련 장단기 계획표.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8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겠다는 목표가 한가운데 적혀 있다. 사진 출처 스포츠닛폰 홈페이지
남달랐던 건 야구뿐만 아니라 ‘인성(人性)’과 ‘운(運)’에 관한 내용도 빼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성’ 항목엔 감사와 배려, 예의, 사랑받는 인간이 되자 등을 적었다. ‘운’을 얻기 위해서는 인사, 긍정적인 사고, 청소, 쓰레기 줍기, 책 읽기 등을 해야 한다고 썼다. 오타니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며 ‘구도자’처럼 야구에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고 레벨의 선수들이 모인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도 몸값이 가장 비싼 선수가 됐다.
2018년부터 LA 에인절스에서 6시즌을 뛴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일본인 선수 오타니는 10일 내셔널리그 명문 구단 LA 다저스와 10년 총액 7억 달러(약 9200억 원) 계약에 합의했다. MLB 역사상 최초로 5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예상됐던 그의 몸값은 6억 달러를 넘어 단숨에 7억 달러 시대를 열어젖혔다. 오타니의 이번 계약은 총액 기준으로 종전 최고인 마이크 트라우트(32·에인절스)의 12년 4억2650만 달러(약 5630억 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북미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액 계약이던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캔자스시티의 쿼터백 패트릭 머홈스(28)의 10년 4억5000만 달러(약 5940억 원)도 제쳤다.
MLB.com과 야후스포츠 등은 “오타니의 계약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이라고 전했다. 오타니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FC바르셀로나(스페인)와 맺었던 5년 6억7400만 달러(약 8897억 원) 계약을 총액 기준으로는 넘어섰다. 야후스포츠에 따르면 오타니의 10년간 평균 연봉 7000만 달러(약 924억 원)는 신시내티(6750만 달러), 캔자스시티(6720만 달러), 피츠버그(4920만 달러), 오클랜드(3390만 달러) 등 MLB 일부 구단 전체 연봉보다 많다.
총액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받게 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오타니는 이번 계약에서도 구단을 배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LB닷컴과 디애슬레틱 등 미국 현지 매체는 “계약 기간인 10년 동안 오타니가 받게 될 돈은 7억 달러에 많이 못 미칠 것이다. 연봉의 상당액을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 받는 ‘유례없는 지급 유예(unprecedented deferrals)’를 오타니가 먼저 다저스 구단에 제안했다”고 전했다. 총액 7억 달러 중 절반 이상이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MLB에선 연봉 지급 유예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선수가 먼저 지급 유예를 제안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0일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오타니 합성 사진을 올렸다. 오타니와 함께 팀 중심 타선을 구축할 무키 베츠(왼쪽), 프레디 프리먼(오른쪽). 사진 출처 MLB 트위터
이에 따라 다저스는 ‘슈퍼스타’ 오타니를 영입하고도 자금 운영에 대한 압박을 덜 받게 되면서 추가 전력 보강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에인절스에서 뛴 6시즌 동안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던 오타니도 다저스의 전력 보강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아직 미국에서 우승을 해보지 못한 오타니는 그동안 “이기고 싶다”고 줄곧 말해 왔다.
베이브 루스(1895∼1948) 이후 약 100년 만에 투타 겸업 스타로 떠오른 오타니는 일본프로야구 니혼햄을 거쳐 2018년 미국 무대를 밟았다. MLB 데뷔 첫해부터 투수로 10경기 4승 2패 평균자책점 3.31, 타자로 타율 0.285, 22홈런 61타점 10도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AL) 신인상을 차지했다. 2021년에 이어 올해도 만장일치로 AL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일본을 넘어 세계 야구의 중심 MLB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MLB 6시즌 동안 투수론 38승 19패 평균자책점 3.01을, 타자로는 타율 0.274, 171홈런 437타점 428득점 86도루의 성적을 남겼다.
오타니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에인절스와 함께한 6년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며 “다저스에서도 항상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다짐한다”며 떠나는 팀과 새로 몸담을 팀 모두를 향해 인사를 남겼다.
이헌재 기자
‘다저스맨’ 오타니, 서울서 공식 데뷔… 내년 3월 샌디에이고와 시즌 개막전
김하성-다루빗슈와 대결 예고
日팬들도 ‘서울시리즈’에 관심
‘7억 달러의 사나이’ 오타니 쇼헤이(29)가 ‘다저스 맨’으로 첫 발자취를 남기는 장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도, 일본 도쿄도 아닌 한국 서울이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은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가 맞붙는 2024시즌 공식 개막전을 내년 3월 20, 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기로 올해 7월 확정해 발표했다. 이 ‘서울시리즈’는 첫날은 샌디에이고, 둘째 날은 다저스 안방경기로 진행한다. MLB 사무국은 이전에도 ‘야구의 세계화’를 목표로 해외 4개 도시에서 총 8차례에 걸쳐 시즌 개막전을 개최한 적이 있다.
서울시리즈는 원래 샌디에이고에서 뛰는 김하성(28)이 금의환향하는 무대로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이정후(25)가 샌디에이고에 입단하고 류현진(36)이 다저스로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한국 팬들 사이에 서울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오타니가 다저스에 합류하면서 일본 팬들의 시선도 서울시리즈를 향하게 됐다. 오타니와 샌디에이고 선발 투수인 다루빗슈 유(36)가 일본인 투타 맞대결을 펼칠 수도 있다.
오타니가 서울을 찾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타니는 하나마키히가시고교 3학년이던 2012년 서울 목동구장과 잠실구장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스포츠를 취재하는 오시마 히로시 작가는 “서울은 오타니가 진정한 ‘이도류’로 거듭난 곳이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대회에서도 오타니가 투수와 타자로 모두 출전한 건 2012년 이 대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다만 오타니는 9월 팔꿈치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내년 서울시리즈 때는 타자로만 출전할 예정이다.
다저스는 서울시리즈가 끝나면 LA로 돌아가 3월 29일부터 세인트루이스와 4연전을 치른다. 부상 같은 변수가 없다면 오타니도 이때 다저스 안방 팬들과 처음 만나게 된다. 다저스와 오타니의 친정 팀인 LA 에인절스의 2024년 첫 맞대결은 6월 22, 23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다저스의 내년 시즌 에인절스타디움 방문경기 일정은 9월 4, 5일에 잡혀 있다.
황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