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 3:2-449 사경모음
--- 문수사경반
숫타니파타 3:2-449
법정스님 옮김
2568. 11. 15
449
근심에 잠긴 악마의 옆구리에서
비파가 뚝 떨어졌다.
그만 그 야차는 기운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혜정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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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따니파타
일아 옮김
2568. 11. 15
449
슬픔에 빠진 그의 옆구리에서 위나 악기가 뚝 떨어졌다. 그래서 낙심한 악마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원호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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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3:2-449
김운학 옮김
2568. 11. 15.
449 근심에 잠긴 악마의 옆구리에서 비파가 뚝 떨어졌다. 그러자 그 야차(악마)는 기운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자비심 사경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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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제자 이은정 영가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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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전재성 역주
2568. 11. 15
449.
슬픔에 넘친 나머지
옆구리에서 비파를 떨어뜨리고,
그만 그 야차는 낙심하여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법보행 사경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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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석지현 옮김
2568.11.15.
449.슬픔에 찬 마라의 옆구리로부터
힘없이 비파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마라를 따라왔던 마의 무리들도
새벽의 어둠처럼 그렇게 쓸려가 버리고 말았다.
관세음보살()()()여실문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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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수타니파타
2567. 11. 15
2-19
(442)
인단과 신들의 세계가 정복할 수 없는
그대의 군대,
마치 아직 굽지 않은 질그릇을 돌로(부수어버리듯) ,
지혜로 그것을 박살내리라.
자비심 사경 합장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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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혜정 합장
☆☆☆☆☆☆
[숫타 니파타 3:2-449 자림 가사단상] - 3.큰 법문
2. 정진의 경
449. [석가 세존]
슬픔넘쳐 옆구리의 비파까지 떨어뜨려
그야차는 낙심하여 자리에서 사라졌네
----2568. 11. 15 자림 심적 합장
[숫타 니파타 3:2-449 자림 시조단상]
슬픔에 넘친 나머지 옆구리에서
비파를 떨어뜨리고 그만 그 야차는
낙심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네
●●●더하는 말○○○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악마 나무치가
야차로 표현이 되는 부분인데 변신술에 능한
존재이므로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보여
지며 평소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몸의 형태를
바꿀 수 있으나 마지막에 야차의 모습을 드러
내고 낙심하고 실망하여 자리를 떠났다는 모습은
다른 의미로 본다면 그 모습은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존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인다는 하나의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자신의 내면과 세속의
외면등의 환경과의 모순과 충돌을 비유한 것
이라면 그것은 내면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
찬란한 지혜의 빛이 빛나는 순간 어두움의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지니 마치 어두운 밤에 빛이 나타나면
어둠을 밝히는 것과 같고 밤이 지나고 아침해가
떠오르면 어둠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듯이
악마는 본래 나의 몸과 말과 뜻의 행위가 만들어낸
그림자일 뿐이며 그것은 모순되고 고뇌하고 길들이는
나의 내면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모두
극복이 된 상태에서 밝은 대낮에 어두운 그림자를
찾는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므로 나의 그림자에
내가 놀랜다면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니 완전한
수행자의 안목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슬픔에 넘친 나머지 옆구리에서 비파를
떨어뜨린다는 대목은 비파라는 악기 자체가 유흥을
즐기고 사람은 들뜨게 만드는 역할을 하니 인도
사람은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부를때 비파가 자주
등장하며 그러한 인도 문화의 영향인지 몰라도
중앙아시아와 중국까지도 비파는 전해져 지금도
현악기로 사용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슬픔이
넘친다는 슬픔은 악마는 악마의 목적이 있고 할
일이 있고 그 할 일을 해서 수행자, 사문, 바라문
등을 나락으로 빠뜨려서 세상이 흥청망청하여서
니나노의 세상이 되고 그러는 가운데 타락하고
서로 반목하며 싫어하고 질투하며 싸우고 교만
하고 오만하고 제 잘난맛에 사는 인간들이 많아야
악마는 즐거운데 고요한 마음을 닦고 마음을 잘
챙기며 강력한 믿음을 바탕으로 게으름없이 정진
하여 지혜를 얻는다면 악마는 할 일이 없으니 슬프고
즐겁지 못하니 가장 아끼는 비파마져 떨어뜨리고
사라져 버릴수 밖에 없으니 그것은 쫓아내어 가라고
해서 가는것이 아니라 너무나 심심하고 슬프고 만족
하지 못하니 떠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표현은
검은돈이 좋은돈을 도와 상부상조한다는 의미
이니 이러한 모순된 구조에서는 청정을 바라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일 수 있는것이다.
당시의 인도의 수행자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구걸하고 숲이나 동굴에 지내며 수행을 한 것은
그 어떠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진정으로 자유
자재한 해탈 열반을 얻기 위한 행위의 실천임을
알아야 한다.
악마가 할 일이 많은 자본주의는 늘 시끄러우며
사건사고는 계속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