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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초코가달콤한시간
출처: 시골의사 박경철씨 블로그, 엽혹진
사랑아 사랑아 즈려밟힌 내 사랑아 3
우선생은 3박 4일간의 신혼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왔고 나는 우선생이 돌아온 주말 오후에 우선생과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야, 우선생, 신혼 여행 좋았어? 야,, 부럽다,, 어떤놈은 피바가지 쓰면서 수술실에 짱박혀 있고, 어떤놈은 새깔깔이 마누라 얻어서 제주도 신혼여행 다니고,, 아야,, " 나도 괜히 오버를 하면서 우선생의 기분을 살폈다,
우선생은 밥을 먹는동안 내가 던진 질문이나 농담에 내내 건성으로 대답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선생 제안대로 맥주를 사들고 의과대학 뒤편 농구장 스탠드에 앉았다.
이미 밖이 캄캄한데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부생들이 런닝셔츠 바람으로 땀을 뻘벌 흘리며 길거리 농구를 하고 있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우리도 저랬었는데 말이다..
" 박선생,, 신혼여행가서 말이야,, 사실은 그냥 잤어,, 한번 생각을 해봐,, 불과 며칠전에 소연이하고 같이 바다를 바라보던 그장소에 신혼여행을 갔는데,, 도착해서 객실 베란다에서 맥주 몇병 마시고, 파도소리 듣다가 방에 들어가보니,, 자고 있더라고,, 아주 순진하고 착한 여자 같은데,, 아무것도 몰라,, 나도 대체 그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3일동안 내내 우왕좌왕했어.. 더구나 그 사람이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어서 ,,, 어딜갈까 물어도 ,, 아무데나 그러지,, 뭘 먹고 싶냐고 해도,, 내가 먹고 싶은거 먹자고 하지.. 하고 싶은거 없냐고 물어도 그냥 웃기만하지,, 내가 찍자고 안하면 사진찍자 소리도 안하지.. 내가 바보하고 결혼한건지,, 아니면 천사하고 결혼한건지도 모르겠고,, 분명히 신혼여행가서 아내하고 있는데 꼭 내내 바람피다 들킨 놈같은 기분이었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안봐도 눈에 선한 장면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의 우선생과 활달하고 적극적 성격의 소연씨는 누가봐도 이상적인 커플이었다, 그들이 한창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나도 우선생의 내성적기고 어두운 일면을 그녀가 충분히 보완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사람이 다 그모양이라니..
" 그리고 결혼전에 말이야,, 소연이가 병원에 찾아와서 뭐라고 했는줄 알아..? .. 자기가 잘못했다고 오빠없이는 못살겠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나가겠다고,, 너무 보고싶었다고 ,, 그렇게 말하더군,, 물론 내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야...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첫날은 결혼 한다는 말을 못했어,, 그날도 사실 이자리에 있었어,, 인턴때도 소연이가 찾아오면 여기 자주 왔었잖아,. 밤새 얘기를 많이했지,, 침착하려고 애를 썼어.. 그순간 당장이라도 결혼을 취소하고 소연이를 되찾고 싶었어,, 근데,, 결혼전에 이미 처가에서 돈이 많이 건네졌어,, 우리집 결혼 준비도, 신부 예물도,.모든걸 그쪽에서 부담했고,, 또 엄마를 보면 우리집 빚문제를 이미 그쪽에서 청산한 눈치였어,, 나하나 몰라라 하면 그만이지만,, 식구들로봐서는,, 아니 엄마로 봐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거지,, 사람이 그럴수도 있더군,,"
그럴수 있겠다 싶었다,
심중이 깊은 우선생이 이제서야 그 이야기를 하는걸로봐서 스스로도 많이 힘들었던 것이 분명했다,
"박선생,, 그리고 사실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걸 떠나,, 좀 지나친 분이야,,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엄마는 일주일에 한두번은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어,, 아버지는 당신이 예전에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것 ,, 평생을 그 너울을 쓰고 사신분이야,, 밥이 부실하다고,, 남편 용돈을 제대로 안챙긴다고,, 그나마 술 한잔하시면 그냥 이유도없어,, 남들은 뭐 부부싸움 하다보면 그럴수도 있다하고 쉽게 말하기도하지,, 하지만, 어릴때 부터 엄마가 아버지에게 구석에 몰려 강아지처럼 웅크리고 매를맞는 모습을 보고 자라다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줄 알아? .. 사람이란 매에 길들여 지는거야,, 전쟁에서 수용소에 갖힌 사람들이 온갖 가혹행위를 당하다가도 나중에 재판에서는 간수들의 편을 들게되지..사람은 그런거야,, 그냥 아버지는 우리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한번 웃어주거나,, 한 열흘쯤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너무 감사한거야,, 때론 존경스럽기도 해,, 그런거 알아?.. 예과 1학년때 동네형한테 기타를 얻었어,,이사가면서 준건데 꽤 쓸만했지,, 그런데 어느날 기타를 치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기타를 빼앗아서 방바닥에 몇 번 도끼질을 하시더라구,, 기타가 산산조각이 났지.. 그날 한잔 하셨는데,, 엄마가 집에 안계셨어,, 내게 의대생이 노래나 부르고 놀다가 만약 한해 유급이라도 하면 그날로 죽을줄 알라고 그러시더라구,, 애지중지하는 기타가 박살이 나는데,, 그게 오히려 감사한거야,, 왠줄알아? 그 기타로 내 머리통을 때린게 아니었거던,.그때 어떤 기분을 느꼈는줄알아? .. 아버지와 아들사이의 뜨끈한 부정같은거,, 왜 알지.. 보통 아버지 성격에는 맞아 죽어야 하는데,, 그래도 사랑하는 아들이라 봐주는 느낌.. 뭐 그런기분이 든느거야,, 그런데 내가 만약 결혼을 포기하고 사단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 것 같애?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손에 아마 그길로 맞아 죽을지 몰라..,,"
우선생에게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우선생이 고등학교 시절, 집에돌아오는 골목에서 아버지가 왠 여자를 끌어안고 있더라거나, 아버지에게 항상 여자가 있었다는 정도는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아는 우선생 아버지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실패를 하셨다 할지라도 호탕하고 스케일이 큰 분이셨다.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우선생의 감춰진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박선생,, 너 기억나? 우리가 언제부터 친해졌는지? ,, 대학때 말이야,, 잘 알겠지만, 내 별명이 빈대였잖아,,항상 담배도 얻어피고 식당에서도 누가 먹고난 밥판 넘겨받아서 그 밥판에 밥하고 국을 다시 받아다 먹었지,, 집에서 나설 때 엄마가 1500 원 을 줘,, 그럼 차비빼고 500 원 남는데., 시험 안칠때는 차비까지 아끼면 한달에 한 이만원은 모아,, 그러면 다시 그걸 엄마를 줬지,, 그때마다 엄마가 나를 잡고 울어,, 친구들도 못마땅했겠지.. 내과하는 준호 그녀석 말이야,, 삼학년땐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나보고 음료수 한잔 마시러 나가자더라구,, 우리 도서관앞에 500원짜리 음료수 자판기 있었잖아,, 같이 나갔지.. 녀석이 콜라를 한개 빼더니,,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니꺼는 니가 빼,,! 그러고는 들어가버리더라구,, 내 빈대짓이 미웠던게지.. 그게 아직 가슴에 맺히네.. 근데 말이야,, 그거알아? ,, 내가 담배 한개 달라고 했을 때,, 6년동안 한번도 거절 안하고 담배를 준게 박선생 자네였어,, 한 이년 빈대짓 하고 나니까 본과올라가니 다들 담배를 피다가도 내가 다가가면 슬슬 피하더라구,, 그건 아까워서가 아니라,, 뭐랄까 미운감정 이었겠지? 돈없으면 안피면 되지.. 지저분한 녀석,,, 뭐 이런거 아니었겠어,, 난들 그걸 몰라? ,,, 알지만 그랬어,, 왜냐하면 우리엄마하고 나하고는 어릴때부터 그런대접은 너무 익숙했거던,, 자존심 좀 굽히면 그래도 뭐가 생겨도 생겨,, 중학교때 부터 졸업 할 때까지,, 친척이란 친척, 모든 아는사람, 심지어는 성당 신부님 한테까지가서 고개숙이고,, 눈물 거렁거리면서 학비 빌려주시면 은혜를 갚겠다고 말하는게 연례행사고, 엄마는 엄마대로 고개를 숙이고, 허리 몇번 굽히면 몇천원을 빌려도 빌렸고, 하다못해 콩나물을 얻어도 얻어왔어,, 대학때도 시험문제 복사비가 없어서 노상 여학생들에게 고개를 숙였지,, 여자들은 약하잖아,, 그때 순희,지수,성숙이 얘들이 날 많이 도와줬지,, 지수는 시험때면 아예 내 몫까지 시험지를 복사해다 주곤 했어,, 박선생 너도 아마 보시 꽤나 했지? ,, 여학생들에게 솔직히 돈이없다,, 나중에 졸업해서 벌면 갚을테니 좀 도와줘하고 말했지,, 부끄러운거?,, 난 그런거 몰라,,아니,,생각을 안해.. 그게 생존인데,, 그러니 다른 녀석들이 내가 보기싫을 수 밖에.. 늘상 여학생들 등는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많이 한다는 걸 알았지만,, 상관없어,, 그런 녀석들도 가끔 담배 한개씩 주거던,,"
그랬다, 우선생의 대학시절 별명은 빈대였고, 성격이 좀 거친 녀석들은 우선생의 그런 행동을 노골적으로 비난했었다,
나도 가끔은 우선생이 돈도 없이 굳이 당구장에 따라가거나, 담배를 피거나, 술자리에 끼는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형편이 어려운것은 죄가 아니지만 그럴수록 학업에만 신경쓰고 안해도 되는 것은 안하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우선생은 그것을 사는 방식이라고 했다,
어차피 비루하게 먹고사는데, 마지막에 자존심을 세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밥은 얻어먹어도 되고 담배는 얻어피면 안된다는 기준은 그야말로 알량한 자존심일 뿐, 99% 와 100%는 다를바가 없는 것 이었다,
그는 그렇게 바닥을 기면서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있었다,
어쨌건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우선생의 아내는 수줍은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두사람의 부부사이는 최소한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우선생도 그럭저럭 잘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른들 말씀이 틀린게 없었다, 부부란 연으로 맺어지는거고 살다가 정이나는거라는 옛말처럼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간간히 작은 재미거리를 만들어 나갔다, 사실 어떤일이던 여건이 좋아도 사람이 문제다. 또 어지간히 힘들고 각박한 일도 사람들이 좋으면 되는 것인데 하물며 결혼생활이야 말해서 뭐하겠는가?..
우선생이 내성적인 사람이기는 해도 속이 깊어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잇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그런 우선생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었고, 덕분에 처음에 두사람의 결혼을 위태위태하게 바라보던 주변에서도 이젠 걱정을 거두고 두사람의 삶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갔다.
다음해 어느새 우선생이나 나나 의국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치프 레지던트의 소임도 거의 끝나가던 어느가을이었다.
우선생이 예의 심각한 표정으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선생 공부해? 시간 있으면 얘기나 좀 하자.." 그때 우리는 전문의 시험이 몇 달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각과 치프들은 전부 일선에서 물러나 뒷방이라 부르는 공부방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나도 안그래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창밖에 이리저리 날리는 낙엽을 보면서 상념에 빠져 있는데 우선생이 들어왔길래, "아니,, 그럼 술이나 한잔 할까?" 하고 일어섰다,
처음에는 가볍게 술이나 한잔 할까,, 하고 나선 걸음이었는데 우선생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우리는 병원 로비로 향하던 갈길을 돌려 의과대학 운동장 스탠드로 갔다, 그날도 운동장에는 학부생들이 농구공을 던지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부동자세로 인사들을 했다, 학부생들에게 손짓으로 신경쓰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 다음 스탠드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고보니 이자리에 이렇게 앉아 본것이 그때 우선생 결혼식이 있던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시선을 멀리두고 운동장 너머 어딘가를 응시하던 우선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박선생,, 고백할게 하나 있어,, 사실은,,, 나 결혼하고도 소연이를 계속 만났었어,, " 놀라운 말이었다, 나는 한때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은 했었지만, 이후에 급속히 평형을 찾아가는 우선생 주변의 모습을 보면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그말을 듣는 순간 무엇인가 불길한 먹구름이 저 멀리서 덮쳐 오는것 같았다..
" 결혼하기 전날 말이야,, 그날 얘기했어 ,, 소연이에게,, 너무 늦었다고,, 이젠 어쩔수가 없다고,, 소연이가 자기가 잘못했다고 없던일로하고 둘이서 도망이라도 가자고 몸부림쳤지만,, 그땐 이미 도리가 없었어,, 그날 신륵사에 가서 둘이서 부처님 앞에 손잡고 각각 자기 소원을 빌었었어,, 나는 이생에서 헤어지더라도 다음 생이라도 이 사람과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소연이는 내 손을 잡고 부처님 앞에서 내내 눈물만 흘렸어,, 그리고는 우리가 자주갔던 북한강 까페하며, 대성리 민박집까지 우리가 같이 지났던 흔적들을 되밟았지.. 그러고는 서로 잘 살아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었어,, 처음에는 소연이가 내 곁을 떠났고,, 두번째는 내가 떠난거지.. 소연이는 소연이대로,, 나는 나대로,, 둘 다 가족과 환경이 주는 짐에 손을 들어 버린거야,, 일대일이 된거지.."
우선생은 서쪽에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등지고 앉아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신혼 여행을 갔다오고 한 달여가 지나서,, 소연이가 다시 찾아왔었어,, 그런데 그때는 병원 로비가 아니라 병원사람들 눈에 띌까봐 대학쪽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결혼이란게 참 그러고보면 무거운거야,, 결혼식을 전후로,, 어느새 소연이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하는 감춰진 여자가 되어버린거야,,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반갑게 맞아주던 내 친구들, 그동안 안면을 익혔던 병동 간호사들, 선후배들을.. 행여 눈에 띌 새라 눈을피해야 했던 거지., 박선생,, 부끄럽지만 나도선 견디기 어려웠어,, 굳이 이해를 하란것도 아냐,, 그냥 그랬어,, 그렇게 사람들 눈을 피해서 골목 후미진 커피숍에서 벽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책을 읽는척하고 있는 소연이를 보는 순간 눌렀던 감정이 폭팔해 버린거야,, 왜 그랬냐구..? .. 나도 몰라,, 연애하다보면 가끔 이런질문 하잖아,, 왜 나를 사랑하느냐고 ?,, 사실 그 질문에 답이 어디있어? ,, 그 답을 알면 사랑하는게 아니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란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당위가 되거던,, 사랑은 그저 현상이지 당위가 아니거던.."
뭔가 녀석의 말에 반박을 했어야 했지만,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길로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어,,아니 이젠 진짜 불타버릴 정도로 네속에 내가 들어가고 싶을정도로 사랑했어,, 이상한 일이지,, 처음에 연애 할 때만해도,, 심지어 결혼식 전날까지만 해도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었는데,,우리는 결국 뒤집지 못했었지,, 그렇지만,, 오히려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저 이젠 그걸 뒤집으려 한거지.. 아니 뒤집으려 한것도 아니야,, 소연이는 그날부터 숨겨진 여자가 되었고, 나는 나대로 그녀의 햇빛을 가리는 검은 망또같은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거지..그러다 연차가 올라가서 오프가 생겨도 집에서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고, 우리는 오프날이나 주말에 만나서 예전처럼 다시 하나가 되었어,, 달콤하더군,,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 소연이가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지만 않았어도 말이야,,"
녀석의 말은 계속 이어졌고, 요지는 두사람은 결혼후에 다시 만나 반년 정도를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소연씨가 사람들 눈에 뛸까봐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다가 약간 정신적 스트레스 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양가집 아가씨가 자기도 모르는새 저절로 "불륜"이라는 상황에 빠져들었으니, 심리적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공황장애라는 불안증세를 보였고, 결국 두사람은 눈물을 머금고 다시 헤어졌다고 했다, 이제는 정말 헤어지지않으면 두사람다 자멸할 것이라는 점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두사람이 서로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물러서야 한다는 상황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러고보면 그것이 세번째 헤어짐 이었던 셈이다.
한번은 그녀가, 두번째는 우선생이, 세번째는 서로가 그 "상황" 이라는 것을 이유로 헤어짐을 반복한 셈이었다, 이글을 읽는 분들은 우선생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함부러 돌을 던지지 마시기를.. 굳이 예수의 말씀을 빌지 않더라도, 그저 몸과 돈을 탐하는 것을 당당하게 "사랑"이라말하는 시대에, 그들의 "불륜"은 그래도 "지독한 사랑"이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선생에게는 그런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었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그이야기를 꺼내는지, 그리고 우선생의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두운지, 그 이야기가 오늘 내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었을텐데, 우선생은 그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던 우선생이 그녀로부터 오늘받은 편지라고 하면서..내게 한장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 편지에는 소연씨의 갸냘프고, 예쁜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 곳으로 달려가는 한 시간내내 담담한 척 차창 밖만 내다 봅니다.
일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10년이 된 것 같습니다.
애써 외면하며 찾지 않았던, 아니 차마 발걸음할 수 없었던 곳입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내방면으로 접어듭니다.
어쩔 수 없이 안절 부절,,, 손발까지 저려옵니다.
물어물어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길건너 소방서 앞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이제는 지척입니다.
꺼리낌없이 길 건너 저 병원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사람이 약간은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반겨 맞아줄 것만 같습니다.
목이 메입니다.
병원소식을 알리는 문구가 커다란 광고판을 어지러이 지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어갑니다.
아마도 저 문을 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 뿐인가 봅니다.
공황도 잊은 채 뙤약볕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습니다.
뒤돌아 서며
`차라리 여기서 쓰러져 버렸으면......`
어처구니 없는 생각마저 해 봅니다.
또 다시 차창 밖만 내다 봅니다.
초조한 듯 지루한 듯 의과대학 잔디밭에 앉아 있다 저 멀리 내가 도착하자
자기도 모르게 "왔다"라고 외치며 환한 얼굴로 버스 앞으로 달려드는
그 사람이 10년 전 모습 그대로 저안에 있습니다.
그날 내가 타고떠났던 택시승차장도 보입니다.
그 땐 내가 순진했나 봅니다.
그 사람이 태워 준 차를 타고 순순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안 가겠다고 한 번 이라도 말 해볼 걸......
모든 것이 후회고 그리움입니다
사람의 가슴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내가 아는한 사람의 가슴속은 방추처럼 생긴 근육에 둘러 쌓인 벌건 심장과, 마치 스펀지처럼 부풀었다 가라앉는 걸붉은 폐, 피가 지날때면 소방호스처럼 팽팽하게 불어 오르는 대동맥과 정맥들,, 그런것들이 얽혀 있을 뿐인데.. 내 눈앞에서 이런 가슴아픈 일을 목도하면 가슴이 뻐근해지고, 마치 예리하게 날이 선 칼날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을 가슴에서 느끼게된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는 그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단지 저멀리 떨어지는 석양과,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빛바랜 플라타너스,, 그리고 노란색 단풍잎들을 바라보면서. 이미 우리들이 허공에 떠나보낸 상실의 시대를 추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선생과는 그자리에서 그렇게 헤어졌다
술을 한잔하기에도, 그렇다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에도 마땅치 않았다. 우선생은 우선생대로 나는 나대로 가슴에 담아두고 혹은 접어 둘 이야기들을 따로 골라내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생에게는 그녀의 이야기가,,내게는 우선생과 그녀의 이야기가 그랬던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의 아픔에 너무 가슴이 시렸다, 그녀의 편지는 머리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토해 낸 것이었다, 세상에 어떤 시인이 있어 그런 아픔을 담아 낼 수가 있을까.. 그런말이 가슴에서 토해져나온 그녀의 아픔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간단하게 의국회의에 참석하고, 다시 의국장실로 올라왔다. 전문의 시험준비때문에 일선에서 열외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전 10시면 책을 보는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담배를 피워물고 책을 펴다가 우선생방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람의 예감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나는 어제 헤어지는 순간 우선생이 그길로 마산으로 달려 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고, 일어서면서 "우선생 혹시..?" 하면서 물어보려다가 물음을 그대로 삼켰었다, 그럴수도 있으리라 생각했고, 설령 그런들 내가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흉부외과 의국에 전화를 걸어 역시 우선생이 출근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다음, 우선 그 일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4년차 말이니 출근문제로 누가 사람도 없을 것이고, 본인도 영영 가슴에 가둘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그곳에다 버리고 오던지, 태워버리던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날도 우선생이 나타나지 않았다,
흉부외과 의국에서 3년차가 과장님이 우선생을 찾으신다고 나를 찾아왔다. " 선생님,, 저희 치프 선생님 연락처 모르십니까? 댁에도 전화를 안받으시고, 소식도 없으시고, 삐삐도 안됩니다, 과장님이 찾으시는데 어떡하죠?"
우선생이야 그렇다치고 우선생 집에도 하루동일 아무런 연락도 닿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우선생이 마산으로 떠나고, 아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가 짐을 싸고...상투적인 생각들이 머리를 괴롭혔다, 이후로 하루종일 우선생집으로 전화를하고, 삐삐를 치고 우선생을 찾다가 할 수 없이 우선생 본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벨이 울린 후 누군가가 전화를 받은 다음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너머에서는 끊어진 신호음만 "뚜뚜,, "하고 이쪽으로 건너왔다, 그리고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길했다, 뭔가 사단이 생긴것이 분명했다,
첫댓글 헉 먼대 우선생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