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iotheca Alexandrina
Alexandria Egypt
2002년 10월 16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설립되었다. 일명 신(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전 세계 지식의 중심이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해시계처럼 생긴 건물의 구조와 벽에 새긴 장식 등 많은 곳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벽에 여러 가지 언어들을 새긴 것이 인상 깊은데 이 중 한글로는 '세월', '여름', '강'을 새겼다.
1974년 알렉산드리아 대학교에서 도서관 건립의 아이디어와 필요한 부지를 제공했다.
이곳은 지중해 도시로 유명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 도서관 벽면에 전 세계 글자가 다양하게 새겨져 있는데, 그중 한글도 있다.
2002년 개관한 현대식 도서관이다.
바로 이 자리에 헬레니즘 시절 세계 최고의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었다. 당시 이곳은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떤 자료에 보면 100만 권이라고 한다. 당시의 책은 모두 파피루스였기 때문에 대단히 귀했다. 서양세계의 모든 책을 다 모은다 해도 몇만 권이 되기 어려웠다 한다.
여하튼 이곳은 당시 지구의 반쪽에 해당하는 유럽과 근동(Near East) 지방의 모든 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렉산드리아에 들어오는 배에 실린 책은 무조건 도서관에 제출되어야 했고, 도서관에는 이를 필사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때때로 원본은 돌려주지 않고 필사본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식으로 장서를 모았다고 한다.
헬레니즘 시절 수많은 학자들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이곳의 학자들이 발견하였고 그것에 기해 지구의 둘레를 정확히 계산해 낸 것도 바로 이곳이다. 기원전 2세기 말 도서관장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 둘레를 계산한 것은 수학사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다. 그는 정오를 기준으로 알렉산드리아와 아스완(당시 시에나) 사이에 그림자 각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알렉산드리아와 아스완 사이의 거리를 실측한 다음 지구 둘레를 계산해 낸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던 헬레니즘 최고의 학문의 전당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 없어졌다.
일설에 의하면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하면서 부주의로 불을 냈다고 하는데 이를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헬레니즘 시대를 지나 도서관은 점점 쇠퇴했지만 이슬람이 들어 온 7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서관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완전히 불타 버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새로운 도서관은 21세기형 최첨단 도서관이었다. 아직 장서는 보잘것없다고 하지만 인류의 지혜가 결집하여 그 옛날 인류의 지식창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기념하여 멋있는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하얀 화강석 외벽에는 120여 개 문자가 쓰여 있다. 한글도 있다. 이국땅에서, 그것도 문명사에 길이 남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만나는 한글은 진정 반갑다.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서관이다.
무세이온(Musaeum, Mouseion)의 부설 기관(자료실)으로 건립되었으나 학문적 중요도나 유명세는 무세이온을 넘어섰다. 무세이온 산하 제1도서관과 세라페이온 산하 제2도서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당대 최고의 학자를 도서관장으로 임명하고 전 세계의 학자들을 알렉산드리아로 초빙하는 등 세계 최고의 도서관을 만들 목표로 엄청난 재원을 투자하였다.설립 초창기에는 그랬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원으로 발전하였으며, 기원전 3세기경 건립된 이후 고대 로마가 이집트를 점령한 기원전 30년대까지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제1도서관
기원전 3세기경, 신성한 장소에 인류의 지식 모두를 아우르려는 욕구에서 지어졌다. 헬레니즘 시대 학문연구의 중심이었으며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잠시 번영하였다가 이후 쇠퇴하였다. 각지에서 초청된 학자 100여 명이 자연과학, 문헌학을 연구하고 강의하였다. 기원전 300년경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건립을 시작하였으며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완성하였다.
귀족이나 명망 높은 학자라든가 특권층이 제1도서관의 주 이용자. 브루케이온(Bruchium, Brucheion), 즉 왕실 지구에 소재한 제1도서관은 학문 연구소의 기능도 했다.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는 100여 명의 교수가 배치되어 있었고, 오늘날의 대학 캠퍼스처럼 정원, 공용식당, 열람실, 강의실, 회의실 등의 시설이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계의 여러 서적들과 중동, 유럽 지역의 여러가지 고서들, 연구 자료,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기원전 4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을 때 로마 병사들의 방화로 큰 손실을 입었다. 이때 도서관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고 기원후 3세기까지도 로마 치하에서 존속하였지만, 3세기 초 카라칼라의 무세이온 탄압으로 알렉산드리아 교육의 중심지는 이하의 세라페이온으로 이동했다.
그래도 기원후 260년대까지는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으나, 무세이온과 도서관은 270년대, 특히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팔미라의 제노비아로부터 알렉산드리아를 빼앗은 272년 전후, 또는 늦어도 3세기 말(특히 297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알렉산드리아 포위 전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4세기나 5세기에도 '무세이온'이라는 장소에 대한 언급은 문헌에 드물게 나타나지만 이는 다른 무세이온이나 다른 어딘가에 일시적으로 재건된 무세이온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제2도서관
기원전 235년경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지은 세라피스 신전, 즉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페이온(Serapeum, Serapeion)[3]은 기본적으로는 신전이었지만,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학술 중심지로 무세이온과 나란히 발전하였다.
세라페이온 부속 도서관도 있었으며, 이를 편의상 무세이온 부속 도서관과 구별해서 '제2도서관'으로 부르기도 한다. 공공도서관 느낌이었다. 대출 여부는 미지수. 기원전 43년 페르가뭄 도서관이 20만권에 달하는 책을 이관해줌으로 확장되었다. 세라페이온은 3세기 초부터 무세이온을 능가하는 교육 시설이 되었고, 세라페이온 부속 도서관도 무세이온 부속 도서관에 버금가거나 그를 능가하게 되었다. 세라페이온이 언제 파괴되고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3세기 말까지 무세이온은 이미 거의 몰락했으므로, 아래의 "몰락" 절에서 3세기 이후에 다루는 것은 상당 부분 세라페이온의 몰락일 수 있다.
세라페이온은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 시절인 4세기 후반, 391년의 다신교도 성전 출입 금지 칙령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사료는 작성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다신교도 측 사료에 따르면 이때 기독교도 군중들이 세라페이온을 파괴했다고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동방 원정 지역 30~40곳에 신도시를 건설해 헬레니즘 세계 경영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 가운데 이집트의 제2 도시인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가 가장 유명하다.
알렉산더의 급서 후에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왕조를 세워 이집트를 통치했고 알렉산드리아에 수도를 두었다. 기원전 3세기 초대형 도서관을 지어 지중해 세계의 모든 도서를 수장, 고대 학문 연구와 교류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현대 이집트의 지식인들이 고대 도서관 재건 운동을 벌였고, 국제사회 후원으로 2002년 새로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개관했다.
총 11층 높이의 새 도서관은 원통을 기울여 반쯤 지하에 묻은 형상이다. 기울어진 원형 지붕은 반짝이는 금속 재질이어서 마치 사막의 지평선에서 떠오는 태양과 같은 이미지다.
태양신 레(또는 라)를 숭상했던 고대 이집트에 대한 오마주로 읽히기도 한다. 지상으로 솟아난 원통 벽은 나일강 중류 아스완 지역에서 채석한 화강석으로 마감했다. 석벽에는 지식과 학문의 상징으로 전 세계 4000여 개의 고유문자와 기호들을 새겼다.
가장 경이로운 곳은 내부공간이다. 직경 160m의 거대한 원통 공간 안에 7층의 테라스를 계단식으로 설치했다. 각 테라스는 체계적으로 분류된 서고와 독서공간으로 2000명을 수용하는 세계 최대의 개가식 열람실이다. 북쪽으로 뚫린 지붕 천창들을 통해 적정 조도의 간접 채광이 들어와 내부를 신성하게 만든다. 무수히 반복하는 높은 기둥들이 카르나크 신전의 대열주실(大列柱室) 같은 고대의 건축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 공간을 창조한 건축가들은 노르웨이의 스뇌헤타 그룹이다. 설계 당시 30대 초반의 신예들이었고 2025년 완공 예정인 부산 오페라하우스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고대 도서관의 입구에 ‘영혼의 안식처’라고 쓰였다 한다. 새 도서관은 현대 기술을 기반으로 고대 문명의 역사성과 나일 삼각주의 지역성을 구현한 새로운 영혼의 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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